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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28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2014) - 매튜 본 : 별점 3점

올 초를 뜨겁게 달구었던 화제작. 영화 보기가 어려운 상황이라 뒤늦게 감상하게 되었네요. 줄거리는 익히 잘 알려져 있으니 생략하겠습니다.

만화 원작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확실히 B급 향취가 가득합니다. 특히 한국인이라면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을 정도로 익숙한 무협지의 전형적인 얼개를 충실히 따른다는 점에서도 더욱 그러했습니다. 생명의 은인의 아들을 제자로 삼은 무림 고수가 죽은 뒤, 제자가 복수에 나선다는 이야기는 정말 전형적인 구성이지요.
나름 심각한 내용임에도 끝까지 유머를 잃지 않고 B급 정서를 유지한 것도 인상 깊었습니다. 마지막 머리가 "폭죽처럼" 터지는 장면, 핀란드 공주의 "뒤로 해줄게" 발언 같은게 대표적입니다.

동네 찌질이였던 에그시가 첩보원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대부분 생략하고 철저히 액션에 집중한 감독의 선택도 나쁘지 않습니다. 훈련을 받았다면 뛰어난 실력을 갖췄을 것이라는 가정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이야기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오히려 히어로의 성장 서사를 지나치게 강조했던 기존 영화들과는 다른 신선한 발상이라 볼 수 있겠네요.

무엇보다 이 영화 최고의 매력 포인트는 콜린 퍼스가 연기한 갤러해드 해리 하트 캐릭터입니다. 젠틀맨이 무엇인지 눈빛만으로도 보여주는 인물이었고, 어울릴 것 같지 않던 액션도 놀라운 수준으로 선보였습니다. 딘 일당을 쓰러뜨리는 펍 액션도 훌륭했지만, 광기에 가득 찬 교회에서의 살육 시퀀스는 그야말로 황홀한 시각적 경험이었습니다. 비록 최후는 다소 허무했지만,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인상이었어요. 구태여 비교하자면 "스타워즈"의 오비완급 캐릭터였달까요. "스타워즈" 프리퀄처럼 젊은 시절의 해리가 주인공인 프리퀄이 나온다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배우가 워낙 마음에 들기에 아주 오래전 이야기가 아닌, 과거의 작전 중 하나만 다뤄도 괜찮을 것 같고요(* 방법은 알 수 없지만 후속편에 콜린 퍼스의 해리를 계속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마이클 케인이 킹스맨의 수장 아서로 등장한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뼛속까지 영국인 같은 배우들이 젠틀맨을 연기하니 마음에 들지 않을 수가 없네요. 죽기 직전 쌍욕을 내뱉는 장면도 반전 매력을 더했습니다. 이렇게 친숙한 영국 배우들이 등장하니 휴 그랜트도 카메오, 아니면 란슬롯 역으로 출연해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또한 첩보영화의 왕도와도 같은 다양한 특수 무기들이 등장한 것도 좋았고, 중간중간 "007" 같은 고전 첩보영화를 언급하는 유머도 고전 팬으로서 반가운 포인트였습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없진 않았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멀린의 해킹으로 대부분의 위기가 너무 쉽게 해결된다는 점입니다. 이 정도 해킹에도 대비하지 못한 발렌타인이 무너지는 전개는 너무 허술하게 느껴졌고, 덕분에 해리가 왜 죽어야 했는지도 의문스러웠습니다.

록시의 비중이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꽤 크다 싶었는데, 결말부에 거의 존재감이 사라졌다는 것도 아쉬웠습니다. 핀란드 공주보다도 비중이 낮아 보였으니, 이 정도면 분량과 캐릭터 모두 낭비된 셈이죠.

허나 장점이 워낙 확실한, 즐거움이 가득한 영화이기에 결론적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이야기는 헛점 투성이에 유머나 잔혹한 표현도 다소 과하지만, 이상하게 즐겁고 재미있는 영화였습니다. 제 취향에는 딱 맞았지요. 인생 뭐 있습니까. 보면서 즐기면 그게 최고입니다. 후속작이 나온다니 아주 기대됩니다.

2025/04/25

나 혼자만 레벨 업 시즌 1, 2 (2024~2025) - 이토 신고 : 별점 2.5점

동명의 유명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넷플릭스를 통해 시즌 1과 2를 한 번에 몰아쳐 감상하였습니다.

이세계에 전생한 주인공이 특별한 치트 능력을 부여받아 무쌍한다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최약체 E급 헌터였던 성진우가 이중던전에서 '플레이어'라는 유일무이한 존재로 각성하는데, 플레이어는 혼자만 레벨업이 가능하고, 퀘스트 수행이나 능력치 분배가 가능한 게임처럼 작동하는 세계의 규칙을 적용받는다는 설정 역시 다른 이세계 무쌍류와 유사합니다. 등장 인물들을 능력치로 등급화한 세계관, 그리고 주인공이 여러 스테이터스 창을 띄우고, 게임처럼 진행한다는 설정도 뻔하디 뻔하고요. 

하지만 이 작품은 배경 설정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가장 큰 차이는 전생물이 아니라 무대가 '현실 세계'라는 점입니다. 이야기는 어느 날 갑자기 현실 세계에 '게이트'가 등장해서 마물들이 출몰하고, 인간 중 일부는 '헌터'라는 초능력자처럼 각성한 뒤 게이트에 들어가 마물과 싸우고 보상을 얻는다는 설정에 바탕을 두고 있거든요. 헌터는 E급부터 S급까지의 능력치를 기준으로 등급이 나뉘며, 사회 전반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존재로 그려지고요. 헌터 간의 계급, 게이트 등급, 마석과 마정석을 둘러싼 경제 구조와 이를 둘러싼 인간 관계 등도 잘 설명되고 있습니다.

성진우가 네크로맨서로 전직한 뒤 자신만의 군단을 형성해 가는 설정도 독특해서 괜찮았습니다. 많은 부하를 이끌게 됨으로써 빠른 레벨업과 강하고 다수인 적들과 맞서 싸워 이기는데 설득력을 부여함은 물론, 자신이 이긴 적을 동료로 얻고 활용하는 과정은 '동료 수집'이라는 게임적 재미를 구현하고 있거든요. 시즌 2의 제주도 4차 레이드에서 치명상을 입은 차해인을 구하기 위해 전사한 A급 힐러 민병구를 되살리는 극적 연출에서도 효과적으로 활용되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액션 연출의 완성도가 아주 높습니다. 칼과 마법, 그림자 군단이 엇갈리는 전투 장면은 빠른 속도감과 현란한 연출로 몰입도를 극대화시킵니다. 가끔은 동화 수가 부족한 느낌도 들기는 하는데, 과감한 구도의 사용 등으로 잘 커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서 설명했던 대로 비교적 뻔한 설정이라는 단점은 있습니다. 이런 류의 작품들 대부분이 가진 문제인데, 성진우의 능력이 후반으로 갈수록 상식을 초월한다는 문제도 커요. 결국 성진우가 이길게 뻔해서, 그렇게 몰입이 되지 않더라고요. 게다가 성진우가 초월적인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주도 레이드 초기에 참여하지 않은건 욕 먹어도 쌉니다. 그가 초기에 참여했다면 헌터들의 희생을 막고 보다 쉽게 개미 떼를 정리했을 테니까요.

성진우가 플레이어로 선택된 이유도 설명되지 않아서 답답하며, 여동생의 친구 한송이나, B급 힐러 이주희 등 주요 캐릭터처럼 등장했지만 별 의미 없이 퇴장하거나 비중이 사라지는 인물들이 많은 점도 이야기의 완성도를 떨어트립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이세계 무쌍물의 익숙한 틀을 따르지만, 배경을 현실 세계로 설정해 차별점을 두었으며 주인공의 네크로맨서 전직과 액션 연출의 몰입도는 인상적입니다. 다만 전개가 뻔하고 설명되지 않은 설정, 비중 없는 조연 등은 아쉬움을 남깁니다. 그래도 재미있게 감상했습니다. 다음 시즌이 기대되네요.

2014/12/19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Guardians of the Galaxy (2014) - 제임스 건 : 별점 4점

1988년, 어머니가 사망한 뒤 슬픔에 가득 차 병원에서 뛰쳐나간 피터는 우주선에 납치당했다. 그리고 26년 후, 라바저로 성장한 피터 퀼은 정체불명의 고가 오브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오브를 팔기 위해 향한 잔다르에서 오브를 노리는 로난의 양딸 가모라, 피터에게 걸린 현상금을 노린 로켓과 그루트 컴비와 격투를 벌였고, 한꺼번에 체포된 그들은 우주 감옥으로 보내졌다.
감옥에서 만난 드랙스와 의기투합한 4인은 탈옥 후 오브를 고가에 팔기위해 구매자가 있는 노웨어(Knowhere)로 향했고, 콜렉터로부터 오브의 정체를 들었다. 오브는 생명체를 파괴하는 무서운 무기였다. 마침 로난이 노웨어로 쳐들어왔고, 결국 오브를 빼앗긴 일행은 라바저의 보스 욘두를 설득하여 오브를 탈환하기 위한 작전에 들어가는데...

드디어 봤습니다. 마블 스튜디오의 히어로 시리즈 최신작 스페이스 오페라입니다. 옛날 말로 "우주 활극"이라고 해도 어울릴 고전적이면서도 B급의 향취 가득한 작품인 덕분에 아주 즐겁게 감상했습니다. "우주해적 코브라"를 영화로 만들면 딱 이런 분위기일 것 같은데, 정말 저 같은 사람에게는 취향 직격하는 영화였어요.

장점이라면 우선, 2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이 전혀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적절한 전개가 좋습니다. "퍼스트 어벤져"처럼 "어벤져스"를 위한 떡밥으로 사용되지 않고, 자기 자신만을 위해 러닝타임을 소비한 덕분입니다.

캐릭터들도 아주 인상적입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캐릭터들을 매력적으로 살리고 있어요. 초인은 아니지만 몇몇 특수 장비와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헤쳐나가는 스타로드 피터 퀼은 "육화의 용사"의 아들렛 등과 비슷하지만 마지막에 밝혀지는 반전 덕분에 차별화되며, 입이 거친 터프가이 콤플렉스 덩어리 로켓 라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강한 임팩트를 남기는 최강자 그루트는 더 말할 것도 없는 최고의 캐릭터들이었습니다.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 흔히 보아왔던 츤데레 여전사 캐릭터의 스테레오 타입인 가모라와, 비중만큼의 강함과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드랙스는 조금 아쉽지만 나름대로 액션과 개그에서 깊은 인상을 남겨주고요.

이들의 활약에 더불어 감독의 재능이 엿보이는 감각적인 연출, 곳곳에 숨어있는 잔혹하지만 웃기는 장면들과 깨알같은 명대사들도 보는 재미를 더합니다. 특히 잔혹해 보이는 유머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필요도 없는 의족을 탈출에 쓸 거니 가져오라고 하는 식으로요. 이런 건 오롯이 감독의 능력이라 생각됩니다.

아울러 다른 마블 영화와는 다르게 대놓고 "만화입니다!"라고 주장하는 듯한 화면 효과와 아트워크를 선보이는데, 이 역시 완전히 제 스타일이었습니다. 굉장히 과하고 쨍해서 리얼리티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외려 영화와는 분위기가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제가 80년대 키드이기에 "Awesome Mix"를 온전하게 즐길 수 있다는 것도 좋았고요. 그런데 영화에서 기억에 남을 정도로 언급된 케빈 베이컨의 "Footloose"가 나오지 않은 것은 의외이긴 합니다. 어른의 사정이 있던 걸까요?

물론 좀 막나가는 영화답게 전개에 허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면 콜렉터의 시녀가 자살을 시도하지만 않았어도 콜렉터가 오브를 정상적으로 소유하게 되었을 테니 아무런 문제가 없었겠죠. 드랙스가 로난을 불렀어도 이미 피터 일행은 떠난 뒤였을 테고, 피터 퀼 일행이 개입될 여지가 없으니까요. 그 외 가모라의 급작스러운 배신이나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욘두의 행동거지 등 전개에 급작스러운 것들이 많은 편입니다.

하지만 단점은 사소할 뿐, 즐겁고 화끈하다는 영화 본연의 가치에 지장을 주지는 않습니다. 한마디로 즐거운 영화로, 모든 분들께 추천하기에는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 같긴 한데 저는 대호(大好)!였습니다. 저와 같은 취향, B급 정서 가득하신 분들께는 강력하게 추천드립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덧붙이자면 명장면이라 할 수 있는 로난 앞에서 스타로드가 댄스 배틀을 벌이는 장면은 "Breathless"의 마지막 장면, 리차드 기어의 노래와 춤을 그대로 사용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뭐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는,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인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확인 한 번 해 보시길.

2003/12/15

방탄승! Bullet Proof Monk - 폴 헌터 : 별점 1.5점


주윤발... 윤발이 형이 한때 나의 우상이었던 때가 있었죠.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사이였던것 같은데 주변 친구들이 유덕화다, 장국영이다 하고 빠져나갈때도 저는 윤발이 형을 적극 지지했었죠.
그런 윤발이형도 헐리우드에 진출한지 몇년 되어가는것 같은데 B급 영화에만 몇개 출연했을뿐이고 유일한 성공작이 오히려 정통 무협영화였던 "와호장룡"이었던것 같습니다. 그래도 윤발이형의 카리스마나 분위기는 헐리우드에서 인정하고 있는지 이번에 다시 정통 액션 영화로 복귀했네요. 이름하여 "방탄승! ( Bulletproof Monk )"

- 수백년 동안 티베트 고승들 사이에 전해 내려온 전설의 두루마리가 있다. 읽기만 하면 엄청난 힘과 영생을 누릴 수 있는 비기가 담긴 두루마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버린 무명승(주윤발)은 악의 무리가 쏜 총에 맞아 천길 벼랑 아래로 떨어진다. 60년 뒤 뉴욕. 그때 그 무명승은 후계자를 찾기에 여념이 없다. 지하철에서 위험에 처한 아기를 구한 소매치기 카(숀 윌리엄 스콧)를 발견한 무명승은 그를 후계자로 낙점하고 특별 훈련을 강요한다. 처음부터 삐걱대기 시작하는 이들. 과연 세계 평화를 지킬 수 있을 것인가.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실망입니다. 일단 저 스토리가 말이나 됩니까? 거기에다가 미국에서도 "와호장룡"의 성공에 너무 고무된것일까요? 예고편에서 나왔던 그나마 멋졌던 윤발이형이 쌍권총을 잡고 한바퀴 도는 장면은 그 장면이 전부였었고 오히려 와호장룡식의 무중력 경공같은 장면이 난무하고 악당들과는 쿵푸액션으로 대결합니다.

뭐..이런 액션장면은 B급 액션영화에서 무술을 배운 주인공 카라던가 러시마 마피아의 딸인 여주인공 제이드, 나찌의 잔당인 악당두목같은 설정이나 오로지 우연과 비약에만 의존하는 이야기 구성에 비하면 애교죠. 원작이 만화라서 그런가? 그래도 그렇지 원작이 만화라도 영화에서 이런 설정이 도대체 얼마나 용서가 되는건지 참 알 수 없네요. 더군다나 윤발이형은 절대 "방탄승" 이 아닙니다!!!

윤발이형은 왜 이런 영화에 출연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영화가 망한것도 당연하죠. 별점은 1.5점입니다. 윤발이 형도 더 늙기 전에 어서 괜찮은 영화에 나와줘야 할텐데 걱정입니다....

2007/08/05

디 워 (D-War, 2007) - 심형래

스토리야 뭐 워낙 잘 알려져 있으니깐 생략하기로 하고... 전 개인적으로 무척 재미있게 감상했습니다.

뜬금없고 난데없는 장면들의 연속일지라도 스토리가 이어지지 않는것은 아니며, 배우들이 연기를 발로 하더라도 어쨌건 CG로 구현된 이무기와 용이 너무 멋있고 대단했기에 돈은 전혀 아깝지 않았거든요. 애국심을 떠나서라도 화려한 이무기의 액션은 최소한 저에게는 8000원의 값어치는 충분히 했습니다. 특히 마지막의 용은 정말! 캐감동이더군요!

조금 조사해보니 어떤 영화감독의 글로 파문이 좀 일었나 봅니다. 그런데 솔직히 저에게는 그 감독의 "질투" 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B급 영화, 혹은 독립영화로 시작하여 메이저로 진출한 사람이 널리고 널린 국내 영화판에서 아직도 독립영화계에 있다는 것 자체가 본인에게는 불만이었을 수는 있겠지만.... 뭐 그것도 그 사람 실력이니까요. 

어쨌건, 로저 코만이 이야기했죠. 돈을 들인것이 화면에 보여야 한다고. 국내 대작 중에 들인 만큼의 돈이 화면에 보였던 작품이 어떤 것이 있었죠? 배달의 기수였던 <실미도>? 작품의 수준을 떠나, 디-워는 충분히 그 돈이 화면에 보였기에 저는 만족합니다. 1시간 30분 동안 저는 충분히 즐거웠습니다.

PS : 덧글을 보니 제가 뭔가 잘못 생각했던 것 같아 이송희일 감독의 글 전문을 다시 읽고 수정하며, 아울러 몇 줄 더 적습니다.

1. 350개 어쩌구 했던 발언은 제가 잘못 본 것이었군요.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700억이란 돈을 끌어다 한편의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도 분명 열정이고 재능입니다. 독립영화가 어렵다고 넋두리는 그만 하시길. 말씀하신 열정의 쓰나미로 영화만 찍지 마시고 열정적으로 돈을 끌어 오세요.

2. 전 이야기가 개판이라도 즐거웠다고 다시 한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700억짜리 (아니면 그게 얼마가 됐든) 이무기와 용의 향연을 보러가서 충분히 즐거웠기 때문이죠. 디-워의 경우는 허접함이 극의 재미를 더하는? B급 영화의 풍모가 느껴져 더 즐길 수 있었습니다. 이 재미는 애국심과 상관없는 것으로서 저는 단지 한명의 관람객으로서 돈 8000원이 아깝지는 않았습니다. 

3. 그리고 마지막으로 왠 기타노 다케시? 전혀 쟝르가 다르잖아?

2004/05/01

나는 어떻게 할리우드에서 백 편의 영화를 만들고 한푼도 잃지 않았는가-로저 코먼 / 김경식 : 별점 4점

추리소설을 굉장히 좋아하기는 하지만 다른 책들도 읽어보려고 애쓰는 편입니다. 그러나 그 역시 대부분 취향에 특화되어 있는 탓에 역사와 전기 문학이 많습니다. 이 책도 이러한 제 취향을 반영한 전기 문학입니다. 미국 독립 영화 제작자이자 흔히 'B급 영화의 제왕'이라 불리는 로저 코먼의 자서전이지요.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나서 스탠포드 대학을 졸업한 후, 영화업계에 발을 들여 놓기로 결심하고 폭스 스튜디오 문서 배달사원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뒤부터의 파란만장한 영화 인생을 담고 있습니다. 독립 영화사의 생존 자체가 어려웠던 1950년대, 10만달러 미만의 예산으로 영화를 제작하다가 직접 감독을 하게 되고, 급기야 스스로 제작사를 차려 배급까지 겸하며 현재까지 그 경력을 이어오고 있는 기인 감독의 일대기이니 만큼 기대가 아주 컸습니다.

읽고나니 역시나 명불허전! 현재까지도 "코먼 사단"이라고 불리우는 영화계 인맥들 (감독-마틴 스콜세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죠 단테, 피터 보그다노비치, 론 하워드, 제임스 카메론, 조너선 드미, 존 세일즈..... 배우 : 잭 니콜슨, 찰스 브론슨, 피터 폰다, 로버트 드니로, 실버스타 스탤론, 탈리아 샤이어... 제작-메나헴 골란, 게일앤허드..... 등등등)과의 에피소드와 영화 촬영때의 에피소드, 그리고 그가 제작한 영화들의 이야기까지, 한눈 팔기 힘들정도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작품으로 평가한다면, 그가 찍은 영화가 걸작이 많은건 아입니다. 이틀만에 찍은 영화도 있는 만큼 ("Little Shop Of Horrors") 완성도도 그리 높다고 할 수 없을테고요.
하지만 적은 제작비와 일정에도 불구하고 화면에 보이는 비쥬얼은 최대한으로 끌어낸다는 그의 신념과 일에 대한 열정, 그리고 독특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들로 무장한 영화들은 그에게 제목대로 100편의 영화를 만드는 동안 손해를 가져다 주지 않았다고 하네요.

또한 비록 싸게 만든, 이른바 "B"급 영화로 돈 (흥행)에 포커스가 맞춰진 영화들을 제작하고 만들었지만, 정치적으로 좌파 성향에 아웃사이더들을 다룬다던가, 호러에 코미디를 결합한다던가하는 독특한 아이디어들로 무장한 그의 영화들은 현재도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델마와 루이스"나 "멘인블랙" 등의 영화는 전부 코먼에게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무방하겠더라고요. 정말 시대를 많이 앞서간 것 같아요. 이러한 선구자적인 사상에 더해 헐리우드의 큰 세력이자 줄기가 되어버린 이른바 "코먼 사단"까지 아우른다면, 그의 영화 인생은 비록 음지였지만 거장의 인생으로 표현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현재 (2004년 4월) 시점으로 조사해보니 제작을 342편, 감독을 54편 했으며 각본도 5편, 거기에 배우 경력까지 있는 아직까지 팔팔한 현역제작자로 활동하고 있다니 대단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4점입니다. 코먼의 영화 중 본 작품은 거의 없지만 책만 읽어도 영화를 보고 싶게 만드는 책이에요 . 이런 재미있는 책을 쓴 사람이 만든 영화가 재미 없을리가 없죠. 영화를 좋아하거나 전공을 원한다면 필독서이며, 그렇지 않은 일반 독자에게도 지적인 흥분과 재미를 동시에 가져다 줄 것입니다.

덧 1 : 읽으면서 한가지 아쉽다고 생각된 것이 있습니다. 제가 이 책을 대학생때 읽었으면 저의 인생이 바뀌었을지도 몰랐다는 것이죠. 저 역시 그동안의 용기 부족으로 이상과 조금 먼 삶을 살아왔거든요. 뭐 지금 늦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겠지만....역시 인생은 철저한 계획과 때를 놓치지 않는 지혜, 그리고 과감성이라고나 할까요?

덧 2 : 제 1회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에 갔다가 심사위원장이었던 로저 코먼의 싸인을 저희 형이 애써 받아온 적이 있습니다. 그 싸인만 보더라도 그는 한푼도 잃지 않았음을 증명합니다. 수첩의 제일 끝 귀퉁이 약 1/6 크기로 작게 서명한 싸인이었거든요^^

2021/06/20

철권을 가진 사나이 (The Man with the Iron Fists, 2012) - RZA : 별점 1.5점


라이온 족 수령 골드 라이온이 부하 실버 라이온들에게 살해당했다. 복수에 나선 골드 라이온의 아들 블레이드 X 젠은 실버 라이온이 고용한 킬러 브라스 바디에게 패했고, 죽기 직전의 그를 마을 대장장이가 구해주었지만 대장장이는 실버 라이온에 의해 두 팔을 잃고 말았다. 정부의 금을 가로챌 실버 라이온의 계획에 마을 환락가를 지배하는 마담 블로썸이 가세했고, 이들과 정부의 특사 잭 나이프, 젠, 대장장이의 마지막 혈투가 펼쳐지는데...

래퍼 RZA가 각본, 주연을 맡아서 만든 2012년 작품입니다. 싼마이틱 B급 무협 영화를 좋아해서 관심이 가던 차에, 넷플릭스에 있어서 보게 되었습니다. 무협 영화를 미국의 흑인 래퍼가 좋아해서 만들면 어떤 결과물이 나오는지도 궁금했었거든요. 

확실히 무협 영화를 많이 본 티는 납니다. 완성도를 떠나서 스스로 각본과 주연을 맡아 이런 결과물을 만들어냈다는 오타쿠 정신에는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네요. 분장과 의상 등 아트워크나 비쥬얼적인 부분도 괜찮고, '금강불괴'라던가, 온 몸에서 칼이 튀어나오는 갑주를 이용한 액션이 어떤건지를 시각적으로 잘 보여준 장면들도 볼 만 합니다. 두 팔을 잃은 대장장이가 쇠로 된 의수를 장착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어요. 데즈카 오사무"철의 선율"도 이렇게 영화화하면 괜찮겠다 싶더군요.

하지만 무협 영화인데 불구하고, '액션' 장면이 시시하다는 문제는 큽니다. 서로간의 합이 빠르게 오가는게 아니라, 느릿느릿한 동작과 와이어에 의지하는 탓입니다. 그나마 젠이 초반부에 보여준, 암살단을 처치하는 장면과 파워 파이트를 선보이는 브라스 바디와 대장장이의 마지막 대결이 볼만했을 뿐, 대체로 무협 영화가 아니라 WWE 프로레슬링 경기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장면 - 제미나이 부부가 등장한 액션 씬 - 은 춤을 추는게 아닌가 싶었고, 결말의 젠과 실버 라이온의 대결은 시시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로 대충이라 황당했습니다. 한마디로, 무협 영화로서는 실격이에요.

이야기를 괜히 복잡하게 만든 탓에 결국 산으로 가고 만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제일 웃기는건 창녀촌의 주인인 마담 블로썸이 라이언족을 배신하고 금을 차지하려고 하는 마지막 장면입니다. 기습을 하려면 제대로 했어야 했는데, 결국 전면전을 통해서 서로 전멸하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거든요. 기습의 의미를 모르는건가? 마담 블로썸이 어린 아이를 구하려다가 본인 목숨을 잃는 장면도 어처구니 없습니다. 뜬금없는 클리셰에 불과해요. 

러셀 크로우가 연기한 잭 나이프 캐릭터도 이야기를 흐리게 만듭니다. 대장장이와 젠을 무력이 아니라 두뇌로 돕는 역할이었다면 좋았을텐데, 뭔가 비중이 있어보이다가도 실제로 하는건 별로 없어서 왜 나왔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냥 젠의 복수극을 대장장이가 돕다가 팔과 연인을 잃은 뒤, 젠과 힘을 합쳐 복수에 나선다는 단순한 구조로 정리하는게 나았을겁니다. 

또 넷플릭스 자막 문제인지는 모르겠는데, Gemini Female, male을 "제미나이 아내", "제미나이 남편"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도 이상했어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입니다. 줄거리는 유치하고 뻔하기 그지없고, 설정들도 황당무계하지만 이런게 B급 무협의 정서라고 생각한다면 볼 만은 합니다. 하지만 단점이 너무 많아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애초에 불가능해요. 구태여 찾아 보실 분들도 계시지는 않겠지만, 혹시라도 궁금하시다면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026/04/11

더 하드웨이 (2019) - 키오니 왁스먼 : 별점 1점

넷플릭스를 통해 찾아 감상한 B급 액션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고른 이유는 딱 한 가지였습니다. 런닝머신을 뛰면서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아드레날린을 분출하게 만드는 영화일 것이라 생각하고 골랐습니다. 그런데 제 예상보다도 훨씬 엉망인 한심한 망작이더군요. 아드레날린이 아니라 분노가 분출될 지경이었습니다.

B급 영화에서 각본까지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테니, 각본에 대해서는 굳이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기대했던 액션은 처참함을 넘어서 황당할 지경입니다. 가장 볼 만한 액션이 초반에 존이 자신의 가게에 쳐들어온 양아치들을 참교육하는 장면이니, 더 말할 필요도 없지요.
악당 토로의 조직과 한판 승부를 벌이는 절정부 역시 문제입니다. 맨몸 액션을 기대했는데 총질만 해 댈 뿐이고, 중화기로 무장한 조직원들이 권총 하나만 든 존에게 쓸려 나가는 모습은 어이가 없었습니다.

토로의 정체가 옛 전우 브리그스였다는 반전도 대단치 않습니다. 브리그스 역을 맡은 배우가 옛 UFC 챔피언 랜디 커투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배우를 캐스팅해 비중 있게 출연시키면서 제대로 된 액션 신을 하나도 보여주지 않을 리가 없으니,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토로의 정체는 너무나 뻔했습니다.
존과 브리그스의 마지막 일기토에서는 맨몸 격투가 나오기는 합니다. 하지만 정작 영화에 등장한 맨몸 격투 중에서는 가장 별로였습니다. 랜디 커투어가 나이가 든 탓인지 움직임이 상당히 느리고, 그렇다고 화려한 기술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어서 실망스러웠습니다.

이런 영화가 수백만 달러를 들여 제작되었다는게 신기하네요. 최근 본 그 어떤 컨텐츠도 비교될 수 없을 정도의 망작입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2020/06/27

악몽과 몽상 1 - 스티븐 킹 / 이은선 : 별점 2.5점

악몽과 몽상 1 - 6점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엘릭시르

스티븐 킹의 단편집으로 어쩌다보니 2권부터 읽고, 뒤이어 읽게 되었네요. 2권과 마찬가지로 모두 열 두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지만, 모두 완성된 단편이라는 점에서는 차이를 보입니다. 순문학적 작품보다는 박진감넘치는 화끈한 계열이 많다는 점은 2권과 같고요.

하지만 다양한 장르물이 수록된 2권에 비하면, 장르적인 변주는 거의 없습니다. 크리쳐 호러, 범죄 액션 스릴러가 여섯 편이나 되거든요. 게다가 대체로 어딘가에서 보아왔던 설정이 많아서 2권보다는 실망스러웠습니다. 순문학을 추구한건 아니겠지만 도무지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작품도 세 편이나 수록되어 있고요. "돌런의 캐딜락"을 비롯해서, 화끈한 계열 작품들은 나쁘지 않았지만, 비슷한 설정과 분위기의 작품들이 연달아 이어져서 읽으면 읽을 수록 지루해진다는 문제도 큽니다. 강-강-강이 아니라 강-중-약으로 구성하는 편집의 묘가 아쉽더군요.

그래도 전체 평균한 별점은 2.5점입니다. 스티븐 킹 다운 작품들은 여전한 매력을 선사해주니까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세요.

"돌런의 캐딜락"

아내를 죽게 만든 갱단 보스 돌런을 향한 초등학교 교사의 집념의 복수극으로 약 80페이지 가량 되는 단편인데, 대부분이라 할 수 있는 거의 60페이지 분량이 복수의 '과정'입니다. 

복수의 방법이 굉장히 황당해서 인상적입니다. 돌런이 이용하는 라스베이거스 고속도로가 공사로 막혔을 때, 그 곳에 캐딜락이 완벽하게 파묻힐 수 있는 거대한 함정을 파는거지요. 그리고 돌런의 차가 지나갈 때 '전방에 우회도로' 표지판을 치우고 돌런의 캐딜락이 함정에 쳐박히게 만듭니다. "루니툰"에서 코요테가 로드러너를 잡기 위해 꾸미는 함정과 비슷한 발상이에요.

계획은 간단하지만, 작열하는 라스베이거스의 태양 아래에서 폭 1.5m, 길이 13미터에 15세제곱미터의 흙을 파내는 과정 묘사는 정말 엄청납니다. 굴착기의 도움을 빌리지만 여러 번 죽을 뻔 하고, 포기할 뻔 하는 모습이 스티븐 킹의 날 것 그대로의 묘사로 생생하게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정말 눈 앞에서 사람이 익어가면서 땅을 파는 모습과 그 열기가 느껴질 정도로 엄청난 묘사였어요.

하지만 돌란이 그 길을 지난다는 걸 알았다면 이런 생고생을 하지 않아도 다른 좋은 방법이 많지 않았을까 싶은데, 지나칠 정도로 공이 많이 드는 복수극이기는 하네요. 제가 본 복수극 중에서도 역대급으로 손에 꼽을 수준입니다. 돌런의 캐딜락이 방탄까지 완벽한 탱크같은 차이며, 항상 2명의 프로 보디가드와 함께 하기 때문에 직접 공격은 여러모로 위험하다는 이유를 드는데 그리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다이너마이트를 파 묻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요? 함정을 파는 계산처럼 속도와 시간을 계산해서 넓은 범위를 폭파시키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그래도 재미면에서는 나무랄데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확실한 권선징악이라는 점, 그리고 독특한 복수 방법과 완벽한 완전 범죄라는 점도 좋았고요.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별점은 4점입니다.

"난장판의 끝"

하워드의 동생인 천재 바비는 세계 평화를 꿈꾸다가 우연히 '라플라타'라는 마을이 범죄가 전혀 없는 평화로운 곳이라는걸 알게된 뒤, 그 곳의 물에 특별한 성분이 있다는걸 밝혀냈다. 바비는 그 물을 농축하여 화산 폭발을 통해 전 세계로 뿌리는데...

"살인 단백질 이야기""엘저넌에게 꽃을"을 결합한 이야기입니다. 물 안에 뇌와 비슷한 단백질 성분이 있는데, 이것이 치매와 비슷한 증상을 유발한다는건 "살인 단백질 이야기"이고, 천재가 백치가 되어 선한 의도를 가지고 죽는다는 이야기는 "앨저넌에게 꽃을"이니까요. 특히 1인칭 시점의 일기 형태이며, 글쓴이가 바보가 되었다는 결말은 판박이에요.
한 마디로 내용과 전개, 설정에 새로운 부분은 거의 없습니다. 또 엄청난 천재라는 바비가 이 물의 성분이 무엇인지 정말로 알아내지 못하고 엄청난 재앙을 초래한다는 전개는 앞 뒤가 맞지 않아서 실망스러웠어요.

스티븐 킹의 흥미진진한 묘사 덕분에 몰입할 수 있기는 합니다만, 스티븐 킹 만의 무언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어린 아이들을 허락하라" 

소갯글은 '옥수수밭의 사악한 아이들이 돌아온다!'입니다만, 내용은 많이 다릅니다. 아이들이 초자연적인 무언가로 변했다고 믿는 노처녀 교사 시들리 부인이 결국 아이들을 죽이다가 체포된 뒤 자살한다는 이야기거든요. 그래도 초자연적인 존재에게 밀리면서 점차 궁지에 몰리는 시들리 부인에 대한 묘사는 아주 흥미진진합니다. 시들리 부인이 폭주해서 아이들을 살해하는 것 역시 예상대로지만 긴장감넘치게 풀어내고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들리 부인이 진짜 미친건지, 아니면 아이들이 정말로 무언가에 점령당해버려 초자연적인 존재가 된 건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편이 나았을 겁니다. 결말에서 은근슬쩍 후자일 거라는 여운을 남기는데, 모호한 채로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결말이 답답하기는 해도 작품과는 더 잘 어울렸을 것 같네요. 지금의 결말은, A급 심리 스릴러가 B급 싸구려 호러물로 끝난 느낌이라 별로였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나이트 플라이어" 

타블로이드 업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민완기자 디스는 경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공항에서 살인을 저지르는 흡혈귀 '나이트 플라이어'를 쫓아 위험천만한 비행에 나섰다. 그리고 노스캐롤라이나 월밍턴에서 드디어 '나이트 플라이어'와 조우하는데...

영화화도 된 유명한 작품이지요. 디스가 공항에 착륙하다가 폭풍우와 벼락 등으로 위기에 처하는 장면 묘사는 박진감이 넘치다 못해 터져나갈 정도이고, 월밍턴 공항에서 살육당한 시체를 보고 화장실 세면대에 토악질을 하다가 거울로 흡혈귀 드와이트 렌필드가 소변보는 모습을 확인하는 부분은 그야말로 압권입니다. 흡혈귀는 거울에 비치지 않기 때문에 피에 물든 소변 줄기만 보인다는건데, 정말 기가 막혀요.

그러나 내용은 별게 없습니다. 흡혈귀 드와이트 렌필드의 기원이나 흡혈과 살인의 목적, 동기, 이유가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결말 역시 경찰이 디스를 체포하는 듯한 묘사가 전부라 어정쩡한 느낌이 들거든요. 디스가 기사를 썼는지 안 썼는지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요. 영화 쪽을 확인해보니 흡혈귀에 대한 설명이 없는건 마찬가지지만, 나름의 의미를 부여한 영화쪽 결말만큼은 소설보다 더 괜찮아 보였습니다. 디스가 살인마이고, 흡혈귀는 그의 상상일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사회 비판적인 의미도 담고 있는 그럴듯한 반전이었다 생각되네요.

동기와 결말이 어쨌건 간에, 흥미로운 전개와 묘사만으로도 읽는 재미는 충분했던 작품. 하긴, 흡혈귀가 피를 빨아 먹고 사람을 죽이는게 무슨 이유가 중요하겠습니까. 그냥 괴물이니까 그런거지. 별점은 2.5점입니다.

"팝시"

처음에는 유괴물로 생각되었습니다. 유괴범 셰리던이 아동 유괴를 시작하게 된 계기, 그로부터 유괴 행각이 이어지는 전개가 흥미롭게 펼쳐지거든요. 그러나 "나이트플라이어"와 마찬가지로 흡혈귀가 나오는 크리쳐 고어물입니다. 크리쳐는 바로 제목이기도 한 '팝시'고요. 팝시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어디에 있어도 유괴된 이이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괴범 셰리던의 자동차를 찾아내어 습격하는게 작품의 클라이막스인데, 역시나 킹 다운 박진감넘치는 묘사가 일품입니다.
유괴된 아이가 팝시의 손자로 이른바 크리쳐 혈족이라는 살짝의 반전도 나쁘지 않으며,도 아동 유괴범 셰리던에게 처절한 응징을 가하는게 또 다른 악인 흡혈귀라는 설정이 재미있었습니다. 권선징악 측면에서도 마음에 드네요.

스티븐 킹의 장점이 20페이지 안쪽의 분량에 전부 담긴, 공포 소설가 스티븐 킹을 대변할만한 단편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익숙해질거야"

캐슬록의 노인들이 잡화점에 모여 폐허가 된 뉴올 저택에 대해서 이런저런 추억을 이야기한다는 내용의 작품.

솔직히 뭘 이야기하려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코라 뉴올이 게리 폴슨에게 왜 추잡한 짓을 했는지. 노인들의 기억이 진짜인지, 허구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이야기가 완성된건지 아닌지도 헛갈리고요. 뉴올 저택을 다시 짓는 것도 당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알 수가 없더군요.

스티븐 킹이 뭔가 있어보이는 이야기를 하려는거 같기는 합니다만, 저는 기승전결 확실한 괴물 나오는 이야기가 더 좋네요. 별점은 1점입니다.

"움직이는 틀니"

잡화점에서 우연히 손에 넣은 거대한 움직이는 틀니 장난감이 악당을 물리친다는 내용의 작품. 간단한 설정만 보아도 무척 황당해 보이죠? 하지만 이를 박진감 넘치게, 설득력있게 풀어내는 묘사는 정말이지 장난이 아닙니다. 특히나 호건과 브라이언의 사투, 이어지는 브라이언과 틀니의 사투는 그야말로 명불허전이에요. 모래바람과 태풍이 불어오는 와중에 갇힌 차 안에서 두 명의 등장인물만으로 풀어가는 이야기를 이렇게까지 몰입감 넘치게 선사한다는건 정말이지 타고난 재능이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물론 움직이는 틀니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없고, 이야기의 개연성은 전무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악마의 소도구였다던가, 누군가의 저주였다던가하는 최소한의 설명마저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류의 이야기에서 그런걸 기대하면 안되겠죠? 그런 점에서는 "나이트 플라이어"와 비슷하지만, 정의가 악을 물리친다는 이 쪽이 더 제 취향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헌사"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잘 모르겠다 2. 

흑인 하우스키퍼 마서 로즈월이 자신의 아들이 내 놓은 첫 소설책에 대해 친구 다시와 술을 마시면서 하는 이야기인데, 내용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친부는 강도짓을 하다가 죽은 조니인게 명확하지만, 흑인 마녀 마마 들로름에 의해서 그 아이의 아버지는 유명한 백인 소설가 피터 제프리스가 되어 아이가 그 능력(?)을 이어받았다는 내용인가 싶기는 한데... 분명하지는 않네요. 설령 그렇다 치더라도, 기승전결로 완결되는 이야기는 아니고요. 모르는 내용에, 완성된 이야기로 보이지도 않아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움직이는 손가락" 

세면대에서 기어나오는 손가락을 없애려고 고군부눝하는 하워드 미틀라의 이야기. 스티븐 킹 특유의 고어 크리쳐물과 궁지에 몰린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결합된 작품. 킹이 잠결에 화장실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아이디어를 떠올려 쓴 작품일거라 생각되네요. 변기 속에 손가락을 가두기는 했지만, 쾅쾅거리는 소리에 뚜껑을 열기 직전 이야기는 마무리 되며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결말이 인상적입니다.

설정 면에서 치밀한 맛은 없고, 개연성도 많이 부족하지만 킹이 크리쳐 물의 대가라는걸 새삼 느끼게 해 주는 작품이었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운동화"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3. 

결국 존 텔은 유령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듣기는 합니다. 하지만 유령은 존 텔 주변 인물에 대해서만 몇 가지 이야기하고 말 뿐이에요. 폴 재닝스가 범인으로 삼만 달러를 넘게 챙겼다고 해도... 그게 존 텔 앞에 나타난 이유가 될 수는 없지요. 그렇다고 존 텔의 성장기로 보기에도 여러모로 애매했고요.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라는 점에서 다른 알 수 없는 이야기들보다 낫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좋은 점수를 줄 만한 여지가 있지는 않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밴드가 엄청 많더군"

여행객이 길을 잃은 뒤 이상한 마을에 방문하여 위험에 처한다는 내용의 작품은 굉장히 많습니다. 제가 리뷰로 소개했던 작품만 해도 러브크래프트의 "인스머스 (인스마우스)의 그림자"라던가 "히치콕 미스터리 매거진 걸작선" 수록작인 "역사적 오류" 등이 그러합니다. "웰컴 투 동막골"도 위험에 처하지 않다 뿐이지 기본 발상은 마찬가지라 할 수 있을테고요. 그 외에도 수많은 작품에서 사용된 설정이지요.

보통 이런 류의 이야기에서 마을이 숨기고 있는 비밀은 은밀한 의식과 관련이 있는게 보통입니다. 여행객들은 산 제물로 쓰이고요. 그런데 이 작품은 '은밀한 의식'에서 한 발, 아니 두 세 발자욱 더 나아갑니다. '은밀한 의식'이 아니라 난리법석의 로큰롤 공연을 추구하는 마을이었던거지요. 여행객들은 공연에 관객이 없어서 필요했던 것입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시장으로 나오는 등 설정이 워낙에 황당해서 우습기까지 한데, 이런 내용을 스티븐 킹의 묘사로 읽으니 공포가 따로 없다는게 재미있는 점이었습니다. 마을에서 탈출하기 위해 벌이는 자동차 추격신은 여전한 박력을 자랑하고요. 로큰롤 공연을 몇 일 동안 계속 보면 미쳐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점에서는 확실히 공포스럽기도 하네요. 작중에 나오는대로 로큰롤 '헤븐'이 아니라 '로큰롤 헬'인 셈입니다.

딱히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지는 않지만 그 어떤 설정과 이야기라도 약간의 변주를 통해 박진감넘치는 호러 소설로 만드는 스티븐 킹의 필력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가정 분만" 

좀비가 창궐하는 세상에서, 외딴 섬 마을에서 아이를 낳으려는 매디의 이야기.

일단, 기둥이 되는 이야기는 아버지가 중심인 가정에서 살다가, 아버지의 사후 중심축을 잃고 흔들리던 매디에게 성실하고 충직한 남편 잭이 나타나 청혼하는 이야기입니다. 좀비 창궐로 시체가 되어 돌아온 잭을 매디가 도끼로 처단한 뒤, 가정 분만을 결심하는게 결말이고요. 이 이야기에 매디가 사는 섬마을 사람들이 자경단을 조직하여 마을에 하나 있는 공동묘지를 지키며 깨어나는 시체들을 토악질을 해 가며 해치우는 내용이 곁들여져 있습니다.

그런데 두 이야기가 난잡하게 흩어져 잘 정리되지 않은 느낌이에요. 한 개의 이야기를 하다가, 전혀 상관없는 다른 이야기를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지요. 또 매디가 가정 분만을 결심하는게 딱히 대단해 보이지도 않아서 이게 기둥 이야기가 될 수 있나 싶었습니다. 전 세계에 좀비가 창궐했다면 어차피 다른 대안도 없잖아요? 기승전결로 보더라도, 완전한 '결'로 끝맺지 못한 느낌이라 조금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차라리 섬 마을 주민들이 힘을 합쳐 좀비를 격퇴하고 섬을 지켜내는 이야기로 끌고가는게 더 나았을겁니다. 마을 공동 묘지에서 되살아난 가족들과 싸우는 이야기는 충분히 드라마가 될 수 있으니까요.

2010/11/01

가다라의 돼지 - 나카지마 라모 / 한희선 : 별점 3점

가다라의 돼지 - 6점
나카지마 라모 지음, 한희선 옮김/북스피어

아프리카 주술 전문가 오우베 교수는 과거 현장 탐사에서 딸 시오리를 사고로 잃은 뒤, 아내 이쓰미와도 마음을 닫은 채 술에 의존하며 방송 출연으로 시간을 보내는 '탤런트 교수'가 되었다. 그러나 우연히 한 방송의 아프리카 기획에 참여하게 되면서 오랜만에 케냐를 방문하고, 그곳의 주술사 마을에서 죽은 줄 알았던 딸 시오리를 발견했다. 시오리를 구해냈지만, 곧바로 그녀를 자신의 '키시투'(일종의 주술 도구)로 여기는 최강의 주술사 바키리의 복수에 직면하게 되는데...

750여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과 그에 걸맞은 무게감으로, 읽기 전부터 독자를 압도하는 나카지마 라모의 대장편입니다. 일본 추리작가협회 장편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하네요.

작품은 크게 다음의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1부 : 오우베 교수가 사이비 종교에 빠진 아내 이쓰미를 구하기 위해 마술사 미스터 미라클, 제자 도만과 함께 종교의 '기적'을 폭로하는 이야기

2부 : 오우베 교수 일가가 TV 프로그램을 위해 아프리카 케냐를 방문한 후, 케냐 최고의 주술사 바키리로부터 실종된 줄 알았던 딸 시오리를 구해내는 이야기.

3부 : 일본까지 찾아온 바키리와 오우베 일가의 최종 결전.

이러한 이야기의 구조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엄밀히 말해 이 작품은 추리 소설보다는,   초능력과 아프리카 주술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기반으로 한 모험 소설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재미만 놓고 본다면 최고입니다. 1부에서 등장하는 '초능력', 특히 사이비 종교 교주가 공중 부양한다는 '기적'의 실체를 폭로하는 과정은 "신비의 사기꾼들"을 연상시키는 트릭물 같은 재미를 제공합니다. 또한, 2부에서는 케냐의 상세한 묘사와 긴박감 넘치는 탈출 장면이 손에 땀을 쥐게 만들며, 3부에서는 본격적인 주술 대결이 펼쳐지면서 트릭과 긴장감이 조화를 이루어 끝까지 몰입하게 해 주고요. 덕분에 방대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책을 손에서 놓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작가의 전작인 "인체모형의 밤"과는 전혀 다른, 블랙 코미디 같은 분위기도 볼거리였고요.
엄청나게 디테일한 자료 조사를 통해 구축된 초능력과 주술에 대한 설명도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모두를 압도하고 조종하는 바키리의 주술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이 부족했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특히 후반부 오우베의 각성 이후 펼쳐지는 '초능력 대결'은 너무 과장이 심했어요. 오컬트와 초능력, 주술이 결국 '존재한다'는 식의 결말은, 앞서 철저하게 구축했던 과학과 상식에 기반한 초능력과 주술이라는 테마와도 동떨어진 느낌입니다. 또한, 여러 범행에 대한 설득력도 부족했고요. 일본만의 독특한 오컬트 문화가 작품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영향이 크겠지만, 이렇다 보니 작가가 무엇을 의도했는지조차 모호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제목을 가져온 '마태복음'의 가다라 돼지 일화처럼 실제로 악령과 주술이 존재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미스터 미라클의 말처럼 모두 트릭에 불과한 것인지...

또한, 마지막 방송국에서의 대결은 "서브리미널 광고 효과"와 집단 최면을 너무 과장되게 묘사하면서 설득력을 잃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봤던 초능력 소년 기요카와와 마술사 미스터 미라클이 너무 일찍 퇴장한 것도 아쉬웠던 부분이고요.

결론적으로, 1부는 작품의 테마와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도입부로서 아주 괜찮은 중편이었고, 2부는 아프리카에 대한 상세한 묘사와 '주술'이라는 소재를 흥미롭게 풀어낸 모험소설로서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그러나 3부는 속도 조절 없이 너무 폭주해버린 느낌이 강합니다. 전형적인 B급 감성이 넘치는 데다가, 3부의 결말만 놓고 보면 이 방대한 작품이 '새로운 영능력 히어로 탄생'의 프롤로그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니까요. 막 나가는 재미는 있었지만, 1부와 2부처럼 보다 진지하고 과학적인 접근을 유지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재미는 있었지만, 모호한 방향성과 후반부의 급전개 때문에 선뜻 추천하기는 애매한 작품입니다. 1부는 별점 3점, 2부는 3.5점, 3부는 2점, 전체적으로는 대략 별점 3점입니다.

2010/09/27

프로야구 정규 시즌 종료 - 두산 베어스 결산

프로야구 개막~! 10 시즌 두산 베어스 예상
팀순위 : 3위
팀타율 : 2위
팀방어율 : 5위

2010 프로야구 정규 시즌도 드디어 끝났네요. 개인적인 두산 베어스 결산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투수진 :
선발진 :
합작 21승을 거둔 8개구단 최고의 용병 듀오 투수진과 김선우 선수가 토종 우완 투수 No.1급의 성적을 기록하는 등 지난 몇년간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4명 모두 10승이 가능해보이는 (운이 좋다면...) 1~4선발을 구축하기는 하였으나 원투펀치인 히메네스 - 김선우 선수를 제외하고는 기복이 심했으며 5선발로 투입한 대부분의 선수들이 실패하는 바람에 팀 방어율을 대폭 상승시킨 원인이 되었죠. 특히 이현승 - 홍상삼 선수의 부진이 뼈아팠습니다. B-

불펜진 :
임태훈 선수의 선발 전환 이후에도 정재훈 선수가 중심이 되어 비교적 탄탄히 유지된 편이어서 다행입니다. 고창성 선수가 몇번 뼈아픈 패배를 당하기는 했지만 대체로 좋았고 이용찬 선수도 불미스러운 일이 터지기 전까지는 확실히 작년보다 업그레이드 된 모습으로 마무리 역할을 잘 수행해 주었거든요. B+

결산 :
한마디로 이현승 선수의 부진이 뼈아픈 한해였습니다. 책임을 한명에게만 돌리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지만 이현승 선수가 최소 왈론드 선수 정도의 역할만 해 주었더라도 두산이 2위는 확보할 수 있었을 거에요. 또한 기대했던 신인투수들이 한명도 성장하지 못한 것 등을 포함하면 투수코치진의 능력을 의심하게까지 만듭니다. B


타선 :
주전 - 중심타선 :
주로 3번에 배치되었던 이성렬 선수가 확실히 성장한 것이 굉장히 좋았습니다. 삼진이 많은 공갈포 느낌이긴 하나 장타력은 눈에 띌 정도니까요. 또 신인 양의지 선수가 비록 수비면에서는 낙제점이지만 공격에서 활약해 준 것 역시 대단했죠. 홈런 등 장타력이 강화된 대신 발야구는 줄었지만 개인적으로는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김동주 선수의 노쇠화가 눈에 띄고 김동주 선수 이후 차세대 3루수로 자리잡을 선수가 불확실한 한해였다는 것은 아쉽네요. 김동주 선수 이후의 4번타자를 발굴하는데 실패했다는 것도 계속 숙제로 남을 것 같고요. 아울러 고영민 선수의 부진이 너무나 심각한데 개인적으로는 오재원 선수에 비해 딱히 나은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내외야 평균해서 A-

백업진 :
두산의 백업진은 역시나 대단했어요. 막판 이종욱 선수의 부상으로 투입된 정수빈 선수의 활약과 타신 임재철 선수의 소금같은 역할 등 타팀에 가면 주전으로 뛸 만한 선수들이 자신의 역량을 기회때마다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내야진 백업 요원들은 오재원 선수가 좋긴 하였으나 장타력 부재로 아쉬움을 주었고 김재호 선수는 정체된 느낌이라 안타깝더군요. 그래도 모든 포지션의 백업진이 기대치 만큼의 모습은 보여준 한해였어요. A

결산 :
국내 최초 토종 타자 5명이 20홈런을 넘기는 대포군단으로의 변신이 성공한 한해였습니다. 그러나 김동주 선수의 노쇠화가 심각해보이는데 대안이 없다는 것, 2루수 고영민 선수의 극심한 부진이 이제는 부진이 아니라 실력으로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에서 내야의 핵인 2-3루 포지션에 심각한 의문부호를 남기도 했죠. 전체적으로 두산의 강점이었던 수비진도 적시에 에러가 터지는 등 확실히 안 좋아 졌는데 보다 강력한 포지션 경쟁이 재점화되어야 할 필요성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타격이야 올 시즌 좋았기에 큰 불만은 없네요. 전체적으로는 A급이라 생각합니다.


전체 결산 :
기대에 미치지 못한 투수진, 약간은 아쉬웠던 타선으로 요약된 한해입니다. 시즌 막판의 컨디션 체크용 경기를 제외하고는 5할대 중후반의 승률로도 3위밖에 하지 못한 것은 분명 재수가 없었던 것도 있지만 중요한 경기를 몇번 놓친 것이 너무 컸어요. 김선우 선수를 구원한 히메네스 선수가 역전 홈런을 허용했던 경기라던가 고창성 선수가 홈런을 허용하여 패배한 SK전, 1회초에 6점을 먼저 뽑았지만 선발 홍상삼 선수의 난조로 패배한 롯데전 등이 기억나네요.

어쨌건 전체적인 팀 능력치는 B+급으로 확실한 강점이 느껴지지 않는, 준수하지만 임팩트없는 팀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아무리 타선이 좋다고 해도 이 정도면 딱히 눈에 띄는 수준은 아니니까요. 뭔가 평범하고 준수한 것 보다는 하나의 강점이 빛나는 팀이 되는게 더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몇년전의 수비 - 발야구처럼요. 공격력은 A+++인 롯데, 투수진이 A+급인 삼성, 전체적인 팀의 완성도가 A급인 SK와 비교한다면 딱히 강점을 찾을 수 없기에 험난한 포스트시즌이 예상되는데 솔직히 큰 기대가 되지는 않는군요. 그래도 선수들의 선전을 기원합니다. 올인V4 허슬~두!

덧 :
레전드라 불리울 수 있는 선수인 양준혁 선수마저 은퇴하였습니다. 제가 정말로 야구를 즐겼던 90년대가 정말로 저물어간다는 느낌이에요. 이제 새천년의 젊은 스타들이 활약을 이어가긴 하겠지만 아쉬움을 지우기에는 좀 모자랍니다. 최고일때 삼성맨으로 떠나는 것이 양준혁 선수다운 모습이지만 몇년 더 활약해 주어도 괜찮았을텐데... 그래도 앞으로 양준혁 선수의 건승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2026/01/18

파이어 펀치 1~8 - 후지모토 타츠키 : 별점 2점

"체인소맨"으로 인기 절정을 달리는 작가 후지모토 타츠키의 첫 장편 연재작입니다. 연재 당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작품이지요.
복수를 위해 살아가는 아그니, 그를 이용해 자신만의 영화를 만드려는. 아그니를 신으로 숭배하는 산, 아그니와 대척점에 서 있다가 그를 포용하게 되는 유다 등의 이야기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작품으로 일종의 초인물입니다. 

그러나 인터넷의 평가와 마찬가지로, 현 시점에서 좋은 작품이라고 보기는 여러모로 어렵습니다.

물론 재생 능력으로 사람들을 먹여 살리지만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길에 휩싸이는 벌을 받은 아그니가 복수를 다짐하는 초반부만큼은 대단합니다. 구세주가 고통을 잊고 현재의 안식을 찾지만 그것을 방해하는 추종자들 때문에 다시금 고통으로 뛰어든다는 일종의 윤회, 종교적 세계관을 독특하게 풀어낸 것도 작가가 될성부를 떡잎이라는걸 느끼게 해 주고요.

그러나 이런 매력적인 설정을 잘 살리지는 못했습니다. 토키타와 함께 연극, 연기 이야기가 나오면서 이야기가 점점 이상해지는 탓이 큽니다. 아그니를 이용하여 자신의 영화를 제작하려는게 목적인 토키타 자체는 독특해서 나쁘지는 않아요. 그러나 이야기에서 겉돕니다. 완벽한 영화를 위해서 모든걸 통제하려는 흑막도 아니고, 단지 자신의 재미와 흥미만을 위해 순간순간을 살아가려는 즉흥적인 모습만 보이니까요. 모든게 연기이고 연기가 중요하다는 그녀의 말과는 정 반대로, 본능에 충실한 삶을 이어갈 뿐입니다.
또 이 연기라는 설정도 문제입니다. 그냥 원래의 신, 구세주가 싸구려 B급 영화 이야기였다는 정도, 그리고 얼음의 마녀 따위는 없고 지구는 멸망해가는 중이다는 진상 정도로도 충분했습니다. 아니면 차라리 복수를 위해 유다와 맞서 싸우는 평범한 이능력 배틀물로 끌고가는게 더 나았을 겁니다.

작가가 이야기 전개를 위해 둔 무리수는 그 외에도 많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얼음의 마녀 스랴죠. 굳이 그녀가 튀어나올 이유는 없었습니다  실제로 비중도 변변찮고요.  막판에 작화가 볼썽사나울 정도로 무너지는 것도 눈에 거슬립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압도적인 초반부는 볼 가치가 있지만, 끝까지 볼 필요는 없습니다.

2005/06/28

키스 미 데들리 (Kiss me Deadly 1955) - 로버트 알드리치 : 별점 1.5점

뉴욕의 사립탐정 마이크 해머는 어느 날 밤 한적한 도로에서 쫓기는 듯한 인상을 주는 미모의 금발 여인을 차에 태운다. 잠시 후 해머는 괴한들에게 습격을 받아 어딘가로 납치된다. 괴한들은 해머에게 수면제를 주사하고 여자를 고문하다가 두 사람을 차에 태워 절벽으로 떨어트려 사고로 위장하려 하지만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해머는 여자의 죽음에 얽힌 배후를 조사하기 시작한다. 계속되는 위협 속에서도 해머는 사건의 진상이 비밀스러운 상자와 관련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범인은 한발 먼저 상자를 가지고 달아나면서 해머의 비서 벨다를 납치한다. 가까스로 범인들의 아지트에 잠입한 해머는 충격적인 사실에 직면하게 되고, 사건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방식으로 종결된다.

미키 스필레인의 마이크 햄머 시리즈 영화입니다. B급 영화의 대부이자 필름 느와르의 거장이라고 하는 로버트 알드리치 감독의 영화는 처음이네요. 평 자체가 워낙에 좋아 기대를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솔직히 지루하고, 기대보다 많이 실망스럽습니다. 발표 당시로 부터 무려 50년이나 지난 후에 감상한 탓도 있겠지만 이야기를 관객에게 이해시키는데 실패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죠. 원작을 읽지 않아서 원작 탓인지, 각색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원작을 읽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많이 부족한 것은 확실해요. 예를 들자면 마이크 해머가 왜 사건에 뛰어드는지에 대한 설득력도 부족하고, 범인들을 추적하는 단서들도 그다지 와 닿지 않습니다. 악당들 역시나 가만히 있었으면 조용히 해결될 것을 해머를 구태여 건드려서 일을 만드는 멍청한 행동만 과시할 뿐이고요. 게다가 가장 중요한 단서인 "Remember Me"라는 암호같지도 않은 시적인 문구는 공정함의 영역을 벗어난 반칙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갑자기 "핵"이 등장하는 것은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더군요. 조그만 상자안에 뭔가 핵에 관련된 물질이 들어있다는 설정도 황당하지만 악당들이 그것을 얻어서 어떻게 할지도 알려주지도 않고, 더군다나 마지막 장면에서 상자를 열었더니 모두 불타버리더라....라니 이거 웃으라고 만든건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그 외에도 "미녀 비서" 벨다를 비롯해서 모든 여성 배우들의 미모가 기대 이하였다는 것도 저에게는 감점 요인이었습니다.

물론 영화 자체는 시대를 감안한다면 꽤 세련되고 괜찮은 구석이 있습니다. 흑백의 톤을 잘 살려 시작부터 상당히 독특한 시각적 연출을 곳곳에서 보여주는 것이 역시 인정받을 만한 감독이라는 느낌이 들게끔 합니다. 특히 거울이나 방문등을 잘 이용한 미장센은 지금 보아도 독특한 맛이 있고요.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마쵸적인 느낌이 강한 주인공 마이크 해머 역시 설정만 본다면 완전히 "리썰 웨폰" 식인, 굉장히 현대적인 캐릭터라 마음에 들었어요. 그러나 이 부분은 원작 소설에 기댄 측면이 더 크겠죠.

여튼, 제가 무식한 탓도 있겠으나 저에게는 후대의 찬사를 얻을만한 부분이 많지 않아 보였습니다. 대체 "펄프픽션"이 이 영화의 오마쥬라는 근거가 어디 있는지조차 잘 모르겠네요. 아무래도 이런 영화를 보면서 뭔가 느끼기에도 나이가 들었나 봅니다. 이젠 생각 별로 안하고 컨텐츠를 즐겨야 하는 나이가 된 것이겠죠? 별점은 1.5점입니다.

2013/02/25

흥분 - 딕 프랜시스 / 김병걸 : 별점 3점

흥분 - 6점
딕 프랜시스 지음, 김병걸 옮김/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아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자신의 목장을 운영하는 다니엘 로크는 영국 경마 위원회 3인방의 하나인 옥토버 백작의 의뢰를 받았다. 의뢰 내용은 마부로 위장하여 잠입한 뒤, 부정이 의심되는 경마 사기 사건을 밝혀달라는 것이었다.

경마와 경마장 관련 사건 전문 작가 딕 프란시스의 대표 장편. 주간문춘 선정 동서미스터리 100 리스트를 보고 읽게 되었습니다. 좋아하는 작가이고, 국내 출간된 모든 작품을 다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동안 왜 빼먹었는지 모르겠군요.

일단 제가 읽었던 다른 작품들과는 조금 다르게 주인공의 활약이 스파이 소설 같다는게 특이했습니다. 책 뒤의 해설에서 언급된 대로 007 스타일이랄까요? 주인공이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적대적인 세력에 고용되어 비밀을 파헤친다는 기둥 줄거리에 더하여 변장 및 위장, 주인공의 특기(말에 대한 전문 지식 및 던지기(?))가 중요하게 쓰인다는 점에서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일종의 경마 사기의 진상을 밝혀내는 내용이라서 국제적인 음모를 다루는 정통 스파이 소설들보다는 스케일이 작은 편이지만, 이는 단점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흔하지 않은 소재를 작가의 전문 지식으로 잘 묘사하여 강한 설득력을 보여주는 덕이 큽니다. 정말이지 이 책의 마굿간과 마부에 대한 묘사는, 달리 경쟁작을 찾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엄청납니다.

또 핵심 트릭인 경마 사기 사건의 트릭과 그것을 밝혀나가는 로크의 수사도 아주 그럴싸하게 묘사됩니다. 부정이 의심되는, 그러나 아무런 공통점도 없었던 11마리 말의 공통점을 경기장, 잠시라도 소유했던 소유자 등으로 좁혀 나가고, 약물이 아닌 조건반사를 이용한 트릭이라는 것을 개피리라는 소품으로 알아내는 모든 과정이 굉장히 합리적이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추리적인 만족도도 괜찮은 편이에요.

그러나 아쉬운 점도 분명 존재합니다. 주인공 다니엘 로크의 설정이 가장 거슬립니다. 등장하는 여성들이 모두 반한다는 매력적인 외모는 불필요한 설정이었어요. 여자들이 반해서 로크의 수사에 방해만 일으킬 뿐이라, 평범한 이야기를 드라마틱하게 만들려는 작위적인 장치에 지나지 않아 보였던 탓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격투도 드라마틱하지만 작위적인 느낌이 너무 강합니다. 로크가 보고서를 제출한 시점에서 이미 게임은 끝난 상황인데, 헨버 일당이 사건을 키울 이유는 없으니까요. 이러한 부분은 좀 B급스러웠습니다.

그래도 결론 내리자면 상당히 재미있는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헐리우드 모험 영화 같은 흥미진진함이 읽는 내내 유지되는 흔치 않은 결과물이에요. 별점은 3점입니다. 마지막 부분에서 다니엘 로크가 영국 정부를 위해 일하는 정보원 역할을 수락하면서 끝나는데, 시리즈가 계속 이어지는 것인지 조금 궁금해지는군요.

2007/05/17

아치와 씨팍 - 조범진

아치와 씨팍
조범진 감독/엔터원

모든 자원이 고갈되고 인간의 "똥"이 에너지원이 된 시대. 정부는 "똥"을 싸면 마약 성분이 있는 "하드"를 공급하는 정책으로 "똥" 수급에 나선 시대. 그러나 하드 중독으로 생식능력을 잃고 퇴화된 인간들이 "보자기 갱단"을 조직하여 정부와 경찰을 대상으로 하드 탈취로 잇단 분쟁이 일어나는 시대. 아치와 씨팍은 하드 강탈로 먹고사는 뒷골목 양아치들로 보자기 갱단의 음모로 한번 쌀때마다 엄청난 하드를 획득하는 이쁜이와 우연히 얽혀 경찰, 보자기 갱단의 피튀기는 전투 속으로 뛰어들게 된다.


너무 뒷북을 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엊그제 감상하고 몇자 적습니다.

일단 기술적 완성도가 굉장히 높아서 놀랐습니다. 애니메이션 퀄리티도 높지만 중간 중간에 나오는 여러가지 광고나 포스터 들의 아트웍도 아주 좋고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시원~하게 잘 만들어서 외국산 애니메이션에 뒤지지 않는 수준과 힘을 보여준다 생각되네요. 하여간 워낙 완성도가 뛰어난 탓에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나름 재기발랄한 연출, 특히 액션 연출이 무척 좋아서 감상하면서 눈을 떼기 힘들 정도 멋지더군요.

그러나 완성도와는 별개로 흥행에는 별 재미를 보지 못한 것으로 아는데 설정과 캐릭터, 스토리 등 모든 것이 다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나기도 하고 너무 싼마이틱한 느낌을 강하기 주기 때문인 듯 싶습니다. 특히 아치와 씨팍이 주인공 역할을 전혀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의아했고요. 그냥 대충 보면 주인공은 특수요원 개코와 보자기 갱단 두목 정도라 생각되거든요.

그리고 하드고어한 부분 역시 액션 연출에 힘을 보태주는 양념 역할을 잘 수행하고는 있지만 좀 지나친 감이 있더군요. 하긴 스토리와 설정의 싼마이틱한 부분과 하드고어한 부분을 뺀다면 또 너무 심심하고 밋밋한 작품이 되었으리라 생각은 들기도 하네요. 아울러 유명 배우들을 쓴 성우진은 예상대로 주인공 2명의 연기가 허접스러워서 완성도를 떨어트리고요. 

그래도 어쨌건 국내 애니메이션 기술의 진일보한 면을 즐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B급 무비를 선호하는 계층이 많은 시장이었더라면 조금 흥행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르는데 혹 미국이나 일본쪽에 수출되었는지 궁금해집니다. 그쪽 시장에서는 먹힐만 한데 말이죠. 타란티노나 로드리게스라면 좋아해 주지 않을까요?

2004/03/16

내 차 봤냐? (Dude! Where’s My Car?) - 대니 레이너 : 별점 3점

……

주말내내 여러가지 일이 많았네요. 몸도 안좋고 기분도 별로고 해서 보면서 아무 생각 할 수 없는 영화를 골랐보았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꽤 성공작이라 생각되네요.

우둔하고 어설프기 이를 데 없는 단짝 제시와 체스터. 늦잠을 자고 일어난 늦은 아침. 집에는 모르는 사람이 아무 곳에나 실례를 하고, 냉장고에는 1년을 족히 먹고도 남을 푸딩으로만 가득 차 있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던 두 사람.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들의 애마. 자동차가 없어졌다는 것.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두 사람. 차를 어디에 두었는지도 알지 못하는 것은 당연지사. 무작정 차를 찾아 나서지만 그들에게 있는 단서는 단 하나! 주머니 속의 성냥갑에 적힌 "Kitty Kat Strip Club"이라는 글씨. 그곳으로 향한 제시와 체스터. 클럽의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반기고, 환상적인 무대에 빠져든다. 그러나 그곳에서 만난 여장 남자는 제시에게 돈가방을 내놓으라고 위협하고, 그를 피해 다시 밖으로 나와 여자친구인 쌍둥이 자매의 집으로 간 제시와 체스터. 청소를 도와주려다가 오히려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고 다시 쫓겨난다. 거리에서 이상한 단체에 가입되어 있는 괴한들어게 납치되었다 풀려나고, 겨우 진정한 그들에게 이번엔 또 늘씬한 미녀 외계인들이 몰려오는데...

줄거리만 보면 황당무계한게 정리가 잘 안되지만 실제로 보면 영화는 꽤 명쾌한 편입니다. 화면과 개그만 보며 즐기는 “덤앤더머”류의 바보 코미디이기는 한데 단순히 슬랩스틱이나 화장실 코미디만 신경쓰던 다른 코미디와는 달리 나름대로 제법 신경 쓴 각본도 좋고요. 예를 들자면 처음에 나오는 푸딩이나 체스터가 즐겨보는 동물 다큐멘터리 같은 복선을 절묘하게 연결하는 부분이 그러합니다.
아울러 위대한 지도자 “졸탄”, 차원이동기인지 뭔지 하는 류빅스 큐브와 같은 설정은 최고였어요. 아무 생각 없이 인생을 살아가는 제시와 체스터 컴비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웃기고요. 주인공 컴비인 숀 윌리암 스콧이나 애쉬튼 커처는 상당히 핸섬한 편인데 주로 바보 역으로 많이 나오네요. 뭐 그래도 잘 어울립니다만. 쌍둥이 중 키큰 쪽인 “제니퍼 가너”의 어렸을 때의 모습도 기억에 남는군요.

하지만 욕심이 지나쳤던지 너무 이곳저곳으로 벌려놓은 이야기를 조금 더 정리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중간의 경찰서 취조 장면이나 타조농장 에피소드, 여장남자의 돈가방 이야기는 정말 사족이었던 듯 싶네요. 마지막의 “거대여자 외계인”은 그 상상력이 좀 과했던 것 같고요.

그래도 B급 무비 정신이 투철한, 간만에 머리를 비우고 웃으며 볼 수 있었던 영화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케이블 TV에서도 방영한다고 하니 한번 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약간 취향이 애매한 영화이긴 합니다만…..

덧 : 제목이기도 한 그 차는 정말 똥차더군요…

2010/03/26

도시전설 세피아 (都市伝説セピア) - 2009 : 별점 1.5점

이전에 원작소설을 읽고 구해본 TV 단막극으로 일본 드라마 W에서 2009년 7월에 방영했던 작품입니다. 원작에 실린 5편의 이야기 중 3편을 영상화했더군요. 영상화된 작품은 <올빼미 사내>, <아이스맨>, 그리고 <사자연> 입니다.

그런데 요새 읽고 본 작품들이 전부 그러했듯 실망이 더 컸습니다. 이건 영상화 포인트를 잘못 잡아도 너무 잘못 잡은것 같아요. 재미도 없지만 무섭지도 않고 그렇다고 B급적인 감수성이 있는 것도 아니거든요. 두번째 에피소드 <아이스맨>이 기본은 해주기에 평균 별점은 1.5점입니다만... 전체적으로 봤을때는 그야말로 시간낭비에 불과한 쓰레기입니다. 영상화도 섣불리 기대하면 안되겠다는 교훈을 또다시 안겨주네요. 이것 참 씁쓸.. 합니다.
에피소드별로 짤막하게 소개한다면,

<올빼미 사내>
도시전설을 만들던 남자가 스스로 도시전설이 된다는 내용으로 원작의 1인칭 서술트릭을 극복하지 못한 무성의한 각색과 유치한 결말은 짜증을 불러 일으킵니다. 호러같지 않은 지나칠정도로 담담한 전개도 실망스러웠고요. 제가 원작자라면 화가 나지 않았을까 생각되네요. 별점은 당연히 1점.

<아이스맨>
앞서 이야기했듯이 그나마 가장 낫습니다. 원작에 충실하기도 하고 촬영과 전개 역시 예상 그대로 흘러가기에 부담없이 볼만했으니까요. 별로 무섭지 않다라는 큰 단점과 더불어 과거 회상 부분에 비해 결말이 약하다는 아쉬운 부분까지 그대로 극화했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만... 그래도 최소한 볼만은 했습니다.

<사자연>
한마디로 망작.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원작과 유사해서 별다른 각색이 없다는 점은 <아이스맨>하고 똑같긴 한데 화면으로 구현한 결과물이 TV 유치원 수준이더군요... 이 작품에서 점수를 줄만한 것은 에피소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시체들을 묘사한 그림밖에는 없네요. 차라리 이 그림들로만 화면이 채워졌어도 훨씬 무서웠을 것 같은데 말이죠...
조금이나마 무섭게 하려고 여러가지 노력을 기울이기는 하는데 그 아이디어가 치졸하고 화면발도 저렴해서 외려 웃기더라고요. 유령이 나타난다고 갑자기 파랗게 변하는 모닥불, 전혀 무섭지 않은 훈남 유령 들이 대표적이겠죠. 기대를 벗어나지 않고 훈남 유령이 피해자에게 먼지처럼 파고든다는 결말까지 가증스러운 싼티가 작렬하는 망작 중의 망작입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0점 줄까 했는데 그림은 건질만 하니까 봐줬다)

2005/05/10

벌거벗은 얼굴 - 시드니 셀던 / 최운권 : 별점 1.5점

벌거벗은 얼굴 시드니 셀던 지음, 최운권 옮김/해문출판사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날 뉴욕에서 한 동성연애자가 살해당했다. 피살자의 이름은 존 핸슨이었다. 경찰은 피살자가 다니던 정신병원 의사 주드 스티븐스 박사를 찾아오나 별다른 수확을 거두지 못했고, 이후 주드 박사의 여비서 캐롤마저 잔인하게 살해되자 경찰 맥그리비는 이전의 사건에서의 원한(?)도 겸해서 주드 박사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주드 박사도 숱한 생명의 위협을 겪은 뒤, 자신의 결백과 진범을 밝히기 위해 사립탐정을 고용했다. 그러나 고용한 사립탐정 무디마저 결정적 단서를 손에 쥔 채 살해당했고, 주드 박사는 경찰과 미지의 범인 양쪽의 위협에서 생명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맞서며 마침내 최후의 순간에 무디가 마지막 남긴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데...

"대작가" 시드니 셀던의 장편 추리 소설 데뷰작입니다. 시드니 셀던의 B급 드라마 소설은 익히 많이 읽었었지만 추리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온 책은 처음 읽어보네요. 그래도 명성이 있으니 로렌스 샌더스 수준은 되겠구나 싶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읽어보니 역시나입니다. 문장부터 싸구려 티가 좔좔 흐르는게 펄프픽션이 무엇인지 보여주는데다가, 기본 스토리가 허무맹랑하고 알맹이가 없는 탓입니다. 게다가 추리물로서의 기본 요소 역시 빵점입니다. 등장하는 가장 중요한 단서가 일종의 말장난 수준이고, 진범의 정체를 알게 되는 것도 결국 범인에게 끌려 가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 작품의 어디를 보고 추리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에요. 그나마 극적 재미라 할 수 있는, 범인과 협력하는 공범자의 정체마저도 중간 부분을 넘어가면 너무 티가 나서 도저히 모르고 넘어갈 수 없고요. 한마디로 스릴러로서의 최소한의 자존심조차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딱 한가지, 비서가 잔인하게 살해된 진짜 이유를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부분 정도는 눈여겨 볼 만 합니다. 영화판에서 일하던 전력 탓인지 스피디한 전개나 중간중간 시선을 잡아끄는 서스펜스가 요소요소 적절히 들어가서 지루함을 덜어 주는 점, 그리고 별로 생각할 필요가 없으므로 쉽게쉽게 빨리빨리 읽을 수 있었다는 점도 장점이긴 하고요.

그러나 단점이 압도적이기에 별점은 1.5점입니다. 이 책이 세계 추리 걸작선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온 까닭 자체을 잘 모르겠습니다. 수준 이하도 정도가 있어야죠... 이제 시드니 셀던 책은 두번 다시 거들떠도 보지 않으렵니다.

2021/09/17

애거서 크리스티 읽기 - 설혜심 : 별점 3점

애거서 크리스티 읽기 - 6점
설혜심 지음/휴머니스트

지적인 흥분과 읽는 재미를 동시에 전해주는 여러 미시사 저작물을 발표했던 설혜심 교수의 신작입니다. 책을 펴낸 이유를 설명하는 서두를 보니, 코로나로 인해 여러모로 쌓였던 스트레스 해소 차 썼다고 합니다. 본업과 별개로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이만한 책을 쓸 수 있다니, 그 내공이 정말 놀랍네요.

하여튼, 저자 스스로 이 책은 '애거서 크리스티 다시 읽기'로 요약할 수 있다는데 독자가 보기에는 'B급 문학을 역사 연구의 소재로 활용'해보는 모험적 시도의 결과물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립니다.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을 통해 당시 '영국의 세계관'을 다시금 되새겨보는, 일종의 미시사 서적이니까요. 그만큼 여사님 작품이 당시의 실재를 잘 반영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여사님 작품에 온갖 저택이 중요하게 등장하는 이유가 대표적입니다. 여사님 본인이 집 보러 다는게 취미일 정도로 열성적인 부동산 투자자이기도 했습니다만, 당시 영국인들이 대체로 집에 대한 집착이 어머어마했다는걸 설명해 주거든요. 이 집착이 '대영제국'을 만들었다는 해석도 그럴 듯 했습니다. 포르투갈, 스페인, 프랑스 인들은 새로운 땅을 발견하면 거창하고 복잡한 소유권 선언 의식부터 했는데, 영국인들은 사는 집부터 짓고 자기 영역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랍니다. 점유를 통해 해당 땅을 지배한다는 현대적인 부동산 논리인 거지요. "아무리 낡아 빠진 집이라도 그것이 살인의 동기가 될 수 있다."푸아로가 말하는 작품도 있는데, 이제야 그 좀 납득이 되네요.

1차, 2차 세계 대전 중 '병역 면제'에 대한 사실과 사회적 인식도 여사님 작품을 통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부머랭 살인 사건"의 주인공 보비 존스가 입대 직후 시력 문제로 제대했던 이유부터 볼까요? 1차 대전 때 입대 전 신체 검사를 민간 의사들이 시행했는데, 이들의 수당을 적합 판정을 내린 신병 수만큼 지급했던 탓이랍니다. 그래서 '적합' 판정이 남발되어서 군대에 가면 안되면 보비 존스조차 입대하게 된 것이었지요. 

그런데 이건 1차 대전 이야기입니다. 반대로 2차 대전 때는 징집 대상이 여성까지 확대되었지만, 국가 차원에서 중요한 직업군은 오히려 병역이 배제되었으며, 여기 농부가 포함되어 있어서 당시 농과 대학 입학 경쟁이 치열했다는 등의 사실을 "파도를 타고"의 롤리와 린을 통해 알려줍니다. 전쟁 당시 롤리는 일하던 농장에 묶였지만, 약혼녀 린은 징집되어 참전했었다는 설정이거든요. 더불어 롤리가 지옥같다고 묘사한 이 상황으로 당시의 사회적 인식도 쉽게 알 수 있고요. 

또 "쥐덫" 등 여사님 작품들은 대체로 군대에서 복무했던 여성들은 똑똑하고 유능했던 반면, 남성들에게는 군대가 지능이 별로 필요없는 집단이라는걸 드러내는 묘사가 많았다는 걸로 당시 군인에 대한 여사님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실패했던 첫 결혼의 상대방이 장교 출신인 탓도 어느정도 있었겠지요? 당시 여성들이 남성들과 동등하게 대접받고 경쟁할만한 곳은 전시 군대가 유일했다는 점도 한 몫 했겠지요.

이른바 '영국성'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다양한 작품에서의 등장인물들 대사로 제국주의, 인종 및 타 국가에 대한 편견과 같은 당시 영국 국민들 의식을 쉽게 알 수 있었어요. 여사님 스스로가 이를 '섬나라 근성'이라며 비꼬는 묘사도 인상적이었고요. 이유보다 현상만 채집하여 선보이고 있다는 약점은 있지만, 이런게 실재하는 역사이자 진정한 사람들 관점의 미시사라는 생각도 듭니다.

"돈" 항목은 이런 관점의 미시사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터펜스가 "비밀 결사"에서 이야기했던, 오직 세 가지 뿐인 돈 버는 방법에서 시작됩니다. "물려받거나, 결혼하거나, 직접 벌거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여사님 작품에 많이 나오는 몰락한 귀족과 미국 부자의 결혼이라는 상황과 실제로 20세기 초반 귀족들이 몰락하면서 미국 대부호 딸과 결혼했던 사례를 연이어 소개해 줍니다. 대표적인 "달러 프린세스"로 소개된건 처칠의 어머니 레이디 랜돌프 처칠이었고요. 실제로 돈을 벌어 자수성가한 사람들 이야기가 없는건 조금 아쉬웠지만, 여사님 작품 속 이야기를 실재 역사적 상황과 맞추어 설명한 아주 좋은 사례라 생각되네요.

하녀, 하인들 이야기가 주로 소개된 "계급"도 미시사적인 측면에서 볼 만 합니다. "돈"과 마찬가지로 하녀에 대한 당시 시각과 인식을 여사님 작품은 물론, 여러가지 실제 자료를 통해 잘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인식과는 다르게 20세기 초만 해도, 어머니들이 딸들에게 하녀 일을 추천했었다는게 기억에 남네요. 도시의 악덕으로부터 젊은 처녀를 보호하고, 상층 계급의 사회적 규범을 익힐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다나요? 운만 좋으면 좋은 혼처를 찾을 수도 있었고, 여사님 작품에서처럼 거액의 돈을 상속받을 수도 있었으니 나쁘지는 않았을 것 같네요. 상류층들도 하인에게 예의를 갖추는게 제 1원칙이었다니 지금보다도 고용살이하기는 더 나은 시대였을걸로 생각도 되고요. 물론 "카리브 해의 미스터리", "주머니 속의 호밀" 등 하녀가 불쌍한 희생자가 되는 작품도 제법 많습니다만....

그 외에도 심령 현상, 강신술과 관상 등으로 대표되는 '미신'에 대한 당시 인식, 미스 마플 이야기와 미시사라는 학문의 핵심이 일치한다는 주장 등도 모두 미시사적으로 볼만 했었습니다. 미시사에 대한 이론은 특히 와 닿았습니다. 저는 그냥 쉽게 특정한 분야, 특정 시기만을 집중적으로 조망하는게 미시사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미스 마플이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 처럼, 일반적 역사에서 소외되었던 일반 사람들과 개인의 삶을 집중적으로 고찰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의 관계를 밝혀내는 것이지요. 앞으로 이런 부분을 좀 더 유념해서 책을 읽어봐야 겠습니다.

순수하게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의 팬으로서 즐길 요소도 많았습니다. 탐정 에르큘 푸아로 캐릭터 유래처럼요. 그가 벨기에인이었던건 여사님이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을 쓸 무렵, 근처에 살고 있었던 벨기에 난민을 떠올렸던게 계기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영국인들 도움에도 별로 고마와하지 않고 불평을 늘어 놓았는데, 거기서 푸아로의 까탈스러운 성격이 빚어졌다고 하네요. 푸아로는 벨기에라는 나라가 당시 영국인들에게는 '무시해도 좋을' 나라라서 쉽게 받아들여졌다고 하는데, 프랑스 인이었다면 지금의 푸아로와 같은 인기는 없었을지도 모르겠군요. 

'탈 것'을 통해 여사님 작품 속 자동차, 기차, 비행기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팬이라면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었습니다. 오리엔트 특급이 대표적이에요. 밀실처럼 폐쇄된 공간이고, 승객들은 모두 우연히 모엿으며, 갇혔지만 창 밖을 볼 수 있고 중간중간 정차해서 변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기차는 추리 소설 무대로 적합하다는 이론도 기억에 남습니다. "부산행" 영화가 재미있는 이유와 일치했던 덕분입니다.
그런데 탈 것에 '배'가 등장하지 않는건 좀 의외네요. "나일강의 죽음"의 주 무대가 유람선이었는데 말이지요. 외국 여행을 위해 유람선에 모인 영국인들은 미시사 적으로 해석하기 아주 적합한 소재인데 왜 빠졌을까요?

하지만 모든 주제가 여사님 작품으로 당시 영국 세계관, 상황을 돌아볼 수 있다는 목적에 충실하게 구성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예컨데 "독약"은 당시 영국 상황보다는 애거서 크리스티 개인에 관련된 주제였습니다. "교육"에 등장하는 여러가지 상황들도 마찬가지에요. 여사님이 사립학교 출신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던 건, 해로 출신이자 난봉꾼이었던 오빠 몬티 탓, 그리고 여사님이 제대로 된 학교 생활 경험이 없다는 탓이 컸으니까요. 

그리고 "섹슈얼리티", "신분 도용"은 여사님 작품 속 해당 주제에 대해서는 잘 분석되어 있는 결과물로 재미가 없지는 않습니다. 여사님 작품 속 동성애, 포와로와 헤이스팅스의 관계 분석은 팬으로서는 눈여겨 볼 수 밖에 없는 내용이었고요. 그러나 이를 당시 시대상과 잘 엮어서 설명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호텔" 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보이 호텔과 리츠 호텔의 간략한 역사와 함께 "버트램 호텔에서"의 버트램 호텔 모델이 어디인지에 대한 해석이 거의 전부로, 일종의 미시사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호텔에 국한된 내용이었을 뿐입니다. 

반대로 "배급제"는 전쟁 때 시작되어 1950년대까지 이어진 배급제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지만, 정작 여사님 작품은 거의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나마 여사님 관련 이야기도 작품보다는 자서전 내용이 중심이고요. 또 앞서 말씀드렸던 미시사적인 부분들도 재미는 있지만, 뒷받침하는 사료와 근거가 많지 않고, 분량도 적어서 깊이있는 내용으로 보기 어려웠다는 것도 단점입니다.

유명 작품, 여사님이 직접 뽑은 베스트 10 과 같은 작품보다 "파도를 타고"와 같은, 특정 작품에 등장했던 상황과 대사 소개가 많은 것도 아쉬웠어요. 여사님의 전작을 둘러본다는 느낌을 받기는 힘들었으니까요. 저자가 소개한 소재도 미시사적으로 좀 더 의미있게 선보였다면 좋았을 겁니다. 예를 들어 "탈 것"에서 다양한 차들을 열거하는데 그치지 말고, 그 차들의 연대 순으로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설명해주는 식으로 말이지요. 아울러 저자의 책 치고는 도판도 딱히 볼만한게 없었습니다. 여사님 소싯적(?) 사진들 정도가 눈에 뜨이는 정도입니다. "탈 것"에서 열거된 차들 사진과 같은 도판은 수록해주는게 좋았을 거에요.

그래서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역사적인 깊이 측면, 그리고 여사님 작품의 깊이 있는 분석 양쪽 모두에서 아쉬움은 있습니다. 그래도 여사님 팬이라면 흥미를 느낄 수 밖에 없는 주제인데다가, 여사님 작품을 미시사적으로 접근한다는 아이디어 만큼은 반짝반짝 빛났습니다. 글도 쉽고 재미있게 쓰여져 있고요. 추리 소설, 역사 관련 저서를 모두 좋아하는 저에게는 불만없는 독서였어요.

2007/08/15

사라진 남자 (Charlie Muffin)- B 프리맨틀 / 박종원 (일신추리문고31) : 별점 3.5점

찰리 머핀은 영국 정보부의 베테랑 요원이지만 정보부장의 교체 등 인물들이 물갈이 되면서부터 서서히 소외되기 시작했다. 한편 그의 활약으로 붙잡은 소련 KGB의 1급 스파이 베렌코프의 석방을 놓고 궁지에 몰린 KGB 장군 카레닌은 망명의사를 은밀히 피력했고, 그러한 신호를 감지한 CIA와 영국 정보부는 공동 작전을 개시하여 그를 서방세계로 망명시키려 했다. 그러나 담당 정보부원들이 모두 실패하자 어쩔 수 없이 영국 정보부는 찰리 머핀을 작전의 중심 인물로 기용하며, 찰리 머핀은 일생일대의 대 작전에 나서는데...

B 프리맨틀은 일본에서 선정한 "동서 미스터리 100"에 "이별을 알리러 온 남자"라는 작품이 선정되어 있기도 한 유명작가인데 작품을 읽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국내에 소개된 작품이 적은 탓도 크지만요.

줄거리 소개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스파이 첩보물입니다. 그러나 이 바닥의 고전인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 라던가 "르윈터의 망명"과는 분명히 차별화되는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조국에 대한 충섬심은 배재한체 두뇌게임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는 점이죠. 또한 일반적인 스파이들과는 다른 찰리 머핀이라는 캐릭터도 무척 인상적이에요. 잔머리에 강하면서도 프로로서의 자부심도 높고 약간 비열한 면모도 보이는, 그간 다른 첩보물에서 보기 힘들었던 복잡하면서도 독특한 캐릭터였거든요. 이러한 그의 모습이 작품의 재미에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도 하고요.

내용은 베테랑 요원 찰리 머핀의 1인극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그의 활약과 두뇌싸움이 중심인데 007같은 단순한 히어로물은 아니며 정보부의 비정함, 서로가 속고 속이는 잔인한 게임을 잘 표현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때문에 현실적이면서도 긴박한 전개가 무척 일품이었어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3.5점입니다. 스파이 첩보물을 좋아하신다면 추천드립니다. 이미 절판된 책이라 지금 구하기에는 조금 어렵지만 구해볼 가치는 있습니다.

그나저나... 조사해 보니 이 작품을 시작으로 한 시리즈물이던데 이후 작품들도 꼭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특히 "이별을 알리러 온 남자"가 땡기네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시리즈물이 계속될 만한 결말이 아니었는데 어떻게 이어지는지도 좀 궁금하거든요. 덧붙이자면,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교훈은 "부하한테 잘 해줘라" 정도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