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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1

가다라의 돼지 - 나카지마 라모 / 한희선 : 별점 3점

가다라의 돼지 - 6점
나카지마 라모 지음, 한희선 옮김/북스피어

아프리카 주술 전문가 오우베 교수는 과거 현장 탐사에서 딸 시오리를 사고로 잃은 뒤, 아내 이쓰미와도 마음을 닫은 채 술에 의존하며 방송 출연으로 시간을 보내는 '탤런트 교수'가 되었다. 그러나 우연히 한 방송의 아프리카 기획에 참여하게 되면서 오랜만에 케냐를 방문하고, 그곳의 주술사 마을에서 죽은 줄 알았던 딸 시오리를 발견했다. 시오리를 구해냈지만, 곧바로 그녀를 자신의 '키시투'(일종의 주술 도구)로 여기는 최강의 주술사 바키리의 복수에 직면하게 되는데...

750여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과 그에 걸맞은 무게감으로, 읽기 전부터 독자를 압도하는 나카지마 라모의 대장편입니다. 일본 추리작가협회 장편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하네요.

작품은 크게 다음의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1부 : 오우베 교수가 사이비 종교에 빠진 아내 이쓰미를 구하기 위해 마술사 미스터 미라클, 제자 도만과 함께 종교의 '기적'을 폭로하는 이야기

2부 : 오우베 교수 일가가 TV 프로그램을 위해 아프리카 케냐를 방문한 후, 케냐 최고의 주술사 바키리로부터 실종된 줄 알았던 딸 시오리를 구해내는 이야기.

3부 : 일본까지 찾아온 바키리와 오우베 일가의 최종 결전.

이러한 이야기의 구조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엄밀히 말해 이 작품은 추리 소설보다는,   초능력과 아프리카 주술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기반으로 한 모험 소설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재미만 놓고 본다면 최고입니다. 1부에서 등장하는 '초능력', 특히 사이비 종교 교주가 공중 부양한다는 '기적'의 실체를 폭로하는 과정은 "신비의 사기꾼들"을 연상시키는 트릭물 같은 재미를 제공합니다. 또한, 2부에서는 케냐의 상세한 묘사와 긴박감 넘치는 탈출 장면이 손에 땀을 쥐게 만들며, 3부에서는 본격적인 주술 대결이 펼쳐지면서 트릭과 긴장감이 조화를 이루어 끝까지 몰입하게 해 주고요. 덕분에 방대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책을 손에서 놓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작가의 전작인 "인체모형의 밤"과는 전혀 다른, 블랙 코미디 같은 분위기도 볼거리였고요.
엄청나게 디테일한 자료 조사를 통해 구축된 초능력과 주술에 대한 설명도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모두를 압도하고 조종하는 바키리의 주술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이 부족했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특히 후반부 오우베의 각성 이후 펼쳐지는 '초능력 대결'은 너무 과장이 심했어요. 오컬트와 초능력, 주술이 결국 '존재한다'는 식의 결말은, 앞서 철저하게 구축했던 과학과 상식에 기반한 초능력과 주술이라는 테마와도 동떨어진 느낌입니다. 또한, 여러 범행에 대한 설득력도 부족했고요. 일본만의 독특한 오컬트 문화가 작품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영향이 크겠지만, 이렇다 보니 작가가 무엇을 의도했는지조차 모호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제목을 가져온 '마태복음'의 가다라 돼지 일화처럼 실제로 악령과 주술이 존재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미스터 미라클의 말처럼 모두 트릭에 불과한 것인지...

또한, 마지막 방송국에서의 대결은 "서브리미널 광고 효과"와 집단 최면을 너무 과장되게 묘사하면서 설득력을 잃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봤던 초능력 소년 기요카와와 마술사 미스터 미라클이 너무 일찍 퇴장한 것도 아쉬웠던 부분이고요.

결론적으로, 1부는 작품의 테마와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도입부로서 아주 괜찮은 중편이었고, 2부는 아프리카에 대한 상세한 묘사와 '주술'이라는 소재를 흥미롭게 풀어낸 모험소설로서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그러나 3부는 속도 조절 없이 너무 폭주해버린 느낌이 강합니다. 전형적인 B급 감성이 넘치는 데다가, 3부의 결말만 놓고 보면 이 방대한 작품이 '새로운 영능력 히어로 탄생'의 프롤로그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니까요. 막 나가는 재미는 있었지만, 1부와 2부처럼 보다 진지하고 과학적인 접근을 유지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재미는 있었지만, 모호한 방향성과 후반부의 급전개 때문에 선뜻 추천하기는 애매한 작품입니다. 1부는 별점 3점, 2부는 3.5점, 3부는 2점, 전체적으로는 대략 별점 3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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