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라장 사건 - 아유카와 데쓰야 지음, 김선영 옮김/시공사 |
리라장이라 불리는 건물에 일곱 명의 학생이 피서차 방문했다. 서로 친구들이었지만 각자의 사연으로 갈등이 있었다. 그런 그들을 대상으로 한 무서운 연쇄 살인극이 시작되는데...
아유카와 데쓰야의 1958년도 발표 작품입니다. "필독 본격 추리 30선"이나 "동서 미스터리 베스트 100" 같은 리스트에서 자주 언급되는 고전 본격물이지요. '판타스틱'에서 주최한 이벤트 덕분에 읽게 되었습니다. 리뷰에 앞서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특정 장소에서 특정 인물들에게 닥친 연쇄 살인이라는 기본 설정과 전체적인 분위기가 전형적인 일본 고전 본격물을 연상케 합니다. 그래도 1958년이라는 발표 시기 때문에, 기존 고전 본격물과의 차이점도 몇 가지 눈에 띄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리라장'이라는 장소의 존재입니다. 보통 이런 유형의 연쇄 살인은 외부와 연락이 두절된 '클로즈드 서클' 형태로 전개되는데, 이 작품에서는 경찰이 수시로 오갑니다. 심지어 경찰이 리라장에서 함께 거주하기까지 하는 파격적인 설정을 선보입니다. 경찰의 수사 과정이 탐정보다 훨씬 비중이 높고, 반대로 탐정은 니조와 호시카게 류조의 두 명을 등장시키면서도 이들의 매력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묘사도 특이했고요.
이런 점을 본다면 고전 본격물에서 트릭의 핵심만 남겨두고 작위성을 덜어낸, 고전 본격물에서 근대 사회파 추리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시기를 드러내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아직은 1950년대로 여전히 고전 본격물 쪽에 더 치우쳐져 있지만, 이후 1960년대에 접어들면 다카기 아키미쓰의 "야망의 덫" 등 장르의 주류가 점차 사회파 미스터리로 이동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러한 과도기적인 모습에서 오는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우선, '리라장'이라는 장소와 스페이드 카드로 대표되는 작위성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용의자가 축소되고 특정될 수밖에 없는 외딴 별장의 휴가 여행을 범행 무대로 삼기보다는, 도쿄에서 사고로 위장해 범행을 저지르는 것이 더 합리적인게 당연한데 말이지요. 탐정 캐릭터의 매력이 희박한 것도 고전 본격물에서 중요한 요소가 빠진 느낌이라,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웠습니다.
또한, 이 작품의 핵심인 알리바이 트릭은 명성에 걸맞게 훌륭한 편이지만, 살로메 - 유키타케 살인 사건 이후에는 그렇게 정교하게 짜여 있지는 못합니다. 사건의 전개도 우연과 운에 지나치게 의존하고요. 예를 들면, 알리바이부터가 경찰 수사의 부실함이 원인이었고, 하나 씨의 증언을 경찰들이 초반에 무시한 것, 하나 씨의 증언을 남편이 듣지 못한 것, 니조가 조사를 핑계로 입을 다물면서 사건이 이어지게 된 것 등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경찰이 상주하는 리라장에서 연쇄 살인이 계속 벌어진다는 것은 솔직히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특히 마지막 사건의 경우, 범인이 아비코를 위해서라는 이유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애초에 범행을 저지르지 않고 경찰에 사실을 알리는 것이 더 현명했을 겁니다. 그런데도 불가능 범죄를 또 저지른 이유를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입니다. 기본이 되는 트릭 자체는 상당한 수준이며, 초반부 살로메-유키타케 사건까지는 몰입도가 높습니다. 그러나 이후 이야기가 너무 확장되면서 사족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많아졌고, 무리한 전개가 많아진 점이 아쉬웠습니다. 이런 점에서 명성과 기대에는 살짝 미치지 못했네요. 물론, 기대가 너무 컸던 탓도 있겠지요. 개인적으로 니조가 등장하는 시점에서 마무리했더라면 더욱 괜찮은 작품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덧붙이자면, 최근 읽은 책 중에서 책의 완성도 측면에서는 가장 만족스러웠습니다. 판형도 마음에 들고 표지 디자인도 세련되었으며, 앞부분의 등장인물 소개, 중간중간 포함된 약도, 뒷부분의 해설 등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쓴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치 옛날 추리 문고 스타일이 떠오르는데, 앞으로도 이런 책이 많이 나와주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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