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10/12/01

기묘한 사건, 사고 전담반 - 존 딕슨 카 / 임경아 : 별점 3점

기묘한 사건.사고 전담반 - 6점
존 딕슨 카 지음, 임경아 옮김/로크미디어

불가사의한 사건·사고를 전담하는 런던 경시청의 D-3 부서에서 마치 대령과 로버트 경위가 다양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이야기 7편과 기타 단편 4편이 실려 있는 단편집.

"미궁과 사건부"나 현대의 "X-File"처럼, 상식을 뛰어넘는 사건을 다루는 전담 부서는 여러 작품에서 변주된 설정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1940년에 발표된, 거의 원조격인 작품이지요. 다만 후대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D-3 부서의 설정이 크게 활용되지 않고, 오히려 마치 대령이 활약하는 전형적인 명탐정물에 가깝다는건 아쉽습니다. 좋은 설정을 잘 살리지 못했어요. 마치 대령이 딕슨 카의 다른 명탐정들—펠 박사나 헨리 메리베일 경—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점도 작품의 개성을 살리는 데에 크게 기여하지 못합니다.

1940년 발표작이라는 점에서 이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은 두 가지로 나뉠 수 있을 것 같네요. 하나는 낡고 진부한 트릭이 가득한 오래된 작품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트릭 자체는 익숙할지라도 거장의 솜씨로 완성도를 높인 고전 명작이라는 평가로요. 개인적으로는 후자 쪽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등장하는 이야기들의 트릭이 오래된 것은 사실이지만, 발표된 시기를 감안하면 단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시대를 앞서갔던 요소로 볼 수 있거든요. 이러한 트릭과 구성만으로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조리 있게 진행하는 딕슨 카의 솜씨도 감탄할 수밖에 없었고요. 뻔한 설정이라도 동기를 합리적으로 처리하고, 기발한 발상으로 단서를 포착하는 묘사와 전개 방식은 추리 소설 작법 측면에서 읽어볼 가치가 충분합니다. 특히 D-3 부서 시리즈 이외의 네 편은 딕슨 카 특유의 고딕 호러·역사극 스타일이 살아 있는 작품들이어서 더욱 반가왔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트릭의 신선함을 잃은 탓에 추리물로서 가장 중요한 '재미'가 반감되기는 했지만, 고전 정통 본격 추리 단편의 맛이 잘 살아 있어서 고전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좋은 책입니다. 별점은 전체 평균 2.7점으로, 반올림해서 3점 주겠습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아주 약간의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건 1: 투명 인간 살인"
맞은편 방을 엿보던 남자는 그 방에서 아무도 없는데 갑자기 총이 떠올라 사람을 쏘는 것을 목격한다.

삼각다리 테이블이라는 무대 장치 덕에 트릭을 쉽게 간파할 수 있었던 작품. 그러나 동기가 합리적이고 깔끔하게 마무리된게 인상적이에요. 결정적 단서가 영어 단어 표현에서 기인했다는 점, '총알 자국'이 단순한 우연이라는 점은 아쉬웠지만요. 별점은 3점입니다.

"사건 2: 사라진 방"
술에 취해 아파트로 돌아온 로널드 던햄은 정신을 차리자 자신이 있는 곳이 다른 방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게다가 그 방에는 시체가 있었다.

모든 방의 가구 배치가 동일하다는 설정을 이용한 트릭이 돋보이는 작품. 시체가 레인코트의 앞, 뒤를 바꿔 입고 있었다는 등의 세부 묘사가 사건의 흥미를 더해줍니다. 트릭 자체는 뻔하지만 이야기 전개 방식이 뛰어나서 끝까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던 작품이에요. 다만, 결정적 단서인 그림의 '세피아'라는 묘사가 애매하게 번역되어 독자에게 공정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 점이 아쉽더군요. 별점은 3.5점입니다.

"사건 3: 핫머니"
강도단이 강탈한 현금과 채권이 변호사 사무실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밀실에서 사라진 서류 가방을 다룬 소실 트릭물. "도둑맞은 편지"처럼 사람의 맹점을 찌르는 설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상당히 불공정한 트릭이었습니다. 경찰이 조금만 더 꼼꼼하게 수사했더라면 충분히 밝혀질 수 있었다고 생각되네요. 제목과 내용을 연관시키는 유머러스한 전개는 좋았지만, 추리적인 요소가 약해서 별점은 2점입니다.

"사건 4: 새벽, 해변의 죽음"
아무도 없는 해변에서 한 사업가가 목격자들 앞에서 쓰러진다. 의사는 그가 날카로운 무기에 찔려 사망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예상하기 어려웠지만 알고 나면 별거 아닌, 현실적이면서도 간단한 트릭이 사용된 작품. 다만, 불가능한 상황을 강조하는 전개가 지나쳐서 무리수가 많은건 단점입니다. 특히 범인이 고무공을 이용하기 위해 장난감 병정 세트를 샀다는 설정은 지나치게 작위적이었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사건 5: 허공에서 찍힌 발자국"
강도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는 피해자와 크게 다투었던 옆집 소녀. 그녀를 용의자로 만든 증거는 눈 위에 찍힌 발자국이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문제점은 피해자가 살아 있다는 점입니다. 피해자가 증언하면 범인은 밝혀질 수 밖에 없어서 긴장감이 떨어집니다. 트릭도 허술한 편이고요. 뤼팽 시리즈 "팔점종"에서 등장했던 발자국 트릭과 비교해 본다면, 세부 설명이 부족했어요. '몽유병'이라는 설정 역시 설득력이 떨어졌고요. 거장의 솜씨가 엿보이긴 하지만 완성도는 그리 높지 않은 평작 수준 이하의 태작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사건 6: 분장실의 시체"
인기 댄서 래포트 양이 분장실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다. 그러나 가장 유력한 용의자의 알리바이는 확고한 상황.

흔한 변장 트릭이 사용되었지만, 전반적으로 공정하게 단서를 배치해 추리의 과정을 잘 풀어내고 있는 작품. 사건의 동기도 설득력 있게 잘 짜여져 있고요. 짧은 소품이라 이야기가 풍성하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지만, 큰 흠은 아닙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사건 7: 은빛 장막 속에서"
카지노에서 전 재산을 잃고 궁지에 몰린 윈턴. 수수께끼의 남자 데이보스에게 거액이 걸린 의뢰를 받지만, 그 직후 데이보스가 의문의 살인을 당한다.

여러 추리 퀴즈에서 자주 소개되는 유명한 트릭이 등장합니다. 간단한 트릭이지만 전개가 워낙 탁월해서 완성도를 높입니다. 사건의 동기가 되는 밀수 사건도 설득력 높았고요. 수록작 중 최고작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이 외에도 "합법적인 사형집행인"(별점 4점), "살아 있는 자를 위한 죽은 자의 복수"(별점 2점),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흉기"(별점 2점) 등 다양한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