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풍당당 명탐정 외젠 발몽 - 로버트 바 지음, 이은선 옮김/시공사 |
프랑스 총경 출신으로 영국에서 탐정으로 활약하는 외젠 발몽이 주인공인 단편집으로, 1907년에 발표된 작품입니다. 이 시리즈는 예전에 하서출판사의 "세계추리명작단편선"을 통해 접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나서, 이번 국내 출간이 반가웠고, 기대만큼 즐겁게 읽었습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유쾌한 분위기입니다. 마치 마크 트웨인이 추리 소설을 쓴다면 이런 느낌일 것 같다고 할까요? 특히 프랑스인 탐정 발몽이 영국 사회에 대해 냉소적으로 비판하는 태도와 유머가 돋보입니다. 그의 허영심과 자의식 과잉이 만들어내는 코믹한 요소도 재미를 더하죠. 이러한 자뻑 탐정의 전형적인 예로는 '에르퀼 포와로'를 들 수 있겠습니다. 물론 발몽은 여성에게 약하다는 점에서 포와로와 차이가 있긴 하지만요.
추리적인 요소도 상당한 수준입니다. 살인 사건보다는 도난과 사기 사건이 중심이 되는데, 단순한 해결 과정뿐만 아니라 범죄 계획 자체가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또한, 20세기 초반 셜록 홈즈의 라이벌 탐정들이 활약하던 시기에 발표된 작품임에도, 기존 정통 단편 추리 소설의 전형에서 벗어나 있는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탐정이 사건 해결에 실패하는 이야기나 '추리'보다는 '모험'에 집중한 단편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그렇죠. 그래서인지 전체적으로 현대적인 느낌이 강하고, 지금 읽어도 별로 낡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추리 소설에서 중요한 요소인 '공정한 정보 제공'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고, 본격 추리로서의 완성도도 다소 아쉬웠습니다. 또한, 이야기마다 수준 차이가 큽니다. 마지막에 실린 셜록 홈즈 패러디 단편들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요. 특히 "셜로 콤즈의 모험"은 최초의 셜록 홈즈 패러디 단편이라는 자료적 가치는 높지만, 내용 자체는 가벼운 장난에 불과해 보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유쾌하면서도 독특한 매력을 가진 작품이지만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 단편집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고전 추리 단편을 좋아하시거나 유머러스한 추리소설을 원하신다면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이 책이 잘 팔려서 더 많은 고전 추리 걸작들이 출간되면 좋겠네요.
수록작별 간단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1. 500개의 다이아몬드에 얽힌 수수께끼
외젠 발몽이 프랑스 총경으로 근무할 때의 이야기.
백만달러짜리 마리 앙투아네트 목걸이의 경매와 경매이후 벌어진 목걸이 행방을 뒤쫓는 추격전을 다루고 있습니다. '유능한' 발몽이 무능한 부하와 생각못한 방해로 작전에 실패하는 과정이 드라마틱하게 벌어지죠. 간단하지만 효과적이었던 범인의 다이아몬드 운송 계획도 볼거리지만 무엇보다도 '일반인'에게 주인공 명탐정이 패배하는 생각지도 못한 결말이 등장해서 의외였습니다. 뤼뺑 시리즈 제 1작이 뤼뺑이 체포되는 이야기였던 충격과 버금가더군요.
이 시리즈의 특징, 자뻑 외젠 발몽과 그의 떠벌임, 자의식과잉 묘사와 유머러스한 분위기의 반전까지 모두 등장하는 작품으로 별점은 3.5점입니다.
2. 두 얼굴의 폭탄 테러범
발몽이 영국으로 온 이후 이중신분으로 무정부주의자 조직에서 정보를 캐 내다가 폭탄투척에 대한 정보를 얻고 그것을 막으려 활약하는 모험담.
이 이야기는 추리물이라기 보다는 첩보 - 모험물에 가까운 작품입니다. 당시 영국에 대한 발몽의 비판적인 시각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기도 하죠. 쉽게 읽히고 재미도 있으며 발몽의 옛 부하 아돌프 시마르가 등장하는 등 시리즈 팬으로 즐길거리가 많기는 하지만 추리적으로는 점수를 줄 부분이 별로 없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3. 은숟가락에 담긴 단서
벤섬 기브스가 발몽을 찾아와 사건해결을 의뢰한다. 사건은 그와 친구들이 함께 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사라진 백파운드를 찾아달라는 것.
라이오넬 데이커라는 유력한 용의자를 등장시키고 그와의 대화를 통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이 독특한 소품입니다. 두명의 대화도 맛깔나고 은숟가락을 이용한 마술이라는 단서도 꽤나 유용한 등 소품이지만 풍성한 느낌이 좋았어요. 그러나 가장 중요한 '라이오넬 데이커가 어떻게 빚을 갚았나?' 에 대해서 설명되지 않는 것은 좀 아쉽더군요. 별점은 3점입니다.
4. 치젤리그 경의 사라진 재산
치젤리그 경이 숨겨둔 막대한 재산을 찾는 이야기.
이 단편집에서 가장 정통 추리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몇가지 단서와 치젤리그 경의 유언을 토대로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이 합리적으로 그려져 있거든요. 어떻게보면 좀 단순한 발상이기는 하나 다른 곳에서 찾아보긴 힘든 트릭이 사용되었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별점은 4점입니다.
5. 건망증 클럽
예전 하서출판사의 <세계추리명작단편선>을 통해 접했던 단편. 다시 읽어도 재미있었습니다. 두가지 사건 - 은화 위조와 사기사건 - 이 묘하게 겹쳐져서 하나로 이어지는 전개도 좋았지만 발몽의 런던 경시청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활약이 이어지다가 마지막에 사기꾼에게 한방 맞는 결말도 여러모로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가장 높이 평가할 부분은 너무나도 기발한 사기꾼의 계획이겠죠. 지금 보기에는 허술하기도 하고 약간 설득력이 처지는 부분도 있긴 하나 아이디어만큼은 정말 대단하거든요. 별점은 4점입니다.
6. 기형 발 유령
랜트림리 경의 저택에 출몰한다는 기형 발 유령의 발소리에 얽힌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 영국 경찰에 대한 발몽의 떠벌임같은 유쾌함은 잘 살아있긴 하지만 초반에 저택에 대한 묘사가 상세하지 않아 독자의 상상력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추리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며 내용도 지나치게 과장이 심한 듯 싶어서 여러모로 조금은 아쉬운 이야기였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7. 와이오밍 에드의 석방
와이오밍 에드로 불리우는 미국 무기징역수의 탈옥을 돕는 발몽이 탈옥에 감추어진 진상을 밝혀내는 이야기.
두가지 사건, 즉 와이오밍 에드의 탈옥과 탈옥에 관련된 사기사건이 등장하는데 탈옥은 구체적으로 묘사되지도 않고 가볍게 넘어가기 때문에 '사기사건' 으로 보는게 적당하겠죠.
솔직히 탈옥도 좀 자세하게 묘사되지 않을까 읽으면서 기대가 컸었는데 좀 실망스럽긴 했습니다. 그러나 범인의 사기 계획이 나름 치밀하고 설득력이 있기에 적당한 수준으로 마무리 되지 않았나 싶네요. 물론 마지막 '변장쇼'는 좀 오버라 생각되지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8. 레이디 알리시아의 에메랄드
도난당한 블레어 에메랄드를 되찾고 레이디 알리시아를 만족시키겠다는 발몽의 일념이 빛나는 이야기. 그러나 도난사건 자체가 일종의 장난같고 두 연인의 치기어린 쇼로밖에 보이지 않아서 추리적으로는 빵점에 가까운 작품이었습니다. 여성에게 약한 발몽의 일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점은 즐거웠지만 전체적으로 평균 이하였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셜록 홈즈 패러디
1. 셜로 콤즈의 모험
셜로 콤즈가 페그럼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이야기. 스코틀랜드에 대한 조롱과 더불어 패러디로서 즐길거리는 많으나 결국 셜로 콤즈의 추리와 수사는 치기어린 과대망상이었고 결국 운이 좋아서 단서를 찾았을 뿐이라는 결말은 추리 소설 애독자로서 씁쓸한 뒷맛을 느끼게 하더군요. 재미도 있고 자료적 가치도 높지만 개인적으로는 씁쓸함이 더 큽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 두 번째 돈주머니의 모험
코난 도일에게 홈즈가 원고료를 요구하러 찾아오지만 도일에 의해 살해당한다는 나름 충격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내용에 알맹이도 없고, 패러디도 아닌 이상한 작품이에요. 저자 로버트 바가 코난 도일의 절친한 친구라는데 친구에게 거는 가벼운 장난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저자들 사이의 개인적인 친분이라는 의미 이외의 것을 찾기는 어렵더군요. 별점은 1.5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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