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스의 과학 - E. J. 와그너 지음, 이한음 옮김/한승 |
제목만 보면 셜록 홈즈를 등장시켜 여러가지 과학상식을 설명하는 교양서같지만 실은 셜록 홈즈 시리즈 일부를 인용해가면서 당대의 과학수사 - 법과학의 역사를 설명하는, 한마디로 법과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일종의 미시사 서적이더군요.
총 13개의 주제로 구분되어 있는데 아주 자세한 것은 아니지만 간략하게나마 과학수사의 역사를 아는데 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관련된 사례가 굉장히 풍부하게 실려있어서 자료적 가치와 재미를 모두 충족시키는 보기드문 책이었습니다. 또한 모든 내용을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 등장했던 에피소드나 대사들을 인용하여 설명해주는 것은 홈즈 시리즈 팬에게 큰 기쁨이기도 했고요.
단 과학수사 초창기에서부터 셜록 홈즈 전성기까지, 그러니까 20세기 초반까지의 이야기가 주류라서 이후의 역사를 심도깊게 알기는 불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이런 류의 참고도서 치고는 도판이 약간 부실하다는 것은 아쉽네요.
그래도 별점은 4점. 과학수사의 역사에 대해서 이만한 책은 없을 것 같거든요. 과학 수사에 관심있으시다면, 다양한 사례를 접하고 싶으시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1. <사자와의 대화>
시체를 가지고 범죄를 해결하는 법과학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관련된 항목에서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사망시간의 추정이라던가 부검 및 해부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죠.
사례로 든 사건들 중에서는 19세기 후반 헝가리에서 벌어진 어린 하녀의 익사체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네요. 범인으로 유대인들이 지목되어 가혹한 대접을 받는 와중에 시체가 발견되었는데 시간이 오래 지났음에도 시신이 깨끗하고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실종된 하녀가 아니라고 결론이 내려졌지만, 추후 세밀한 부검 결과 뼈의 성숙도로 나이를 판정한 뒤, 시신이 깨끗한 것은 피부의 진피가 떨어져 나갔기 때문에, 그리고 강물이 차가왔기 때문에 3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잘 보존될 수 있었다고 밝혀져 유대인들이 누명을 벗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2. <야수 이야기와 검은 개>
<바스커빌가의 개>를 토대로 당대 유럽을 지배했던 고대 민담과 전설에 따라 벌어졌던 수상한 사건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평이하지만 마지막에 등장한 사례, 주인이 살해된 현장에서 죽은채 발견된 앵무새 부리에서 살인자의 피를 채취하여 범인을 체포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는 재미있더군요. 용감한 앵무새가 범인을 공격했던 것입니다!
3. <옥에 티>
곤충과 범죄수사를 연관시킨 것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제목이 왜 <옥에 티>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 분야의 책으로는 바이블과도 같은 <파리가 잡은 범인>을 추천합니다.
4. <독살의 증거>
제목 그대로 독살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다양한 여러 사건들을 비롯하여 독살당한 시체에서 독을 검출하는 방법에 대한 상세한 소개 - 주로 비소 관련 - 등도 아주 흥미진진해요. 또한 이 주제에서는 <얼룩끈>에서의 뱀 이빨 자국을 예로 들며 피하 주사 흔적을 발견하여 해결한 독살 사건에 대해 언급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홈즈 시리즈의 미묘한 단서를 실제 사례와 잘 연관시켜 설명해 주고 있기에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게 좋았습니다.
5. <변장과 수사관>
비도크를 중심으로 변장에 대한 실제 사례를 충실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비도크의 실제 활약상도 대단하며 <가짜경감 듀>로 친숙한 크리픈 사건 (정부를 아들로 변장시켜 도주하던 그의 행각과 결말)도 재미있는 내용이지만 뭐니뭐니해도 심하게 절뚝이는 범인을 잡기 위해 범인의 변장을 간파하고 특히 범인이 특수 구두를 신었을 것이라 추리한 사립탐정 헨리 고다드의 활약이 아주 흥미로왔어요.
6. <가스등에 비친 범죄현장>
홈즈가 중요하다고 여러번 역설한 '현장 보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잭 더 리퍼 사건을 비롯한 많은 사례를 통해 현장 보존과 현장 검증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고 있죠.
7. <범죄자의 초상>
이 주제에서는 범죄자의 신원 파악을 위한 방법의 발전상에 대해 소개합니다. 초기의 문신이나 흉터에 대한 기록 및 지식에서 시작하여 사진술, 베르티용 측정법을 지나 지문에 이르기까지 충실하게 설명하고 있음은 물론 여러가지 사례가 언급되어 재미를 더하는 것도 물론입니다.
마지막에 소개된 1920년대 리옹에서 일어난, 대낮에 약간 열린 창문을 통해 여러가지 물건이 도난당한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지문이 이랑들이 모두 수직으로 뻗어있는 아주 특이한 것이었다는 사건이 특히 재미있었습니다. 범인은? 원숭이 절도범이었던 것이죠. 정말 한편의 추리소설 같죠?
8. <어둠 속의 총격>
제목 그대로 총과 총알, 그리고 탄도학까지 이르는 것에 관련된 내용이 사건과 함께 설명되고 있습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셜록 홈즈의 단편들을 통하여 이쪽 분야에서는 홈즈 - 도일쪽이 확실히 앞서갔다는 증거들이 더욱 인상적이었어요. 팬으로서도 기뻤고요.
9. <발자국>
역시나 제목 그대로 발자국 분석에 대한 법과학적인 역사와 사례를 설명해 줍니다. 1862년 글래스고에서 벌어진 플레밍가(家) 하녀 살인사건 현장에서의 발자국을 분석한 사례가 디테일하게 소개되는데, 발자국이 찍힌 마루판을 아예 '잘라내어' 증거로 보존했다는 내용이 상당히 충격적이었습니다...
10. <오물>
범죄 현장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먼지, 오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셜록 홈즈의 조언대로 '손을 먼저 보아라'라는 말에 충실했던 1904년 독일에서 벌어진 재봉사 살인사건 (범인의 손톱 밑 찌꺼기를 긁어내어 결정적인 증거 확보) 이라던가, 19212년 리옹의 마리 라텔 살인사건 같은 사례도 재미있지만 자신이 흡혈귀라고 주장한 영국의 존 조지 헤이 사건이 가장 놀라왔어요. 피해자를 황산으로 녹여버렸기 때문에 증거가 없다고 떠벌인 작자인데 현장에서 발견해 낸 증거 중 반질반질한 조약돌 - 즉 피해자의 '담석' (담석은 황산에 녹지 않음) - 이 결정적 증거가 된다는 이야기는 왠만한 소설보다 재미있더군요.
11. <악마의 편지>
편지를 통한 필적감정에서 시작하여, 여러 단편에서 가끔 인용되던 마을을 분란에 빠트리는 '익명의 편지' 사건, 그리고 이후 타자기 분석까지 당대 편지 분석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12. <피의 목소리>
핏자국이 정말 핏자국인지를 알아내기 위한 고난의 과정이 드라마틱하게 그려집니다. 루미놀이 일반화된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현미경에서 일일이 확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분광기를 통한 분석, 항혈청 침강소를 이용한 분석 등이 상세하게 소개되며 주요 등장 사건으로는 유명한 '리지 보덴 사건'과 핏자국을 나무 얼룩이라고 주장한 1901년 독일 뤼겐섬 살인사건 등이 있습니다.
13. <신화, 의학, 살인>
당시의 범죄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색다른 이론들이 대거 등장합니다. 홈즈 시리즈에도 많이 등장했던, 당시 유행했다는 '골상학'이나 '범죄 유전 이론', 그리고 자위행위가 굉장히 나빴다는 사회 인식 때문에 벌어진 여러가지 황당한 치료방법(?)들, 흡혈귀에 대한 소문, 살해당한 사람의 망막에 마지막으로 본 광경이 보존된다는 기상천외한 믿음 등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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