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블레의 아이들 - 요모타 이누히코 지음, 양경미 옮김/빨간머리 |
저명인사와 예술가들이 즐겨 먹었던 음식을 재현해 먹어본 뒤, 그 음식과 해당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총 25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는 책입니다. 요리를 단순히 레시피와 결과물로만 보지 않고, 그 요리를 즐겼던 인물과 연관 지어 설명하는 방식이 독특합니다.
제목은 음식 이야기를 즐겨 등장시킨 16세기 프랑스 작가 라블레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수많은 예술가들의 식탐을 '그들이 선천적으로 품고 있던 세상에 대한 탐욕스러운 호기심과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라고 정의하여, 그들 모두가 라블레의 아이들이라는 뜻을 담고 있지요.
등장인물과 레시피, 요리들 모두 동서고금의 다양한 문학과 예술에서 가져와 현학적인 재미가 넘쳐납니다. 복잡하거나 어렵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유명인사의 레시피를 재현한 사진과 그 맛에 대한 설명, 그리고 음식과 유명인사에 대한 에피소드들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워 아주 만족스럽게 읽었습니다.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재미있었지만,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네 종류의 요리와 디저트로 구성된 '미래파의 이탈리아 통합 디너 세트'였습니다. 조명과 벽지 등 모든 요소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미래파적 시각과 함께, 단순히 시각적인 요소를 넘어 미각까지 결합시켜 요리를 예술로 승화하려는 시도가 독특하게 느껴졌습니다. 게다가 이 요리에는 단순한 미학적 의미를 넘어, 결국 파시즘적 이데올로기를 나타내는 정치적 의미까지 담겨 있다니 더욱 흥미로웠습니다.
그로테스크했던 권터 그라스의 장어요리, 잘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어떤 것을 먹었는지 알 방법이 없었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과자 이야기 등도 기억에 남았습니다. 요시모토 다카아키의 우스터 소스 요리는 가정에서 당장 만들어볼 수 있는 레시피라 직접 도전해 보고 싶어졌고요.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요시모토 다카아키의 우스터 소스 설명 부분에서 사진이 잘못 편집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전체적으로 번역과 사진의 완성도가 높다 보니 더욱 눈에 거슬리더군요.
그래도 별점은 4점. 뻔한 레시피 중심이거나 맛집 순례에 불과한 요리·미식 관련 에세이와는 달리, 개념 자체가 색다른 책이라 요리와 미식을 좋아하는 모든 분들께 일독을 권합니다.
덧붙이자면, 제가 썼던 '장르문학과 함께하는 음식 이야기'라는 짧은 칼럼이 부끄러워지더군요. 아무리 취미의 일환이라지만, 좀 더 보강하고 제대로 의미를 담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제 칼럼은 재현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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