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단백질 이야기 - D. T. 맥스 지음, 강병철 옮김/김영사 |
<<책장의 정석>> 에서 소개되어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절판되어 아쉽던 차에 중고를 저렴하게 구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책 제목인 "살인단백질", 즉 프리온은 광우병을 일으키는 원인입니다. 이 책은 프리온 연구의 시작과 과정, 그리고 현재 어떤 상황인지를 상세하고 재미있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기묘한 병의 원인이 프리온이라는걸 밝혀내는 과정 자체도 한 편의 추리소설을 방불케하거든요.
책은 이탈리아의 한 가족에게 대물림되는 치명적가족성불면증(FFI)이라는 유전성 프리온 질환 소개로 시작됩니다. 18세기 중엽 베네치아에서 한 의사의 사망으로 시작된 FFI의 유전이 이어지는 과정, 그리고 마찬가지로 18세기 영국에서 축산업자 베이크웰이 동종교배로 탄생시킨 거대양 디쉴리 레스터 종이 치명적인 스크래피의 유행으로 엄청난 타격을 입는 이야기가 병렬로 전개되죠.
그리고 20세기 초반, 이탈리아 베네토에서 전쟁의 혼란 와중에 피에트로가 FFI로 사망하고, 뉴기니 원주민 포레이족이 '쿠루'라고 불리우는 이상한 유행병으로 죽어갈 때 젊은 학자이자 의사 칼턴 가이듀색이 현지에 뛰어들어 쿠루병이 유전병이 아니라 감염병이라는걸 밝혀내어 노벨상을 받는 과정이 이어집니다.
다음은 1970년대로 넘어가서 피에트로의 딸, 아들들이 FFI로 사망하며 본격적으로 병의 정체에 대해 연구가 벌어지고, 가이듀색의 라이벌 프루시너가 쿠루병과 스크래피 등이 '프리온' 이라고 명명한 단백질 탓에 발병하는 병이라는걸 증명하며 결국 이탈리아 가문의 유전병 역시 프리온 질병이라는게 밝혀집니다. 이 이탈리아 가족들의 데이터로 프리온이 감염병을 일으키고, 다른 종류의 프리온은 각각 뚜렷하게 구별되는 다른 질병을 일으킨다는 것이죠. 이런 연구들로 프루시너 역시 노벨상을 수상합니다.
그리고 1986년 영국 광우병 사태가 등장합니다. 광우병이 일어난 원인을 찾아내는 과정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도 축산업 붕괴를 막기 위해 정치가들이 소고기가 안전하다고 홍보하다가 사람에게 감염되는게 밝혀지는 내용은 굉장히 무섭고 끔찍해서 인상적이었어요. 동종교배, 소에게 소를 먹이는 행위와 같은 축산업에 존재하는 잔혹함이 광우병의 원인이 되었다는 점도 끔찍하기는 마찬가지고요.
동종접합 유전자가 있는 사람들에게만 쉽게 점염되기에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으며 최근에는 여러가지 연구로 치료법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는 결말은 조금 다행입니다. 물론 치료약인 퀴나크린은 간 손상 등을 일으켜 결국 환자들은 모두 사망했으며, 또다른 약인 펜토산은 치료가 아니라 현상 유지에 그치고 있어서 큰 효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지만 언제가는 치료약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만드네요.
이렇게 재미와 정보, 가치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게 만든 좋은 책입니다. 단점을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기에 별점도 5점입니다. 이전 <<책장의 정석>>에서 소개받아 구입했던 <<얼음의 나이>>는 솔직히 지루했는데 이 책은 누구에게나 추천할 만한 그런 책이네요. 의학, 광우병, 프리온 등에 궁금하시다면 필독서입니다. 이런 분야에 관심이 없으시더라도 순수한 재미 측면에서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그나저나 읽어보니 미국산 소고기가 찜찜하게 느껴지는데, 앞으로는 저렴하게 먹더라도 호주산을 먹어야겠다는 결심이 섭니다. 아직까지 호주,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는 광우병 청정 구역이라고 하며 동양인은 동종접합 유전자를 지닌 인구가 상대적으로 많다고도 하니 조심해서 나쁠건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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