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가 잠든 집 -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재인 |
하리마 테크의 후계자 가즈마사는 바람을 피워 아내 가오루코와 별거 중으로 이혼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딸 미즈호가 뇌사에 빠진 후 미즈호의 생명을 유지시키기 위해 이혼을 보류하고 금전적, 기술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도움의 핵심은 하리마 테크의 기술자 호시노가 개발한 척수를 자극해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기술.
그러나 가오루코의 노력과는 별개로 주위 가족들은 미즈호를 살아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결국 미즈호의 동생 이쿠토의 초등학교 입학을 계기로 갈등은 폭발하게 되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신작으로 5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대장편. 뇌사 상태의 아이가 살아있느냐? 죽어있느냐? 에 대한 딜레마를 심도깊게 그리고 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딜레마를 그린 드라마에도 강점을 보이는 작가죠. 대표작 중 하나인 <<비밀>>도 딸로 환생한 아내는 딸인가? 아내인가? 라는 딜레마가 이야기의 핵심이었으니까요.
굉장히 긴 분량에도 불구하고 독자를 흡입시키는 솜씨는 여전히 일품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뇌사자의 상태에 대한 딜레마 이외에도 뇌사자를 기계로 움직이게 하는 행위에 대한 윤리적인 고민, 심장 이식이 필요한 아이 묘사를 통한 장기 이식에 대한 고민 등 다양하고 심각한 주제를 등장시킴에도 이를 재미있게 풀어나가는 능력은 작가 명성에 충분히 값하거든요.
하지만 <<비밀>>이 딜레마를 중심으로 깔끔한 전개와 결말을 보였다면 이 작품은 그에 미치지는 못합니다. 불필요한 내용이 너무 많아요. 대표적인건 가오루코를 둘러싼 여러가지 설정들입니다. 가즈마사와 가오루코가 이혼을 앞두고 있으며, 가오루코가 의사 에노키다와 불륜 직전까지 가는 연심을 품고 있고, 하리마 테크의 기술자 호시노가 그녀에게 반해서 보다 적극적으로 미즈호가 움직일 수 있도록 돕는다는 설정 모두가 불필요해요. 가오루코가 마성의 매력을 가진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복잡한 남자 관계를 끌고 들어오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솔직히 재미도 없고요.
또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툭툭 끊어져 들어오는 것도 문제입니다. 미즈호의 뇌사, 하리마 테크의 기술 도입, 그 와중에 심장 이식이 필요한 유키노라는 아이에 대한 묘사가 등장하다가 몇 년 후 갈등이 폭발하고, 또 몇 년 후 유키노를 놓아 준다는 이야기 모두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여기에 더해 특별한 악역이 없는 점도 지루함을 가중시키고요. 차라리 전남편 가즈마사가 회사를 위해 딸 아이를 회사 기술을 이용하여 인형처럼 움직이며 미소짓게 만들며 이익을 챙기지만 이를 보다못한 가오루코와 호시노가 힘을 합쳐 막다가 심장 이식이 필요한 유키노를 만난 후 미즈호를 놓아준다, 가오루코는 호시노와 결합한다는 식으로 풀어가는게 훨씬 나았을겁니다. 여러가지 설정에 대한 이유로도 그럴듯하고요.
덧붙이자면 결말도 너무 뻔해서 당황스러웠습니다. 어쨌건 미즈호를 붙잡고 살다가, 미즈호가 유령? 처럼 나타나 떠나 보낸다는 결말, 미즈호의 장기를 이식받아 건강해진 아이가 등장하는 에필로그가 그러해요. 뇌사에 대한 깊이있는 고민은 다 부질없고 결국 마음의 준비 문제였다는 이야기에 불과해서 실망스럽기도 했고요. 미즈호가 회사에 빠지게 된 사고의 진실 역시 딱히 중요한 내용은 아니라 실망스럽긴 마찬가지였습니다.
물론 작가 명성에 값하는 볼만한 장면이 없지는 않습니다. 우선 가오루코가 미즈호의 선생인 신쇼 후사코로 위장하여 심장 이식이 필요한 유키노를 돕기 위해 나서는 내용은 미스터리 스타일로 펼쳐져 독자에게 흥미를 불러 일으킵니다. 앞서 신쇼 후사코에 대해 수상쩍게 묘사하고, 뇌사자 장기 기증에 대해 심도깊게 이야기를 펼쳐 나가면서 신쇼 후사코에 대해서 의심을 품게 만드는 솜씨가 일품인 덕분이죠.
아울러 미즈호가 살아 있다!는 희망을 부여잡기 위해 뇌사 상태의 아이를 움직이고, 심지어 미소까지 짓게 만드는 과정이 이어지다가 이쿠토의 생일날 이미 미즈호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주위 사람들 반응에 격분한 가오루코가 미즈호에게 칼을 겨눈 뒤 경찰을 직접 불러 지금 미즈호의 심장을 칼로 찌르면 살인죄냐 아니냐를 묻는 장면은 아주 인상적입니다. 영화 버젼의 예고편에서도 이 과정과 장면을 핵심으로 소개할 정도로 뇌사자가 살아있느냐 아니냐를 극적으로 드러내는 좋은 장면이었어요.
그러나 이 정도로 좋은 작품이라고 하기는 여러모로 부족합니다. 전성기 작품에 비하면 군더더기가 너무 많은 탓으로 이렇게 길게 끌고 갈 이유는 없었습니다. 추리, 미스터리 장르와 거리가 멀다는 점도 감점 요소고요. 최소한 휴먼 미스터리라고 홍보는 하지 말았어야 합니다.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 '미스터리'를 원하는 분이시라면 구태여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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