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화의 용사 1 - 야마가타 이시오 지음, 김동욱 옮김, 미야기 그림/학산문화사(만화) |
마신을 쓰러뜨렸던 성자가 '마신은 돌아오지만 자신의 힘을 이어받은 여섯 용사가 나타나 마신을 다시 쓰러트릴 것'이라 예언했다. 여섯 용사의 증거인 몸 어딘가에 떠오르는 꽃잎 여섯 개의 문장때문에 그들은 '육화의 용사'라 불리게 되었다. 그 뒤 마신이 두 번 깨어나지만 예언대로 여섯 용사에 의해 다시 봉인되었다.
다시 마신의 깨어날 조짐이 있는 시기, 자칭 "지상 최강의 사나이" 아들렛은 육화의 용사로 선택받아 다른 용사들과 함께 마신의 근거지 마곡령으로 항했다. 그런데 그곳에 모인 용사는 일곱 명이었다. 가짜는 누구인가?
한국 최고의 미스터리 동호회 하우 미스터리의 이벤트에서 어떤 분이 추천하였기에 읽게 된 작품.
마신을 쓰러뜨리기 위해 용사들이 힘을 합친다는 전형적인 판타지 서사에서, 마신을 쓰러트리기 전 파티가 규합될 때 일어나는 일종의 해프닝에 집중한게 독특합니다. 정해진 숫자의 파티 인원을 초과한 상황 때문에 문제가 생기고, 위기가 닥친다는 설정은 "11인이 있다!"와 동일한데, 진상을 밝히는 과정이 추리적으로 보다 정교하게 짜여져 있다는 차이가 있고요.
그런데 라이트 노벨이라는 장르가 모두 이런가요? 저하고는 전혀 맞지 않더군요. 제가 읽기에는 너무 유치한 설정과 묘사가 많았습니다. "타임 리프"는 이렇게까지 유치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었는데 말이지요.
우선, 등장인물 설정부터 익숙해지기 어려웠습니다. 육화의 용사 모두가 만화 등에서 수없이 접해왔던 전형적인 인물들의 향연인 탓입니다. 여러 가지 도구를 이용하고 두뇌로 싸워나가는 허세남, 타고날 때부터 천재, 그 외 특별한 능력의 소유자들, 공주, 기사, 마족과의 혼혈아, 로리로리…… 죄다 어디선가 보아왔던 설정들입니다. 그나마 생동감있게 표현했더라면 조금 나았겠지만, 모두 평면적인데다가 묘사도 지루했습니다. 개중 별다른 능력 없이 근성과 노력, 장비와 잔재주로 버티는 아들렛만 약간 인상적이지만, 아들렛 역시 결국은 모든 면에서(심지어 트라우마까지도) 배트맨과 다를 바 없어 식상함을 이겨내지 못하더군요.
대사도 유치합니다. 예를 들어 믿음에 대해 프레미와 아들렛이 나누는 대화는 손발이 오그라들 지경이었어요.
게다가 등장인물들 이름은 모두 서양식인데, 지명이라던가 별호는 대부분 한자식인 것도 거슬렸습니다. 비유하자면 "무당파 장문인 톰 크루즈와 마교 교주 매튜 매커너히가 마신을 상대하기 위해 미들랜드 왕국의 고모령으로 향한다"와 같은 식이에요. 만화로 보았다면 그렇게 이상하지 않았을 것 같지만, 소설로만 읽으니 그냥 웃기기만 했습니다.
그래도 육화의 용사들이 갇히게 된 결계의 비밀을 다루는 트릭 하나만큼은 괜찮기는 합니다. 아들렛이 결계를 동작시키는 밀실에 처음 들어가게 되어 가짜로 몰리게 된 사건 해결을 위한 밀실 트릭이지요. "결계를 동작시키는 방법으로 알려진 초반의 증언이 사실은 가짜였고, 진짜 결계 동작은 다른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결계가 동작된 것으로 오인하게 만든 안개를 대량으로 갑자기 발생시킨 것이다"라는, 과학과 마법을 잘 조화시켰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판타지라는 장르에 잘 어울리는 트릭이라 생각되네요. 독자에게 마곡령 근처의 기온이라던가 "태양의 성자"에 대해 알려주는 등 공정하게 정보를 제공해 준다는 점도 좋았고요. 추리 동호인의 추천을 받을 만 했어요.
허나 트릭 외의 추리적인 부분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먼저, 이렇게 복잡하게 작전을 꾸미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부족합니다. 결계에 가두지 않았더라도 문제가 발생했을테고 최소한 프레미를 없애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 용사가 죽으면 육화 문장의 꽃잎이 떨어진다는 설정으로 가짜로 몰아 죽이는 것도 결국 한계가 있으리라는 점 등이 설명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셰타니아가 아들렛이 무죄라고 믿는 과정 역시 마찬가지에요. 가짜, 즉 일곱 번째가 나셰타니아였다면 처음부터 가짜로 몰아 죽이면 되지 이런 불필요한 과정이 왜 필요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울러 추리적인 모든 요소는 결계에 대한 것, 즉 밀실 트릭을 푸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을 뿐 범인이 누구인지를 알려주지도 못하고, 범인의 정체가 너무나 뜬금없어 설득력을 전혀 가지지 못한다는 단점 역시 큽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판타지 추리 소설로는 다아시경 시리즈, 그리고 "부러진 용골"과 같은 작품과 차마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작품입니다. 감히 비교한다면 "장미빛 인생"조차도 '소설'로는 더 낫지 싶군요. 괜찮았던 트릭을 잘 살린 추리물로 접근하였더라면 훨씬 좋은 점수를 주었을 텐데, 아쉽게도 제 취향은 전혀 아니었어요. 다음 권을 더 읽게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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