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집행인의 딸 - 올리퍼 푀치 지음, 김승욱 옮김/문예출판사 |
18세기 독일을 무대로 사형집행인이 마녀로 위심받아 화형당할 위기인 산파 마르타의 생명을 구하고 그녀가 죽인것으로 의심되는 고아들 사망원인과 아이들 어깨에 있는 기이한 문양의 정체, 그리고 나병진료소를 파괴한 범인이 누구인지를 밝힌다는 내용.
디테일한 시대 묘사, 독특한 직업의 탐정이 등장하는 전형적인 역사추리소설. 역사추리소설은 사실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장르입니다. 추리, 역사에 관련된 소재를 모두 좋아하며 그냥 독서가 아니라 뭔가 배우는 느낌이 드는 것도 마음에 들기 때문이죠.
이러한 현학적인 재미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당시 시대상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가 필수인데 이 작품은 기대에 충분히 값합니다. 사형집행인 야콥 퀴슬 및 조력자인 젊은 의사 지몬 프론비저 등 등장인물들은 물론 군인들, 짐마차꾼들과 같은 다양한 직업과 숀가우라는 도시 및 작품의 중요한 요소인 마녀 심문 (고문) 절차 등의 행정적 설정과 같은 모든 요소가 현실감있게 제대로 묘사되고 있거든요.
이 중 무엇보다도 돋보이는 것은 야콥 퀴슬입니다. 전직 군인으로 고문에도 능한 사람죽이는 명수가 실제로는 의사보다도 뛰어난 학식을 지닌 진짜배기 르네상스맨이라는 캐릭터인데 아주 독특하고 신선해요. 수많은 역사추리물을 읽어봤고 실존 유명인들을 비롯하여 다양한 직업 - 로마시대 포도주 상인, 로마 장군, 수도사, 18세기 영국의 해결사, 터키 환관, 중국 판관 등등등 - 의 탐정들을 봤지만 사형집행인은 처음 접해보는군요. 그것도 단지 직업의 기발함으로 승부하는게 아니라 디테일 역시 장난이 아니에요. 작가 올리퍼 푀치가 실제로 바바리아 주의 사형집행인 집안인 퀴슬가(家)의 후손이기에 가능했던 아이디어와 묘사라 생각됩니다. 덕분에 야콥 퀴슬이 지나치게 먼치킨으로 미화되었다는 단점도 있긴 합니다만...
그러나 다른 역사 추리소설과 동일한 단점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추리소설로는 부족하다는 것이죠. 복선이 정교하다거나 단서가 공정하게 제공되지 않고 괜찮은 트릭이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특정 단계를 클리어하면 다음 단계로 진입하는 식의 전개가 대부분이에요. 비교적 초반부터 진짜 범인인 군인들이 드러나는 등 수수께끼 풀이라고 할것도 별로 없고요. 작위적이고 우연에 의지한 전개도 비교적 많으며 악마가 고아들의 은신처를 때맞춰 발견한 경위나 흑막의 정체 등 설득력이 부족한 부분도 눈에 뜨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마녀의 표식이라는 것이 아이들끼리의 장난이었다는 것이죠. 가장 중요한 단서가 애들 장난이라니!
또 야콥 퀴슬이 중요한 정보를 항상 한박자 늦게 알아챈다는 전개도 너무 반복되어 식상하며 결말부에서 법원서기가 모든걸 알고있었다!고 밝히는 장면은 정말로 불필요해 보였습니다. 덕분에 마르타를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 동기가 죄다 사라져버렸으니까요. 흑막을 알고 있었다면 깔끔하게 사건을 정리하는건 일도 아니었을텐데 사건을 키운 이유가 전혀 설명되지 않잖아요? 한명 죽인다고 나병진료소나 군인들이 사라져버리는 것도 아니고 파괴와 살인이 계속되면 수습이 더욱 어려워질 것은 당연할텐데 말이죠. 이런 점은 작가가 전형적이고 쉽게 쓴 탓으로 보이는데 데뷰작이기 때문이겠죠.
아울러 매력적인 야콥 퀴슬 외의 다른 캐릭터들이 주인공만큼의 존재감이 없다는 것도 단점입니다. 젊은 의사 지몬은 처음에는 힘의 야콥 - 지혜의 지몬으로 역할이 분배되나 싶었는데 내용에서는 야콥이 훨씬 뛰어난 학식을 갖춘 것으로 묘사되기에 별 쓸모가 없습니다. 위기와 문제만 일으키는 민폐 캐릭터로 그나마 활약이라면 은신처에서 클라라와 조피를 구해낸 정도밖에 없어요. 제목이기도 한 사형집행인의 딸 막달레나 역시 지몬과 야콥을 엮어주기 위한 매개체에 불과하고요. 미인에다가 나름 여러가지 능력을 갖춘 것으로 소개되기는 하지만 정작 사건에 있어서는 후반부에서 군인들에게 납치당하는 식으로 민폐 역할에만 소비될 뿐인데 제목이 왜 <사형집행인의 딸>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냥 <사형집행인>이거나 <사형집행인과 사윗감>이라면 모를까.
그래도 기본적인 재미 하나만큼은 확실해서 흥미롭고 쑥쑥 읽히는 것은 분명해요. 앞서 이야기한 독특함은 물론 마녀사냥이라는 당대의 소재를 잘 녹여낸 줄거리는 매력적이고 산파를 고문해서 자백을 받아내야 하는 시간제한이 존재하여 긴박함을 더하는 전개도 괜찮았고요.
어떻게 보면 역사추리물이 아니라 역사모험물이라고 하는게 더 어울리겠다 싶더군요. 악인은 모두 응분의 벌을 받고 주인공 일행은 모두 상응하는 보답을 받는다는 완벽한 권선징악 서사를 갖추고 있기 때문인데 사람이 많이 죽어나가고 적나라한 고문과 처형 묘사만 조금 순화한다면 어린이용 모험소설이 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결론내리자면, 추리물로는 부족하지만 독특한 역사모험물로는 읽을만한 가치가 충분한 작품으로 별점은 3점. 알렉산드르 뒤마나 쥘 베르느의 역사모험물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결론내리자면, 추리물로는 부족하지만 독특한 역사모험물로는 읽을만한 가치가 충분한 작품으로 별점은 3점. 알렉산드르 뒤마나 쥘 베르느의 역사모험물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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