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 탐정 미스터 야심 - 제이슨 굿윈 지음, 한은경 옮김/비채 |
술탄 마흐무트 2세 치하의 19세기 중반 이스탄불.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영광이 서서히 저물던 시기의 그곳에서 제국의 근대적 군대 신위병 장교 4명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군대 총사령관 세라스케르는 환관 야심을 불러 이 사건에 대한 수사를 의뢰하고, 야심은 이외에도 궁정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한 수사도 맡는 등 쉴틈없는 나날을 보내게 된다. 그 뒤 곧바로 신위병 장교 4명은 한명씩 살해되어 발견되고, 수사를 진행하던 야심은 이 사건의 배후에 10년전 신위병이 끝장낸 구제국의 유물과 같은 전투기계집단 "예니체리"가 관계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리고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서서히 사건의 흑막, 본질에 접근하게 되는데....
19세기 초-중반의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을 무대로 하여 환관 탐정이 활약하는 팩션이라는 책 소개를 믿고 구입한 책입니다. 제가 추리 소설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역사물도 좋아해서 그런지 역사 추리물은 항상 기본은 해 주는 것 같거든요. 실제로도 그랬었고요.
일단 이 책의 장점부터 이야기하자면, 제일 먼저 19세기 초-중반의 이스탄불의 세밀한 묘사를 들 수 있겠습니다. 이 책 한권만 읽어도 당시 이스탄불 거리의 정경이 손에 잡힐 듯 느껴질 정도로 상세한 것이 정말이지 놀라운 수준이거든요. 당시의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정치적 상황 등의 세계 정세는 물론, 술탄과 귀족들, 거리나 지명과 같은 단순한 정보 이외에도 요리나 다양한 직업군에 대한 설명이 곁들여 지는 등 그 깊이가 정말 대단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작가가 원래 오스만 제국에 대한 역사 연구를 계속해 온 학자출신인 덕분으로, 작가의 애정이 곳곳에서 느껴질만큼 제국에 대한 묘사가 너무나 매력적이기도 하고 말이죠.
그리고 그동안 추리 소설 역사에 없었던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환관탐정" 야심의 캐릭터 역시 독특한 맛이 넘쳐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성실하고 똑똑하며 요리 역시 뛰어나지만 환관이라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딜레마를 안고 살아가는 환관탐정이라... 멋지지 않나요? 그리고 덧붙이자면 그의 화끈한 친구인 망한 나라 폴란드의 전권대사 팔레브스키 역시 멋진 캐릭터였습니다. 이 친구가 주인공인 스핀오프격의 외전이 나와도 재미있겠더라고요.
마지막으로는 이 책을 읽음으로 해서 잘 몰랐던 오스만투르크 제국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알게 되었다는 것이 굉장히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황제의 모후 발리데 술탄이라는 인물 같은 경우겠죠. 프랑스 출신의 미녀로 노예시장을 거쳐 술탄을 낳아 결국 황태후의 자리에 이르르게 된 나폴레옹의 황후 조세핀의 친구이기도 한 여인이라니.. 이 여자 이야기만으로도 소설이 한권이겠어요! 그 외에도 번역도 깔끔한 편이라 쉽게 쉽게 읽을 수 있기도 했고 책 뒤의 "예니체리" 부대에 대한 자세한 해설 등 책 만듬새도 좋아서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 소설이라는 측면 이외의 "추리" 소설이라는 점에서는 낙제점에 가깝습니다. 술탄의 근대적 개혁 칙령 발표 직전에 벌어지는 연쇄살인 사건에 대한 조사를 중심으로 술탄의 모후인 발리데의 보석 도난 사건, 그리고 하렘에서 일어난 궁녀 교살 사건이라는 곁가지 사건이 벌어져서 사건 자체는 풍성하지만 이 모든 사건이 연관되어 있지도 않을 뿐더러 야심의 추리에 의해 해결되는 것 역시 하나도 없습니다. 야심은 충실한 수사관이긴 하지만 그가 수집하여 독자와 공유하는 정보는 대부분 쓰잘데 없는 것들이고 중요한 정보들은 너무나 작위적이기 때문이죠.
게다가 모든 사건의 흑막인 마지막 반전 부분은 황당하기 그지 없습니다. 이대로라면 범인이자 흑막은 사건 자체를 일으키면 안되는 상황이거든요. 은밀하고 조용하게 거사를 진행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공포를 조성하기 위해" 어처구니 사건을 벌인다니.... 설득력이 떨어져도 너무 떨어져요. 그리고 거사가 실패하는 결말 역시 별로 깔끔하지 못했습니다.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흑막자체가 너무나 어설펐다!" 라고나 할까요.... 아울러 실제 역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픽션인 "팩션"으로 읽히기에는 당대 오스만투르크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거의 없어서 실제 역사와 실제 인물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세계의 판타지로밖에 보이지 않았다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약점이겠죠.
결론적으로 이 작품을 요약하자면, 전에 읽었던 "알렉산드로스의 음모" 과 유사한, 역사추리물이라기 보다는 역사물, 아니 "역사 모험물"에 더 가까운 작품이었습니다. 야심부터가 이 작품에서 3번이나 죽을 뻔하고 스스로도 격투로 사람을 잡고, 죽이고, 죽어가는 사람을 지켜보는 등 많은 모험이 담겨 있는데 차라리 "역사모험물"이라고 하는게 더 좋았을 뻔 했어요. 그랬더라면 저 자신도 추리적인 부분은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아서 더 재미있었을 것 같은데 아쉽네요.
그래도 지루한 역사물로 끝나지 않고 많은 모험과 더불어 추리적 요소가 담겨있기에 당대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매력을 아주아주 재미있게 독자에게 전달해 준다는 점에서 별점은 3점 주겠습니다. 저도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이국적인 매력에 푹 빠질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추리 매니아로서는 실망한 점이 분명 있기 때문에 시리즈 작품을 더 볼지 말지는 심각하게 고민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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