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목 - 조르주 심농 지음, 최애리 옮김/열린책들 |
사형수 외르탱은 사형 직전에 누군가의 도움으로 탈옥에 성공했다. 사실 탈옥은 메그레 경감이 외르탱이 진범이 아님을 직감하고 진범을 알아내고자 벌인 의도적인 작전이었다. 이후 외르탱이 체코인 라데크를 만나려고 시도한다는걸 알아챈 메그레는 라데크를 집중 추궁했다. 하지만 라데크의 혐의를 입증하지는 못하고, 외려 외르탱의 자살 시도 등으로 궁지에 몰린다…
조르주 심농의 메그레 시리즈아홉 번째 작품입니다. 5, 6, 7, 8번째 작품을 건너뛰고 선택하여 읽게 되었는데, 오래전 "황색견"과 함께 국내 소개되었던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라 대표작이겠거니 싶어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의 가장 독특한 점은 인간의 마음을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증오심으로 똘똘 뭉친 사나이 라데크라는 일종의 소시오패스 악당이 중심인물로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유별난 재능은 사람의 약점을 파악하여 뜻대로 조종하는 능력이라고 묘사되는데, 당대 유행하던 "팡토마스"의 영향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타인의 목숨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악당이라는 점에서도요. 노파 하나의 생명을 빼앗아 개인적 욕망을 충족시키려 한다는건 "죄와 벌"과도 비슷한데, 라데크는 구원 따위는 믿지 않는 내추럴 본 악당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그 외에도 막장 드라마를 보는 듯한 캐릭터 크로스비도 꽤 인상적이었어요.
그래도 범죄를 단순한 욕망의 충족이 아닌, 세상에 대한 증오심을 표출하기 위해 저지른다는 점과 결국 권선징악으로 마무리된다는 점에서는 최소한의 윤리적 가이드라인이 존재한다는 느낌입니다.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유감스럽게도 볼 만한 부분이 거의 없습니다. 정교한 맛도 없고 전개도 뜬금없는 탓입니다. 메그레가 자신의 목을 걸고 외르탱 탈옥 작전을 벌인 이유부터가 석연치 않습니다. 외르탱이 라데크와의 접촉을 시도해서 라데크를 주목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은 사실입니다만, 이후의 수사는 지지부진하기 그지없거든요. 라데크가 무전 취식 후 경찰과 함께 나가는 전략으로 외르탱과의 접촉을 무효화시키는걸 메그레가 막지 않는게 대표적입니다. 수고를 덜 수 있었는데 가만히 지켜본 이유가 무엇인지 전혀 알 수가 없어요. 이건 "생폴레옹에 지다"에서 메그레가 다른빈유를 방관하여 자살하게 만들었던 것과 유사한데, 과거의 실수에서 뭔가 배운게 없는걸까요?
또한, 메그레가 진범이 따로 있다는 것을 의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인 ‘외르탱이 짧은 시간 안에 귀가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한 해답이 단순히 택시를 탔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허술합니다. 수사가 부실했다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으니까요.
마지막으로 라데크가 계속 자신이 범인임을 드러내는 듯한 허세를 부리지 않았더라면 사건이 과연 쉽게 해결되었을지도 의문입니다. 라데크가 최후의 순간에 메그레에게 총을 쏘는 우발적 행동 역시 큰 약점이고요. 이 장면 때문에 그나마 있던 천재 범죄자와의 두뇌 대결 분위기가 무너져 버리고 말기 때문입니다. 라데크가 무계획에 즉흥적인 어린아이에 불과하다는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버리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이 장면은 L의 죽음 이후 급속도로 힘이 빠진 "데스노트"를 떠오르게 했습니다. 최후의 순간에 찌질한 모습을 보여줘 실망을 안겨준 야가미 라이토와 다를게 없다는 점에서요.
이렇게 좋은 추리소설로 보기는 여러모로 어렵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물론 멋드러진 제목만큼이나 문학적인 향취는 짙고, 외르탱의 탈옥을 지켜보는 메그레에 대한 묘사는 정말 대단한 등 심농이라는 작가의 필력은 유감없이 느껴지기는 합니다. 차라리 "죄와 벌"처럼 라데크의 심리를 더욱 디테일하게 파고들었더라면 더 나았을텐데 조금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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