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 대기근 - 멍레이 외 엮음, 고상희 옮김/글항아리 |
1942년 후난성에서 발생했던, 무려 300만 명의 사망자를 낳은 대기근을 설명하는 미시사 서적입니다. 수집 가능한 거의 모든 자료와 생존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하여, 전쟁이나 재해에서 고통받는 것은 평범한 민중들일 뿐이라는 진리를 새삼 느끼게 해 줍니다. 아울러 이러한 재앙이 왜 일어났는지와 대기근의 와중에 위대함을 보여준 사람들이 누구인지도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책 홍보문구 및 내용에서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참혹했던 실상의 설명이 압권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땅이 갖고 싶어 곡식을 팔아 땅을 샀지만, 먹을 게 없어 농사 한 번 지어보지 못하고 땅도 팔고 아들도 굶어죽고 아내마저 미쳐버렸다는 리다차이의 이야기,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물건들을 들고 나와 100위안을 외치며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는 골동품 시장의 노부부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이 정도는 그나마 인간성이 유지되는 수준인데, 이후 기근이 격심해진 뒤에는 상식의 범위를 벗어날 정도로 충격적인 이야기가 많아서 잘 와닿지 않더군요. 아내를, 자식을 팔고 심지어 삶아먹기까지 했다니까요. 목숨을 건 탈출에 대한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처절함은 정말이지 "바다 한가운데서"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생존 본능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들고요.
또 당시 대기근을 취재했던 타임즈 기자의 사진도 좋았습니다. 아주 잔인한 사진은 뺀 듯하지만, 당시의 분위기를 전해주기에 충분한 수준이었습니다. 저자가 자료를 찾아 다니고 생존자들의 인터뷰를 따는 과정을 삽입한 르포르타주 형식의 구성도 효과적입니다. 중국적인 디테일도 인상적인데, 대기근의 참상을 말할 때 인터뷰어들이 "대가 끊긴 집안이 많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대기근은 인재였다는 설명도 놓칠 수 없는 부분입니다. 대기근의 이유를 크게 세 가지 — 극심한 가뭄, 메뚜기떼의 창궐, 군대의 수탈 — 로 들고 있거든요. 가뭄이야 어쩔 수 없었다 치더라도, 메뚜기떼의 창궐은 일본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 화위안커우 제방을 터뜨려 생태계가 교란되었기 때문이며, 군대의 수탈은 지금까지도 허난 지역에서는 4대 재해로 꼽는 게 '수해, 가뭄, 메뚜기 재해, 탕언보'라고 할 정도로 극심했다니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당시 허난성을 수탈한 탕언보의 부대).
참사를 막기 위한 구호 활동이라도 서둘렀다면 피해자를 줄일 수 있었겠지만, 후난성 전체가 일본군 손에 들어갈 수 있었기에 장제스가 의도적으로 수탈에 전념하고 구호 활동을 소홀히 한 것이라는 설명도 책에서는 여러 자료를 통해 밝히고 있습니다. 남에게 빼앗길 거라면 나라도 싹 털어버려야겠다는 그런 생각인데 정말 너무한 일이죠. 청나라 후기의 혼란기에서도, 기근 때 정부의 노력으로 피해가 최소화된 적이 있었다는 설명이 등장하니, 이래서야 뭘 위해 정권을 잡고 전쟁을 한 건지 알 수가 없어집니다.
당시 유력 신문 "대공보"의 기자 장가오펑의 기사와 사장 왕윈성의 사설, "타임즈" 기자 시어도어 화이트의 기사 등으로 참상이 널리 알려져 구호가 시작되었고, 그 외에도 몇몇 인물들의 영웅적인 행동이 뒷받침되었다는 점 정도만이 위안거리입니다. 이후 탕언보 부대는 일본군이 허난 성에 대한 전면공격을 감행한 1944년에 민중의 공격으로 패주하였으나, 탕언보는 건재했고 기근의 원흉인 군벌과 정치가들에게 제대로 된 철퇴가 내려지지 않았다는 결말은 씁쓸한 뒷 맛을 남기네요.
그러고 보니 세월호 사건과 참으로 많은 것이 겹쳐 보이기도 합니다. 관계기관의 무능함이 겹쳐져 발생한 인재라는 점과 빠른 구호 활동이 이루어지지 않아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졌다는 점이 그러합니다. 관계자에 대한 처벌은 현재진행형이니 지켜봐야 할 테지만요.
여튼 생각할 거리도 많고 놀라움을 안겨주는 책임에는 분명합니다. 딱 한 가지, 지도가 몇 개 실려 있기는 하나 전체를 개괄할 수 있는 형태로 삽입되어 있지 않다는 점은 아쉽지만, 큰 단점은 아닙니다. 출판사 글항아리에서 발간하는 '걸작 논픽션' 시리즈에 포함된 것이 납득되는 수준으로 별점은 3.5점입니다. (역시나 같은 시리즈인 "자백의 대가"도 마찬가지지만) 미시사를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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