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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2

자백의 대가 - 티에리 크루벨리에 / 전혜영 : 별점 2.5점

자백의 대가 - 6점
티에리 크루벨리에 지음, 전혜영 옮김/글항아리


캄보디아 크메르 루즈 폴 포트 정권에서 S-21 교도소의 소장으로 일하며 이른바 "킬링 필드"에서의 처형으로 1만 2천명이 넘는 사람을 죽이는데 일조했던, 두크라 불리운 남자의 국제 재판을 그린 논픽션.

이 책이 알리고자 하는 것은 명확합니다. 두크가 저지른 범죄가 과연 필연적인 것이었냐는 것이죠. 책에서 두크를 비롯한 전범들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혁명을 위해 명령에 절대 복종하여 열심히 일한 것 뿐이며 피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케 하리라는 논리인데 일제 강점기 때 친일을 한 것이 불가항력이었을지? 독재정권 시절 독재에 순응하고 살았던 것이 불가항력이었을지? 같이 격동의 근현대사를 살아간 우리에게도 시사해주는 점이 많은 주제라 생각됩니다.
이러한 주제를 드러내는데 있어서 두크의 주장 뿐만이 아니라 그와 대척점에 있는 생존자들과 사망한 피해자 가족들의 생생한 증언 및 인터뷰를 500여페이지나 되는 방대한 분량에 걸맞게 상세하게 제공해주어 독자로 하여금 재판에 동참하고 함께 생각하게 만드는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워낙에 방대한 분량이라 요약하기는 쉽지 않지만 정리해보면 두크가 자신의 범죄에 대해 불가항력임을 주장하고 또한 고문에 있어서는 자신은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우기는 부분이 전반부, 그가 교도소 책임자로 있으면서 유일하게 마음을 열고 심지어 구해주기까지 한 프랑스인 프랑수아 비조의 등장 및 크메르 루즈의 지도자들이 어떻게 되었으며 프놈펜이 다시 함락된 이후 두크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그리는 부분이 중반부. 그리고 재판에서 거의 유일하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던, 정말로 죄가 없는게 확실했지만 죽였야만 했던 풍 떤 교수의 가족들의 등장 후 재판의 결말이 그려지는 후반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두크라는 인물의 천재적인 면모, 과거 약 30여년 전 기록했던 자백서, 자신이 심문했던 인물들에 대해 기억해내는 엄청난 기억력은 물론 자백의 대가로서 재판에서 보여준 능수능란한 처세가 드러나는 식입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놀라운 사실은 두크는 "밀그램의 복종 실험"처럼 권위에 대한 복종때문이 아니라 본인의 이상을 위해 처음에는 자발적으로, 나중에는 기계적으로 동참하는 특이함을 보여주며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 예상했음에도!) 그가 S-21 교도소장으로 있던 기간을 제외하면 학교 선생과 목회자 등으로 주변 사람 모두에게 호감을 주고 성실한 인물로 살아왔다는 점입니다. 재판을 다룬 서적이 아니라 심리학 서적에서 다루어야 하는 인물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기묘하고 특이한 인물이더군요.

그러나 실제 "자백의 대가"에 대해 알기에는 딱히 좋은 구성은 아닙니다. 두크를 자백, 고문 전문가인 개인으로 보는 시각이 아니라 크메르 루즈라는 거대 조직의 일원으로 보는 시각인 탓에 두크의 고문과 같은 과거 행위는 그다지 설명되지 않고 이러한 범죄를 왜 저질렀는지에 대한 인과관계에 대해서 집요하게 파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크메르 루즈가 무엇이며 그들이 무엇을 원했는지, 그리고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많이 알게 되었지만 제가 기대했던 부분과는 많이 달랐어요.
또한 재판에 대한 논픽션으로도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법정극적인 재미는 많이 부족한 탓입니다. 이유는 두크가 지은 죄가 명확한 탓에 빠져나갈 부분이 거의 없어보였기 때문이죠. 일관되게 고문을 실제로 하지는 않았다는 등 주요 범행에 대해서는 부인하고 있지만 직접 작성한 방대한 서류가 남아 있으니 뭐.. 마지막에 벌어지는 프랑수아 루 변호사의 변론도 공허한 시간낭비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울러 앞부분에 묘사했던 자백의 대가로 사람들에 대해 판단하고 조종하는 모습도 거의 묘사되지 않아서 실망스러웠고요. 한마디로 "재미" 측면에서는 별로였습니다.

그래도 단지 재미만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책임에도 분명합니다. 앞서 말했듯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허투루 보아 넘기기 어렵기도 하고요. 우리의 격동의 근현대사와 닮아있는 묵직한 주제에 더해 두크 개인의 삶이 고문기술자 이근안 경감의 모습이 겹쳐지기 때문이에요. 말년에 기독교에 투신한 것까지 똑같더군요. 이 부분에서 항상 저도 궁금했던, "개종은 단지 신에게 죄를 용서받는 은총을 얻기 위해서이다. 과연 그렇게 빨리 사람이 회심하는 것이 가능한가?" 라는 질문도 던져지는데 등장하는 목사는 두루뭉실 어물쩡 넘어가더군요. 그러나 결국 이 책을 통해서 전해주는 답은 두크는 믿음없이는 살 수 없는 인물로 처음에는 공산당이 그 대상이었지만 그 대상을 종교로 바꾼 것 뿐이라고 결론내립니다. 단지 소속 그룹만 바꾸었다는 것? 이건 이기적일 뿐 아니라 가증스럽기 그지없는 행동이죠. 결국 종교를 믿는 것까지 순수하게 자신을 위한 행동이니 말입니다. 덧붙이자면 구 공산당의 간부들이 현재 캄보디아 정권의 핵심 요직에 앉아서 떵떵거리며 산다는 후일담 역시 씁쓸할 뿐이고요.
그 외에도 중간에 그려지는 크메르 루즈의 집단 학살이 관광산업이 되는 슬프고도 황당한 현실도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줍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재미 측면에서는 부족함이 있고 "자백의 대가"에 대한 내용 보다는 그 외의 내용이 더욱 많기에 모든 분들께 권해드리기는 어렵지만 캄보디아와 크메르 루즈에 대해 관심이 많거나 이 당시 벌어진 학살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이라면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개인적인 명대사. "어차피 죽일거면 대체 왜 고문을 한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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