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귀신 - 최기숙 지음/문학동네 |
우리의 전래 이야기 중 귀신에 촛점을 맞추어 이야기 속의 숨겨진 의미를 현대적으로 해석해낸 역사-문화서. 제목에서 연상되듯 여자, 처녀귀신 이야기가 많습니다. 저자도 여성이고 조선시대는 여성이 아무래도 사회적 약자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겠죠.
구성은 <한국의 학교괴담>과 비슷하게 당대 전래되던 이야기를 소개하고 저자의 해석을 자세하게 덧붙이는 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와는 다르게 내용도 (학술서치고는) 비교적 쉽게 쓰여져 있을 뿐더러 생각도 못했던 파격적인 해석이 몇가지 등장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여성에게 혼례란 성인식과 동일시 된 것으로 처녀귀신은 미처 성인의 세계로 진입하지 못한 실패자의 표상이라는 해석, 여자귀신은 억울하게 현실에서 쫓겨난 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일이라는 해석 등은 아주 새로왔거든요. 장화홍련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 죽어버린 사또들은 자기만 아는 비겁한 소인배였다는 뜻이겠죠?
귀신들이 관리나 전도유망한 청년을 찾아가 하소연하는 합법적 절차를 존중한 이유 역시도 참신했습니다. 시공을 초월한 존재가 뭐가 부족해서 스스로 복수하지 않았느냐는 것인데 사대부 남성이 즐겨 읽던 야담 속 이야기가 많기 때문에 관리의 능력을 부각시킨 것이라고 하네요.
또 전래 이야기의 재해석도 소개되는데 인삼장수 최가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건장한 사내귀신이 수절하던 최가 어머니를 찾아와 겁탈하고 그 후 귀신이 올때마다 재물을 가져와 부자가 되었다. 어느날 여자가 귀신에게 세상에서 제일 두려운게 뭐냐고 물었고 노란색이라고 답하자 집안을 온통 노랗게 칠하고 귀신을 쫓았다"라는 내용인데 청상과부가 부자가 되자 이를 기이하게 여긴 사람들이 만들어낸 소문이라는 해석이죠. 과부가 부자가 되었으니 사내와 성관계를 맺은 대가로 재물을 얻은게 분명하고, 부자가 된 후 여자는 더 이상 필요가 없어서 남자의 약점을 캐서 관계를 정리한 뒤 남자를 매몰차게 거절했을 것이다라는 의미가 담겨있다는 것인데 정말 그럴듯해요!
뒷부분에서 자살자를 다루면서 귀신보다는 자살에 이르게 된 당시 사회상 해석에 치중하여 제목 및 앞부분 내용과 살짝 거리감이 생긴 것은 약간 아쉽지만 별점은 3점입니다. 독특하고 새로우며 재미도 있는 좋은 책이기 때문이에요. 170여 페이지 정도되는 짤막한 분량, 책의 장정과 디자인도 좋았고요. 가격도 괜찮은만큼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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