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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8

면세구역 - 이영수 (듀나) : 별점 2.5점

면세구역 - 6점 이영수(듀나) 지음/북스토리

얼마전 소개해드린 알라딘의 <끝내주는 책>을 통해 알게된 책. 소개된 책 중 읽지 않은 책이 태반이지만 그중 가장 눈길이 가기에 구해 읽게 되었습니다. 방대하고 깊이있는 리뷰로 존경해마지않는 게렉터블로그의 주인이시기도 한 SF 소설가 곽재식님의 소갯글이 너무나 멋졌기 때문이죠. 제가 읽은 책은 2000년 출간된 책의 개정판이라는데, 모두 15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듀나의 평론은 많이 읽어봤지만 소설은 처음이네요. (이전 <판타스틱>에서 단편을 하나 읽어보긴 했습니다만)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이유로는 몇몇 작품의 경우 드라마라는게 없다시피 하기 때문이에요. 등장인물들은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설정이나 소재에 휩쓸리거나, 적응하거나 할 뿐 본인 스스로 맞서 싸우거나 극복하려는 시도, 노력이 전혀 등장하지 않거든요.
또 몇몇 작품은 재미는 있지만 단편으로는 어울리지 않기도 합니다. <펜타곤 계획>이 대표적인데 보다 상세하게 설정과 배경을 설명하려는 노력이 필요했다 생각됩니다. 작가 스스로 제시한 떡밥도 제대로 회수하지 못하고 등장인물들의 행동도 설득력을 보이기 어렵더라고요.

물론 아이디어, 발상 자체는 확실히 대단하긴 하더군요. 10년도 더 전에 발표된 작품들임에도 현 시점에 딱히 낡았다, 뻔하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아이디어를 하나의 작품으로 풀어나가는 힘이 부족한게 아쉬운데, 작가적인 실력이 성숙해진 최신작을 찾아 읽어봐야겠습니다. 되도록 장편으로 말이죠. 혹 추천작 있으시다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작품별 간단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참고로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면세구역>
사고로 죽은 동생이 찍은 몇장의 사진에는 서울임에는 분명하지만 어디로도 들어갈 수 없는 골목이 찍혀 있었다. 그곳은 어디일까?
앞서 말씀드린 "드라마라는게 없다시피하다" 의 대표적인 예이기도 한 작품. 일단 죽은 동생의 사진 속에 남겨진 비밀의 공간을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모습까지는 상당히 재미있어요. 면세구역이라는 아이디어도 좋고요. 그런데 찾아낸 다음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그런 곳이 있다고 적응하고 끝이에요. 이래서야 한편의 이야기라고 보기는 어렵죠. 별점은 2점입니다.

<스핑크스 아래서>
인터넷으로 장난삼아 <스핑크스 아래서>라는 가상의 영화를 등록하는데, 실제로 그런 영화가 존재했다는 식으로 흘러가는 이야기. 역시나 중간까지는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인터넷 루머가 어떻게 확대재생산되는지에 대한 재미있는 은유로 보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결말은? 실제로 영화가 존재했건 아니건간에 그건 별로 중요한지 않더라... 는 것입니다. 인간 역사 운운하면서 짤막하게 설명하긴 하는데 솔직히 이해하기 어렵더군요. 올리비아 에번즈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는 좀 궁금하지만 또 그런걸 설명하기에는 턱없이 짤막한 결말이었어요. 때문에 별점은 2점입니다.

<나비전쟁>
모든 사물의 인과관계를 꿰뚫고, 심지어 조작할 수 있는 초능력자가 등장하는 이야기.
이 단편집 속에서 몇 안되는, 주인공이 적극적인 투쟁을 벌이는 작품입니다. 그런데 설정 하나만큼은 정말 최고였어요. 바닥에 물을 뿌리는 것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식의 인과관계를 조작하는 내용이 그럴듯하게 펼쳐지거든요. 적도 악당이라기보다는 많은 사람을 희생시키더라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드려는 사람으로 그려지는 등 캐릭터도 그럴듯하고요. <와치맨>의 오지맨디아스가 떠오르기도 하네요.
딸에게 남긴 편지 형태로 구성되었으며 설정에 비하면 턱없이 짧은, 누군가 구술한 전설의 요약본같은 느낌이 아쉽기는 하지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사라지는 사람들>
사람들이 사람들을 서로 인식할 수 없게되는 설정의 작품. 그런데 주인공의 수동적인 모습이라던가, 그래서 어쩌라고? 식의 결말이라는 단점을 그대로 갖추었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낡은 꿈의 잔해들>
누군가의 간절한 소망이 구체화되어 인격체가 되었다는 작품.
일종의 도플갱어물입니다. 어떤 영화의 예고편을 보고 떠올렸다는 창작 배경은 독특했고, 누군가를 닮았다고 생각한 내가 허구이며 그 누군가가 진짜 나였다는 진상만큼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너무 일직선으로 드러내어 반전의 맛이 없다는 것은 단점이네요. 그냥 조금 조사해서 진상을 알아내었다.. 이게 전부거든요. 단편의 한계일 수는 있지만 보다 깊있는 묘사를 통해 결말의 충격을 극대화할 수 있었을텐데 아쉽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오발행동>
무언가 지구로 다가오고, 그 무언가에 의해 지구인들 모두가 성적 흥분에 가까운, 일종의 트랜스 상태에 빠지게 되어 신을 영접하기를 기다린다는 내용.
예전 휴거 사태에서 모티브를 얻은 듯 한데, 지구로 다가온 그 무언가가 지구와 짝짓기를 원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 생물이었다는 결말이 아주 괜찮았습니다. 주인공들이 부르던 노래가 흰긴수염고래의 구애가와 비슷한 것이었다는 것도 좋았고요.
허나 역시나... 주인공이 아무것도 하는 것 없이 수동적인 관찰자에 불과하다는 단점은 여전합니다. 단편집 전체적으로 이 작품과 같이 1인칭 시점의 작품이 많은데 구태여 1인칭으로 쓸 필요가 있었을지도 의문이에요. 특히나 이 작품만큼은 다양한 인간군상을 3인칭 시점으로 바라보는게 훨씬 좋았을 것 같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타인의 눈>
태어날 때 부터 장님이었던 손녀가 시공간을 초월하여 에드 버크먼이라는 남자와 연결되어 그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는 독특한 SF.
이 작품의 가장 큰 단점은 화자가 이 손녀의 할아버지라는 것입니다. 에드 버크먼에게 일어난 변화, 그리고 그가 정아와 연결된 후 어떻게 변화되었고 어떻게 죽어갔는지가 이야기의 핵심인데 이 모든 것을 제 3자 입장에서 그냥 듣고 전달할 뿐이거든요. 에드 버크먼 시점으로 교차 편집하던가 후반부를 다시 썼더라면 훨씬 좋았을거에요. 솔직히 미완성이 아닌가 싶기까지 하더군요. 솔직히 설정도 그저그랬고 말이죠. 별점은 1.5점입니다.

<펜타곤 계획>
모종의 사고에서 살아남은 5인. 그들은 육체를 잃고 뇌사에 빠진 누군가의 몸으로 부활한 정보요원들이다. 그런데 그들 중 한명인 구엔 투 레가 병원에서 탈출한 뒤, 모두를 죽이려고 한다는 내용.
초반에 5인에 대한 설정을 하나씩 풀어나가는 전개도 일품일 뿐더러, 구엔 투 레가 왜 그들을 모두 죽이려 하는지에 대해 추리물 스타일의 전개를 보여주는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구엔 투 레가 남자였지만 임신한 여자의 육체로 부활했다는 설정도 괜찮고 말이죠. 무엇보다도 "펜타곤" 이라는 설정이 정말 대박이었어요. 그들 모두가 한명의 뇌에서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 5개의 뇌로 나누어 부활시킨, 결국 동일인물이라는 설정인데 정말 생각치도 못한 놀라운 이야기였습니다!
허나, 앞의 총평에서 언급했듯이 이 멋진 설정을 풀어나가기에는 작품이 너무 짧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조금 길고 탄탄하게, 등장인물 5인에 대해서도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더라면 훨씬 좋았을것 같거든요. 원래의 육체를 부활시킨 이유가 무엇인지, (즉 원래 인물이 가지고 있는 비밀이 무엇인지) 등 풀리지 않은 설정도 많으니까요.
그래도 설정과 진상만으로도 압도적인 작품입니다. 아주 재미있게 읽었어요. 별점은 3.5점입니다.

<기녀기담>
송나라, 손재주가 조금 있다는 식으로 묵적선생에게 모욕받은 기술자 공수반이 일종의 기계 인간을 만든다는 내용.
그런데 중국이 무대라는 특이성 외에는 딱히 언급할 부분이 없네요. 우리보다 우월한 기계가 우리 사이에 나타났을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에 대한 이야기는 아이작 아시모프를 비롯해서 이미 많기도 하고요. 그냥저냥한 소품입니다. 별점은 1.5점.

<집행자>
호전적인 지성체들이 가득한 행성에 조난당한 지구 개척단의 이야기.
왜 그 별의 지성체들이 호전적인지에 대한 설정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충분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거든요. 또한 이 설정을 이야기의 핵심인 존속살인과 연결시키는 전개도 일품이에요. 호전적인 종족 우두머리의 아들을 누가 죽였는지에 대한 추리적인 전개도 괜찮았고요.
허나 살아남기 위해 아들을 존속살인을 저지르게 만든다는 내용은 잘 와닿지 않네요. 당장 무슨 위기가 닥친것도 아니고, 이런 행동을 벌일 이유가 없기 때문이에요. 이 역시 작품이 단편이라 생긴 문제로 보여 조금 아쉽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그 크고 검은 눈>
거대한 생명체가 자신의 분신들을 우주 각지로 보내 그들로부터 지식을 습득한다는 설정을 가지고 풀어낸 장대한 SF.
설정도 괜찮지만 풀어나가는 전개도 흥미로왔던 작품. 화자인 페를리니가 겪었던 과거의 모험담으로서도 괜찮을 뿐더러, 기이한 기형 생명체가 보인 행동에 대해 추리물적인 접근을 하고 있어서 몰입해서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괴생명체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 역시 압권으로 작가의 대단한 상상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요.
허나 결론이 시시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녀가 이 거대 생명체를 찾기 위해 죽어가는 장거리 우주 여행자를 찾는다는 결말은 좋았던 과거 이야기를 마무리하기에는 적절치 않아 보였거든요. 어차피 찾게 될 것이라는 것도 뻔하고 말이죠. 별점은 2.5점입니다.

<비잔티움>
비잔티움이라고 불리우는 행성에 찾아간 행성 주인의 상속녀와 그녀의 후견인이 마주하게 된 행성의 비밀에 대한 이야기.
행성이 지적 생명체가 만든, 인공 생명체를 키우기 위한 인큐베이터였다는 상상력만큼은 발군이지만 설득력이 부족했던 작품. 이유는 행성의 소유자이자 이미 사망한 에오닌 -드 -레다가 예술품에 대한 광적인 집착을 보인다는 것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에요. 이 부분에 대한 설정을 보다 탄탄하게 가져갔어야 설득력이 높았을텐데 여러모로 아쉽네요. 또한 이렇게 예술품에 집착했다면 죽을때 별과 함께 파괴되는 것을 택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데 말이죠.
이렇듯 설정에 걸맞는 전개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여전한 단점을 지니고 있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로렐라이>
한 전투정 비행사가 자신이 죽인 적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정신적으로 상처를 입습니다. 그래서 도저히 들릴 수 없는 적 (그녀)의 노랫소리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게 되죠. 이를 없애기 위해 적의 우주선을 다시 찾아 나서지만 외려 진짜 적의에 휘말린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무대가 우주일 뿐 내용 자체는 좀 많이 뻔한 심령 호러물입니다. 짤막할 뿐더러 별다른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라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숲의 제단>
우주의 황제가 자신이 출생한 별에 방문했다가 숲에 집어 삼켜진다는 이야기.
숲을 숭배하는 무속신앙같은 설정이랄까요? 숲의 의지가 정말로 대단하다는 점에서 <미사고의 숲>이 떠오르기도 하네요. 허나 딱히 대단한 반전도 없고 예상 가능한 이야기였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아이들은 모두 떠난다>
<숲의 재단>과 별로 다르지 않은, 별에 방문한 이주민들이 별에 삼켜져 하나가 된다는 이야기.
이 작품 역시 너무 짧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야기를 좀 더 복잡하게 가져갈 필요가 있었어요. 하메룬의 피리부는 사나이 설화를 가져다 쓰는 식으로 복잡하게 구성했더라면 훨씬 드라마틱한 작품이 되었을 것 같은데 말이죠. 이대로는 결말이 너무 뻔해요. 아울러 이주민과 원주민들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는 등 주어진 떡밥도 잘 회수하지 못한 것도 불만스러웠고요. 때문에 별점은 1.5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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