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15/09/18

나를 아는 남자 - 도진기 : 별점 1.5점

나를 아는 남자 - 4점 도진기 지음/시공사

<하기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진구는 혜미의 부탁으로 박민서라는 남자의 뒷조사를 시작한다. 별거 중인 그의 아내 문성희가 남편의 불륜을 의심했기 때문. 그러나 물증을 잡지 못한 기간이 길어지자 문성희가 남편 집에 침입하여 조사해 줄 것을 요구하고, 마침 박민서가 인천으로 향한 것을 알게된 진구는 몰래 집에 침입했다가 박민서의 시체를 발견하게 되는데...

추리소설가이자 판사이신 도진기 작가의 진구 시리즈 2작. 일단, 판사라는 업에 종사하면서 이렇게 많은 작품을 계속 발표하시는 노력과 정렬에는 경의를 표합니다.

그러나 작품은 기대 이하였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극적 긴장감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진구가 살인 혐의를 뒤집어 쓰고 이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핵심인데 전개와 묘사 모두 별로에요. 진구 본인이야 엄청 스트레스 받고 힘들었을지는 모르지만 독자는 그걸 알기 어려울 정도거든요. 수사를 빙자해서 좋은 것만 먹으러 다니던가 하는 식이라서 작중에서의 긴장감이 전무하더군요.언제까지 무죄를 증명하지 못하면 잡혀간다! 와 같은 한계점이 명확히 존재했어야 할 것 같은데 말이죠. 국내 사법제도 특성상 그러한 설정이 힘들었다면, 차라리 이렇게 하는건 어땠을까요? 진구는 구치소에 갖히고 재판을 기다리는 신세, 재판만 시작하면 유죄는 확실한 상황이라는 전제를 깔고 면회오는 혜미를 통해 진범을 밝혀나간다는 전개였다면 극적인 긴장감은 훨씬 높아졌으리라 생각되네요. 물론 <환상의 여인>이나 <처형 6일전>과 같은 설정이라는 약점은 있지만요.

그리고 추리소설로서의 재미가 약하다는 것도 문제점입니다. 진범이 누구일까?에 촛점이 맞추어지지 않고 우왕좌왕하는 과정이 너무 길어요.
또 중반 이후부터는 박민서가 남긴 증거물을 찾기 위한 노력으로 귀결되는데, 이 증거물 (노트) 덕분에 임재엽이라는 제 3의 인물과도 엮이게 되는 등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들기는 합니다만 솔직히 핵심 증거로는 여러모로 부족했습니다.
일단 이런 노트를 프로 플레이보이(?)가 집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놓아두었다는 것 부터가 말이 안되죠. <사냥꾼의 일기> 시대라면 모를까 지금 시점에 노트라고요? 인터넷 노트, 뭐 예를 들면 구글 드라이브같은 것을 활용하는게 당연하잖아요. DB화 하기도 쉽고, 언제 어디서나 접속할 수 있으니까요. 폰도 아이폰을 쓴다면서 노트라니... (참고로 이 리뷰도 삼성 갤럭시S4 + 에버노트로 작성하고 있습니다)
제가 봤을 때에는 박민서의 핸드폰을 바꿔 가져간 방수연이 핸드폰을 다시 바꾸기 위해 박민서의 집으로 향하던 중, 우연히 박민서의 핸드폰에 깔린 앱을 보게 되고, 거기서 문제의 글을 보게 되어 극렬한 살의를 품게되었다는 식으로 가는게 트릭과도 연계성이 생길 뿐더러 훨씬 현실적이고 자연스러웠을 것 같아요. 왠만한 핸드폰은 자동 로그인이 될테니. 그리고 문제의 노트를 삭제하면 모든게 완벽하게 끝났겠죠. 그리고 진구는 오프라인으로 작성된 이 노트를 발견하다는 결말! 아... 제가 다시 쓰고 싶습니다.
그리고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이 노트가 방수연이 범인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지 솔직히 의문입니다. 핸드폰이 바뀌었다는 것은 진구의 추리일 뿐 아무런 증거도 없으니 경찰은 진구, 아니면 노트 때문에 또다른 살인을 저지른 문기동을 범인으로 기소할 확률이 훨씬 높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진구의 천재적인 추리력이 그다지 돋보이지 않은 것도 아쉬운 점입니다. 커플링을 발견한 상황에서 박민서라는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를 눈치챘다는 설정이 훨씬 나았을텐데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어요.
물론 박민서가 정신병원을 다녔다는 것, 커플링을 맞췄다는 것, 한서원과 모종의 썸씽이 있었다는 것 정도로 박민서가 플레이보이였다고 짐작하는 것은 절대 무리이긴 합니다. 좀 더 장치가 필요한 부분이죠. 이 부분의 정보가 부족한 것은 박민서 캐릭터를 거의 마지막까지 순진무구한, 마음에 상처입은 어린왕자로 몰고간 탓인데 여러모로 실패 같네요.
그 외에도 문기동이 퍽치기를 살인에 사용한다는 트릭, 최초 구속 기소된 진구가 빠져나갈 수 있었던 닦인 지문 트릭 등 작위적이고 별로인 트릭도 감점 요소입니다.

물론 아주 건질게 없는건 아니에요. 일단 그동안 국내 작품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진구 캐릭터는 여전히 재미있기는 합니다. 또 진구 수준의 일반인이 조사할 수 있는 극한까지 정보를 조사하는 과정도 굉장히 설득력이 높습니다. 특히나 작가의 전문분야 지식을 활용한 일종의 편법들이 아주 재미있는데 예를 들자면 경찰 신분증 위조와 같은 것이죠. 일부만 위조하면 신분증 위조죄에 해당하지 않고, 벌금 몇만원 수준의 사칭죄에만 해당한다는 것인데 실제로도 꽤 유용하지 않을까 싶더군요.
또 국내 작가 중 가장 본격 추리물 스타일 작품을 발표해오신 도진기 판사님 작품답게 괜찮은 트릭이 쓰이기도 했습니다.
인천으로 향하며 곧 집에 도착한다는 메시지를 남긴 박민서의 전화 관련된 트릭이나 M.S.H라는 이니셜이 사용된 커플링 관련 트릭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전화 트릭은 핵심 중의 핵심 트릭이고 커플링은 박민서의 여성 편력을 증명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등 작품에 잘 녹아든 것도 마음에 들고요.

그러나 단점이 너무 명확해서 장점에도 불구하고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괜히 노트 가지고 왔다갔다하는 등의 잔가지는 다 쳐내고 핸드폰 트릭에 다른 증거 한가지만 더 덧붙여 깔끔하게 중단편 분량으로 마무리하는게 훨씬 좋았을 것 같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