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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2

대프니 듀 모리에 - 대프니 듀 모리에 / 이상원 : 별점 4점

대프니 듀 모리에 - 8점 대프니 듀 모리에 지음, 이상원 옮김/현대문학

<레베카>로 유명한 데프니 뒤 모리에의 단편집.
<레베카>의 후속작이라는 <미세스 드윈터>는 아주 오래전 군대 있을때 읽었죠. 허나 정작 <레베카>는 아직까지도 읽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구해보기 힘들었으며, 정식 출간된 이후에는 유명하지만 지금 읽기에는 재미없고 지루한 고전들에 많이 치였기에 구태여 찾아 읽게 되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언젠가는 읽어야 하는 작품이라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마침 단편집이 눈에 뜨이기에 워밍업 차원에서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왠걸, 완전 대박이네요. 최근 읽어본 단편집 중에서는 최고였어요. 수준높고 재미있는 작품들이 한가득 수록되어 있거든요.
대체로 일상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마주치는 기이한 사건과 위기를 다루고 있는데,  깔끔하고 깊이있는 묘사와 독자에게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구성력이 아주 돋보이네요. 이야기들의 설정 및 결말도 발표 시기를 짐작하면 놀랍다고 밖에는 할 수 없을 정도로 신선하고 새로왔고요. 아울러 결말들도 무척 좋았습니다. 반전이 좋은 작품은 물론이고, 조금은 뻔하고 식상한 결말이라도 짤막한 묘사나 대사만으로 모든것을 정리해버리는데 역시나 거장이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물론 시대를 초월하지 못한 식상한 작품이 없는 것은 아니고, 몇몇 작품은 조금은 억지스럽고 뜬금없기는 합니다. 그래도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4점. 소수의 단점은 무시해도 좋을 만큼, 그리고 저의 선입겸을 무색케하는 좋은 단편집이에요. 장르문학, 그리고 단편집을 좋아하신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레베카>도 바로 읽어봐야겠네요.

수록 작품별 짤막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일부 스포일러가 있는 점 참고하시길~

<지금 쳐다보지 마>
아이를 병으로 잃은 영국인 부부가 베네치아 관광 중, 부부의 죽은 아이 크리스틴이 보인다는 기이한 영매 할머니를 만난다.

아내 로라가 사기꾼에게 걸렸다고 생각하는 남편 존의 심리묘사가 핵심이자 대부분인 작품. 묘사력이 대단해서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에 먼저 런던으로 떠난 로라를 우연히 발견하고 그녀를 찾아내려고 애쓰는 장면도 제법 박진감이 넘치고요. 영국인 관광객이 베네치아에서 무슨 모험을 즐길 수 있겠는가에 대한 답이랄까요?


하지만 쫓기는 여자아이와 베네치아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연결시키는 결말은 좀 뜬금없더군요. 존도 사실은 영매다!라는 설정을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했고 말이죠. 이국적인 풍광, 영매와 유령, 연쇄살인마라는 소재를 조합시키려는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았지만 잘 마무리된 것 같지는 않아요. 때문에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도널드 서덜랜드 주연의 영화가 유명하죠. (특히나 베드신) 앞서 말씀드린 아이디어 덕분에 영화화하기에 특히나 좋았을 것 같은데 과연 어떤 식으로 만들었을지 궁금해지네요.

<새>
히치콕 영화로 유명한 단편. 읽어보니 과연 명불허전. 한마디로 걸작!.
새들이 인간을 습격한다는 단순한 아이디어를 이렇게까지 재미있게 그려낸 것, 그것도 크리쳐물에 흔하디 흔한 고어스러운 묘사가 없다는 점에서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습니다.
주인공 냇이 너무나 평범한 소시민이라는 설정도 돋보여요. 덕분에 새들이 사람을 습격하는 사태의 이유는 모르지만 그게 뭐건간에 가족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모습에 강한 설득력이 생기거든요, 그 외에도 새들의 습격이 간조와 관련이 있다던가, 냇이 공습을 경험했기에 어느정도 대비가 가능했다는 설정들도 적절하게 배치되어 읽는 재미를 더합니다. 어찌되었건 우리 가족은 살아남을 것이다... 라고 여운을 남기는 마지막 장면까지, 정말 뭐하나 빼놓을 수 없는 멋진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5점입니다.
딱 하나 궁금한거, 버틸 식량에 대한 이야기가 지속적으로 나오는데 식량이 떨어지면 새들을 먹어도 되지 않을까요?

<호위선>
2차대전 당시 븍해를 운항하던 화물선이 유보트에 쫓기다가 안개와 함께 나타난 영국해군 범선의 호위를 받게 된다는 이야기.
<파이널 카운트다운>과 같은 시공간 이동물입니다. 안개에 휩싸이고 이동한다는 설정도 판박이네요. 띠문에 지금 시점에 읽기에는 특별한 점은 없습니다. 긴박감이 넘쳐야 할 항해 묘사 역시도 이 분야 대표 작가인 알리스테어 맥클린에 비하면 별게 없고말이죠. 전시상황의 긴박함을 단지 1등항해사의 심리로만 묘사하는건 확실히 무리였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눈 깜짝할 사이>
자동차 사고로 20년을 타임 슬립한 엘리스 부인의 이야기.
1932년에서 1952년으로 워프한 뒤 여러가지 낯선 상황에 난처해하는 엘리스부인의 모습이 가장 큰 볼거리에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려 하지도 않고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는 깐깐하고 고집스러운 아줌마가 이런 상황이 닥쳤을 때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가 너무나 설득력넘치게 묘사되고 있거든요.

그러나 타임슬립물로 잘 짜여졌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그녀가 누구인지 딸조차 증명하지 못하는 것은 이상해요. 일반적이라면 같은 시공간에사 이동했을테니 타임 슬립을 하였더라도 동일인물이어야 하는데 이 작품에서 그녀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시대로 옮겨온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래도 발표 시점을 고려해보면 아이디어는 높이 평가할만하며, 잘된 sf는 아니지만 볼만한 드라마임에는 분명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이미 죽어버린 것으로 이 당황스러운 하루를 영원히 반복한다는 내용으로 볼 수도 있으며, 그러한 오싹 일상계 호러물이라면 충분히 좋은 점수를 줄 만 하죠. 별점은 3점입니다.

<낯선 당신>
우연히 만난 극장 매표원 아가씨에게 첫눈에 반해버린 자동차 정비공 이야기.
한 청년이 그야말로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과정에 대한 묘사 만큼은 대단한 수준이지만 그 외에는 딱히 특기할만한 점이 없습니다. 사실은 그녀가 공습 때문에 죽은 가족의 복수를 위해 공군을 죽이고 다니는 살인마라는 진상도 굉장히 뜬금없고요. 뭐라 평하기 어려울 정도로 짤막하다는 것도 단점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푸른 렌즈>
눈 수술 후 마다는 모든 사람들이 동물로 보이게 된다.
멋진 단편입니다. 발상 부터가 놀라워요. 모든 사람들이 개, 뱀, 소, 양 등으로 보인다니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해 냈을까요? 나 자신에게만 그렇게 보인다는게 공포스럽기도 하고 말이죠. 또 살짝 설정에서 드러나듯 동물 형태가 사람일 때의 습성?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아이디어도 좋았습니다.
결말과 반전도 제대로에요. 다시 사람들을 보게 된 마다 부인에게 어떤 일이 닥쳤을까라는 것인데 예상 가능하기는 하지만 마지막에 몰아서 터트리는 작가의 솜씨가 참 인상적이에요. 개인적으로는 남편과 앤설 간호사가 불륜 관계가 되었고, 이 모든 것은 마다의 재산을 노리는 남편이 벌인 수작질이라 생각했는데 의외의 전개라는 점도 높이 평가하고 싶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성모상>
남편 장을 너무나 사랑하는 마리는 그가 바다로 나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성모상 앞에서 필사적인 기도를 하는데....
다섯장짜리 짧은 이야기. 꽁트라고 해도 좋겠죠. 마지막 단 두줄을 제외하고는 마리가 얼마나 장을 사랑하고 걱정하는지, 그리고는 절박하고 필사적인 기도를 올리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두줄의 반전이 정말 기가 막힙니다! 성모상이 그녀 기도에 화답했다 생각했던 환영은  마리를 배신하고 불륜을 저지르는 장이라는 것인데 정말 충격적이었거든요. 이 반전이 단 두줄이라니!
데프니 뒤 모리에가 단편의 대가라는 것을 다시금 깨우쳐주는 작품으로 별점은 5점입니다.

<경솔한 말>
주인공이 과거에 겪었던 꽃뱀 도둑이야기.
결말은 예상그대로라 의외성은 없었지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뻔한 이야기도 이렇게 재미있게 쓴다는 것이야말로 재능이자 실력이 아닐까 싶네요.
마지막 단 한마디, "아는 얼굴이군요. 워더가에서 한번 만난 적이 있지 않나요?" 도 깔끔하니 좋았고, 작품의 주제인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말라'도 굉장히 공감가는 것이었고요. 때문에 별점은 3점입니다.

<몬테베리타>
등산이 취미인 사나이가 한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그녀는 몬테베리타라는 산 정상에 있는 원시종교 집단으로 향한다.
종교적 이상향을 다루었다는 점에서는 <잃어버린 지평선>이 떠오르는 작품. 차이라면 몬테베리타 산 정상의 종교 공동체는 가는 길이 숨겨져 있지도 않고, 그 존재에 대해서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알고있다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종교적인 주제를 담고 있다고 보기에는 좀 애매하고, 빅터의 순애보를 그렸다고 보기에는 빅터의 비중이 많이 작은 것이 단점입니다. 아울러 미심쩍고 모호한 결말 역시도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려워요. 애나가 애초에 나병에 걸려서 몬테베리타에 오게 된 것인지, 이 종교집단의 영생의 비밀은 무엇인지, 그들은 결국 어디로 갔는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고 끝나거든요. 이들의 삶을 갈구하지만 속세와 거리를 두지않는 주인공의 심정만이 이해가 될 뿐입니다.

그래도 여성 작가의 작품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등산에 대한 묘사는 탁월해서 놀랐습니다. 등산은 남자의 영역이라 생각했는데 말이죠. 직접 등산을 해본게 분명하다 생각될 정도로 생생한 묘사가 일품이에요. 별점은 2.5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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