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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1

팡토마스 1 - 피에르 수베스트르, 마르셀 알랭 / 성귀수 : 별점 2점

팡토마스 1 - 4점 피에르 수베스트르.마르셀 알랭 지음, 성귀수 옮김/문학동네

아주 어렸을 적, 아마 초등학교 시절 <팡토마> 라는 영화를  TV를 통해 본 적이 있습니다. 당시로는 보기드문 프랑스 액션 영화로 꽤나 시끌벅적 재미있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팡토마”가 주인공이 아니라 악당 조직의 우두머리 범죄자 이름이라는 것에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범죄자가 주인공인 작품이야 뤼뺑을 필두로 많긴 하지만 그래도 악당이라기보다는 안티 히어로같은 캐릭터인데 반해 팡토마는 잔인무도한 악당이라는 점 때문이었죠. 흡사 만화버젼 루팡 3세 스타일이었달까요? 시퍼런 얼굴 빛깔의 범죄 신사로 2편의 시리즈가 연이어 방송되는 와중에도 끝까지 잡히지 않고 도망친다는 결말도 인상적이었고요.
이 작품이 사실은 100년도 더 된 옛날 프랑스에서 발표된 범죄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영화를 감상한 한참 이후, 장르문학 애호가가 되면서 알게된 사실입니다. 그러나 정보만 있을 뿐 국내에서 출간된 이력이 없기에 입맛만 다신 세월이 오래죠. 어린이용으로 발표된 절판본을 어렵사리 구하기는 했지만 번역도 문제에다가 축약이 심해서 제대로 감상했다고 보기는 어려웠고요.
이러한 기다림의 시간에 보답하듯 <뤼뼁> 시리즈 완역으로 유명한 전문 번역자 성귀수씨께서 직접 손댄, 정말로 제대로 된 원작이 출간되었습니다. 사실 어언 3년 전이긴 한데 여튼, 뒤늦게 읽은 이 작품은 시리즈의 첫번째 이야기입니다.

위에서 절절이 소개한대로 오랫동안 관심이 있었음에도 그동안 읽지 않은 이유는 명확합니다. 왠지 기대가 별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걸작으로 유명한 고전에서 뒷통수를 맞은 경험이 많아서인데 역시나, 이 작품 역시 오랜 기다림과 기대에 값하는 작품은 아니더군요.
가장 큰 이유는 당연히 시간이 오래 흐른 탓이죠. 발표 당시 충격을 안겨다 주었을 여러 설정과 아이디어는 이미 다른 작품들에서 숱하게 써먹은 탓에 신선함이 휘발된지 오래거든요. 예를 들어 변장에 능숙한 천재 범죄자와 뛰어난 추리력을 갖춘 탐정의 대결, <괴인 20면상> 시리즈와 다를게 없잖아요?

게다가 소설로서의 완성도 역시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합니다. 창작 배경부터가 철저한 상업성이었고, 신속한 저술이 더욱 중요했다고 하니 애시당초 완성도가 높으리라 생각되지는 않지만 정말 기대 이하였어요.
일단 사건이 반복되는 전개부터가 문제입니다. 랑그륀 후작부인 살인사건, 벨담경 살인사건, 에티엔 랑베르 재판 (랑그륀 후작부인 사건과 이어지는), 소냐 대공비 강도사건, 거언 체포, 돌롱 살인사건이 숨쉴틈없이 이어지는데  사건 하나하나는 흥미진진하지만 이어지는 방식이 영 뜬금없기 때문이에요. 랑그륀 후작부인 살인사건 - 벨담경 살인사건 - 소냐 대공비 강도사건의 전혀다른 세가지 이야기가 연결된 느낌이랄까요? 이런 점에서는 이야기의 얼개를 제대로 갖추어 놓고 썼다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더군요.
게다가 추리 - 범죄물로 보기에 대단한 트릭이 등장하지 않는 것도 애호가로서 아쉬운 점입니다. 오직 등장하는 것은 변장밖에는 없어요. 밀실트릭이 사용된 것으로 보인 랑그륀 후작부인 살인사건의 진상은 에티엔 랑베르로 변장한 팡토마스가 방문한 것이고, 대공비 사건에서 팡토마스가 깜쪽같이 호텔을 빠져나간 방법 역시 변장이라는 식이며, 심지어 주변인물인 샤를 랑베르조차 변장하여 은신해있었고 쥐브 반장의 주요 수사 방법도 변장해서 탐문 수사하는 것이니 작가가 변장 외에는 다른 아이디어가 전무했구나! 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물론 범죄자가 주인공인 범죄물에 꼭 대단한 트릭이 등장할 필요는 없긴 합니다. 허나 팡토마스가 익히 알려진 만큼 천재적인 범죄자로 잘 그려졌느냐, 그리고 범죄가 정말 잘 짜여진 치밀한 범죄냐 하면 그 역시 아닙니다. 에티엔 랑베르가 아들 샤를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는 초중반 장면이 대표적이죠. 에티엔 랑베르가 무죄 방면 된 것은 순전히 운일 뿐으로, 배심원 설득에 실패했더라면 과연 어떻게 빠져나갔을까? 라는 문제에는 답이 없어요.
무엇보다도 거언 (팡토마스)이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고 탈옥하기까지는 어이없음의 정점을 찍습니다. 돌롱 집사를 살해하기 위해 잠깐 빠져나갔다가 돌아오는 것부터 시작해서 사형집행 전날 자신을 닮은 연극배우를 끌어들여 대신 죽게 만드는 결말까지 전부가 설득력이 전무하더군요. 팡토마스가 그 시점에 정부인 벨담 부인을 찾아갈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점도 설득력이 떨어지는데 돌롱 집사를 살해하기 위해 쉽게 빠져나갔음에도 다시 돌아와 사형 전날까지 목숨을 걸고 운에 의지한 채 버틴다? 이게 말이 될리가 있습니까. 그냥 돌롱 집사를 죽이고 도망가면 그만이지... 연극배우 발그랑 포섭에 실패했디면 어찌 되었을지에 대한 답도 없고 말이죠. 돈으로 몇시간 빠져나오는게 가능하다면 도주는 더 쉬웠을텐데 일만 크게 벌인 꼴 아닌가 싶어요.
한마디로 변장과 행동력있지만 명성만큼의 전설적인 범죄자인지에 대해서는 상당히 회의적입니다.

캐릭터만 따지자면 오히려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쥐브 반장의 캐릭터가 더 낫더군요. 초반 살인사건에서 외부에서 범인이 침입헸음을 설명하는 장면 등에서 제대로 추리력을 선보이거든요. 직접 발로 뛰면서 증거를 모아 범인이 어떻게 기차를 타고 내렸으며 어디서 뛰어내렸는지 등을 확인한 증거로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장면은 동시기의 셜록 홈즈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 싶긴 하지만 추리애호가로서 충분히 만족할 만 했습니다.
좀 특이했던 점은 쥐브 반장의 추리가 샤를 랑베르를 범인으로 만드는 저주받은 유전자 논리와 엮이는 부분이었어요. 근대와 중세적 사고관의 충돌이 뭔지 정말 제대로 보여주기 때문이에요. 작중 시대가 증기기관차와 자전거, 마차가 공존하는 근대화 초입기라 그러한 것 같은데 상당히 이색적인 경험이었습니다. 베르티용 측정법이 효과적으로 쓰이는 것도 인상적이였고요.

그래도 좋은 점은 너무 적네요. 지금 읽기에는 너무 퇴색해버린, 낡아버린 이야기일 뿐입니다. 전설임에는 분명하기에 역사적 가치까지 평가한 별점은 2점. 소개가 너무 늦은 것이 아쉽기만 할 따름입니다. 2권은 아무래도 읽게 될 것 같지 않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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