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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01

소름 - 로스 맥도널드 / 강영길 : 별점 4.5점


소름 - 10점 로스 맥도날드 지음, 강영길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사립탐정 루 아처는 갓 결혼한 아내가 실종되었다는 청년 알렉스 킨케이드의 의뢰를 받고 행방불명된 신부 도로시의 행적을 수사하기 시작한다. 이윽고 도로시가 피투성이에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며 발견된다. 원인은 친구이자 지도교수였던 헬렌 헤거티의 시체를 발견한 것. 보안관 사무실에서는 도로시를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하게 된다.
아처는 도로시의 실종은 호텔에 방문한 의문의 사나이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의문의 사나이 책 베그리의 정체를 추적, 그는 10여년전 어린 소녀였던 도로시 매기의 법정 증언때문에 아내를 죽였다는 혐의로 10여년 복역한 도로시의 아버지 토머스 매기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이 과거의 죽음과 현재의 살인, 그리고 또 다른 제 3의 살인이 서로 관련되어 있으리라 짐작한 아처는 헬렌 해거티와 도로시(달리)가 다녔던 대학의 지도 부장 로이 브래드쇼와 그 어머니 미세스 브래드쇼, 헬렌의 친구 설리 버크와 그 남동생 등 수많은 인물들의 실타래를 풀며 사고로만 알려졌던 과거의 루크 딜로니 사건이 사실은 살인사건이었다는 점과 이 세개의 살인사건의 연관성을 파악하게 된다....

"움직이는 표적"과 "위철리 여자", 단편 "미드나잇 블루" 이후 읽은 루 아처 시리즈입니다. 워낙 평이 좋아서 꼭 읽고 싶었는데 얼마전 알라딘 할인행사로 구입하여 읽게 되었네요.

"주의! 아래 리뷰에는 진범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다수 들어 있습니다!"

이야기 전개는 다른 하드보일드와 거의 다름 없는 형태로 진행됩니다. 우연히 사소한 사건을 맡게 된 사립탐정이 그 사소한 사건에서 파생되는 살인사건을 접하게 되고 그 살인사건이 과거의 다른 사건과 연관됨을 눈치챔으로써 결국 진정한 진상을 깨닫게 된다는 전개인데 다른 하드보일드와 거의 대동소이하죠. (몰타의 매..는 제외할 만 하겠네요) 작품답게 수많은 인물들이 스쳐지나가며 각각의 인물들이 사건들과 밀접한 연관이 있고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지라 한번에 읽지 않으면 조금 힘들다는 것도 유사하고요.

그러나 루 아처라는 건조하고 관찰력 뛰어난 캐릭터는 그만의 우울함과 고독함을 유별나게 강조한 덕에, 터프함과 마쵸스러움을 과시하면서도 일종의 기사도 정신을 보여주며 시니컬한 유머를 내뱉는 여타 하드보일드 탐정 캐릭터와 확실한 차이가 느껴집니다. 다른 여러 캐릭터들도 굉장히 독특하고 성격들이 강해서 각자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것이 좋았고요. 또한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최소한 알렉스 부부의 행복은 지켜진다는 점도 차이점이라 할 수 있겠네요. 전체적으로 심리학과 시적 정서가 감싸고 있는 듯한 독특한 분위기는 이 작품만의 매력이고요.

이러한 다른 장점들도 많지만 무엇보다도 이 작품의 핵심이자 중요한 요소인 사건의 진상, 마지막 3페이지에 걸쳐 나오는 진상이야말로 모든 인물관계와 사건을 깔끔하게 정리해 버릴 뿐더러 다른 하드보일드와 비교하여 이 작품을 비교 우위에 서게 하는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로이 브래드쇼와 미세스 브래드쇼라는 모자간으로 알았던 둘만의 비밀스러운 결혼 생활과 아내이자 어머니 역이였던 미세스 브래드쇼 (티시)의 상상 이상의 질투와 증오..... 아무도 예상 못했지만 오히려 20여년 동안 관계를 숨겨왔다는 그 비현실성과 부조리 때문에 광적인 한 인간의 잔인성과 비 인간성을 증폭시키는 효과를 가져다 주는 것 같습니다. 정말 생각치 못했던 이 마지막 3페이지 만으로도 이 작품은 추리 역사에 기억될 것입니다.

딱 하나 아쉬운 점은 이 진상 때문에 알렉스가 의뢰를 중도에 잠깐 포기하였을 때 사건을 계속 뒤쫓고 있던 아처가 미세스 브래드쇼에게 대신 사건을 맡아달라고 의뢰하는 장면이 어색해진다는 것입니다. 결말과 연관시켜 보면 아처가 사실 살해당하는 것이 당연한 상황으로 보여지거든요. 범인에게 "내가 당신 사건을 당신 돈으로 조사하고 싶다"고 말하는 탐정이라니.... 물론 이 전개로 인해 이 부인과 지속적인 연결고리를 가져가게 되는 부분은 있지만 그래봤자 전화 몇 통화 뿐이라 설득력이 약해요.

그러나 단점은 사소할 뿐, 하드보일드 3대 거장 중 한명의 대표작다운 품격과 재미를 갖춘 걸작임에는 분명합니다. 챈들러와 해미트 보다 국내에서의 대중적인 지명도는 어떻게 보면 약하지만 (아마 영화화가 적게 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네요) 결코 그들에 뒤지지 않는 작품이에요. 동서 추리문고에서 건진 또다른 수확이라 생각되며, 이 대단한 작품을 실버 대거에 머물게 한 해당 년도의 골드 대거 수상작도 꼭 읽어 보고 싶습니다. 별점은 4.5점입니다.

PS : 솔직히 이 마지막 반전은 어떻게 보면 소설이라는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트릭이 아닌가 싶습니다. 미세스 브래드쇼라는 노부인의 외모와 행동을 그 나이와 현실보다도 과장되게 묘사하고 브래드쇼 교수를 보기보다 "젊게" 묘사하며 교수의 생활을 극단적으로 젊음이 가득한 곳으로 설정하여 상대적으로 그 차이를 보다 심하게 독자가 느낄 수 있게 한 고도의 트릭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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