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착오 - 앤소니 버클리 콕스 지음, 황종호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
"런던 리뷰"지에 정기적인 평론을 기고하는 평론가 토드헌터씨는 동맥류로 시한부인생 판정을 받게된다. 그는 남은 시간을 가장 값지게 사는 방법을 고심하다가 사회에 해가 되는, 하지만 처벌 받지 않는 존재들을 처단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그가 선택한 인물은 대중 작가 팔로웨이를 유혹하여 가정과 가계를 파탄낸 요부 진 노우드. 하지만 경찰은 팔로웨이의 사위 빈센트 파머를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하여 사형선고까지 내리게 되며, 토드헌터 씨는 그의 무죄와 자신의 유죄를 밝히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기 자신을 고발하여 재판정에 서게 된다...
세계 3대 도서 추리소설 중 하나인 "살의"의 작가 앤서니 버클리 콕스의 작품. "살의"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작가의 명성은 익히 들어온 탓에 주변 분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일종의 도서 추리처럼 범인역의 토드헌터씨를 미리 밝혀 놓고 있지만 일반적인 상식과는 반대로 범인이 스스로의 범행을 증명하기 위해 동분서주 하는 과정을 흥미진진하면서도 유머스럽게 그리고 있는 작품입니다.
좋았던 점은 스스로의 범행을 증명하기 위해 단서들을 나열하고 복선들을 잘 짜깁기 하는 등의 추리적인 요소와 법정에서의 치열한 공방같은 법정 스릴러의 요소가 잘 갖추어진 점, 내용상 탐정역의 비중이 작을 수 밖에는 없지만 중요한 조력자인 범죄 연구가 치터윅씨라던가 법정 장면에서 눈부신 활약을 보이는 왕실 변호사 어니스트 프리티보이(!) 경 같은 캐릭터가 잘 살아 있고 각각의 영역 (추리-법정 스릴러)을 확실히 구축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사소해 보이는 여러 사건들이나 단서를 짜맞추고 앞부분의 불필요해 보였던 여러 묘사들이 의미를 가지게 되는 부분들이 많다는 점과 마지막의 반전이 아주 괜찮다는 점입니다. 반전은 어느 정도는 예상 가능하나 저의 생각을 뛰어넘는 부분이 있으며, 그 모든 내용이 앞에 등장한 단서와 복선에 기한다는 정통 추리적인 요소를 잘 따르고 있기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다만 목차에서 각 단락마다 제1부 - 악한 소설풍 (피카레스크) / 제2부 - 신파연극풍 (트랜스폰타인) / 제3부 - 미스터리소설풍 (디텍티브) / 제4부 - 신문소설풍 (저널리스틱) / 제5부 - 괴기소설풍 (고딕) 이라는 재미있는 부제로 구분하여 놓았지만 번역의 미스인지 각 부제별 소설의 느낌은 별로 살아 있지 않다는 점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원본은 느낌이 다를까요?
그리고 "시한부인생"이라는 토드헌터씨의 나름대로의 긴장감있는 핸디캡이 거의 노출되지 않고 하나의 설정으로만 쓰인 점은 좀 유감입니다. 유머를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일 수는 있겠지만 덕분에 최후의 순간까지도 토드헌터씨의 병과 죽음이 별로 와 닿지 않더군요.
그래도 법정물과 추리물의 줄타기를 성공적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독특한 유머가 잘 살아있는 재미있는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상당한 분량에다가 등장인물의 수도 많은 편이지만 집중력을 잃지 않고 끝까지 읽게 하는 힘은 충분해요. 때문에 별점은 4점입니다. 이 작품만으로 평가하기는 이르겠지만 상당히 즐길만한 작품을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드는데 대표작이라는 "살의"도 한번 읽어봐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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