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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03

에도 명탐정 사건기록부 - 오카모토 기도.노무라 고도.히사오 주란 / 김혜인.고경옥.부윤아 : 별점 2.5점

에도 명탐정 사건기록부 - 6점
오카모토 기도.노무라 고도.히사오 주란 지음, 김혜인.고경옥.부윤아 옮김/엔트리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세기 초반, 주로 1930년대 발표된 에도물 단편 모음집. 노무라 고도의 제니가타 헤이지, 오카모토 기도의 한시치, 히사오 주란의 센바 아코주로 시리즈 단편이 각 세 편씩 수록되어 있습니다.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 "제니가타 헤이지 체포록"
    • 금빛 여인
    • 은비녀의 저주
    • 일곱 명의 신부
  • "한시치 체포록"
    • 간페이의 죽음
    • 봄눈 녹을 무렵
    • 고양이 소동
  • "아고주로 체포록"
    • 버림받은 구보
    • 유배선
    • 고양이 눈의 남자

오래된 작품이고 마치부교나 요리키, 도신, 오캇피키 등 잘 모르는 일본 고어가 난무하는 등 우리와는 거리가 먼 일본 에도 시대가 배경이라서 큰 재미를 느끼기 힘들걸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아주 재미있었어요. 흥미로운 사건들이 등장하고, 이를 주인공들의 활약으로 해결한다는 추리물이자 모험물 성격의 이야기들이니 재미가 있을 수 밖에요.

개성 강한 주인공들도 인상적입니다. 모두 확실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제니가타 헤이지는 주로 발로 뛰는 행동형 액션 히어로에 가까우며 한시치는 조용하지만 강한, 우직한 노송 같은 이미지고 아고주로는 난봉꾼에 되는대로 사는 호걸입니다. 이러한 재미와 캐릭터 설정을 보면 당대의 인기는 물론, 지금까지 명맥이 유지되는 게 당연하다 싶네요.

그래서 전체 별점은 2.5점. 조금 낡긴 했고 우리 정서에 잘 안 맞을 수도 있지만 독특한 추리물, 모험물로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 있는 작품들이었어요. 에도물을 좋아하신다면 놓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조금 성향은 다르지만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물도 그렇고, 예전에 읽었던 마노스케 이야기도 그렇고, 에도물은 항상 기본은 해 주는 것 같네요.

수록 시리즈별 간단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제니가타 헤이지는 루팡 3세의 숙적 이름으로 잘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읽어본 것은 처음이네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액션 히어로에 가까운 열혈 청년이라 추리적으로 특기할 부분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쇼군에게 복수하기 위한 어약원 본초가의 음모에 이상한 종교 의식이 얽히고, 미녀들이 연이어 눈에 은비녀가 꽂힌 시체로 발견되고, 혼례를 치르던 신부 일곱 명이 납치된다는 이야기들이라 모험물적인 성격과 스케일은 가장 커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어요. 등장인물, 특히 제니가타의 정인 오시이가 엄청난 미녀로 묘사되고, 제니가타의 동전 던지기가 대단한 비술로 그려지는 등의 볼거리 역시 화려하고요.

추리적으로도 "은비녀의 저주"에서 처음 죽은 게이샤가 만자부로의 하오리에서 떨어진 히모를 쥐고 있었기 때문에 만자부로가 범인이라는 주장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장면 등 괜찮은 부분도 제법 있습니다. 평균 별점은 2.5점입니다.

"한시치 체포록"은 단편집을 읽어본 적은 있습니다. 다행히 수록 작품이 겹치지 않는군요. 유명세에 걸맞게 완성도는 세 가지 시리즈 중에서 가장 높습니다. 추리적으로도 볼만할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로 인해 범죄가 발생하는 드라마가 잘 짜여져 있거든요.

이 중 개인적으로는 "봄눈 녹을 무렵"이 마음에 들더군요. 맹인 안마사 도쿠주가 안마를 거부한 이유가 결말 부분에서 설명되는 것이 아주 괜찮았기 때문이에요. 에도물에 딱 맞는 설정인데 정말이지 생각도 못했네요. 이 작품만큼은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하지만 다른 작품들 두 편은 평범합니다. 때문에 전체 평균 별점은 역시나 2.5점입니다.

마지막 아고주로 시리즈는 처음 알게 된 작품인데, 일단 "우주해적 코브라"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주인공이 호걸이자 해결사이며 약간 안티 히어로로 등장한다는 점, 그리고 전체적으로 유머러스하게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 때문입니다. 모든 이야기에서 일종의 트릭이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가장 추리물에 가까운 작품이라고 할 수 있고요.

첫 번째 작품인 "버림받은 구보"는 시리즈의 도입부 성격이 강해서 눈여겨볼 부분이 많지는 않지만 귀중한 상자 메야스바코를 훔쳐내기 위한 담대한 심리 트릭이 돋보입니다. 백주대낮에 당당하게 상자를 훔친 뒤, 도둑을 쫓는 모습을 가장하여 도주한다는 것인데 시대와 딱 들어맞는 괜찮은 트릭이었습니다.

"유배선"은 "마리 셀레스트호" 사건에서 따온 듯한 에도 시대 유배선의 승무원들 실종 사건을 그린 작품입니다. 정말 발상의 전환이 대단한, 기발한 작품이에요. 정말이지 이 사건이 에도물로 변주가 가능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뿐더러, "방금 전까지 밥을 짓고 있었던" 상황을 트릭으로 이용한 점이 아주 기가 막히거든요. 이 트릭이 신겐에게서 따온 것이라는 마지막 대사에서는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희대의 미스터리를 잘 짜여진 에도물로 리메이크한 솜씨도 발군이지만 실제 일본 역사 속 이야기를 트릭으로 잘 활용한 솜씨도 인상적입니다. 단연코 이 작품집 수록작 중 최고입니다.

덧붙이자면 아고주로의 활약도 대단합니다. 상가집에서 진상을 깨우치고, 편지를 어디서 받았는지에 대한 증언 하나만으로 실종자가 어디에 있는지 추리해 내는 방식은 셜록 홈즈의 방식과 똑같더군요.

"고양이 눈의 남자"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 벌어진 일가족 참살 사건을 그린 작품으로 오징어를 이용한 트릭은 나쁘지는 않지만, 범인과 동기도 뻔하고 비약이 심해서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좀 처지는 범작입니다.

2022/01/15

기타기타 사건부 - 미야베 미유키 / 이규원 : 별점 2.5점

기타기타 사건부 - 6점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북스피어

미야베 미유키에도물인데 '제 2막'이라는 부제처럼 새로운 시리즈입니다. 가난한 16세의 고아 기타이치가 주인공이지요. 기타이치는 '붉은 술 문고' 행상이면서, 동네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해결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는 설정입니다. 자신을 돌봐주었지만 복어를 먹다 비명횡사해버린 오카핏키 센키치 대장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서요. 

그러나 외모가 출중하거나 대단히 머리가 좋은 건 아니에요. 관찰력과 판단력은 나름 괜찮지만 몸도 약한 편이고요. 그래서 탐정 역할이자 두뇌는 주로 대장의 미망인인 장님 마쓰바가 맡고 있습니다. 기타이치는 주로 발로 뛰면서, 단서들을 모아 안락의자 탐정같은 마쓰바 부인에게 전달해주는 역할 담당입니다. 주체적인 행동력을 갖춘 조수가 주인공이라는 점에서는 '네로 울프' 시리즈가 떠오르기도 하네요. 물론 기타이치는 아치 굿윈과 같은 인생 경험이나 넉살을 갖추지는 못했지만요. 아울러 부족한 액션을 보충하기 위해, 목욕탕 가마 담당이지만 귀한 집안 후예로 굉장한 무술을 지닌 기타조가 은밀히 기타이치를 도와준다는 설정도 덧붙여져 있습니다. 그래서 제목이 '기타(이치)기타(조) 사건부'가 된 걸로 추측됩니다.

이전의 다른 에도물과 다른 새로운 시리즈만의 특징이 몇 가지 눈에 뜨입니다. 첫 번째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들이라는 점입니다. 수록작 네 편 중 실제 괴담이 등장하는 작품은 한 편 뿐이며, 그 이야기도 결말과 진상은 합리적으로 설명되기 때문입니다. 수록작들 네 편이 모두 종류가 조금씩 다르다는 점도 특징이에요. 전형적인 괴담물, 괴담물인줄 알았지만 일상계, 일종의 모험물, 추리물로 명확하게 구분됩니다. 

비교적 현실적인 사건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들이 많다는 특징도 있습니다. 이는 주인공 기타이치의 설정 때문입니다. 사회적 지위와 신분이 낮고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팍팍하니, 규모가 크고 복잡한 사건보다는 아무래도 현실에 맞닿은 이야기들이 중심이 될 수 밖에 없었을테지요. 작가가 '미시마야'와 같은 기존 시리즈 대신 새로운 시리즈를 시작한 이유도 에도 서민들 삶에 맞닿아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했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현실적인 배경 덕분에, 에도 서민 생활에 대한 묘사도 굉장히 상세합니다. 기타이치가 홀로 '나가야'에 세를 얻어 살면서 문고 행상을 하고, 이런 저런 가게를 탐문하는 등 모든 장면에서의 묘사는 정말 손에 잡힐듯하니까요. 작가가 에도라는 곳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세삼 깨닫게 해 줍니다. 대한민국 독자가 이런 묘사를 모두 이해하기는 좀 힘들다는게 문제이기는 하지만요. 이전에 읽었던 "만족을 알다" 등 에도 관련 책과 함께 읽어야 대충 배경이 머릿 속에 그려질 것 같습니다. 

수록작별로 짤막하게 소개해 드리면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습니다.

"복어와 후쿠와라이"

수록작 중 유일하게 진짜 괴담이 주요 소재입니다. 저주받은 후쿠와라이 때문에 소동이 빚어지게 되거든요. 그러나 결말은 굉장히 현실적이에요. 저주를 풀기 위해 마쓰바 부인이 눈을 가리고 후쿠와라이를 완벽하게 완성하는데, 지극히 논리적인 방법이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스타크래프트로 따지면 일종의 '귀맵'을 썼다는게 진상이니까요.

"쌍륙 가미가쿠시"

'저주받은 쌍륙'에 의해 '가미가쿠시 (아이 실종)'가 일어나는 내용으로 괴담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알고보니 아이들의 거짓말이었다는게 진상입니다. 

이를 밝혀내는 과정과 진상, 일종의 트릭과 추리 과정 모두 일상계같은 느낌을 전해주어서 현실적이면서도 와 닿게끔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기타이치 혼자서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모습을 통해, 그가 장차 센키치 대장의 뒤를 이을거라는걸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는 시리즈에서 중요한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말이 없는 지킴이"

기타이치가 연고없는 유골을 수습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알고보니 목욕탕 가마 담당 기타조의 아버지 유골이었고, 기타조는 은혜를 갚기 위해 도미칸 납치 사건을 기타이치가 해결한걸로 만들려고 한다는 내용입니다. 

수록작 중 유일하게 괴담이 거의 언급조차 되지 않으며, 대체로 '모험물'에 가깝다는게 특징입니다. 그래서 추리물로는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도미칸 납치 사건은 추리의 여지가 전혀 없었고, 사건도 반 쯤은 우연에 의해 해결되는 탓입니다. 앞서 도미칸이 과자가게 이나다야의 난봉꾼 차남을 응징하는 장면은 재미있었고, 또 다른 주인공 기타조가 첫 등장하는 등 건질게 없지는 않지만, 수록작 중에서는 가장 처지는 작품입니다.

"저승에서 돌아온 신부"

밥집 딸 오사키가 자신이 된장가게 아들 만타로의 죽었던 아내 환생이라고 주장한 뒤 일어난 일련의 살인 사건을 그리고 있습니다. 살인 사건이 두 건이나 일어나는 잔인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다른 수록작들과 결을 좀 달리합니다. 사건을 추리해서 풀어가는 내용도 비교적 정통 추리물에 가깝고요. 환생이 아니라 사기극이었다걸 드러내는 추리의 과정도 괜찮았습니다. 사건 해결은 오사키의 자백에 의한 것이라는 단점은 있지만, 이는 에도라는 시대 특성상 어쩔 수 없었던 점이라 생각되네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렇게 평균 수준의 작품이 세 편 이상은 되기에,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물을 좋아하신다면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추리물 속성이 옅고, 기타이치가 오카핏키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성장기이자 모험물 속성이 강해서 제 취향은 아니었지만요. 왠지 리뷰를 쓰기도 힘들었기에 후속권은 읽어볼 것 같지 않네요.

2009/08/17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2 - 에도가와 란포 / 김은희 : 별점 3.5점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2 - 6점
에도가와 란포 지음, 김은희 옮김/두드림

제목 그대로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이자 변격물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에도가와 란포의 단편선집입니다. 1권 다음에 3권이 먼저 나온 뒤 나온 2권입니다. 순서조차 엽기적이군요.... 1권과 3권을 이미 읽고 소장하고 있기에 구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이런 추리 단편을 워낙 좋아라하기도 하고 말이죠.
그러나 아쉽게도 이미 접한 작품도 많고 "본격물" 로 보기에는 어려운 작품들도 제법 많아서 1 - 3 권을 읽고 느꼈던 것보다는 조금 못합니다. 그래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단편집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겠죠. 전체적인 평점은 3점입니다.

최고 베스트는 "음울한 짐승" 이긴 한데, 너무 잘 알려진 작품이라 조금 식상하다면 "그는 누구인가"를 꼽고 싶네요. "악귀"도 괜찮았고요.

좀더 자세하게 이야기하자면,

호반정 사건 :
거울장치로 남을 엿보는 취미가 있는 주인공인 나는 묵고있던 여관 목욕탕에 몰래 숨겨놓은 장치를 통해 한 여인이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여관에서 친구가 된 코우노와 함께 사건의 조사에 착수한 나는 사건이 벌어진 이후 여관 잔치에 불려나왔던 기생 쵸키치가 실종되고 정체불명의 손님들이 커다란 트렁크를 든 채 서둘러 도망갔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경찰까지 수사에 나서지만 결국 사건은 미궁에 빠지는데...
작가의 변격적인 취향이 잘 반영된 "거울장치"라는 설정은 인상적이지만 본격물에는 미치지 못한 조금은 애매한 작품입니다. 본격물로 기능하기 위한 트릭은 그런대로 합격점이긴 하며 쵸키치의 실종이라던가 군불지기 산조우의 존재 등을 통해 이야기도 나름 설득력 있게 전개하고는 있지만 "거울장치"라는 소도구 자체가 우연을 토대로 한다는 점과 정체불명의 손님들과 거액의 돈이라는 설정 역시 지나칠정도로 작위적이기에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이야기는 중편 길이에 가까우나 알맹이가 없는 작품이라 별점은 2점입니다.

악귀 :
추리소설가 토노무라 쇼우이치는 고향에서 우연히 친구인 오야 코우기치가 연루된 사건에 휘말린다. 오야의 정혼자 츠루코가 참혹하게 훼손된 시체로 발견되었기 때문. 마침 오야는 파혼을 주장하며 유키꼬라는 아가씨와 사귀고 있었기에 완벽하게 범인으로 몰린다. 결국 토노무라는 친구의 누명을 벗어주기 위해 나서는데...
작가 스스로도 책 뒤의 해설에서 이야기하듯 결정적 트릭을 홈즈 단편 중 하나인 "브루스파팅턴 잠수함 설계도의 모험"에서 차용한 작품으로 정통 본격물입니다. 비록 중요 트릭이 모방이라 하더라도 다른 트릭들, 즉 1인 2역 트릭 같은 것들이 중요 트릭과 함께 작품과 잘 결합되어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결말이 조금은 쌩뚱맞긴 한데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합격점을 줄 만한 작품이죠. 별점은 3점입니다.

지붕 속 산책자 :
백수 코우다는 명탐정 아케치 코고로와 친분을 맺은 뒤 "범죄"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러던 중 새로 이사한 하숙집 천장으로 통하는 통로를 우연히 발견한 그는 다른 하숙생들을 염탐하는 취미에 빠져들다가 싫어하는 하숙생 엔도우를 완벽하게 살해할 수 있는 계획을 실행하게 된다...
대표작 중 하나로 과거 동서 추리문고의 "음울한 짐승"을 통해 먼저 접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변격물적인 성향에 더해 범행이 먼저 이루어지는 약간은 도서추리적인 전개, 그리고 사건을 밝혀내는 아케치 코고로의 추리쇼가 돋보이며, 특히나 범행을 행하는 과정까지의 서스펜스가 정말 장난이 아니라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죠.
코우다를 주인공으로 하여 그의 심리묘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과 범행의 유력한 증거가 결국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본격물로 보기는 힘들겠지만 에도가와 란포라는 작가의 진면목을 알기 위해서라면 꼭 한번 읽어봐야 하는 작품이 아닐까 싶네요. 별점은 3점.

그는 누구인가 :
유우키 소장의 아들 히로카즈가 도둑에게 저격당해 불구가 된다. 그러나 범인이 남긴 불가사의한 발자국 등 알 수 없는 여러 정황증거 때문에 사건이 미궁에 빠진다. 결국 추리광인 히로카즈 스스로 탐정역을 소화하려 하고, 유우키 가문의 손님인 아카이씨 역시 사건 해결에 나서는데...
범인이 하늘로 꺼지는 발자국이라는 불가능 범죄의 설정을 가진 본격물입니다. 지도까지 도입한 치밀한 구성, 잘 짜여진 캐릭터 구도와 완벽한 동기 등 본격물의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죠. 덕분에 상당한 길이의 중편이지만 작품 내내 계속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가 많아 지루하지 않게 읽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아케치 코고로가 등장한다는 것 역시 팬으로서는 반가운 일이었고요.
저자 스스로는 자신의 냄새가 많이 나지 않아 별로 화제가 되지 못했다고 이야기하지만 후대의 팬으로서는 오히려 기대하지 않았던 보석을 발견한 듯한 기쁨이 느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달과 장갑 :
카츠히코는 고리대금업자 마타노를 우발적으로 살해한 뒤 자신의 애인이기도 한 마타노의 아내 아케미와 공모하여 사건을 은폐할 결심을 한다...
장치를 이용한 일종의 알리바이 트릭이 등장하는 도서 추리물입니다. 작가 후기에서 "황제의 코담배갑" 같은 "범인이 자신의 범행을 멀리서 바라본다"라는 알리바이 트릭을 언급하는데 사실 그 정도는 아니죠. 완전 오버에요... 이 작품은 트릭 자체는 별게 없고 오히려 이를 밝혀내기 위한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는 서스펜스가 더욱 돋보이는 스릴러적인 성향이 강한 작품입니다.
아케치 코고로의 이름이 잠깐 언급되는 것도 눈여겨볼만 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호리코시 수사1과장 귀하 :
도쿄 경시청의 호리코시 수사1과장은 5년전 관내에서 벌어진 미궁의 천만엔 도난사건에 대한 편지를 받는다...
서간문 형식으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1인 2역 트릭을 다루고 있습니다. 트릭과 설정은 뻔해서 역시나 본격물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르지만, 전개과정이 뻔한 아이디어를 덮을 수 있을 만큼 흡입력이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모처럼 결말까지 깔끔할 뿐 아니라 훔친 돈의 은닉에 대한 몇가지 아이디어 등도 재미있었기에 별점은 3점. 무난하고 평이했습니다.

음울한 짐승 :
추리작가인 나는 실업가 오야마다 로쿠로의 부인인 오야마다 시즈코라는 여성과 우연히 친분을 쌓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가 나에게 오에 슌데이라는 정체를 알기 어려운 추리작가에 대해 문의하고, 나는 오에 슌데이가 과거의 연인이었다가 스토커로 돌변한 히라타 이치로라는 그녀의 고백을 듣게 된다. 히라타 이치로의 스토킹과 편지의 강도가 세지던 와중에 결국 오야마다 로쿠로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다...
나왔다! 이 작품도 동서추리문고를 통해 소개된 대표작이기도 한 변격물입니다. 에도가와 란포 스스로 작중의 오에 슌데이, 즉 히라타 이치로라는 인물에 자기 자신을 투사하여 작품을 써 나갔기 때문에, 란포의 여러 작품들이 오에 슌데이의 작품으로 인용되는 등 작가와 왠지 일체화된 느낌이 강한 작품이기도 해서 대표작으로 인정받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비록 읽어본 작품이기는 하지만 번역이 다른 탓에 굉장히 신선한 기분을 느끼면서 새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스토킹이나 가학증 등 변격물적인 성향도 잘 드러나 있지만 본격물로 보아도 손색없을 정도로 여러가지의 트릭 - 특히 오야마다 로쿠로 살인사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볼거리입니다 - 이 복합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약간 여운을 남기는 애매한 결말까지도 인상적이라 에도가와 란포 작품 중에서도 탑 클래스에 들만한 좋은 작품이기에 별점은 4점입니다.

2021/04/17

안주 - 미야베 미유키 / 김소연 : 별점 2.5점

안주 - 6점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북스피어

에도 간다에 있는 미시마야는 장신구와 주머니를 파는 주머니 가게로 멋스러운 주머니 외에도, 또 하나의 명물이 있다. 주인 이헤에가 최근에 재미를 붙인 특별한 도락으로, 실제로 있었던 괴담을 모으는 괴담 대회이다. 이야기를 듣는 건 이헤에의 조카딸 오치카로, 그녀는 약혼자를 소꿉친구에게 잃은 뒤 마음에 상처를 입고 숙부가 운영하는 주머니 가게에 '예절 견습'이라는 명목으로 맡겨진 소녀였다.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물'은 한 두어권 읽기는 했지만 딱히 좋아하는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관심을 두지 않았었는데, 우연찮게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읽다보니 이게 전작이 있는 이야기더군요. 오치카가 겪었던 이전 사건이 계속 인용되더라고요. 그 외에도 이야기들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특징도 있습니다. 다행히 따로 읽어도 무방한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읽는데 지장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기대하고는 조금 달랐습니다. 별로 무섭지는 않은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이건 제가 '괴담'이 '무서운 이야기'라고 잘못 생각한 탓입니다. 사실 '괴담'의 '괴 (怪)'는 괴이하다는 뜻이지요. 괴담도 '괴상한 이야기'라는 뜻이고요. 등장하는 이야기들 모두 괴이하다는 점에서 괴담의 사전적 정의에 부합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서에 맞지 않는 부분은 분명 있습니다. 모든 여성 이름들 앞에 '오'가 붙어서 혼란스러운 것과는 별개로요. 또 "으르렁거리는 부처" 외에는 모두 지나치게 평이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기는 해요. "달아나는 물"은 심지어 뻔하기까지 했고요.

그래도 괴이함이 에도라는 공간과 미야베 미유키라는 작가의 글 솜씨로 결합되어 뿜어내는 독특함은 마음에 들었어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전편도 찾아 읽어볼 생각입니다.

각 수록 단편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달아나는 물" 

오래전 마을을 보호하는 신으로 숭배받았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 지금은 찬밥 신세가 되어 허물어지는 신사에 봉인되었던 뱀신 오히데리는 우연히 만난 마을 소년 헤이타의 도움으로 봉인에서 풀려났다. 그리고 헤이타에게 씌워져 마을에 돌아온 뒤, 마을 물을 마르게 하는 복수를 벌였다. 마을 고노기의 쇼야 (마을 사무를 맡아보는, 일종의 면장 직무)는 소년을 에도로 보내 버렸지만, 에도에서도 마찬가지 소동을 일으켰다. 다행히 이야기를 들은 주인공 오치카가 살뜰히 보살펴 에도에 무사히 적응한 헤이타는 물을 좋아하는 오히데리를 위해 소년은 뱃사공이 될 결심을 한다.

오래된 무언가에 깃든 요괴가 속박에서 해방되어, 누군가에게 씌워진다는 이야기는 하늘의 별처럼 많습니다. 따지고 보면 "알라딘" 부터가 그런 이야기지요. 천진난만하면서도 의리있는 주인공 소년, 본체는 뱀이지만 귀여운 소녀인 요괴라는 조합도 전형적인 소년 만화스러운 설정이고요. 훈훈한 전개와 결말 역시 소년 만화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전해줍니다. 아동용 이야기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요.

뱀 요괴가 신이 되었다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게 된 이유에 대한 설정은 탄탄하고, 이야기 전개에 있어 에도라는 시공간을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부하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덤불 속에서 바늘 천 개" 

미시마야 이웃인 바늘상 스미요시가에는 20대 후반이 될 때까지 혼인하지 못한 고명딸 오우메가 있었다. 그녀가 시집을 간 뒤, 그녀가 왜 시집을 늦게까지 가지 못했으며 결혼식날 있었던 이런저런 기묘한 일들은 무엇 때문이었는지를 그녀의 어머니 오미치가 이야기해 주기 위해 '흑백의 방'을 찾아온다.

오미치 말에 따르면, 오우에가 시집을 늦게 간 건 그녀의 쌍둥이 자매 오하나가 병사한 뒤. 쌍둥이를 싫어했던 할머니의 저주 때문이었습니다. 오우메 혼자서 무언가를 누리게 되면 저주를 받기 때문에, 죽은 오하나와 똑같이 생긴 인형을 만들어 돌보았고, 그래도 오우메가 혼자 이득을 얻는게 있다면 오하나 인형에 바늘이 꽂히고, 오우에는 지독한 습진을 앓는 식으로요. 그런데 결혼은 혼자서 이득을 얻으니, 도무지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여러모로 이해하기 힘든 저주라서 영 와 닿지 않았습니다. 저주의 핵심인 '상인은 예로부터 쌍둥이를 싫어한다'라는 말부터 이해 불가였어요. 친할머니가 이 말 때문에 쌍둥이와 며느리를 저주했다는 것 역시도 납득할 수 없었고요. 에도 시대 일본 정서가 이랬던건지는 모르겠지만, 현대의 우리나라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인형에 바늘을 꽂은건 사람이었다는 진상도 와 닿지 않기는 마찬가지에요. 친딸이지만 강제로 동생 집에 딸을 보내고, 자기들은 인형과 함께 살며 재산까지 나눈 다에몬 부부, 친딸처럼 키워 온 양녀를 잃게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센에몬 부부 사이에 알력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오하나 인형에 바늘을 꽂는 형태로 표출했다는건 비약이 심했습니다. 또 두 형제가 집을 합치려고 할 때 처음으로 저주가 발생했으니, 바늘을 꽂은 건 둘째 부부여야 말이 됩니다. 양녀를 잃기 싫었다면요. 그렇다면 합치지 않기로 한 뒤에 바늘이 꽂힌건 설명이 되지 않지요. 이렇게 두루뭉실하게 풀어내지 말고, 정말 오우메를 증오한 누군가가 있다는걸 증명했어야 했습니다. 

아울러 바늘이 꽂힌 뒤 실제로 오우메가 습진을 앓았다던가, 할머니가 모든 가족들 꿈에 나타나 저주를 했다던가, 오카쓰가 대신 저주를 뒤집어 쓰는 역할을 한 뒤 모든 저주가 사라졌다는 등 이야기 속 주요 설정들에 대한 설명도 부족합니다.

처음에 나타난 오하나 유령이 '눈을 깜박이지 않았다'는 대사 하나는 조금 섬찟했고, '인형'과 같았다는 설명은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렸던 이유로 수록작 중에서는 가장 처지는 이야기였다 생각됩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안쥬" 

수국 저택이라고 불리우는, 지금은 폐허가 된 무가 저택에서 불이 나 3명이 죽었다. 사망자의 아들 나오는 어려워진 집안 사정으로 아버지의 사촌인 야채상 야오노에 양자로 가게 되었다. 그러나 바뀐 환경에 적응을 잘 하지 못해 불안해 하던 차에, 미시마야 하인으로 습자소 친구인 신타를 폭행하는 사고를 치고 말았다. 그 뒤 나오를 개인적으로 돌봐주는 습자소 선생 아오노 리이치로가 나오 아버지가 죽은 저택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표제작입니다. 읽기 전에는 술안주 할 때의 안주라 생각했었는데, '暗獸'의 일본어 발음이더군요. 

특징은 추리물 성향이 짙다는 겁니다. 나오의 아버지 요헤이가 죽은 화재 사고에 대한 진상을 괴담을 통해 추리해내기 때문입니다. 

아오노 리이치로의 말에 따르면, 수국 저택에는 아오노 리이치로의 스승 부부가 은퇴 후 살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전 주인 아내의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으로 집 값이 쌌던 덕분이었지요. 그 곳에서 부부는 저택의 염 '구로스케'를 만나 친해지지만, 구로스케가 사람 때문에 약해진다는걸 알게 된 뒤 저택을 떠납니다. 그러나 주인 때문에 도망갈 생각이었던 옆 저택에서 일하던 하인과 하녀, 그리고 이 둘을 도와주던 나오의 아버지 요헤이가 마침 빈 수국 저택에서 계획을 모의할 때 주인이 덮쳤고, 이를 막으려던 구로스케를 본 사람들이 놀라 도망치다가 죽은게 사건의 진상입니다.

추리물 애호가로서 이러한 작풍도 마음에 들었지만, 스승 부부와 구로스케가 보냈던 날들에 대한 상세한 묘사도 아주 좋았습니다. 노래라던가 공놀이를 가르쳐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정을 나누는 모습이 아주 훈훈했기 때문입니다. 아래와 같이 구로스케의 '귀여움'도 폭발하고요.

판타지물에서 슬라임과 교분을 나누는 노학자 부부의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요? 사람과 가까워지면 질 수록 약해진다는 설정도 좋았어요.

하지만 결국 사람이 3명이나 죽은건 분명하고, 원인을 제공했던 관리 나마즈히게가 딱히 대단한 응징을 받지 않았다는 결말은 개운치는 못했습니다. 이는 구로스케의 귀여움, 사랑스러움과는 너무 상반되는 이야기인 탓도 큽니다. 귀엽고 사랑스러워도, 괴이한 이형은 결국 사람에게 불행을 가져온다는 뜻이겠죠? 

그리고 에도 시대에 그렇게 높은 관직도 아닌데 하인과 고용인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죽일 수 있었다는 것도 조금 놀랐습니다. 하인이야 그렇다쳐도, 요헤이는 엄연한 고용인인데 말이지요. 나오가 양자로 간 야오노 가에서 겪는 불합리한 대우를 참고 견디는 모습 등도 우리나라 정서와는 잘 맞지 않아 보였어요.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재미있는 이야기였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으르렁거리는 부처" 

아오노 리이치로의 지인인 괴승 교넨보가 미시마야를 찾아와서 과거 깊은 산 속 '다테나리'라는 마을에서 겪었던 일을 오치카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다테나리는 고신지라는 절의 스님 가쿠넨이 다스리는 풍요로운 마을이었는데, 도미이치라는 주민이 마을의 풍요에 대한 소문을 내려다 '반작'이라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 도미이치의 아내와 갓난아기는 굶어죽었고, 광인이 된 도미이치는 장작에 불상을 새기는데 그 불상이 신통력을 발휘해 마을에 내분이 생겨 붕괴했다는 이야기였다...

마을 관습, 또는 집단 이기주의로 피해를 받았던 누군가가 복수한다는 이야기는 흔한 편입니다. 하지만 다테나리 마을과 '반작'이라는 설정은 탄탄하고, 수록작 중 제가 기대했던 '괴담'의 정의에 가장 충실해서 무척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교넨보가 겪었던 다테나리에서의 체험은 섬찟하면서도 이야기도 완성도가 높았기 때문입니다. 복수심에 불탔던 도미이치가 마을을 붕괴시키는 전개는 정말로 설득력이 넘치거든요. 혼자서는 역부족인 상황에서, 일종의 '초능력(?)'으로 가쿠넨 스님의 지배력을 무너트리는 과정이 아주 생생하면서도, 그럴듯했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했을텐데, 도적단이 미시마야를 습격한다는 이야기는 왜 등장시켰을까요? 억지스럽고, 이야기에 별로 도움도 안 됐는데 말이죠. 아오노 리이치로와 오치카의 관계를 진전시키기 위한 수단이었겠지만, 둘의 관계도 급발진 느낌이 강했습니다.

그래도 수록작 중에서는 베스트로 꼽겠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이 작품은 영상물로 만든다면 아주 볼 만 할 거라는 확신합니다. 특히 마지막에 '이형'이 된 도미이치가 "이 세상에 부처 따위는 없다!"고 외치는 장면이 말이죠. 조금 찾아보니 전작은 TV 드라마화가 된 것 같은데, 이 작품도 드라마로 나오면 좋겠습니다.

2010/03/16

마노스케 사건 해결집 - 하타게나카 메구미 / 김소연 : 별점 3점

마노스케 사건 해결집 - 6점
하타케나카 메구미 지음, 김소연 옮김/가야북스

한시치 체포록에 이어 연이어 읽게 된 에도물. 마을의 나누시 (일종의 동네 이장?) 후계자인 주인공 마노스케가 마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문제들을 중재하는 이야기가 실린 단편 옴니버스물입니다. 제목은 "사건해결집"이라고 되어 있고 홍보도 일상 미스터리라고 하고 있는데 반해 그다지 대단한 추리물은 아닙니다. 하긴 17~18세기의 에도에서 봉행소에서 관여할 정도가 아닌, 소소한 상인급 인물들의 재정이 주였던 나누시에게 대단한 사건이 있을리가 없었겠지만요. 추리물보다는 일상 속 유쾌하면서도 소소한 드라마 정도로 보는게 맞습니다.

그래도 일단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일상계 작품이라는 특이함이 좋았고, 워낙에 작품 자체가 유쾌하면서 사람사는 냄새가 물씬 나는 이야기들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사건을 의뢰하는 사람이 있고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주요 이야기이기에 추리적인 부분도 약간이나마 포함되어 있으며, 주인공 마노스케와 그의 친구들같은 독특한 캐릭터가 그야말로 작품에서 뛰어논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톡톡튀는 맛도 좋습니다. 나누시의 후계자이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청년이 되면서 정줄을 놓아버렸다는 평가를 받는 허술해보이고 장난기넘치지만 의외로 총명한 청년 마노스케가 아주 마음에 들기도 했고요.
에도물다운 치밀한 묘사 역시 볼거리입니다. 에도의 유곽 요시와라와 기녀들에 대한 묘사, 당대 사람들의 생활사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요시와라같은 경우 생각보다는 꽤 자유분방하고 일반 백성들과 연계된 오픈된 공간으로 묘사되는 등 참고할만한 (?) 내용이 많더라고요. 차남은 완전히 찬밥신세였다던가, 가게를 이어나가는 우선순위 같은 당대의 시대상을 알게되는 현학적 재미도 충분하고 말이죠.

딱 한가지 아쉬운 점은 결국 마노스케와 세이주로도 철이 들고 성장한다... 는 성장기 같은 느낌도 전해주는 탓에 만약 시리즈가 이어진다 하더라도 이전만큼 유쾌한 모습은 보여주지 못할 것 같다는 것입니다. 마노스케의 유쾌한 매력을 계속 즐기고 싶은데 후속작 소식도 없고 하니 작가의 다른 작품이나 찾아봐야겠네요.

개인적인 별점은 3점으로 추리적 요소가 부족해서 점수를 좀 짜게주기는 했는데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나오키상 후보에 오를 정도의 작품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어쨌건 역사물을 좋아하시면서도 유쾌하고 가벼운 소품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하고 싶네요.

덧붙이자면, 저자는 원래 만화가 출신이라고도 하는데 작가 정보에 만화쪽 이력은 나와있지 않군요. 작품에서의 디테일한 묘사와 유쾌한 분위기 때문에 만화도 한번 찾아보고 싶었는데 약간 아쉽네요. 설마 일본에서도 만화쪽을 소설에 비해 차별하는 풍토가 있는건 아니겠죠? 혹 작가의 만화 작품 아시는 분 계시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오노부의 진실>
시집안간 마을 처녀가 임신했는데 아버지를 찾아달라는 그 가족의 청을 마노스케가 묘한 인연으로 받아들인다는 이야기로 마노스케가 사건에 발을 담그게 되는 과정부터 시작해서 결말까지 일사천리로 달려주는 유쾌한 작품입니다. 추리적으로는 대단한 것은 없지만 "함정수사"의 초창기같은 발상이 에도시대 분위기와 맞물려 무릎을 치게 만들더군요.

<감 반개>
자수성가했지만 상처한 뒤 홀로 살아가는 전당포 주인의 감나무에서 감을 훔쳐 따 먹은 인연으로 마노스케와 친구들이 전당포 주인의 옛 사랑 이야기와 엮이게 되는 내용인데 그야말로 소품이라 별로 언급할건 없네요. 일상 속 드라마 그 자체라 생각되긴 합니다.

<만년청의 주인은?>
고가라고는 하지만 결국은 화분일 뿐인 "만년청"이라는 화분의 소유권 다툼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재미 포인트는 세가지인데 첫번째는 에도시대 유행했다는 "만년청"이라는 화분에 대한 현학적 재미, 두번째로는 갑자기 등장한 마노스케의 약혼자(?)와 그에 따른 왁자지껄하는 분위기, 세번째는 주인이 누구인가에 대한 나름 진지한 추리적인 탐구가 벌어지는 것이죠. 약혼자를 자칭한 오스즈씨의 당찬 모습과 설득력있는 추리가 마음에 들었던 작품입니다.

<누구의 아이인가>
다이묘 휘하 무사가 자신의 후계자인 손자를 찾는 이야기로 한장의 편지를 통해 진지한(?) 수사를 펼쳐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중간에 삽입된 유령 이야기를 통한 복선과 결말도 마음에 들었고요. 그 외에도 마노스케가 갑자기 정줄을 놓아버린 이유를 짐작케 하는 에피소드가 등장하는 등 여러가지로 즐길거리가 많아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병문안 가는 길>
마노스케가 약혼자 스즈와 인연이 있는 마타시로를 병문안 가는 길에 선물을 사기 위해 들른 가게에서 주운 개(칭)와 불량배들에게서 구해준 아가씨 오신을 둘러싼 소동이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이 단편집 안에서 가장 추리적인 재미가 많은 작품입니다. 정체를 숨기려고 하는 오신이 어느 동네 사람인지를 맞추는 과정이 셜록 홈즈식의 디테일한 관찰에 따른 추리로 펼쳐지는 것도 볼만했고 오카핏키가 찾는 고린이라는 아가씨의 정체를 밝히는 마노스케의 모습 역시 추리적으로 비약이 심하긴 하지만 나름의 설득력은 갖추고 있더군요. 그 외에도 마노스케가 정줄을 놓아버린 이유가 살짝쿵 등장하기도 하는 등 잔재미도 쏠쏠해서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고싶네요.

<고타 유괴사건>
마노스케의 친구이자 역시 나누시의 후계자인 세이주로의 동생 고타가 유괴되는 이야기로 에피소드들 중에서 가장 강력범죄가 일어납니다. 마지막 편이기 때문인지 모든 등장인물이 총 출동하며 - 마노스케의 첫사랑 오유와 드센 약혼자 오스즈양까지! - 추리적으로도 재미가 쏠쏠해서 몸값의 에도스러운 전달방법도 기발하고 사건 해결까지의 과정 역시 설득력있게 잘 짜여져 있습니다. 결국 마노스케의 결혼식으로 마무리되는 대단원 역시 깔끔하게 정리되고 있어서 단편집을 잘 마무리하고 있다 생각되네요. (마노스케의 성장으로 대미를 장식하는데, 앞서 이야기했듯이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운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2022/07/01

삼개주막 기담회 - 오윤희 : 별점 2점

삼개주막 기담회 - 4점
오윤희 지음/고즈넉이엔티

아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포나루에 있는 , 과부 주모가 세 아이와 함께 운영하는 삼개주막을 찾은 손님들이 하는 기담 내지 괴담을 엮은 단편집입니다. 모두 여섯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조선 후기를 무대로 하고 있으며, 한국적인 소재들이 등장하는게 눈길을 끕니다. 묘사도 마음에 들고요. 특히 여러 한국 요리 묘사가 좋습니다. 실제로 주막에서 먹었음직한 요리들이기 때문입니다. 숙소와 주막을 겸하는 객주집에 대한 상세한 묘사도 마음에 들고요. "열녀" 속 등장인물인 허씨 가문의 아이 율이가 후일 장사의 귀재인 허생전의 허생이 되었다던가, 주막집 장남 선노미가 연암 박지원의 기담회의 이야기 꿈이 된다는 등 실제 역사와 고전을 버무리는 팩션 스타일 전개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괴담치고는 섬찟함이 부족하다는건 문제입니다. 단순한 치정극이 이야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탓입니다. 알 수 없는 초자연적인 존재라던가, 인간이 더 무섭다는 식으로 공포를 자극하는 이야기는 전무합니다. "열녀"에서 허씨 가문 도련님이 본 건 그네를 타는 미모의 아낙이 아니라 목을 맨 형수 정씨의 사체가 흔들리는 모습의 환영이었다는 정도만 눈여겨 볼 만한데, 이는 오노 후유미의 "귀담백경" 속 "마음에 들다"와 똑같은 설정이라서 "귀담백경"을 읽은 저의 공포심을 자극하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이미 아는 내용에서 무서움을 느낄 이유는 없으니까요. 그네를 타는 아낙 정체를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마음에 들다"보다 오히려 못하기도 하고요.

이야기들도 앞서 설명드린 몇몇 요소를 제외하고는 딱히 한국적인 부분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도 아쉽습니다. 특별히 시대 배경을 따른다기보다는 일본 괴담물에서 보았음직한 내용이 많았기 때문이에요. 사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를 배경으로, 특정 가게를 찾은 손님으로부터 듣는 괴담물이라는 설정부터가 미야베 미유키에도물의, 그 중에서도 '미시마야' 시리즈와 너무 비슷하지요. 선노미가 괴담을 그림으로 그린다던가, 기담을 이야기하는 이야기꾼 역할을 맡게된다는 것도 미시마야 시리즈와 유사하고요. 이야기를 도맡아 '듣는' 역할이 아니라 들은 이야기를 '전해주는' 역할을 한다는걸로 역할만 반대로 만들었을 뿐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설정도 공양을 겸해 그림을 그리는 미시마야보다는 빈약해 보였고요. 

또 첩의 저주로 자기가 사산했다고 생각한 정실 부인이 첩과 첩의 아이를 죽였는데, 그 이후 정실 부인이 낳은 딸이 첩의 환생이었다는 "첩의 환생", 과거 보러 가는 길에 우연히 찾은 폐가가 알고보니 과거 보러가던 원래 친아버지인줄 알았던 양부의 모함으로 멸문지화를 당했던 친부 집이었다는 "과거 보러 가는 길", 유괴된 아이가 '고독'을 만들기 위한 재료로 쓰이다가 죽은 뒤 복수를 하기 위해 돌아온다는 "유괴된 아이"는 다 어디서 본 듯한 이야기들입니다. 저는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이계록" 등의 중국 괴담이 바로 떠올랐어요. 

수록작 중 독한 시어머니가 남편을 잃은 며느리를 살해한 뒤, 자살한 것으로 꾸며 '열녀' 칭호를 받으려 했다는 "열녀"정도만 조선을 무대로 했다는 인상을 주지만, 앞서 말했듯 그네를 타는 여인의 환각 등 다른 일본 괴담물에서 이미 접했던 설정이 등장해서 그리 신선한 느낌을 주지 못합니다.

이리저리 꼬인 가족 관계를 남발하는 전개도 좋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과거 보러 가는 길"의 선비 세진의 아버지가 알고보니 친아버지가 아니라 원수였다던가, "열녀"의 정씨 남편은 전처의 아들이라 시어머니가 도련님을 더 챙겼다던가, "옹기장의 꿈" 속 옹기장이 박씨의 아들 희동이는 알고보니 옹기장이의 친동생같은 제자 덕배의 씨였다던가, 심지어 주막집 맏아들 선노미까지 도망친 노비의 아이였다는 식인데, 너무 지나치죠.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지금의 결과물은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물의 아류작으로만 보입니다. 조선 후기를 무대로 했다면 더 한국적인 소재가 등장했어야 했습니다. 별로 무섭지도 않아서, 딱히 권해드릴 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저도 다음 권은 읽어볼 생각이 별로 들지 않네요.

2017/03/19

벙어리 목격자 - 애거서 크리스티 / 원은주 : 별점 3점

벙어리 목격자 - 6점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원은주 옮김/황금가지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어리석은 낙천주의 따위는 가지지 않았다. 쉽게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는 게 보통이었다. - 에밀리 아룬델이 누군가 자신의 생명을 노리고 있다고 생각할 때의 묘사

살인의 특징은 살인자의 기질을 암시해 주기 때문에 범죄의 실마리를 잡는 데 있어 필수야. - 포와로.

마켓 베이싱의 리틀 그린 하우스에 거주하는 부유한 노부인 에밀리 아룬델은 조카들과 함께 한 부활절 연휴 때 계단에서 떨어져 다쳤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았고, 애견 밥이 가지고 놀던 공 때문인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무언가 이상하다는걸 눈치챈 에밀리 아룬델은 포와로에게 편지를 보냈고, 무려 두 달 이 지나서야 이를 받은 포와로는 마켓 베이싱으로 향했지만 에밀리 아룬델은 이미 한 달 전에 사망했다...

몸 속 필수 영양소 중 하나인 고전 본격물 성분이 많이 부족해져서 집어든 여사님 장편입니다. 제게는 탄수화물급 영양소거든요. 바로 전 읽었던 "도서관의 살인"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아 제대로 된 고전 본격물을 선택했습니다. 의도는 아니었지만 범인이 누구인지를 밝혀내는 후더닛물이더군요. "도서관의 살인"과 마찬가지로요.

포와로가 사건에 뛰어들게 되는 이유인 노부인의 의뢰 편지가 그녀가 사후 발송되었다는 도입부부터 무척 흥미롭습니다. 뒤이어 다양한 등장인물의 증언들로 진상에 접근해 가는 과정 역시 고전 본격물다운 공정함을 자랑하고요. 무엇보다도 고전 본격물의 핵심인 동기 부여와 이에 따라 용의자들이 속출하는 전개가 대단합니다. 주요 관계인인 찰스와 테레사 남매, 벨라와 타니오스 부부 모두 유산 상속에 혈안이 된 것으로 묘사되어, 누구 한 명 용의선상에서 빠지지 않는 덕분입니다. 심지어 찰스와 테레사의 어머니는 남편을 독살했다는 의혹을 받은 사람이라는 설정까지 갖췄으며, 그 외 등장인물 모두 수상한건 마찬가지에요. 이미 유산을 상속받은 로슨 양이 심령술에 빠진 이상한 노처녀로 그려지는 식으로요. "도서관의 살인"에서 가장 부족했던게 바로 이겁니다. 이런게 본격물이죠!

하지만 이러한 점은 본격물이 갖춰야 할 기본 요소에 불과합니다. 정말로 탁월한건 증언과 인물 묘사가 결합되어 독자를 교묘하게 함정에 빠트리는 전개입니다. 놀랍게도 작품 속 등장인물들의 증언은 모두 진실이에요. 하지만 말을 한 사람이 워낙 수상한 탓에 독자들 모두 "이 사람 말은 못 믿겠는데?"라는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뒤이은 증언들도 부정하게 되어 결국 진상에 이르지 못하게 되지요.
찰스 아룬델이 한 말이 대표적입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에밀리 아룬델을 만났을 때, 그녀가 수정한 유언장을 보여주었다는 증언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독자들은 모두 찰스가 돈 때문에 심한 짓도 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어떤 식으로든 에밀리 죽음에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하며, 유언장을 미리 보았다는 증언은 자신이 유산을 상속받지 못하리라는걸 이미 알고 있었기에 에밀리를 죽일 동기가 없다고 위장한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게다가 여동생 테레사와의 다툼은 증언의 신빙성을 더욱 떨어트리고요.
이야기 전체가 이런 구성이라서 저는 함정에 푹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런게 본격물이죠!

세세한 디테일로 범인을 드러내는 점도 본격물스럽습니다. 타니오스 부인이 테레사를 따라, 하지만 보다 저렴하게 옷을 구해 입었다는 묘사와 에밀리 아룬델의 가족들에 대한 설명, 주치의 그레이너 박사가 후각을 상실했다는건 캐릭터를 설명하기 위한 단순한 설정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뭐 하나 허투르게 활용되지 않아요. 로슨양이 거울로 본 브로치는 이니셜이 반전되어 있을 것이며 그것은 아나벨라 타니오스의 약자다, 브로치는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가격이 싸져 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테레사 패션을 따라하는 벨라가 서슴없이 구입했다. 벨라는 화학 교수의 딸로 인을 구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레이너 박사는 인 중독의 뚜렷한 징후인 입에서 나는 마늘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는 식으로 모두 추리에 이용되니까요. 심지어 아무 의미 없어보였던 로슨 양의 강령회 관련 증언까지도요. 그녀는 에밀리 양이 강령회 때 빛나는 심령체에 의한 "후광을 둘렀었다"라고 이야기하는데 모두가 정신나간 소리라고 치부했지만, 포와로는 그것이 '인관성 호흡'이라는 것을 간파하거든요. 이런게 본격물이죠!

트릭도 괜찮습니다. 간이 나빴던 피해자에게 인을 투여하여 간견병과 별 차이 없는 예후로 사망에 이르게 한다는 건데, 굉장히 현실적이었어요. 로널드슨 의사의 자연사 확진 판정에 많은 것을 기대고 있기는 하나 에밀리가 평소 유사 증상을 오래 앓고 있던 환자라 충분히 걸어볼만 한 도박이었으니까요. 피해자가 자주 먹던 캡슐 중 하나에 투입하여 일종의 시한 장치를 만든 것도 그럴듯했고요.

또 이번에 처음으로 제대로 된 완역판이라 주장하는 판본으로 읽었는데, 확실히 번역도 한층 높은 완성도가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포와로의 프랑스 어를 섞는 말버릇도 맛깔나게 잘 살려 놓았으며, 헤이스팅스와의 재담도 재미있게 그려져 있거든요. 헤이스팅스가 이렇게나 유머러스하다는건 처음 알았네요.

그러나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없지는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등장인물들을 모두 수상쩍게 그리는 묘사가 과해서 읽는 내내 짜증이 난다는 것이 첫 번째 문제입니다. 이게 왜 문제냐 하면, 실제 범인은 아니지만 제발 죽어줬으면... 하고 바라게 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문제는 포와로의 추리가 진상에 도달하여 진범을 밝혀내기는 하는데, 아무런 증거가 없다는 점입니다. 심약한 타니오스 부인이 시체를 재검시하자는 포와로의 주장에 겁을 먹고 자살을 하지만, 실제 재검시를 했어도 사인을 밝히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설령 실제 사인이 밝혀졌다고 해도 타니오스 부인이 그랬다는 증거도 없고요. 로슨양이 거울을 통해서 목격한, 타니오스 부인이 계단에 장치를 설치했다는 증언도 얼마든지 빠져나갈 수 있었을거에요. 마침 범인이 딱 좋게 자살했을 뿐, 제대로 범인을 옭아매었다고 보기는 여러모로 어렵습니다. 뭐 이런 점도 본격물이기도 합니다만.

하여튼,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장, 단점 모두 고전 본격물스러운 작품입니다. 저와 같이 고전 본격물 성분(?)이 부족해 지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책 뒤 소개글처럼 "훌륭한 평균작품보다도 잘못 쓴 크리스티 작품이 더 낫다" 이니까요. 이 작품은 잘 못 쓰지도 않았고요.

2022/02/27

미스테리아 36호 - 미스테리아 편집부 : 별점 3점

미스테리아 36호 - 6점
미스테리아 편집부 지음/엘릭시르

출간되는 것 자체가 고마운 추리, 장르 문학 전문 계간지 미스테리아 36호입니다. 80년대 대중 문화에 대해 분석하는 특집 때문에 구입하였습니다. 

잡지 특성 상 '대중 문화'도 추리, 장르 문학을 기반으로 한 부분을 많이 다루고 있는데, "인간시장"과 "어둠의 자식들"에 대한 분석에서 시작하여, 80년대 추리문학계의 왕성한 움직임을 '영상화'를 통해 잘 설명해주는 부분이 시선을 잡아 끌었습니다. "추리극장"과 "베스트셀러 극장"이 많은 한국 추리 소설을 원작으로 영상화했다는 것도 새로왔지만, 뒤이어 마츠모토 세이초의 작품을 무단으로 번안하여 영상화했다는 건 정말 처음 알았거든요. 심지어 대표작인 "제로의 초점"을 그냥 무단으로 표절해서 방영했다니 놀랍습니다. 그 외에도"과다 지불한 중매 사례비", "안개의 깃발", "얼굴", "수사권 외의 조건", "목소리", "조난"까지 모두 일곱 편이 드라마화 되었는데, 이 중 제대로 원작을 알린건 "베스트셀러 극장"에서 제작했던 3편 뿐이라니 정말 무식한 시대였네요. 

그나마도 제대로 베끼지 못해서 사건이 시작되는 기본 설정 정도만 따 온 정도에 그쳤다는데, 예를 들어 "제로의 초점"의 핵심은 어려웠던 시기 몸을 팔았던 과거를 은폐하려 했던 여성의 처절한 몸부림입니다. 그러나 무단 영상화 버젼에서는 이걸 그냥 '화류계에 몸 담았던 과거' 정도로 퉁치고, 남편을 위해 자살한다는 순애보로 바꾸었다니 이래서야 통속적이고 전형적인 신파극일 뿐입니다. "수사권 외의 조건"도 핵심 소재였던 흘러간 유행가가 '그때 그 사람' 이라는건 와 닿는 변주였지만, 역시나 내용은 치정 멜로물이었다고 하고요. 이 책에서 소개된대로, 사회파 추리소설에서 '사회성'과 '역사성'을 삭제해 버렸기 때문에 남는건 개개인의 사연과 이를 포장하는 한국식 신파 밖에는 없게 된 셈입니다. 이런 류의 번안은 생각도 못했는데 한 번 찾아봐야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이런 반쪽짜리 표절 드라마 이야기 다음에는, 영화를 통해 80년대를 설명하는 글이 이어지는데, 당대의 히트작이었던 "적도의 꽃"은 '아파트'에 대한 특별한 해석이, "서울 무지개"는 외설, 에로 영화가 사회물로 포장될 수 있었던 여러가지 배경에 대한 설명이 상세해서 볼 만 했습니다.

80년대 일어나 엄청난 충격을 안겨다 주었던 '우범곤 대량 살인 사건'에 대한 글도 좋았습니다. 사건이 왜 발생했으며, 어떻게 커졌고,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와 그 후일담까지 모두 알 수 있었던 좋은 르포르타주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쓰여진 사건과 실화 논픽션을 모아 출간해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유리 겔러의 초능력 소동을 다룬 글도 빼 놓을 수 없네요. 왜 '초능력'이 인기를 끌었는지를, 10년 전 일본에서의 대 유행과 결합하여 설득력있게 설명해 주고 있는 덕분이지만, 무엇보다도 저 역시 유리 겔러 쇼를 80년대 TV로 직관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그 당시 사회에 준 충격은 정말 어마어마했었습니다.

물론 이번에 수록된 기사들이 80년대 사회, 문화 현상을 대변한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TV 드라마와 영화, 추리 소설 등 굉장히 지엽적인 부분의 분석에 그치고 있는 탓입니다. 그것도 드라마의 경우는, 좋은 부분이 아니라 나쁜 부분을 언급한다는 측면에서 딱히 가치있는 정보는 아니었고요. 제 기억에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번안했던 "열 개의 제웅 인형"은 노래와 분위기 모두 굉장했던 수작이었는데, 이렇게 성공적이었던 번안물도 함께 소개해 주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하지만 대중 문화, 특히 추리, 장르 문학과 관련하여 80년대를 조망한다는 특집의 기획 의도에는 충분히 부합하는 좋은 기사들이였습니다. 제 기대에도 역시나 충분히 부합했고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마지막으로, 함께 수록된 단편 3편에 대한 상세 리뷰는 아래에 따로 소개드립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모두의 약점" 

지후는 친구 이하리와 함께, 떡볶이 집 주인 동생 서소하의 부탁으로 한 2학년 여학생을 찾아 나섰다. 부족한 소하의 인상착의 설명에도, 가방이 없었던 등의 디테일에 주목하여 조사한 끝에, 그 여학생이 박재이라는걸 알아냈다. 그러나 소하가 여학생을 찾은 이유, 그리고 박재이가 멀리 떨어진 식자재 마트 근처에 간 이유 등은 모두 밝혀지지 않았는데...

여고생들이 탐문 수사와 추리를 통해 특정 학생을 찾아낸다는 일상계 추리물입니다. '엘릭시르 미스터리 대상' 단편 부문 상을 수상했다는 작품과 이어지는 세계관이라는데, 딱히 특별한 설정이 사용되지는 않아서 읽는데 부담은 없었습니다. 지후가 박재이를 찾아내는 과정은 잘 짜여진 추리물로 손색이 없는 수준이라 만족스러웠고요.

그러나 지후와 새아버지, 새언니와의 관계 설정은 비중에 비하면 딱히 의미가 없었습니다. 최소한 이 작품만 볼 때는 말이지요. 그리고 서소하의 부탁을 지후와 하리가 선뜻 받아들이는 것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식자재 마트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어묵을 사려던 할아버지의 행동을 목격했을지 모를 여학생을 찾는다는 서소하의 동기 역시, 여학생을 찾기 전에 걱정했던대로 소문이 날 거였다면 이미 났을 거라 설득력이 약했습니다. 오히려 그 여학생인 박재이를 찾아내어 입막음을 부탁했다면, 긁어 부스럼이 될 수도 있었을테고요. 또 박재이 입으로 식자재 마트에 간 이유를 털어놓는 결말도 좋은 추리물로 보기는 어려웠어요. 박재이가 이혼하여 따로 사는 친아빠를 찾아가려 했다는 이유는, 작중에서 추리할 수 있는 단서가 거의 없어서 공정하지도 않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나쁘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아주 좋지도 않았던 평작입니다. 연작 단편 중 한 편이라 따로 떼어놓고 읽으면 좀 애매했던 부분이 있었던게 아닐까 싶네요. 시리즈 전체를 한 권에 모은 단편집이 출간되면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

"사라진 궁녀" 

조선 태종 시대의 궁궐을 무대로 한 괴담물입니다. 기승전결이 없고, 제대로 된 설명이 뒷받침되지 않는 이야기를 시대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는 미야베 미유키에도물을 떠올리게 합니다.

궐 내에서 사라진 궁녀가 어디로 갔을지?라는 의문에 대한 답이, '승은을 입어서 다른 신분이 되었다'는건 상당히 기발했지만, 그렇다면 '사라졌다'는 소문이 돌 리 없다는 점에서는 문제입니다. 사라진 정의궁주의 궁녀 단지의 행방도 설명되지 않는건 마찬가지였고요. 단지가 승은을 입어 궁주가 되었다면, 그걸 궐내 궁녀들이 모른다는건 애초에 말이 안되겠지요. 효순 궁주가 병화어였다는 결말도 이게 뭔가 싶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한 편의 이야기로는 완결성도 없고 여러모로 애매해서 감점합니다. 괴담물로는 나쁘지 않지만, 별로 무섭지 않다는 문제도 큽니다.

"수전 데어의 첫 번째 사건" 

여류 추리 소설가 수전 데어는 친구 크리스타벨의 저택에서 조 브롬펠의 아내 미켈라가 크리스타벨의 동생 랜디를 유혹하는걸 목격했다. 미켈라는 크리스타벨과 결혼을 약속했었던 조 브롬펠을 꼬드겨 결혼했던 악녀였다. 그리고 그날 밤, 조 브롬펠이 살해당했고, 자수정 반지를 끼고 있던 크리스타벨이 유력한 용의자로 몰리게 되었다. 범인의 손만 목격했다는 하인 마스가 범인이 '붉은 색 보석' 반지를 끼고 있었다고 증언했던 탓이었다.

발표 당시에는 애거서 크리스티와 맞먹는 인기를 누렸다는 미뇬 에버하트의 명탐정 수전 데어 시리즈입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지만 시리즈 첫 작품이기도 하지요. '수전 데어 비긴즈'랄까요.

하지만 추리적으로는 별 볼일 없었습니다. 추리소설 황금기 단편답지 않게 '트릭'이라는게 등장하지도 않고, 동기는 마지막 해결 과정에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공정하지도 않고, 독자가 풀어낼 수수께끼도 별로 없다는 뜻이지요. 

범인 트라이언 웰스가 끼고 있던 반지에 대한 수수께끼가 등장하기는 합니다. 반지 보석 알렉산드라이트는 주광과 야광에서의 색깔이 달라서, 낮에 확인했을 때는 초록색이었다는 거지요. 하지만 이건 범인의 의도도 아니었고, 우연에 의한 것입니다. 또 이 정도로 극명하게 색깔이 바뀐다는건 설득력이 약합니다. 차라리 총을 쏠 때 불 붙인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고 있어서, 그걸 반지로 착각했다면? 이라는 식으로 풀어내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랜디에게 빌려준 돈 대신, 크리스타벨의 저택을 압류하여 사업상 급한 불을 끌 생각이었던 트라이언 웰스의 동기도 그럴싸 하기는 했지만, 경찰 수사 과정에서 이를 계속 숨길 수 있었을 것 같지도 않고요. 동기만 드러나면 범인이 누구인지는 쉽게 알 수 있었을테니, 잘 짜여진 범죄물이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결론내리자면 추리 퀴즈에 가까운 이야기였습니다. 그나마도 그렇게 흥미로운 퀴즈는 아니라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2016/01/18

엠브리오 기담 - 야마시로 아사코 / 김선영 : 별점 3점

엠브리오 기담 - 6점
야마시로 아사코 지음, 김선영 옮김/엘릭시르

아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딘가에서 읽었던 서평이 기억에 남아 주말 동안 읽기 위해 집어든 책으로 에도, 아니 메이지로 보이는 시대를 배경으로 한 환상 문학 단편집입니다. 온천에 대한 여행기를 쓰는 길치 이즈미 로안과 그의 짐꾼이자 동료인 미미히코가 등장하는 9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시대물 설정, 거기에 전부는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괴담이라는 점에서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물이나 교코쿠 나쓰히코의 작품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미야베 미유키 작품들보다는 환상 문학에 훨씬 가깝고, 교코쿠 나쓰히코의 작품들보다는 읽기 쉽고 명확한 내용이라는 점이 차이점입니다.
수록 작품의 스펙트럼이 넓다는 점에서는 레이 브래드버리나 리처드 매드슨 등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구태여 구분하자면 "엠브리오 기담"은 일상계 크리처물, "라피스 라줄리 환상"은 윤회 판타지, "수증기 사변"과 "끝맺음"은 일상계 괴담, "얼굴 없는 산마루"는 일상계 드라마, "있을 수 없는 다리"는 전형적 괴담, "지옥"은 끔찍한 고어 호러, "빗을 주워서는 아니 된다"는 괴담 분위기의 자살극으로 넓은 장르를 포용하기 때문입니다("자. 가요." 소년이 말했다는 그냥 사족입니다)

이렇게 많은 장르물을 포괄하면서도 대체로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보인다는 점도 대단합니다. 코미디에서 호러까지 오가는 선배 작가들만큼의 넓은 변화 폭은 아니긴 하지만요. 이 정도면 이름 모를 작가 치고는 제법이라 생각했는데, 후기를 보니 야마시로 아사코는 오츠 이치의 또 다른 필명이더군요. 솔직히 취향이 아니라 많은 작품을 찾아 읽지는 않았지만, 특유의 팔색조 매력은 여전한 듯 하여 아주 반가웠습니다. 그러고 보니 최초 서평이 기억에 남았던 이유도 오츠 이치의 이색작이라는 소개 때문이었던 듯 싶습니다. 이놈의 기억력...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말도 안 되는 설정이 제법 있는 등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허나 이 정도면 null괴담물로 기본은 해 주었으며, 오츠 이치의 단점이라 여겼던 만화적인 상상력도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좋은 작품입니다. 전체 평균 별점은 2.5점입니다만, 사족인 마지막 이야기를 제외한 별점은 3점입니다. 괴담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권해드리는 바입니다.

덧 1 : 앞서 말씀드린 대로 수록 작품들의 장르가 천차만별이지만 절반 이상이 '괴담'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추리 / 호러' 장르로 분류합니다.

덧 2 : 저도 온천을 좋아하는데 딸아이가 좀 더 크면 온천이나 다녀봐야겠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끔찍한 경험은 사절입니다만 끔찍한 경험을 한 이즈미 로안과 미미히코가 그래도 온천을 다니는 것을 봐서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게 분명하겠죠.

단편별 상세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엠브리오 기담"

미미히코는 갓난아기 전 인간의 모습인 '엠브리오'를 우연히 구했다. 금세 죽을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엠브리오는 살아남았고, 도박빚에 시달리던 미미히코는 엠브리오를 이용하여 돈 벌 계획을 세우는데...

인간의 태아(이전 단계)인 '엠브리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엠브리오에 대한 설정 - 하얀 애벌레 같아 허여멀건 몸뚱이에 볼록 튀어나온 배, 발달이 덜 되어 단순한 돌기에 지나지 않는 손발, 몸에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머리에 점을 콕 찍은 듯한 눈, 도마뱀처럼 꼬리 같은 것까지 있고 갓난아기 피부와 내장 표면의 딱 중간 정도 피부로 쌀뜨물을 먹고 미지근한 물을 좋아한다 등등 - 이 실제 존재하는 생물처럼 상세하다는 것이 재미 요소입니다. 이 작품집 전체를 관통하는 '기묘한 상상력'이 크리처에 발휘된 환상 문학이지요.

다만 결말은 아쉽습니다. 아이를 원하는 부부에게 엠브리오를 넘겨 무사히 출산하게 하고, 수년이 지나 미미히코와 그 아이가 재회한다는건데, 공식대로라서 식상했던 탓입니다. 그래도 더 이상의 좋은 결말을 찾기는 어려웠으리라 짐작되며, 전체적으로는 무난한 수준이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라피스 라줄리 환상"

도매 서점에서 일하는 린은 행수 어르신의 지시로 이즈미 로안과 미미히코의 여행에 동행했다. 언제나처럼 길을 잃은 일행은 마침 발견한 마을에서 잠깐 머무는데, 다음날 촌장의 증손자가 고열로 쓰러졌다. 마침 린이 가지고 있던 약으로 아이는 생명을 구했고, 답례로 촌장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라피스 라줄리(유리)'를 선물하는데...

린이 '라피스 라줄리'를 받은 이후, 인생을 되풀이한다는 윤회 판타지입니다. 윤회를 하면서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내용도 잔잔하니 읽을 만한데, 작품의 핵심은 반전입니다. 자살을 하면 지옥에 간다는 촌장 노파의 말을 무시하고, 자신이 태어날 때 죽는 어머니를 위해 뱃속에서 탯줄을 스스로 목에 감는 방법으로 자살을 한다는 결말이거든요. 행복한 결혼 생활도 해 보았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공부도 해 보았지만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서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는 것인데 참 절절했습니다.
다른 수록 작품과는 다르게 미미히코 시점이 아니라 린 시점 묘사라는 점도 특이했고요.

물론 단점도 있습니다. 라피스 라줄리의 힘이 어디서 온 것인지 등 세세한 설정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고, 린은 이전 기억을 계속 쌓아나가기 때문에 환생할 때마다 강해질 수밖에 없는데 지나칠 정도로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건 설득력이 약해 보였거든요. 미래도 읽을 수 있고, 그에 어울리는 공부도 한다면 세계를 바꿀 만한 재산이나 세력을 손에 넣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그래도 평균 이상은 되는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수증기 사변"

로안과 미미히코는 언제나처럼 길을 잃은 뒤 산기슭 온천 마을을 찾아냈다. 둘은 마을의 허술하기 짝이 없는 여관에 묵으며, 마을 온천을 밤에 찾아가면 돌아오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밤에 온천에 몸을 담근 미미히코는 어린 시절 소꿉친구로 죽어버린 유노카를 온천에서 만는데...

저승과 연결되어 있는 온천을 그리고 있습니다. 유령이 등장하는 괴담으로 죽은 사람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이유, 어린 시절의 추억과 유노카의 죽음에 대한 진상 등 이런저런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기본적으로는 잔잔한 일상계입니다. 마지막에 미미히코가 유노카의 모습을 떠올리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문제는 너무 잔잔해서 극적인 재미가 없다는 겁니다. 유노카의 죽음이 단순 사고보다는 드라마틱했어야 합니다. 예를 들자면 사실은 미미히코의 잘못으로 죽었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끝맺음"

언제나처럼 길을 잃은 로안과 미미히코가 묵어 가게 된 바닷가 마을. 그곳은 모든 사물이 사람의 얼굴로 보이는 기묘한 곳으로 식재료마저 그랬던 탓에 미미히코는 음식을 입에 대지 못해 아사 직전에 놓이는데...

모든 사물이 사람의 얼굴로 보인다는 이토 준지스러운 상상력이 돋보이는 기묘한 작품입니다. 만화나 영화 같은 시각 매체로 발표되었더라면 굉장히 그로테스크했으리라 생각됩니다. 물론 상상의 여지가 더욱 많은 소설이 섬찟함을 느끼게 하는 데 더 좋긴 하겠지만요.

게다가 굶어 죽기 직전의 미미히코가 자신을 끔찍하게 따르던 닭 아즈키를 잡아먹고 살아난다는 결말도 마음에 듭니다.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인지를 잘 드러낸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자기 혼자 살아남기 위해 친구를 팔아넘기고 살아남는 왕따물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마을의 정체가 무엇인지 등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아 조금 감점합니다만, 이런저런 생각할 거리가 많은 작품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있을 수 없는 다리"

언제나처럼 길을 잃은 로안과 미미히코는 근사한 구름다리를 발견했다. 허나 마을에서는 구름다리는 이미 사십 년 전에 무너졌다고 했다. 둘의 말을 들은 숙소의 노파는 밤중에 넌지시 구름다리로 데려다 줄 것을 부탁했다. 그녀는 구름다리가 무너졌을 때 아들을 잃었는데, 지나는 여행객들로부터 다리에서 아들의 모습을 보았다는 말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었다. 미미히코는 다리에서 노파의 아들을 발견하고 둘의 상봉을 주선하는데...

감동적인 상봉을 기대했지만 실상 소년은 그야말로 '귀신'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차 있는 존재였다는 반전이 돋보입니다. 이전 수록작인 "수증기 사변"과 비슷한 작품이라 생각하고 읽다가 깜짝 놀랐네요. 하긴 이게 귀신의 본모습이겠죠.

반전에 더해 묘사도 아주 인상적입니다. 소설보다는 영상화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귀신이 본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의 묘사도 좋지만, 특히 귀신이 노파를 데려가려고 하자 그녀가 미미히코를 붙잡고, 미미히코는 욕설을 하면서 노파를 어떻게든 떼어 내려 하는 처절한 묘사가 기억에 남습니다.

재미도 있고 반전도 있는, 괴담으로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작품으로 별점은 4점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얼굴 없는 산마루"

언제나처럼 길을 잃은 로안과 미미히코가 우연히 방문한 마을 사람들은 미미히코를 보고 놀랐다. 이유는 그가 사고로 죽은 마을 사람 모키치와 똑같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미미히코가 자신과 똑같이 생기고 비슷한 인생을 살아간 모키치의 가족을 만나 자신의 인생을 돌아본다는 일상계 소품. 잔잔하고 여운을 주는 내용은 좋았습니다.

허나 모키치의 아내 야에의 말을 듣고 다시 여행을 떠난다는 뻔한 결말, 그리고 미미히코가 모키치와 모든 면에서 똑같은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는건 단점입니다. 그냥 닮았다고만 해도 충분했을 텐데 흉터까지 같다는 것은 무리수였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조금 쉬어가는 느낌의 작품입니다.

"지옥"

이즈미 로안과 미미히코는 여행 중 강도를 만났다. 사로잡힌 미미히코는 신혼부부 후지와 요이치와 함께 축축한 구덩이 속에 갇혔다. 셋은 강도 가족이 던져주는 육포 조각을 먹으며 삶을 이어갔는데, 강도들이 한 명을 꺼내 준다고 제안해서 여성 후지를 올려 보냈다...

구더기 그득한 축축한 구덩이 감옥 묘사도 사람 잡는데, '후지가 빠져나간 뒤 육포가 아니라 신선한 고기가 던져진다'에서 시작되는 공포스러운 묘사가 압권인 작품입니다.

핵심은 강도 가족이 사람을 죽여 먹고, 가죽으로 생활용품 등을 만든다는 설정으로 스코틀랜드의 소니 빈 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게 분명해 보입니다. 허나 단순히 영감을 얻은 수준은 아닙니다. 아이가 사람 얼굴 가죽으로 만든 가면을 쓰고 노는 등의 디테일이 잘 살아 있거든요.

이러한 묘사에 더해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전개도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미미히코가 머리카락을 엮은 줄을 이용하여 요이치를 끌어 올렸던 밧줄을 회수하고, 구덩이에서 탈출하여 역으로 강도 가족을 구덩이에 쳐 넣는 데 성공했는데. 나중에 사람들이 찾아가 보니 강도 가족이 구덩이 속에서 서로를 잡아먹고 있었기에 뚜껑만 덮고 도망쳐 온다는 결말까지 정말 손에서 떼기 힘들 정도로 몰입감을 선사해 줍니다. 이런 류의 돌직구 고어 호러는 오츠 이치의 특기이기도 하죠. "ZOO - seven rooms"처럼요.

물론 해당 단편과 단점은 동일합니다. 왜 강도 가족이 포로를 잡자마자 죽이지 않고 귀한 육포를 먹여 가며 살려두는지가 설명되지 않는 점 등 세부 설정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제법 있는 탓입니다.

그래도 섬찟함과 독자를 몰입시키는 맛은 수록작 중 최고라 생각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이전 작품이 쉬어가는 느낌이라 공포심이 더욱 배가된 듯한데, 목차도 작가의 의도인지 살짝 궁금해지는군요.

"빗을 주워서는 아니 된다"

전편의 경험으로 미미히코가 여행을 거부했기 때문에 이즈미 로안은 다른 고용인과 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여행에서 돌아온 로안은 미미히코에게 동행인이 죽었다며, 그의 죽음에 대해 알려주는데...

떨어진 빗을 줍는 것은 고통과 죽음을 줍는 것이기에 꼭 빗을 주워야 할 때는 발로 한 번 밟은 뒤 주워야 한다는 설정이 바탕입니다. 빗을 그냥 주웠다는 고용인이 머리카락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죽은 시체로 발견되는데, 입에 들어 있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니 엄청난 양이 나왔다는 부분까지는 평범한 괴담입니다.

그러나 노파가 빗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거짓말로 그가 지어낸 이야기이며, 머리카락은 죽은 어머니의 것이라고 밝혀지는 결말이 아주 독특했습니다. 괴담을 너무 좋아한 청년이 자작극을 벌이면서까지 괴담이 되려 했다는 내용이니까요. 누군가의 이야기가 괴담이 된다는 점에서 "백귀야행"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단순 괴담이 아니라는 점에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자. 가요." 소년이 말했다

결혼한 뒤 온갖 괴롭힘을 당하던 여자가 우연히 한 소년을 만났다. 소년은 그녀에게 글을 가르쳐 주는데...

이즈미 로안이 길치가 아니라 사실은 차원을 이동하는 능력을 가진 텐구의 자식이라는 설정을 알려주기 위한 이야기.

단순한 설정 보강용이라 하나의 작품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여자를 괴롭히던 시댁에 뭔가 천벌이 내렸다는 이야기라도 있었더라면 완결성이 있었을 텐데요. 별점은 빵점입니다.

2017/07/09

식물도시 에도의 탄생 - 이나가키 히데히로 / 조홍민 : 별점 2점

식물도시 에도의 탄생 - 4점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조홍민 옮김/글항아리

에도와 관련된 식물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 생각하고 읽은 책입니다. 소갯글도 그럴듯하고, 만든 모양새도 예뻐서 집어들게 되었네요.

그런데 생각과는 무척 달랐습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에도 시대, 즉 도쿠가와 막부 시대 뿐만이 아니라 일본 각지, 다양한 시대를 망라하여 여러가지 식물 관련 정보를 전해주거든요. 에도 시대로 한정하면 내용이 많지 않은건 당연하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이래서야 제목과의 괴리감이 너무 큽니다. 게다가 우리나라 이야기도 아니라서 큰 재미를 느끼기도 힘들었어요. 딱히 식물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닌 탓에 더욱 그러했죠.

또 등장하는 해석도 과장되거나 오버스러운 것이 많습니다. 에도가 인분을 기반으로 벼농사를 지어서 오물 통제가 가능한, 완벽한 '에코 - 리싸이클링 도시' 였다고 이야기하는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조금 남은 오물 잔류물도 바다에 영양을 공급하여 전설의 황금어장 '에도마에'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설득력이 낮습니다. 인분을 비료로 쓴 곳이 일본, 에도에 한정된 것은 아니잖아요? 닌자들이 직업 특성 상 각종 식물, 약재에 능통한 전문가들이었다고 설명하는 부분도 오버스럽기는 마찬가지고요.

물론 분량도 길고 주제가 독특한만큼 볼만한 정보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이야기한 닌자 이야기 중, 닌자가 '호로쿠다마'라 불리는 화약 장착 수류탄을 무기로 이용했는데 그 재료가 식물 쑥이었다는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초석은 질산칼륨의 결정으로, 닌자는 쑥에 오줌을 뿌려 흙 속에 묻은 후 미생물을 발효시켜 오줌 속 암모니아와 쑥에 함유되어 있는 칼륨을 반응시켜 질산칼륨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런 것을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정말로 대단해요.
가토 기요마사가 구마모토 성을 축성할 때, 과거 조선 출병 시 농성전을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다다미의 심으로 짚 대신 토란 줄기를 사용했다는 이야기도 인상적입니다. 일종의 보존식으로 벽에는 박으로 만든 박고지까지 발라 넣었다고 하네요. 지금 구마모토의 명물인 가라시렌콘(삶은 연근 구멍에 물에 갠 겨자와 된장 섞은 것을 넣고 밀가루와 콩고물을 묻혀 튀긴 향토요리)의 재료인 연근 역시 구마모토 성 해자에 비상 식량으로 재배되고 있었다니, 조선에서 어지간히 고생했나 봅니다.

하지만 이런 재미난 이야기들 역시 과학적인 사실에 기반한 것도 아니고, 출처나 자료가 제대로 제시되지 않아서 대체 무슨 사료를 기반으로 이야기하는지 불분명하다는 단점은 큽니다. 대표적인게 전국 시대 무장들이 어떻게 초식만 먹고 싸울 수 있었는지에 대한 고찰입니다. 무장들은 하루에 현미 5홉 정도를 먹었는데, 단백질도 없이 이 정도 식사로 갑옷을 입고 어떻게 전투를 할 수 있었나?를 전투민족 파푸아뉴기니인들과 연결시켜 설명하거든요. 파푸아뉴기니인들도 바나나와 타로, 토란 등 식물만 먹는데, 이를 통해 전국 무장들이 파푸아뉴기니 사람들 처럼 장내에서 질소를 흡수해 채내에서 단백질을 합성할 수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당연히 과학적으로 증명 되지 않은 추론에 불과한 내용이지요. 발상은 재미있지만 여러모로 무리였어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사랑했던, "맛의 달인"에서도 간혹 언급되던 '핫초 된장'의 유래와 같이 내용 자체가 부실한 이야기도 제법 됩니다. 이 이야기에서 건질 것은 이름의 유래밖에는 없어요. 이에야스가 태어난 오카자키 성으로부터 8정 떨어진 핫초 마을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데 이건 사실이겠지요. 그러나 그 외 된장의 특성에 대해서는 딱히 대단한게 없습니다. 핫초 마을은 야하기 강 자연 제방 위에 위치해 된장 만들기에 필요한 용천수가 충분했고, 야하기 강을 통해 수로 운송도 용이해서 된장이 발달할 수 있었다. 아울러 핫초 된장 제작에는 성을 쌓는 기술도 응용되어 있는데, 찐 콩을 동그랗게 뭉쳐 누룩균을 묻힌 된장 덩어리를 직경 2미터 정도의 거대한 삼나무 통에 채워 넣고, 된장 덩어리와 같은 무게가 될 정도의 돌을 눌러 쌓아 숙성시키는 것으로 이것은 성의 석벽을 쌓는 것과 같은 이치다라는 겁니다. 그러나 이 정도 환경을 갖춘 지역이야 널리고 널렸을테고, 제작 방식도 축성 기술을 응용했다고 보기에는 여러모로 무리인데 너무 억지로 대입시킨 느낌입니다. 예컨데 순창 고추장에 대한 설명 - 기후상 습지가 많은 분지 지역이라는 특성 덕분에 고추장 발효가 활발해져서 다른 고추장에 비해서 장맛이 깊고 빛깔 또한 곱다 - 정도의 설득력이 있지는 않아요. 이런 이야기가 '식물'을 이야기하는 책의 주제와 맞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기획의도와 주제, 만든 모양새는 여러모로 마음에 들지만 내용은 별로 기대에 미치지 못햇습니다. 단점도 많으며 내용에서 딱히 신뢰가 가지도 않았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2020/05/31

조선, 소고기 맛에 빠지다 - 김동진 : 별점 2.5점

조선, 소고기 맛에 빠지다 - 6점
김동진 지음/위즈덤하우스

제목 그대로 조선에서의 소고기 식문화에 대해 고찰하는 책입니다. 

근거가 확실하여 신뢰가 가도록 쓰여진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예를 들자면 조선 시대때 소고기를 정말 많이 먹었다는걸 증명해 주는데, 그 양이 정말 인상적입니다. 세종 때에는 무려 소가 15만 여 마리에 달했다니 놀라울 정도지요. 맛은 물론 몸에도 좋아서 성찬으로 유명했는데, 이는 전쟁 때 병사들에게 베푼 '호궤'의 중심이 소고기였다는 걸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양도 어마어마해서 숙종 때에는 군졸 한 명 당 0.81kg 부산물 제거 시 400g 정도 할당되었고, 술은 소고기 한 근당 술 다섯 홉까지 지급했다니 군 생활도 나름 할 만 했을 것 같네요. 소주 한 병이 2홉이니 고기에 술 2병 반이면 괜찮은 셈이잖아요? 이 양은 영조 때는 2.44배 등으로 이후 계속 증가했다고 하니 더더욱 그러합니다. 우역 (소 전염병)이 퍼지면 소가 죽을게 뻔해서 일찌감치 잡아서 먹었던게 소고기 식문화가 널리 퍼지고 전형화된 이유라는 것 역시 재미있는 이론이었고요.

이러한 조선 시대 소고기 식문화 관련 자료는 물론이고, 후반부에 소개되는 다양한 소고기 요리들도 볼거리입니다. 당연히 당시 자료들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15세기는 주로 "산가요록"을, 16세기는 "촌가구급방", "수운잡방", "묵재일기"를, 17세기는 "음식디미방"을, 18, 19세기는 "산림경제" 속 요리와 조리법을 주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지금과 비슷한 요리들도 있지만, 지금은 잊혀진 요리와 조리법들이 더 눈길을 끕니다. 어떤 요리들은 상당히 맛있을거 같아서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도 생기고요.
600여년 전 요리인 육면, 토장, 양 식해가 대표적입니다. 육면은 고기를 솔잎처럼 가늘게 썰어서 깨끗이 씻어 밀가루 또는 메밀가루를 반복해 묻혀 끓는 물에 삶는 국수 요리입니다.
토장은 밀가루 한 되와 고운 쌀가루 한 홉, 녹두가루 한 홉을 물로 반죽해 밀판에 놓고 밀어 길이 두 치(약 6센티미터)에 너비 한 치 반(약 4.5센티미터)으로 자릅니다. 이를 대광주리에 담아 끓는 물에 익혀 물에 담가 차갑게 식히고, 들깨즙에 간장을 넣고 여러 가지 향채와 맛있는 고기, 계란면, 표고 등을 섞어 먹습니다. 일종의 냉 비빔국수인 셈이죠.
양식해는 양을 먼저 물에 깨끗이 씻어 둥글게 조각내어 후추를 갈아 넣고 물이 펄펄 끓을 때 양을 잠깐 넣어 반만 익혀 꺼낸 것을 차게 식힌 뒤, 소금을 살짝 뿌리고 진밥 한 사발과 누룩 한 움큼을 고루 섞어 버무려 항아리에 담아 기름종이로 봉하고 재[灰] 속에 깊이 묻어두었다가 꺼내어 썰어먹는 일종의 젓갈입니다. 고춧가루를 더해도 괜찮을 듯 싶네요.

지금도 흔하게 먹는 소고기국과 곰국의 조선 시대 레시피도 인상적입니다. 소고기국은 "산림경제"를 통해 그 유래가 사슴고기국임을 알려주기 때문에, 우리나라 요리의 흐름을 아는 측면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되네요. 조리법을 보면 지금의 소고기국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고기를 소금과 술, 식초를 써서 담그고 기름과 후추를 넣어 볶은 뒤 국을 만드는 식이며 내장 등의 고기도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고춧가루를 넣으면, 지금의 내장탕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드네요. 반대로 곰국은 끓는 물에 넣고 뭉근한 불로 오래 익히는 지금 방식과 똑같다는 것도 재미있고요. 그 외 요리들 소개 모두 나름대로 볼 만 했습니다.

또, 당시의 소고기는 대부분 늙은 소의 고기였기 때문에, 이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한 여러가지 노력들도 인상적입니다. "음식디미방"에서는 소고기를 삶을 때 살구씨 빻은 것과 떡갈나뭇잎을 넣는게 비결로 소개됩니다. 처음부터 고기를 물에 넣지 말고, 펄펄 끓을때 넣는 것도 비법으로 이는 "수운잡방"에서도 소개된 방법입니다.
"음식디미방"에서는 질긴 고기는 산앵두나무를 함께 넣고 뽕나무로 때서 삶으라고도 하고요. 저자는 조사를 통해, 살구씨는 굳은걸 풀어주는 성분이 있고 떡갈나뭇잎은 가죽을 부드럽게 만드는 타닌이 함유되어 있으며, 산앵두나무 역시 굳은 것과 부은 것을 풀어주는 성분이 있어 질긴 고기를 부드럽게 해 주었을거라고 알려줍니다.

소고기를 많이 먹었다는건, 보관 방법과 오래된 고기의 조리법도 비중있게 소개되는 것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상한 고기의 경우, "당추자唐秋子에 구멍을 서너 개 뚫는다. 말만한 크기의 고기에 (당추자) 서너 개를 같이 넣고 삶으면 상한 것 같지 않다."며 조리해 먹을 정도입니다. 이는 소고기의 유통양이 적고 희귀했다면 관심가질 일이 없는 항목일테지요.

그러나 이러한 레시피들의 효과에 대해서 실제로 실험을 통해 증명한건 없으며, 단지 추정만 있는건 아쉽습니다. 또 소고기를 먹어야 장수했으며, 소고기를 먹지 않아 단명했다는 사례를 소개하는 등의 항목과 같이, 저자 입맛에 맞추어 가공된 자료가 많다는 것도 거슬렸던 점이고요. 이렇게 일반화 시킬 이야기는 아니었는데 말이죠. 무엇보다도 전반적인 내용이 학술적 자료에 근거한, 논문과 같이 쓰여져 있어 읽는 재미를 느끼기 힘들었다는 것도 감점 요소였어요.

조선 시대 소고기 식문화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꼭 한 번 읽어봐야 하는 책이라는건 분명하지만, 재미 측면에서는 도저히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좀 더 에피소드 중심의 이야기를 수록하는게 좋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2008/06/07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1 - 에도가와 란포 / 김소영 : 별점 4점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1 - 8점
에도가와 란포 지음, 김소영 옮김/두드림

일본 추리 문학의 거장인 에도가와 란포본격 추리 단편집. 예전 일본 여행 갔을 때 보고 군침만 흘리던 바로 그 책이라 일말의 고민없이 곧바로 구매하였습니다.

일단 55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22편이나 되는 단편이 실려있는 풍성함은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22편 중 동서 출판사의 "음울한 짐승"에서 이미 접했던 4편의 작품이 실려 있긴 하지만 워낙에 번역이 별로였기에 이번에 새로운 번역으로 새롭게 읽는 맛도 괜찮더군요(참고로 그 4편의 작품은 "2전짜리 동전", "심리시험", "D언덕의 살인사건", "두 폐인" 입니다)

대부분의 수록작들은 "본격 추리"라는 타이틀에 어울리는 나름대로 트릭을 가지고 있는 본격물들입니다. 그런데 워낙 다작을 한 작가라서 그런지 모든 작품, 그리고 트릭들의 수준이 고른 편은 아니긴 합니다. 내용도 익히 알고있던 변격물 스타일이 아닌 다양한 내용을 시도하고 있는데 그러한 시도 역시 모두 성공적으로 보이지 않았고요. 아케치 코고로 시리즈도 명성에 비하면 아주 높은 수준의 작품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전에 읽었었지만 걸작인 "2전짜리 동전"을 비록해서 "심리시험", "D언덕의 살인사건" 같은 대표작 이외에 베스트를 꼽아보자면 "일기장". "도난", "재티", "의혹", "영수증 한장" 등이 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물론 다른 작품들도 일독의 가치가 충분합니다).

조금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자면, 죽은 동생의 일기장을 통해 모종의 암호문과 그 뒤에 숨겨진 사랑을 다룬 "일기장"은 이 작품집에 상당수 실려있는 "2전짜리 동전"과 유사한 50음도와 숫자를 이용한 암호문을 등장시킨 작품인데, 그 중에서도 상당히 인상적이었을 뿐 아니라 익히 알고 있던 에도가와 란포의 변격물적인 요소가 전혀 없이 부드럽고 잔잔하게 전개되는 것이 괜찮았습니다.
사이비종교에서 벌어진 황당무계한 도난 사건을 다룬 "도난"은 결말 부분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도난 사건에 관련된 트릭의 기발함이 빼어나고 기대하지 않았던 유머러스한 분위기가 좋았고요.
"재티" 는 우발적 범행을 은폐하기 위한 공작을 그리고 있는데 도서 추리물의 전형적 형태를 띄고 묘사와 전개가 명성에 값합니다. 

그 외에 아버지의 살해로 촉발된 가족간의 의심을 다룬 "의혹"은 디테일한 심리묘사가 돋보였고 정통 본격 추리물이라 할 수 있는 "영수증 한장" 은 독창적인 부분이 많아 높이 평가할 만 하다고 생각되네요.

결론적으로, 일본 추리 소설계의 대부라 할 수 있는 에도가와 란포의 매력을 충분히 보여주는, 부족함 없는 재미를 선사하는 좋은 작품집입니다. 분량과 두께에 비한다면 가격도 아주 착한 편이고 말이죠. 이제서야 소개된다는 것이 외려 늦은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네요. 책 뒷부분의 해설도 굉장히 잘 되어 있어서 자료적 가치도 충분합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빨리 다음권이 나와주면 좋겠네요. 

그나저나, 이 책까지 출간되는걸 보니 확실히 우리나라도 쟝르문학 시장이 많이 커지긴 커졌나 봅니다.

2021/01/24

추리 소설 1,000편 리뷰 분석

추리 소설 1,000번째 리뷰 등록!

염원했던 추리소설 리뷰 1,000편 올리기를 달성했습니다. 1,000편의 리뷰를 작성하면서, 책 한 권을 출간하는 소기의 성과도 있었지요. 1,000편 업로드 기념 및 개인적인 자료 정리 차, 여태 읽었던 추리소설 리뷰 1,000편에 대한 간략한 데이터를 정리하여 공개합니다.

리뷰 갯수 1,000 

당연하겠지요?

책 권수 1,049권 

"브라운 신부""크리시" 리뷰와 같이 여러 시리즈를 한 편 리뷰에서 정리한 경우도 있고, "그것" 처럼 작품 한 편이 여러권으로 이루어져 있어도 리뷰 한 편으로 소개한 경우가 많아서 권수는 더 많습니다.

책 종수 1,008종 

권 수가 많은 이유에 더해, 중복하여 작성한 리뷰도 있어서 이를 빼면 최종적으로 리뷰한 책은 총 1,008종입니다.

국가별 

일본 454, 영미 394, 한국 63, 프랑스 29, 독일 13, 그외 55

예상대로 일본 작품 비중이 거의 절반 가까이이며, 영미 작품까지 포함하면 전체의 85%가까이 되는 압도적인 비중입니다. 국내 출간되는 작품들과 제 취향을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네요.

장르별 

본격물 성향 작품 리뷰가 357, 스릴러는 229, 경찰/수사 127, 일상계가 80, 호러 73, 하드보일드 69, 역사 추리 55, 모험물 54 순입니다. 본격물을 좋아하는 제 취향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장르 불문하고 단편집은 137편의 리뷰를 작성하였고요. 

참고로 본격물이면서 수사물인 작품이거나, 본격물이면서 일상계인 작품 등 키워드는 중복하여 체크된 결과입니다.

별점별 

경성탐정록 두 편은 제외한 총 1,006 종의 책 별점 분포는 아래와 같습니다. 

5점 : 4, 4.5점 : 7, 4점 : 71, 3.5점 : 48, 3점 : 271, 2.5점 : 259, 2.4점 : 1, 2.3점 : 1, 2점 : 227, 1.5점 : 88, 1점 : 26, 0.5점 : 1, 0점 : 1, 없음 : 1

평균 이상 별점인 2.5점 이상 작품이 660종으로 전체의 2/3를 차지합니다. 꽤 괜찮은 작품들을 읽어왔었다는 의미지요. 나름 뿌듯하네요. 별점 5점을 받은 작품, Hall of Fame만 별도로 소개해 드리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9마일은 너무 멀다" 

"옥스퍼드 운하 살인사건" 

"도끼" 

"특별요리" 

* 특별요리는 2003년도 동서 버젼이었고, 2015년에 다시 읽었던 엘릭시르 버젼은 별점 4점이었습니다.

참고로 책 별점과는 별개로, 단편집 단편별 중 별점 5점을 받았던 단편은 아래와 같습니다. 

"살의" (in "세계 추리소설 걸작선 2")

"무시무시하고 이상한 침대""결산"위험천만한 게임" (in "클래식 미스터리 걸작선")

"우체국에서 생긴 사건" (in "오른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사기꾼의 카드" (in "클로버의 악당들")

"새", "성모상" (in "대프니 듀 모리에") 

"국화의 먼지" (in "저녁싸리 정사")

"죽음" (in "악몽을 파는 가게 1") 

이 역시, 저의 고전 본격물 취향을 잘 드러내 주네요.

작가별 

1. 작가별 리뷰한 작품 갯수 순위

1. 히가시노 게이고 : 48
2. 애거서 크리스티 : 33
3. 요네자와 호노부 : 21
4. 스티븐 킹 : 18
5. 마쓰모토 세이초 / 엘러리 퀸 : 16
7. 존 딕슨 카 (+에이드리언 코난 도일) : 13
8. 요코미조 세이시 : 12
9. 와카타케 나나미 : 11
10. 아리스가와 아리스 / 에드 멕베인 : 10 
12. 미쓰다 신조 / 아서 코난 도일 / 조르주 심농 / 시마다 소지 : 9
16. 다카기 아키미쓰 / 미야베 미유키 : 8
18. 에도가와 란포 / 노리즈키 린타로 / 도진기 : 7
수많은 작가가 있지만, 공통 18위 까지만 선정합니다. 일본, 영미 작가가 많은건 국가별 순위와 동일합니다. 프랑스 작가 조르주 심농이 12위에, 한국작가 도진기가 18위에 위치하고 있을 뿐이네요.

2. 작가별 평균 별점 순위 (5권 이상 작품을 읽은 경우)

1. 콜린 덱스터 : 6권 리뷰, 평균 별점 3.6666...
2. 로스 맥도널드 : 5권 리뷰, 평균 별점 3.6
3. 기리노 나쓰오 : 5권 리뷰, 평균 별점 3.4 
3. 모리스 르블랑 : 5권 리뷰, 평균 별점 3.4
5. 존 딕슨 카 (+에이드리언 코난 도일) : 13권 리뷰, 평균 별점 3.269...
6. 미쓰다 신조 : 9권 리뷰, 평균 별점 3.055....
7. 딕 프랜시스 : 5권 리뷰, 평균 별점 3
8. 다카기 아키미쓰 : 8권 리뷰, 평균 별점 2.875
8. 미야베 미유키 : 8권 리뷰, 평균 별점 2.875
10. 마쓰모토 세이초 : 16권 리뷰, 평균 별점 2.84375
11. 와카타케 나나미 : 11권 리뷰, 평균 별점 2.8181...
12. 우타노 쇼고 : 5권 리뷰, 평균 별점 2.8
13. 요코야마 히데오 : 6권 리뷰, 평균 별점 2.75
14. 코넬 울리치 : 5권 리뷰, 평균 별점 2.7
15. 아서 코난 도일 : 9권 리뷰, 평균 별점 2.6666667
15. 조르주 심농 : 9권 리뷰, 평균 별점 2.6666667
15. 기시 유스케 : 6권 리뷰, 평균 별점 2.6666667
18. 엘러리 퀸 : 16권 리뷰, 평균 별점 2.65625
19. 미치오 슈스케 : 6권 리뷰, 평균 별점 2.583333
20 애거서 크리스티 : 33권 리뷰, 평균 별점 2.5757576
21. 에도가와 란포 : 7권 리뷰, 평균 별점 2.5714286
22. 요코미조 세이시 : 12권 리뷰, 평균 별점 2.541...
23. 미카미 엔 : 6권 리뷰, 평균 별점 2.5
비슷한 주제로 13년 전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순위가 대폭 바뀌었네요. 최소 2권 이상의 작품을 읽은 작가는 114명, 어느정도 평균을 낼 수 있는 수치인 5권 이상 읽고 리뷰를 남긴 작가는 33명입니다. 이 중 평균 2.5 이상 별점을 유지한 작가는 콜린 덱스터 외 24명입니다. 프로야구로 따지면, 1군 소속 선수의 72% 정도가 평균 이상이었던 셈이니 굉장히 훌륭한 성적이지요. 25명에 들지 못한 8명 중에서도 요네자와 호노부, 시마다 소지, 스티븐 킹, 아리스가와 아리스 등은 평균 2.4점대로 아쉽게 이름을 올리지 못했으니 더욱 그러합니다. 명성이 있는 작가는 확실히 이름값을 한다는 증거죠. 가장 많은 작품을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 평균 별점은 2.32점인데, 이건 어쩔 수 없습니다. 유명한 대표작, 걸작만 추려서 읽은 경우는 별점이 높을테고 많이 읽을 수록 평균 별점은 불리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크리스티 여사님 평균 별점이 비교적 낮은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위권을 살펴보면, 5권 이상 읽은 작가 중 꼴찌는 6권 평균 별점이 2.083점인 니시무라 교타로, 전체 꼴찌는 읽은 작품 4권 별점 평균이 1.1점에 불과한 제임스 패터슨이었습니다. 니시무라 교타로는 모르겠지만, 두 번 다시 제임스 패터슨 작품을 읽을 일은 없겠습니다.

탐정별 (5권 이상 읽은 작품만 뽑아봅니다)

1. 탐정별 리뷰한 작품 갯수 순위

1. 에르큘 푸아로 : 15권 리뷰
2. 엘러리 퀸 : 13권 리뷰
3. 셜록 홈즈 : 12권 리뷰
4. 긴다이치 코스케 : 11권 리뷰
5. 가가 (학생 ~ 형사) : 10권 리뷰
6. 87분서 : 9권 리뷰
7. 메그레 경감 : 7권 리뷰
8. 고전부 / 기디온 펠 박사 / 노리즈키 린타로 / 모스 경감 / 히무라 히데오 : 6권 리뷰
13. 미스 마플 / 미타라이 기요시 / 시오리코 / 토츠카와 경부 (+가메이 형사) : 5권 리뷰
2. 탐정별 평균 별점 순위
1. 모스 경감 : 3.66666
2. 셜록 홈즈 : 2.958333...
3. 기디온 펠 박사 : 2.9166...
4. 엘러리 퀸 : 2.6923...
5. 긴다이치 코스케 : 2.6363...
6. 시오리코 : 2.6
7. 고전부 : 2.58333
8. 메그레 경감 : 2.5714...
9. 가가 (학생 ~ 형사) : 2.55
10. 에르큘 푸아로 / 미스 마플 / 미타라이 기요시 : 2.5
13. 87분서 : 2.4444...
14. 히무라 히데오 : 2.41666...
15. 노리즈키 린타로 : 2.25
16. 토츠카와 경부 (+가메이 형사) : 2.2
입니다. 원탑 모스 경감 밑으로 셜록 홈즈, 기디온 펠 박사까지는 평균 이상의 빼어난 별점을 자랑합니다. 확실히 탐정은 영미권 탐정이 더 제 취향이라는걸 알 수 있었습니다.

이로서 간략하게 추리소설 1,000편의 리뷰에 대한 요약 정리를 마칩니다.

2017/04/15

몽키 턴 1~25 - 카와이 카츠토시 : 별점 3점

몽키 턴 25 - 6점
카츠토시 카와이 지음/세주문화

카와이 카츠토시의 히트작으로, 경정을 소재로 하여 청춘들을 그린 스포츠물입니다. 단행본으로 25권이나 되는 장편이지요. 

내용은 크게 3개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주인공 겐지가 경정 선수가 되기 위해 입문하는 경정 학교 시절, 선수로 첫 더비 킹이 되는 이야기, 큰 부상을 입은 후 복귀하여 연말 상금왕 레이스를 우승하는 이야기로요.
스포츠 세계를 무대로 각자 주특기가 있는 주인공과 친구, 라이벌들이라는 캐릭터 설정과 주요 시합을 핵심 이벤트로 진행하는 전개, 그리고 주인공이 나름 천재이며 첫 등장부터 소꼽친구가 있는 커플이라는 점은 작가의 전작인 "캠퍼스 라이벌"과 동일합니다.

하지만 이전 히트작의 단순 반복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높이 평가하고 싶은 점은 '경정'이라는 잘 모르는 세계를 정말로 자세하게 그려냈다는 점입니다. 경정을 소재로 한 작품은 이 작품 이전, 이후 모두 전무후무하다 할 정도로 독특한데, 단지 새롭기만 한게 아니라 나름의 재미도 확실하게 선사해 줍니다.
물론 '보트'를 타고 물에서 진행한다는 점 외에는 흔하게 보아온 레이싱 물과 큰 차이는 없습니다. 머신의 성능과 드라이버의 기술이 조화를 이루어야 승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같은 장르니까요. 그러나 보트와 물이라는, 이 차이점을 극대화한 전개에 작가의 뛰어난 구성력이 더해져 남다른 재미를 선사합니다. 나름의 두뇌 게임이 펼쳐지는 것 역시 읽는 재미를 더해주고요. 주인공 겐지가 5km 더 빠른 라이벌 도구치의 신형 페라를 더비 경주에서 이기고 더비킹이 되는 에피소드가 대표적입니다.

'유도'에 미쳤던 전작 등장인물들에 비하면 삼각관계가 등장하는 등 주인공들의 사랑과 청춘이 보다 자세하게 그려지는 식으로 인간관계, 드라마가 훨씬 복잡해진 것도 마음에 들어요. 조금 가볍고 유쾌한 주인공과 그에 대항하는 쿨하고 과묵한 느낌의 천재 라이벌(심지어 좋은 가문!)이라는 인물 설정은 스포츠물, 청춘물에 흔히 나오는 뻔한 설정과 구도이지만, 앞서 말씀드린대로 첫 등장시점부터 주인공의 커플이 완성되어 있다거나 정말로 나쁜 악당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 등 작가만의 독특한 요소가 덧붙여져 차별화되고 있으니가요. 개그 요소도 적절한 편이고요. 질질 끌지 않고 깔끔하게 마무리한 점도 높이 평가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뻔하고 진부한 설정, 전개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소재에 작가의 능력이 더해져 평균 이상의 재미를 전해줍니다.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2/07/02

미스터리를 읽은 남자 - 윌리엄 브리튼 / 배지은 : 별점 3점

미스터리를 읽은 남자 - 6점
윌리엄 브리튼 지음, 배지은 옮김/현대문학

인기 탐정이 등장하는 시리즈를 답습하는 작품은 많습니다. 탐정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셜록 홈즈의 경우는 작가 사후에도 다른 작가들에 의한 시리즈가 계속되었고, 에놀라 홈즈와 같은 가족이 등장하는 스핀 오프에 각종 패러디와 파스티슈 물까지 합치면 그 수는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저 역시 "경성 탐정록"이라는 파스티슈 물로 숟가락을 얹었었지요. 

문제는 누구나 다 아는 탐정이 등장하기에 별다른 변주를 하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셜록 홈즈가 21세기에 환생을 하든, 이세계로 전생을 하든간에 그는 셜록 홈즈니까요. 하지만 이 단편 시리즈는 이런 문제점을 획기적으로 해결한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 그 탐정이 등장하는 시리즈 작품을 읽은 누군가가, 자기가 흠모하는 탐정을 따라해서 사건을 해결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대와 탐정역에 얼마든지 변주가 가능합니다. 고전 정통 본격물 탐정들이 등장하기 때문인지, 모든 이야기들이 고전 정통 본격물 스타일인데 이 역시 마음에 듭니다. 작가 취향이 아무래도 저와 비슷한 듯 하네요.

물론 몇몇 작품들은 원래 탐정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논쟁의 여지가 있기는 합니다만, 고전 정통 본격물 애호가의 마음에 불을 지르는 좋은 시리즈라는건 분명합니다. 뒤이은 수록된, 저자의 다른 시리즈인 스트랭 씨 시리즈 역시 고전 정통 본격물로서 나쁘지 않은 수준을 보여주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덕분에 오랫동안 겪고 있었던 고전 정통 본격물 금단 현상이 조금이나마 해소된 듯 합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11편이나 되는 "~를 읽은 남자" 리뷰를 쓰다보니 힘이 빠져서, 스트렝 씨 시리즈는 제일 괜찮았던 한 편만 소개드립니다.

"존 딕슨 카를 읽은 남자" 

에드거는 존 딕슨 카 소설에 나오는 것같은 밀실을 만들어 삼촌을 살해할 계획을 세웠다. 계획의 핵심은 벽난로였다. 삼촌을 살해하고, 깨끗하게 청소한 벽난로 굴뚝으로 빠져나온 뒤 난로에 불을 붙여 밀실로 만들 셈이었다...

아주 오래 전 다른 앤솔러지를 통해 읽었던 작품입니다. 존 딕슨 카하면 떠오를 '밀실'을 소재로 만든 작가의 처녀작입니다. 범인이 범행 계획을 앞 부분에 상세하게 설명해준다는 점에서 '도서 추리물' 형식을 띄고 있기는 하지만, 본격 추리물은 아닙니다. 오히려 블랙 코미디에 가깝지요. 그래도 재미만큼은 나무랄데 없네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엘러리 퀸을 읽은 남자" 

엘러리 퀸의 광팬 아서 민디가 머무는 양로원에서 위책 노인이 애지중지하던 10달러 금화가 사라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유일한 용의자 데니슨이 그들 앞에서 옷을 벗기까지 했지만, 금화는 찾을 수 없었다...

엘러리 퀸 광팬이 "퀸 수사국" 속 "마약 부서 검은 장부"라는 작품을 인용해가며 추리를 펼친다는건 시리즈 설정에 딱 맞아 떨어지는데, 사실 아서 민디는 별로 엘러리 퀸같지는 않습니다. "검은 장부"에서의 트릭과도 아무 관련이 없고요. 

그러나 다행히도 원전보다 추리적인 부분은 훨씬 낫습니다. 아서 민디는 데니슨의 뺨 상처가 벌어진 이유, 계단을 끔찍히 싫어하면서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긴 이유를 추리하여 진상을 밝혀내는데, 설득력 높은 완벽한 추리였기 때문입니다.

정통파 본격 추리 단편의 교과서같은 작품으로, 제 별점은 5점입니다. Hall of Fame!

"읽지 않은 남자" 

몬티는 친구 포드에게 벽돌을 가져와 달라고 부탁했다. 암실용 방을 새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포드는 몬티의 아내 헬렌이 죽은 교통사고를 일으켰지만, 몬티는 그건 사고였다며 포드를 달랬다. 두 남자는 곧바로 벽을 쌓기 시작했고, 몬티는 포드에게 그가 좋아하는 위스키 코노서스 초이스 반 병을 건넸다...

포드는 헬렌이 갑자기 도로 한 복판으로 뛰어나와 사고가 났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몬티는 집 앞 우편함에 포드 차 페인트가 묻었다는 것, 그리고 현장 근처에서 버려진 위스키 병을 찾아낸 뒤, 포드가 차에서 술을 마시다가 헬렌을 덮쳤다고 추리합니다. 그래서 복수를 위해 포드를 불러 벽을 쌓는 척 하고 암실 안에 가둬 버리고 말지요.

그런데 차 안에서 술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고 당시 포드가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판단한 수사 결과는 별로 와 닿지 않았습니다. 분명 사고를 일으킨게 분명한 포드가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몬티를 당당하게 찾아온 경위, 그리고 제 발로 갇힌 방을 만드는데 참여한 것에 대한 설득력도 부족했고요. 몬티는 포드가 에드거 앨런 포의 "아몬티야도 술통"을 읽지 않아서 이 함정에 빠졌다고 말하지만, 이건 책을 읽고 안 읽고의 문제는 아닌 듯 합니다. 애초에 위험한 상황에 제 발로 들어간게 문제거든요.

읽지 않은 남자라는 변주는 좋은 발상이었는데, 결과물은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렉스 스타우트를 읽은 여자" 

카니발에서 "뚱뚱녀" 역할을 맡은 거트루드는 연기를 위해 렉스 스타우트 작품을 탐독하다가 빠져들게 되었다. 쇼 단원 중 거트루드가 딸같이 아끼던 뱀 조련사 릴리가 살해된채 발견되자, 거트루드는 직접 사건을 해결하려 나서는데...

렉스 스타우트네로 울프와 뚱뚱하다는 점, 그리고 아치와 같은 조수(?)가 있다는 연결 고리는 가지고 있지만, 내용 자체는 렉스 스타우트, 그리고 네로 울프와 별 관계는 없습니다. 평범한 추리물이에요.

그러나 정통파 본격물로 보기에는 애매했습니다. 핵심 단서인 사건 현장에서 발견되었던, 반쪽짜리 메달에 적힌 BY-BY라는 글귀에 대한 단서 제공이 전무한 탓입니다. '비실이'라는 별명을 들으면 불같이 화낸다는 설정도 너무 후반부에서나 드러나서, 전개 면에서도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었고요. 그냥저냥한 작품입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애거사 크리스티를 읽은 소년" 

시골 마을 라킨스코너에 벨기에 교환학생인 열 살짜리 천재 자크 뒤몽드가 찾아왔다. 자크는 마을 경찰 맥스 코리와 친구가 되는데, 어느날 라킨스코너에 수 명의 대학생들이 찾아와 기묘한 장난을 벌이는 사건이 일어났다...

대학생들이 노린건 희귀 우표였는데, 이걸 사다가 혹시 발각될까봐 다른 기묘한 사건을 벌였다게 진상입니다. 

그런데 진상이 납득되지 않아서 도무지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네요. 마을을 들 쑤실 필요는 없었습니다. 여러 명이 서로 모르는 사람인 척, 차례대로 원하는 우표가 나올 때 까지 우표를 그냥 사면 아무 문제 없이 끝났을테니까요. 독자가 뭔가 희귀 우표 관련된 사건이라고 쉽게 짐작 할 수 있다는 점도 감점 요소였습니다. 

아울러 탐정역인 자크가 벨기에인으로 대화하다가 프랑스어를 섞으며, 심지어 10살 짜리가 있지도 않은 콧수염을 만지는 시늉을 한다는 식으로 포와로를 따라한다는 묘사는 심하게 억지스러웠습니다. 학생들이 노리던 우표는 인쇄 오류로 '콧수염'이 생긴 것 처럼 인쇄되었다는건 이러한 억지 포와로 따라하기의 화룡정점이라 할 수 있고요. 추리도 별 볼일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시리즈 최악의 작품입니다.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아서 코난 도일을 읽은 남자" 

테리 왓슨에게 대학 후배 대니얼 블래싱검이 편지를 보내왔다. 그러나 전혀 알지 못하던 사이인데다가, 뚱딴지같은 내용이어서 이유를 알기 위해 왓슨은 편지 속에서 언급된 다른 인물에게 전화를 건 뒤, 워싱턴으로 호출되었다. 알고보니 블래싱검은 타국 대사관에서 암약하는 스파이로, 중요한 목록이 담긴 상자의 비밀 번호를 편지 속에 숨겨 보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왜 테리 왓슨에게 편지를 보냈는지는 모른채 시간은 흘러만 가는데...

왓슨에게 보내진 엉뚱한 편지에 암호가 감추어져 있다는 설정은 흥미로왔습니다. 세개의 이어진 영어 알파벳이라는 암호도 단순해서 좋았고요. 무엇보다도 이 암호 때문에 테리 왓슨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결말이 아주 유쾌했어요. 암호는 "LMN"으로 이는 셜록 홈즈의 유명한 대사 - '엘레멘터리 왓슨 - 그건 기본이야 왓슨' - 를 떠올리면 풀 수 있기 때문입니다. ""LMN 테리 왓슨" 이 되니까요. 말장난이기는 해도, 아서 코난 도일셜록 홈즈 시리즈를 읽었어야만 풀 수 있는 암호라는 점에서 시리즈 취지에도 잘 부합하기에,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체스터턴을 읽은 남자" 

브라운 신부 시리즈의 애독자 케니 신부는 추찹한 사진을 밀매하다가 자살했다는 교구민 팀 해링턴의 장례 미사 문제로 주임 시부 고거티 신부와 언쟁을 벌였다. 그 뒤 고거티 신부는 팀 해링턴이 자살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아내 보라며 케니 신부에게 하룻 동안의 유예를 주었다. 그리고 케니 신부는 사건 담당인 깐깐한 언셀 형사와 함께 방문한 사건 현장에서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내는데....

브라운 신부 스타일의 탐정물이라기 보다는, 브라운 신부가 가치 있는 작품이라는걸 증명하는 작품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추리적으로도 괜찮습니다. 특히 팀 해링턴이 자살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드러나는 장면은 꽤나 인상적이에요. 차에 반사되는 햇살을 보고, 추잡한 사진을 슬라이드로 보려면 '커튼'을 쳤어야 했는데 현장이 그렇지 않은걸 눈치채는게 아주 자연스러웠거든요. 깐깐한 언셀 형사가 설득당한게 일리가 있다고 생각될 만큼 좋은 추리였습니다. 사진 배달부의 실수가 살인으로 이어졌다는 동기도 짧은 분량에 잘 드러나있고요. 여러가지 철학적이고 현학적인 대사를 장황하게 펼치며 쉬운 말도 한번 더 꼬아서 말하는 브라운 신부와는 전혀 다른 신세대(?) 신부지만, 애정하는 브라운 신부를 위해 발벗고 나서는 케니 신부 캐릭터도 마음에 드네요. 스타일은 전혀 다르지만, 그 작품에 푹 빠졌다는 건 "~를 읽은 남자" 시리즈에 속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지요.

한 마디로 말하자면, 재미도 있고 추리적으로도 괜찮은 좋은 단편 추리물로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대실 해밋을 읽은 남자" 

정년 퇴직 후 도서관에서 책 정리하는 잡무를 하게 된 프리처드는 어느날 도서관장 디컨 씨의 부름을 받았다. 추리소설 애호가 패러것이 도서관 이사회 회장 앤드루 킹과 건 내기 때문이었다. 패러것이 도서관 어딘가에 감추어 둔 책을 찾으면 그가 추리소설 초판본 컬렉션을 도서관에 기증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추리소설 매니아 프리처드가 앤드루 킹을 도와 패러것이 준 간단한 단서로 한 시간 안에 책을 찾기 위해 애쓰게 되는데....

아르바이트하는 추리소설 매니아가 자신의 취미를 이용해서 도서관에 숨겨진 보물을 찾아낸다는, 추리소설 애호가들에게는 꿈 같은 설정의 이야기입니다. 추리 소설 매니아 프리처드 씨에게도 행운이 닥치는 결말까지도 아주 환상적이에요.

이야기의 핵심인 보물찾기 게임도 꽤 그럴듯하고, 합리적으로 설명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인 독자는 풀이 과정에 동참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3.14"가 적힌 봉투 안에 "더블 더즌", 그리고 "몰타의 매"라고 적힌 카드가 한 장씩 들어있는게 힌트였는데, "3.14" -> 파이는 "Pie"로 바꿀 수 있고, "더블 더즌"은 24, "몰타의 매"는 "매"가 소문자라서 말 그대로의 새를 의미하므로 "검은 새"가 되고, 이게 "파이 안에서 구워지는 스물 네 마리 검은 새"라는 동요로 이어지는데, 한국 독자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추리인 탓입니다.

그래도 재미도 있고, 추리적으로도 깔끔한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조르주 심농을 읽은 남자" 

친구 해럴드와 함께 고가의 화물을 나르는 바니는 조르주 심몽의 메그레 시리즈를 탐독해왔다. 그들은 대저택에서 '라이트풋' 래리 쇼필드라는 고용인 앞에서 싣고 온 화물을 내려놓았다. 그는 별명 그대로 알록달록 화려한 가죽 부츠를 신고 있었다. 그러나 바니는 메그레 경감의 활약을 떠올리며, 래리 쇼필드가 가짜라고 확신하는데...

메그레 경감은 사실 대단한 추리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은 아닙니다. 좀 우직하고, 인간 내면을 성찰하는 부분이 많은 편이죠. 그러나 성실하고 꼼꼼한데다가 관찰력이 뛰어난데, 이 작품 속 바니 역시 관찰을 통해 래리 쇼필드가 가짜라는걸 알아내게 됩니다. 그는 래리 쇼필드가 절대로 다리를 꼬지 않고, 발바닥을 계속 땅에 대고 있는걸 눈치채거든요. 부츠를 갈아신었는데, 새것이라는게 들통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요.

하지만 단지 부츠가 새 것이라는게 그가 가짜라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물론 래리 쇼필드가 자기 입으로 흙길을 걸어 왔다고 말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부츠는 얼마든지 갈아 신을 수 있잖아요? 바니가 오지랖을 떨어서 쇼필드의 정체를 폭로한 이유도 불분명합니다. 설령 눈치를 챘더라도, 현장을 벗어나 경찰에 신고하는게 당연했습니다. 현장에서 총을 든 상대방을 위협해가며 추리쇼를 펼칠게 아니라요.

이렇게 단점이 더 눈에 많이 뜨이며, 메그레 경감의 특징을 잘 살린 것도 아니라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존 크리시를 읽은 소녀" 

에밀 프랫은 오랫만에 겨우 집에서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담당하고 있는 도킨스 사건 때문이었다. 영국인 도킨스는 미국으로 여행을 왔었는데, 칼에 찔려 살해당했다. 도박으로 땄던 3천 달러 정도를 노린 범행이었다. 그는 죽기 전 경찰에게 "올드 피싱.."과 비슷한 말을 남겼다. 에밀 프랫의 딸 메릴리는 최근에 읽고 있는 존 크리시의 기디온 경정 시리즈에 나온 영국 코크니 말투가 해결의 실마리라는걸 아빠에게 알려준다....

기디온 경정의 활약보다는, 작품에 등장했던 영국 런던 토박이 코크니들의 은어가 단서가 된다는건 독특했습니다. 그러나 다이잉 메시지라는 억지스러운 설정에 더해 죽어가면서 은어를 써서 단서를 남길 이유가 설명되고 있지 않은 등, 이야기의 설득력이 낮다는건 아쉬웠어요. 당연히 한국인 독자로서는 추리하기도 힘든 내용이었고요. 그냥저냥한 작품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아이작 아시모프를 읽은 남자들" 

역사 교사 폴 해스킬, 전화선 보수 기술자 재스퍼 지머먼, 대장장이 가브리엘 둔, 은행장 시드니 워윅과 메리 팅커 술집 주인 핀들레이의 다섯 명은 모두 아이작 아시모프 박사의 팬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메리 팅커 술집에 모여 "흑거미 클럽" 처럼 수수께끼 풀이 놀이를 하곤 했었다. 그러나 진짜 작은 마을 홀컴밀스에서는 별다른 사건이 없어서 놀이 속 수수께끼는 공상에 불과했다. 

그런 그들에게 기자 에드거 바시가 진짜 수수께끼를 가져왔다. 마을 최대의 백화점 '밸류 투데이'의 사장인 마케팅 귀재 데이비 로터스가 천 달러가 들어있는 금고를 전시장에 공개하고, 금고를 열면 누구나 돈을 가져갈 수 있다고 했는데, 그 비밀번호가 무엇인지에 대한 수수께끼였다. 아시모프 팬들은 각자 자신만의 추리를 들려주는데...

아이작 아시모프의 '흑거미 클럽'에 대한 일종의 파스티슈 작품입니다. 

참석자들이 각자 내 놓는 추리들이 눈길을 끕니다. 감히 '흑거미 클럽'을 운운할 수 없는, 여러모로 부족한 추리들이었지만 각자의 직업과 전문 분야에 바탕을 두고 있어서 잘 와 닿기는 했거든요. 마지막에 집사 헨리의 포지션인 술집 주인 핀들레이가 정답을 맞추고 천 달러를 얻는 결말도 좋아요. 

무엇보다도 밸류 투데이는 데이비 로터스의 철자를 가지고 만든 애너그램으로, 이를 이용하면 금고 번호를 알아낼 수 있다는 진상에 대한 정보도 공정하게 제공한다는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런게 바로 정통 본격 고전 추리물이라 할 수 있겠지요. 한국인 독자에게는 쉽게 추리할 수 없는 내용이기는 했지만요.

여러모로 아시모프의 원전인 걸작을 잘 이해하고 쓴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 2부 스트랭 씨 이야기 - "스트랭 씨 여행가다" 

스트랭 씨는 단체 버스 투어로 캐나다 여행을 떠났다. 그의 옆 자리에 앉게 된 건 제리 수녀였다. 그리고 여행 도중 제리는 가판대에서 나무로 된 십자가를 구입했는데, 그 십자가가 사라져 버린 사건이 일어났다. 스트랭 씨는 귀국 직전 십자가 사건과 퀘벡에서 일어났던 은행강도 사건의 연관성을 추리해 내고, 버스에서 추리쇼를 벌이게 되는데...

작가의 또 다른 시리즈인 고교 과학 교사 스트랭 씨 시리즈의 수록작 중 마지막 작품이자 가장 마음에 든 작품입니다. 십자가를 '길포일' 이라는 여행객으로 변장한 은행강도 르클레어가 훔쳤던 이유는, 십자가를 포장했던 신문지 때문이었다는 추리가 특히 좋습니다. 신문에 르클레어 사진이 실려 있었다는 이유는 십자가를 훔칠 충분한 이유가 되니까요. 비록 프랑스어이기는 하지만, 이에 대한 정보도 제공하고 있고요. '알맹이보다 포장지가 중요하다'는 기상천외한 발상은 왠지 "브라운 신부" 시리즈가 떠오르기도 해서, "~를 읽은 남자" 시리즈로 썼어도 좋았을 것 같네요. 은행강도가 도주를 위해 미국인 단체 여행객으로 변장한다는 아이디어도 국경에서 어떻게 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상당히 설득력있게 들렸습니다.

이렇듯 추리물로서 상당한 수작이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이 시리즈가 더 이어지지 못했고, 국내 소개도 이 단편집에 수록된 4편만으로 끝난게 못내 아쉽기만 할 따름입니다.

2009/12/21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 야마구치 마사야 / 김선영 : 별점 3점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 6점
야마구치 마사야 지음, 김선영 옮김/시공사

죽은 시체들이 살아 움직이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 와중에, 미국 북동부 뉴잉글랜드 시골마을 툼스빌에서 스마일 공동묘지를 경영하는 발리콘 일가의 손자 그린이 우연찮게 할아버지의 독초콜릿을 먹고 죽었다.곧바로 소생한 그린은 스스로의 몸을 방부처리하고, 자신의 죽음을 숨긴 채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린의 백부 존 등 발리콘 가 사람들이 연이어 살해되는데…

일본 신본격물 중에서도 손꼽히는 아주아주 유명한 작품이죠. 국내에 소개된 것은 좀 늦은감이 있네요. 관심이 컸던 작품이기에 곧바로 구입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읽고나니 확실히 평이 갈릴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누구나 입을 모아 칭찬할만한 희대의 걸작인가? 에 대한 의문 부호도 조금이나마 생기고요. 제가 나이가 너무 많이 들은 탓일까요?

먼저 장점부터 꼽아본다면, 그동안 추리계에 없었던 희대의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완벽한 수준의 본격물을 창조해 낸 아이디어가 제일 큰 장점입니다. 저만해도 출간 이전에 이미 소갯글로 기본 설정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가장 중요한 트릭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간단하지만 대담하고 효과적인 아이디어였어요. 구태여 예를 들자면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급의 발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복잡하게 관련된 사건들이 해결부분에서 완벽하게 정리된다는 점, 마지막 해결편을 앞두고 미리 전편에 걸쳐 독자들에게 공정하게 정보를 제공해 주는 점 등 본격물로의 치밀함과 더불어 퍼즐을 풀어나가는 맛도 잘 살리고 있는 등 한 마디로 말해 추리적인 완성도가 뛰어납니다. 다른 어떤 본격 추리물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요.

하지만 대단한 발상이기는 해도 결국 현실에 기반하지 않는다는 단점은 큽니다. 때문에 보수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정통 본격물이라 부르기 어려워 보이기며, 어떻게 보면 반칙이라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작품의 완성도와는 별도로 좌충우돌하는 희극적인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깔려있는데, 저는 영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생명의 본질에 대한 종교적이면서도 현학적인 이야기가 많아서 읽기에 부담되는데, 작품의 분위기는 외려 너무 코믹하니 당황스럽기도 했고요. 쉽게 이야기하자면 내용은 진지한데 이상하게 "웃음"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는, 과장된 묘사와 설정이 난무하는 일본드라마 같은 분위기였달까요. 이러한 분위기는 번역 출간이 늦어진 것에도 어느 정도는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코믹한 요소를 좀 더 걷어내고 불필요한 부가 설명이나 묘사도 빼서 기나긴 길이를 줄이는게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도 되네요. 데니스 루헤인 같은 작가가 써냈다면 올타임 베스트에 충분히 선정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의 아이디어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분위기가 완성도를 낮춘게 아닌가 싶어 아쉽습니다. 

그래도 좀비 추리물이라는 신경지를 개척했다는 발상 하나만으로도 평균이상의 재미를 주기 때문에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취향만 맞는다면 새로운 신본격 걸작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겁니다. 저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요.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영화가 더 어울리는 작품입니다. 영화가 나오면 좋겠네요.

2007/03/05

비밀의 문 - 김래성 : 별점 2.5점

비밀의 문
김래성 지음/명지사

정말 오랫만에 올리는 추리소설 리뷰네요. 그간 NDSL에 빠져 살다가 회사에 기계를 반납한 뒤 겨우 원래의 생활로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무섭다 NDSL!)

"쌍무지개 뜨는 언덕"과 "실락원의 별", "청춘산맥"으로 유명하지만 원래 추리문학으로 등단한, 우리나라 추리소설의 효시라 할 수 있는 김래성 선생님의 단편집. 이전에 읽었었고 집에도 계속 있었지만 최근 "설홍주" 관련 이야기를 쓰다가 참고할까 해서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9편의 단편이 실려있는데 말미에는 김래성 선생의 추리문학소론이라는 30년대의 강연자료까지 수록되어 있어서 자료적 가치는 무척 높습니다. 작품들도 20~30년대 분위기가 가득하고요.
아울러 긴장감을 이끌어 내는 솜씨와 극적 반전, 공포 등은 시대가 훨~씬 지난 지금 읽어도 낡았다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라 과연! 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선생님의 작가적 명성에 비하면 정통 추리 단편집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에도가와 란포"와 굉장히 유사한 변격물이 대부분으로 추리물다운 트릭이 등장하는 작품은 거의 없거든요. 그나마 정통 추리에 가까운 작품은 "비밀의 문"과 "벌처기", 그리고 국내 최초의 추리 소설이라 할 수 있는 "타원형 거울" 정도네요.
게다가 두 남자와 한 여자라는 상투적인 소재가 난무하고 등장인물들도 화가, 작가 등이 거의 대부분의 작품에 등장하고 있다는 점 등은 좀 쉽게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뻔했습니다. 지나친 통속성도 거슬리는 부분이었고요. 이러한 부분에서는 국내 후대 작가에게 안 좋은 쪽으로만 영향을 끼친 느낌이 물씬나더군요.

결론내리자면 자료 측면에서야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고 재평가받아 마땅한 작품들임에는 분명하나 추리문학의 효시라는 칭호에서 기대한 기대치에는 미치지 못했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 진정한 고전이 되기에는 2% 정도 모자라 보이네요.

저의 베스트는 "타원형 거울" 입니다. 변격물 취향이라면 "이단자의 사랑"과 "악마파"도 아주 괜찮은 발상의 작품이긴 한데 제 취향은 아니라서...
1. 비밀의 문 :
살인광선을 개발한 강박사에게 괴도 그림자로부터 그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훔쳐가겠다는 편지가 배달된다. 강박사는 예고 시간까지 조수들과 함께 광선 설계도를 철통같이 지키지만 그림자가 정작 훔쳐간 것은 박사의 외동딸 영채였다.
범죄 예고, 유괴라는 흥미진진한 소재가 등장하고 있으며 원래 방송극용 대본이었던 탓인지 김래성 선생 작품답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범죄(?) 이야기로 쓰여져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트릭은 별게 없지만 꽤 괜찮은 편이고요. 깔끔한 평작입니다.

2. 이단자의 사랑 :
병원 원장 김철하는 간호사로 일하던 애련과 결혼한 사이지만 애련의 전 애인인 시인 추강에게 그녀를 내어주고 대신 1년에 한번만 그녀를 볼 수 있게 해달라는 청을 하여 허락받게 된다.
전형적 변격물로 두 남자와 한 여자라는 이 단편집 전체를 관통하는 설정을 극단적으로까지 묘사한 작품입니다. 내용은 지루하고 뻔하지만 마지막의 반전인 "고래고기" 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저희 아버지도 약 40여년전에 이 작품을 읽었는데 반전을 아직도 기억하시고 계시더군요. 그만큼 당시에는 충격을 안겨다 준 획기적 발상이라 할 수 있겠죠. 물론 지금 읽기에는 좀 낡긴 했지만 당시 이런 생각을 했다는 점에서는 박수를 보내고 싶네요.

3. 악마파 :
내가 여동생 루리와 함께 동경에 유학하던 시절 만났던 두명의 미대생 노단과 백추 두명은 루리를 사랑하게 된다. 부자집 아들이며 건장한 체구의 노단과 가난뱅이에 불구자이지만 천재적 화가인 백추의 사이에서 갈등하던 중 백추가 "제전"에 그림이 입상한 기념 파티에서 벌어진 소동 이후에 행방을 감추게 되자 노단과 루리의 결혼을 허락한다.
역시 전형적 변격물로 화가로서의 창작 욕구를 위해 다른 것의 희생을 강요하는, 어디선가 본 듯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냥저냥한 드라마가 될 수 있는 소재인데 "악마파"라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화풍을 굉장히 잘 묘사하고 있어서 꽤나 실감나면서도 엽기스러운 이야기로 완성되었습니다. 김래성 소설의 전형이라고나 할까... 그런 작품입니다.

4. 백사도 :
백사도를 그린 동추라는 화가를 찾아온 나는 그에게서 그림을 그리게 된 처절한 과거사를 듣게 된다.
역시 화가가 등장하는 작품입니다. 일종의 밀실 살인 트릭이 등장하긴 하는데 트릭 자체가 주인공의 "꿈"에서 풀린다는 내용이라 추리물로 보기는 조금 힘들었습니다. 작품도 기본 이야기 뼈대는 좋은데 괴기함과 엽기성을 지나치게 강조해서 썩 마음에 들진 않네요.

5. 벌처기 :
나는 여류 화가로 행세하며 수많은 남자들과 어울리고 다니는 아내를 용서할 수 없어서 완전 범죄를 결심한다. 이미 한번 본 영화를 보러 간다고 속이고 집으로 되돌아간 나는 재빨리 아내를 살해하고 극장으로 돌아가지만 곧바로 경찰에 체포되는데...
도서 추리 소설로 볼 수 있는 특이한 작품입니다. 주인공의 고백에서 시작한 뒤, 변호사의 변론, 그리고 사건이 밝혀지게 된 결정적 증인의 증언이라는 세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도 특이하고요. 완전 범죄 계획 자체는 너무 조잡하고 유치하며 단서 역시 굉장히 뻔하지만 소설적인 구성이 기발하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잘 묘사된 당시 시대 풍경을 읽는 것 역시 재미있었고요.

6. 광상시인 :
나는 아내를 잃은 뒤 정처없이 방랑하다가 그림 그리기 적당한 풍경을 찾아 잠시 머물게 된다. 그런데 그곳에서 시인 추암과 그의 아내 나나를 만나게 된 뒤 둘의 광기 가득한 요구와 사랑에 휘말리게 되며 추암이 나나를 살해한 뒤 시체를 안고 춤을 추는 모습을 목격한 뒤 그곳을 떠난다. 그리고 3년뒤, 나는 서울역 대합실에서 추암과 재회하는데...
이 작품역시 전형적인 변격물인데 멜로적인 성향이 많이 가미되어 있다는 점이 특이하네요. 반전이 약간 충격적이긴 한데 전체적으로 좀 지루하고 심심해서 그냥저냥 평이한 수준으로 보입니다.

7. 타원형 거울 :
추리잡지 "괴인"의 발간인 백상몽은 잡지가 성공하게 되자 현상 공모를 하게 된다. 그것은 다름아닌 10년전 평양에서 벌어진 유명한 살인사건의 해결. 거금 300원의 상금을 내걸고 당시의 자세한 사건 현장과 개요를 잡지에 실은 뒤 독자들의 추리를 요청하는데, 10년전 사건의 용의자였던 유시영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자 추리를 써 내어 당당하게 당선한다. 그러나 유시영은 현상 공모 뒤에 숨겨진 또다른 무엇인가를 눈치채고 백상몽에게 서신을 보낸다.
김래성 선생님이 일본 유학 중 추리전문지에 발표한 국내 최초의 추리 소설. 이야기의 시작부터 상당히 독특해서 인상적이며, 트릭 역시 당시 기준으로 볼 때에는 독창적인 것으로 보여집니다.
하지만 유시영의 추리 이후 벌어지는 사건과 진범의 정체는 트릭이 공정하지 못해서 아쉬웠습니다. 보다 교묘하게 잘 꾸밀 수도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도 자료적 가치는 충분하고 내용도 추리적 요소로만 놓고 본다면 괜찮은 작품입니다. 무엇보다도 재미보다는 의미를 찾아야 하는 작품이겠죠.

8. 복수귀 :
박도순과 이철수는 의학 박사와 간호사 숙채를 놓고 경쟁하는 사이. 이철수가 박도순의 논문을 훔친 뒤 도용하여 먼저 박사가 되고 숙채와 결혼하자 도순은 복수를 꿈꾼다.
역시나 남자 둘, 여자 한명이라는 지루한 설정의 반복. 또 여자의 심리 변화가 굉장히 급격하여 설득력이 많이 떨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반전이 기발하긴 한데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9. 무마 :
나는 정통파 추리 작품으로 이름이 알려진 추리 작가로 평소에 알고 지내던 한량 허군을 통해 라이벌이기도 한 변경 소설작가 백웅이 관련된 엽기적인 살인사건 이야기를 듣게 된다.
엽기적인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결말도 나름대로 깔끔합니다. 하지만 결말까지의 이야기 전개가 너무 쉽게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평이한 것이 단점이네요. 비교적 평이한 수준의 소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