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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18

엠브리오 기담 - 야마시로 아사코 / 김선영 : 별점 3점

엠브리오 기담 - 6점
야마시로 아사코 지음, 김선영 옮김/엘릭시르

어딘가에서 읽었던 서평이 기억에 남아 있어 주말동안 읽기 위해 집어든 책.

에도, 아니 메이지 시대로 보이는 시대를 배경으로 한 환상 문학 단편집으로 모두 9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온천에 대한 여행기를 쓴 타고난 길치 이즈미 로안과 그의 짐꾼이자 동료인 미미히코가 이야기에 모두 등장하는 연작물이기도 하죠.

시대물 설정, 거기에 전부는 아니지만 몇몇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괴담이라는 점에서 미야베 미유키에도물이나 교코쿠 나츠히코의 작품이 떠오르는데 미야베 미유키 작품들보다는 환상 문학에 훨씬 가깝고, 교코쿠 나쓰히코의 작품들보다는 읽기 쉽고 명확한 내용이라는 점에서 차별화됩니다.
또 수록 작품의 스펙트럼이 넓다는 점에서는 레이 브래드버리리처드 매드슨 등의 선배 작가가 떠오르기도 하더군요. 구태여 구분하자면 <엠브리오 기담>은 일상계 크리쳐물, <라피스 라줄리 환상>은 윤회 판타지, <수증기 사변>과 <끝맺음>은 일상계 괴담, <얼굴 없는 산마루>는 일상계 드라마, <있을 수 없는 다리>는 전형적 괴담, <지옥>은 끔찍한 고어 호러, <빗을 주워서는 아니 된다>는 괴담 분위기의 자살극으로 넓은 장르를 포용하거든요. (<"자. 가요." 소년이 말했다>는 그냥 사족입니다) 이렇게 많은 장르물을 포괄하면서도 대체로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보인다는 것도 대단했고요. 코미디에서 호러까지 오가는 선배 작가들만큼의 넓은 변화 폭은 아니긴 합니다만 이 정도면 이름모를 작가 치고는 제법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런데 후기를 보니 야마시로 아사코는 오츠 이치의 또다른 필명이더라고요! 솔직히 취향이 아니라 많은 작품을 찾아 읽지는 않았지만 팔색조 매력은 여전한 듯 하여 아주 반가왔어요. 그러고보니 최초 서평이 기억에 남았던 이유도 오츠 이치의 이색작이라는 소개 때문이었던 듯 싶습니다. 이놈의 기억력...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말도 안되는 설정이 제법 있는 등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허나 이 정도면 괴담물로 최소한 기본은 해 주었다 생각되네요. 오츠 이치의 단점이라 여겼던 만화적인 상상력도 그다지 눈에 띄지 않고요. 전체 평균 별점은 2.5점입니다만 사족인 마지막 이야기를 제외한다면 별점은 3점!
괴담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권해드리는 바입니다.

덧 1 : 앞서 말씀드린대로 수록 작품들의 장르가 천차만별이지만 절반 이상이 '괴담'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추리 / 호러' 장르로 분류합니다.

덧 2 : 저도 온천을 좋아하는데 딸아이가 좀 더 크면 온천이나 다녀봐야겠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끔찍한 경험은 사절입니다만 끔찍한 경험을 한 이즈미 로안과 미미히코가 그래도 온천을 다니는 것을 봐서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게 분명하겠죠.

단편별 상세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하니 읽으시기 전 참고하세요.

<엠브리오 기담>
갓난아기 전 인간의 모습인 '엠브리오'를 우연히 구한 미미히코. 금새 죽을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엠브리오는 살아남고, 도박빚에 시달리던 미미히코는 엠브리오를 이용하여 돈 벌 계획을 세운다.

인간의 태아(이전 단계)인 '엠브리오'에 대한 이야기. 엠브리오에 대한 설정 - 하얀 애벌레같아 허여멀건 몸뚱이에 볼룩 튀어나온 배, 발달이 덜 되어 단순한 돌기에 지나지 않는 손발, 몸에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머리에 점을 콕 찍은 듯한 눈, 도마뱀처럼 꼬리 같은 것 까지 있고 갓난아기 피부와 내장 표면의 딱 중간 정도 피부로 쌀뜨물을 먹고 미지근한 물을 좋아한다... 등등 - 이 실제 존재하는 생물처럼 상세하다는 것이 재미 요소입니다. 이 작품집 전체를 관통하는 '기묘한  상상력'이 크리쳐에 발휘된 환상 문학이라고 할 수 있죠.

더 이상의 좋은 결말을 찾기는 어려웠겠지만 아이를 원하는 부부에게 엠브리오를 넘겨 무사히 출산하게 하고, 수년이 지나 미미히코와 그 아이가 재회한다는 결말은 공식대로이며 식상합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무난한 수준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라피스 라줄리 환상>
도매 서점에서 일하는 린은 행수 어르신의 지시로 이즈미 로안과 미미히코의 여행에 동행한다. 언제나처럼 길을 잃은 일행은 마침 발견한 마을에서 잠깐 묶어 가게 되는데, 다음날 촌장의 증손자가 고열로 쓰러진다. 마침 린이 가지고 있던 약으로 아이는 생명을 구하고 답례로 촌장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라피스 라줄리 (유리)'를 선물하는데...

린이 '라피스 라줄리'를 받은 이후, 인생을 되풀이한다는 윤회 판타지. 윤회를 하면서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내용도 잔잔하니 읽을만 하지만 작품의 핵심은 반전에 있습니다. 자살을 하면 지옥에 간다는 촌장 노파의 말을 무시하고 자신이 태어날 때 죽는 어머니를 위해 뱃속에서 탯줄을 스스로 목에 감는 방법으로 자살을 한다는 결말이거든요. 행복한 결혼 생활도 해 보았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공부도 해 보았지만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서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는 것인데 참 절절하게 다가왔어요.
다른 수록 작품과는 다르게 미미히코 시점이 아니라 린 시점에서 묘사가 이루어진다는 것도 특이했고요.

물론 단점도 있습니다. 라피스 라줄리의 힘이 어디서 온 것인지 등 세세한 설정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것이 그러하죠. 또 린은 이전 기억을 계속 쌓아나가기 때문에 환생할 때 마다 강해질 수 밖에 없는데 지나칠 정도로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지는 부분이었어요. 미래도 읽을 수 있고, 그에 어울리는 공부도 한다면 세계를 바꿀만한 재산이나 세력을 손에 넣을 수 있었을텐데 말이죠.

그래도 평균 이상은 되는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수증기 사변>
로안과 미미히코는 언제나처럼 길을 잃은 뒤 산기슭 온천 마을을 찾아낸다. 마을의 허술하기 짝이 없는 여관에 묶게 된 둘은 마을 온천을 밤에 찾아가면 돌아오지 못한다는 말을 듣는다. 그리고 밤에 온천에 몸을 담근 미미히코는 어린 시절 소꼽친구로 죽어버린 유노카를 온천에서 만나게 되는데...

저승과 연결되어 있는 온천을 그린 작품. 유령이 등장하는 괴담으로 죽은 사람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이유라던가, 어린 시절의 추억과 유노카의 죽음에 대한 진상 등 이런저런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기본적으로는 잔잔한 일상계에 가깝습니다. 마지막에 미미히코가 유노카의 모습을 떠올리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문제는 너무 잔잔해서 극적인 재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유노카의 죽음이 단순 사고보다는 드라마틱했어야 해요. 예를 들자면 사실은 미미히코의 잘못으로 죽었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죠. 별점은 2.5점입니다.

<끝맺음>
언제나처럼 길을 잃은 로안과 미미히코가 묶어가게 된 바닷가 마을. 그곳은 모든 사물이 사람의 얼굴로 보이는 기묘한 곳으로 식재료마저 그러하여 미미히코는 음식을 입에 대지 못해 아사 직전에 놓이게 된다.

모든 사물이 사람의 얼굴로 보인다는 이토 준지스러운 상상력이 돋보이는 기묘한 작품. 만화나 영화와 같은 시각 매체용 컨텐츠로 발표되었더라면 굉장히 그로테스크했으리라 생각됩니다. 물론 상상의 여지가 더욱 많은 소설이 섬찟함을 느끼는데 더 좋긴 하겠지만요.
이에 더해 그에 더해 굶어죽기 직전 상태에 놓인 미미히코가 자신을 끔찍히 따르던 닭 아즈키를 잡아먹고 살아난다는 결말도 마음에 듭니다.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인지를 잘 드러낸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자기 혼자 살아남기 위해 친구를 팔아넘기고 살아 남는 왕따물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마을의 정체가 무엇인지 등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아 조금 감점합니다만, 이런저런 생각할 거리가 많은 작품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있을 수 없는 다리>
언제나처럼 길을 잃은 로안과 미미히코는 근사한 구름 다리를 발견한다. 허나 마을에서는 구름 다리는 이미 사십 년도 전에 무너졌다고 말한다. 둘이 묶게 된 숙소의 노파가 밤중에 넌지시 구름 다리로 데려다 줄 것을 부탁한다. 그녀는 구름 다리가 무너졌을 때 아들을 잃었는데 지나는 여행객들로 부터 다리에서 아들의 모습을 보았다는 말을 전해 들은 것. 미미히코는 다리에서 노파의 아들을 발견하고 둘의 상봉을 주선하는데...

감동적인 상봉을 기대했지만 실상 소년은 그야말로 '귀신'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에 대한 증오로 가득차있는 존재였다는 반전이 돋보이는 작품. 이전 수록작인 <수증기 사변>과 비슷한 작품이라 생각하고 읽다가 깜짝 놀랐네요. 하긴 이게 귀신의 본 모습인 것이겠죠.
반전에 더해 묘사도 아주 인상적입니다. 소설보다는 영상화하는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귀신이 본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의 묘사도 좋지만 특히나 귀신이 노파를 데려가려고 하자 그녀가 미미히코를 붙잡고, 미미히코는 욕설을 하면서 노파를 어떻게든 떼어내려 하는 처절한 묘사가 기억에 남는군요.

재미도 있고, 반전도 있는, 괴담으로는 더할나위 없는 좋은 작품으로 별점은 4점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얼굴 없는 산마루>
언제나처럼 길을 잃은 로안과 미미히코가 우연히 방문한 마을 사람들은 모두 미미히코를 보고 놀란다. 이유는 그가 사고로 죽은 마을 사람 모키치와 똑같이 생겼기 때문.

미미히코가 자신과 똑같이 생기고 비슷한 인생을 살아간 모키치의 가족을 만나 자신의 인생을 돌아본다는 일상계 소품. 잔잔하고 여운을 주는 내용은 좋았습니다.

허나 모키치의 아내 야에의 말을 듣고 다시 여행을 떠난다는 뻔한 결말에다가 왜 미미히코가 모키치와 모든 면에서 똑같은지에 대한 설명은 전무하다는 것은 단점입니다. 그냥 닮았다고만 해도 충분했을텐데 흉터까지 같다는 것은 무리수였던 것 같거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조금 쉬어가는 느낌의 작품이었어요.

<지옥>
이즈미 로안과 미미히코는 여행 중 강도를 만나고, 미미히코만 사로잡혀 신혼부부 후지와 요이치와 함께 축축한 구덩이 속에 갇힌다. 강도 가족이 던져주는 육포 조각을 먹으며 삶을 이어가던 중, 강도들이 한명을 꺼내 줄 것을 제안하고 상의하여 여성 후지를 올려보낸다..

구더기 그득한 축축한 구덩이 감옥 묘사도 사람 잡는데, '후지가 빠져나간 뒤 육포가 아니라 신선한 고기가 던져진다'에서 시작되는 공포스러운 묘사가 압권인 작품.
핵심은 강도 가족이 사람을 죽여 먹고, 가죽으로 생활 용품 등을 만든다는 설정인데 스코틀랜드 소니 빈 사건에서 영감을 얻은게 분명해 보입니다. 허나 단순히 영감을 얻은 수준은 아닙니다. 아이가 사람 얼굴 가죽으로 만든 가면을 쓰고 노는 등의 디테일이 잘 살아 있거든요.

이러한 묘사에 더해 숨쉴틈 없이 몰아치는 전개도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미미히코가 머리카락을 엮은 줄을 이용하여 요이치를 끌어 올렸던 밧줄을 회수한 뒤, 강도 가족을 구덩이에 쳐 넣는데 성공한다. 나중에 사람들이 찾아가보니 강도 가족이 구덩이 속에서 서로를 잡아먹고 있었기에 뚜껑만 덮고 도망쳐 온다..는 결말까지 정말 손에서 떼기 힘들 정도로 몰입감을 선사해주었으니까요.
이런 류의 돌직구 고어 호러는 오츠 이치의 특기이기도 하죠. <ZOO>에서 마음에 들었던 단편 <seven rooms>가 떠오르기도 했고요.

물론 해당 단편과 단점은 동일합니다. 왜 강도 가족이 포로를 잡자마자 죽이지 않고 귀한 육포를 먹여가며 살려두는지가 설명되지 않는 점 등 세부적인 설정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제법 되거든요.

그래도 섬찟함과 독자를 몰입시키는 맛은 수록작 중 최고였다 생각되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이전 작품이 쉬어가는 느낌이라 공포심이 더욱 배가된 듯 한데, 목차도 작가의 의도인지 살짝 궁금해지는군요.

<빗을 주워서는 아니된다>
전편의 경험으로 미미히코는 여행을 거부하고, 이즈미 로안은 다른 고용인과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여행에서 돌아온 로안은 미미히코에게 동행인이 죽었다고 이야기하며 그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떨어진 빗을 줍는 것은 고통과 죽음을 줍는 것이기에 꼭 빗을 주워야 할 때는 발로 한 번 밟은 뒤 주워야 한다는 이야기가 토대인 작품. 빗을 그냥 주웠다는 고용인이 머리카락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죽은 시체로 발견되는데 입에 들어있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니 엄청난 양이 나왔다는 부분까지는 평범한 괴담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노파가 빗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거짓말로 그가 지어낸 이야기이며, 머리카락은 죽은 어머니의 것이라고 밝혀지는 결말이 아주 독특했어요. 괴담을 너무 좋아한 청년이 자작극을 벌이면서까지 괴담이 되려 했다는 내용이니까요.
누군가의 이야기가 괴담이 된다는 점에서 교코쿠 나쓰히코의 <백귀야행>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단순 괴담이 아니라는 것에 점수를 주고 싶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자. 가요." 소년이 말했다>
결혼한 뒤 온갖 괴롭힘을 당하던 여자가 우연히 만난 소년. 소년은 그녀에게 글을 가르쳐 주는데...

이즈미 로안이 길치가 아니라 사실은 차원을 이동하는 능력을 가진 텐구의 자식이라는 설정을 알려주기 위한 이야기.
단순한 설정 보강용으로 하나의 작품으로 볼 수 없습니다. 여자를 괴롭히던 시댁에 뭔가 천벌이 내렸다는 이야기라도 있었더라면 뭔가 완결성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별점은 빵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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