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 위조사건 - 조 홀드먼 지음, 김상훈 옮김/북스피어 |
헤밍웨이의 분실된 원고를 위조하여 한몫 잡으려 하는 존 베어드 앞에 미지의 존재가 나타나 그만 둘 것을 명령한다. 미지의 존재는 시공을 초월한 평행 우주의 관리자로 존의 작업이 이 세계를 멸망시킬 수도 있기 때문.
명령을 거절한 존을 죽이지만 존은 다른 평행 우주에 다른 모습, 다른 기억을 지닌채 부활한다. 그가 부활한 세계는 기존 세계와 무언가 조금 다른 곳이었다...
SF 작가 존 홀드먼의 중편 SF 범죄 스릴러. 초, 중반부까지는 헤밍웨이의 원고를 위조하여 한 몫 잡으려는 전형적인 위조 사기물인데, 관리자에 의해 존이 최초로 죽은 뒤에는 평행 우주 세계관의 SF물로 전환되는 작품.
일단 초반 위조 사기물 전개는 훌륭합니다. 원고를 위조하는 것 보다 그 원고가 가짜임을 증명하는 논픽션을 써서 대박을 치려 하다는 계획부터 아주 참신하거든요. 안전하고 성공 가능성 높은 계획이라 생각됩니다.
또 나름 진지한 학자 존이 이 사기에 뛰어든 동기 (신탁 재산의 투자 실패와 그로 인한 아내의 유혹)도 설득력 높고, 사기꾼 캐슬과 존, 리사 부부, 문학을 공부하는 콜걸 팬지 등 주요 캐릭터도 생생하다는 것도 큰 장점이에요. 원고를 위조할 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 실행해 나가는 과정의 묘사와 헤밍웨이 관련 디테일도 괜찮은 편(국내 독자가 그 참 맛을 느끼기는 어렵긴 하지만)이며 전체적으로 유머가 묻어난다는 것도 좋았고요.
아울러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적나라한 성관계 묘사가 꽤나 빈번하게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작품과 꽤나 잘 어울린다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캐릭터를 보다 선명하게 만들어 주더라고요.
허나 평행 우주의 관리자가 개입한 뒤 부터는 좀 별로에요. 특히나 존 베어드가 헤밍웨이를 위조하는 것이 왜 우주에 위기를 가져오는지는 전혀 설명되지 않을 뿐더러 마지막이 영 이해가 안되고 별로였어요. 헤밍웨이의 삶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의 묘사는 압도적이긴 합니다만 결말이 대체 뭐죠? 두 여자를 구하고 죽은 뒤? 헤밍웨이가 되었다가 그를 초월한다? 존이 관리자들과 동일한 수준의 절대적 존재가 되었다는 뜻인가요?
만약 그렇다면, 주인공이 초월적 존재가 되는 것으로 결말을 퉁치는 작품은 너무나 많은데 (<타이거! 타이거!>, <제 5 도살장> 등등등) 딱히 차이점이나 더 나은 점을 찾기도 힘듭니다. 이 작품의 결말은 뜬금없고 급작스러운 편이니까요. 여러모로 깊이 고민하지 않고, 우리나라 막장 드라마의 기억 상실증 설정같이 일종의 만병통치약을 사용해서 뻔하고 쉽게 끝낸거 아닌가 싶어요.
이럴 거라면 그냥 위조 범죄물로 마무리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요? 물론 평행 우주 하나의 존이 죽을 때 그의 기억을 간직한 채 다른 평행 우주의 존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부활할 때마다 조금씩 바뀌어간다!는 설정을 통해 호감가는 잔챙이 사기꾼에서 살인마로 돌변하는 캐슬을 효과적으로 설명하는 등의 디테일은 좋았지만... 핵심 이야기로 보기에는 어설프고 대충 넘어간 부분이 많아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적당한 길이에 책의 장정과 디자인도 마음에 들고,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재미도 충분합니다만 앞서의 이유로 감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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