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개주막 기담회 - 오윤희 지음/고즈넉이엔티 |
<<아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포나루에 있는 , 과부 주모가 세 아이와 함께 운영하는 삼개주막을 찾은 손님들이 하는 기담 내지 괴담을 엮은 단편집. 모두 여섯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조선 후기를 무대로 하고 있으며, 한국적인 소재들이 등장하는게 눈길을 끕니다. 특히 여러 한국 요리 묘사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실제로 주막에서 먹었음직한 요리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숙소와 주막을 겸하는 객주집에 대한 상세한 묘사도 좋았고요.
<<열녀>> 속 등장인물인 허씨 가문의 아이 율이가 후일 장사의 귀재인 허생전의 허생이 되었다던가, 주막집 장남 선노미가 연암 박지원의 기담회의 이야기 꿈이 된다는 등 실제 역사와 고전을 버무리는 팩션 스타일 전개도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괴담치고는 섬찟함이 부족하다는건 문제입니다. 단순한 치정극이 이야기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알 수 없는 초자연적인 존재라던가, 인간이 더 무섭다는 식으로 공포를 자극하는 이야기는 전무합니다.
<<열녀>>에서 허씨 가문 도련님이 본 건 그네를 타는 미모의 아낙이 아니라 목을 맨 형수 정씨의 사체가 흔들리는 모습의 환영이었다는건 오노 후유미의 <<귀담백경>> 속 <<마음에 들다>>와 똑같아서 공포심을 자극하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이미 아는 내용에서 무서움을 느낄 이유는 없으니까요. 그네를 타는 아낙 정체를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마음에 들다>>보다 오히려 못하기도 하고요.
이야기들도 앞서 설명드린 몇몇 요소를 제외하고는 딱히 한국적인 부분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도 아쉬웠어요. 조선 후기를 무대로 했지만, 특별히 시대 배경을 따른다기보다는 일본 괴담물에서 보았음직한 내용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를 배경으로, 특정 가게를 찾은 손님으로부터 듣는 괴담물이라는 점은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물의, 그 중에서도 '미시마야' 시리즈와 너무 비슷합니다. 선노미가 괴담을 그림으로 그린다던가, 기담을 이야기하는 이야기꾼 역할을 맡게된다는 것도 미시마야 시리즈와 유사하고요. 이야기를 도맡아 '듣는' 역할이 아니라 들은 이야기를 '전해주는' 역할을 한다는걸로 역할만 반대로 만들었을 뿐이지요. 그림을 그리는 설정도 공양을 겸해 그림을 그리는 미시마야보다는 빈약해 보였어요.
첩의 저주로 자기가 사산했다고 생각한 정실 부인이 첩과 첩의 아이를 죽였는데, 그 이후 정실 부인이 낳은 딸이 첩의 환생이었다는 <<첩의 환생>>, 과거 보러 가는 길에 우연히 찾은 폐가가 알고보니 과거 보러가던 원래 친아버지인줄 알았던 양부의 모함으로 멸문지화를 당했던 친부 집이었다는 <<과거 보러 가는 길>>, 유괴된 아이가 '고독'을 만들기 위한 재료로 쓰이다가 죽은 뒤 복수를 하기 위해 돌아온다는 <<유괴된 아이>>는 다 어디서 보았음직한 이야기들이에요. 저는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이계록>> 등의 중국 괴담이 바로 떠올랐습니다.
수록작 중 독한 시어머니가 남편을 잃은 며느리를 살해한 뒤, 자살한 것으로 꾸며 '열녀' 칭호를 받으려 했다는 <<열녀>>정도만 조선을 무대로 했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그네를 타는 여인의 환각 등 다른 일본 괴담물에서 이미 접했던 설정이 등장해서 그리 독특한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리저리 꼬인 가족 관계를 남발하는 전개도 좋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과거 보러 가는 길>>의 선비 세진의 아버지가 알고보니 친아버지가 아니라 원수였다던가, <<열녀>>의 정씨 남편은 전처의 아들이라 시어머니가 도련님을 더 챙겼다던가, <<옹기장의 꿈>> 속 옹기장이 박씨의 아들 희동이는 알고보니 옹기장이의 친동생같은 제자 덕배의 씨였다던가, 심지어 주막집 맏아들 선노미까지 도망친 노비의 아이였다는 식인데 이 정도면 과하다 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 조선 후기를 무대로 했다면 더 한국적인 소재가 등장했어야 했습니다. 지금의 결과물은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물의 아류작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네요. 별로 무섭지도 않아서, 딱히 권해드릴 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저도 다음 권은 읽어볼 생각이 별로 들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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