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명의 의인 - 에드거 월리스 지음, 전행선 옮김/양파(도서출판) |
<<아래 리뷰에는 내용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권력을 남용하는 사악한 자들을 처단하는 자경단 네 명의 의인이 이번에는 영국 외무부 장관 필립 레이먼 경의 목숨을 노리기 시작했다. 그가 추진 중인 새로운 법안이 통과되면, 부패한 정부를 쓰러트릴 영웅 가르시아가 죽게 될 위험에 처하기 때문이었다. 네 명의 의인은 공개적으로 경고장을 보내며 압박하지만, 레이먼 경은 절대로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사건 총 책임자 팰머스 형사는 레이먼 경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하지만, 경은 결국 네 명의 의인이 경고한 시간에 자택 밀실 안에서 살해되고 마는데....
사회 정의를 위해 힘쓰는 4인조가 영국 총리를 암살한다는 내용의 모험물이자 범죄 추리물. <<킹콩>>의 원작자로 당대의 유명한 스토리텔러였던 에드거 윌리스의 작품입니다. 20세기 극초반인 1905년 발표된 작품인데 상당히 신선한 아이디어가 많았고, 지금 시점에서 읽어도 흥미진진한 이야기라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특히 사회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스스로 악을 처단한다는 '자경단' 설정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상당한 수준의 재력과 변장 기술로 대표되는 특수 능력, 멤버 중 한 명인 테리가 조직의 기밀을 누설하려 하자 신문사로 복면을 하고 직접 찾아가 빼내온다던가, 팰머스 형사로 변장하여 총리에게 직접 협박장을 전달하는 등의 대범함, 그리고 빼어난 추리력 모두 후대, 아니 현재의 DC나 마블 히어로들과 비교해도 딱히 뒤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분명 악당이지만 경찰과 정정당당하게 승부하며 매너까지 갖춘 안티 히어로적인 모습도 독특함을 더해주고요.'괴도 신사'의 영국 버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모험물적인 속성 외에도 추리적으로도 볼만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뭐니뭐니해도 레이먼 경이 수많은 경찰로 둘러쌓여 있는 밀실 안에서 살해된 트릭을 꼽고 싶습니다. 레이먼 경이 자주 누르던 부저에 전기가 통하게 하여 감전시켜 죽였다는 건데, 지금 보면 왜 경찰이 진작에 알아내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는 합니다만, 20세기 초반이라는 시대 배경을 감안하면 꽤나 그럴싸하면서 효과적인 트릭이었다 생각됩니다. 손에 있는 얼룩 흔적라던가, 머나먼 이국 독자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네 명의 의인이 도둑맞은 수첩 속에 표기되었던 지명이 전기가 통하는 길을 설명하고 있다는 등 단서 제공도 공정한 편이었고요.
모험과 범죄를 잘 결합한 전개도 좋았습니다. 좀도둑 빌리 마크스 이야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빌리에게 호주머니를 털려 '4명의 의인'이라는게 드러난 네 명의 의인 중 한 명인 포이카르트가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다시 빌리를 찾아낸 뒤, 그가 자기들의 정체를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를 알아내고 처단하는 부분이지요. 포이카르트는 대놓고 빌리에게 얼굴을 드러내어 그가 자신의 얼굴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가 보상금 때문에 일부러 경찰에 신고를 미루고 있다고 확신하게 됩니다. 그 뒤 다른 의인 맨프래드가 경찰을 사칭하여 빌리를 살해하게 되고요. 이 일련의 과정은 모두 합리적일 뿐더러, 추리는 물론 여러가지 디테일일들이 곁들여져 흥미롭게 진행됩니다.
물론 지금 읽기에는 많이 낡은 부분, 작위적인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네 명의 의인의 활약 대부분은 변장 중심이며, 운에 많이 의지하고 있어서 딱히 스릴을 느끼기 힘들고 꽉 짜여진 정교한 이야기라고 하기는 무리였어요. 마지막에 테리가 왜 죽었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그리고 네 명의 의인 캐릭터가 약하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한 명은 화학 전문가라는 설정 정도에 그치는데, 리더이자 돈줄, 브레인, 행동대장과 같은 식으로 각각의 캐릭터를 보다 선명하게 부각시키는게 좋았을 것 같습니다. <<A 특공대>>처럼요.
트릭도 앞서 괜찮았다고 말씀드렸지만, 레이먼 경이 범행 예고 시각에 부저를 누른다는건 장담할 수 없었던 등 몇가지 디테일에서 문제가 없지는 않고요.
그래도 100년이 넘은 고전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재미를 가져다주는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확실히 당대의 인기가 이해가 되는 수준이었어요.
설정은 정 반대지만, 비슷한 시기의 대흥행작이었던 <<팡토마스>>와 비교해보자면, <<팡토마스>>보다는 훨~씬 나았습니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한 번 찾아 읽어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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