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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30

알렉스 - 피에르 르메트르 / 서준환 : 별점 2.5점

알렉스 - 6점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서준환 옮김/다산책방

<<아래 리뷰에는 범행 동기, 범인 및 진상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알렉스는 트라리외에게 납치되어 '새장'이라 불리우는 작은 상자에 갇혀 죽을 운명에 처했다. 알렉스에게 살해당한 아들의 복수를 위해서 일을 벌였던 트라리외는 경찰에게 체포되기 직전 자살했지만, 알렉스는 경찰이 구조하기 전에 자력으로 탈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
카미유 반장의 수사 결과 알렉스는 산성 용액으로 남자들을 죽이고 다녔던 연쇄 살인범으로 밝혀졌고, 그녀는 경찰의 추적 아래에서도 살인을 거듭해 나가는데....


프랑스 작가 피에르 르메테르의 500페이지가 훌쩍 넘어가는 대장편 범죄 스릴러. 형사반장 카미유 베르호벤 시리즈 중 두 번째 작품입니다. 얼마전 접했던 모 리스트에서 '신감각 납치 미스터리' 라던가 '서점 대상, 고노미스 대상 등 모든 상을 휩쓴 사상 최초 7관왕 작품!'이라는 등 엄청난 수식어로 소개하고 있길래 궁금해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는 크게 3부 구성입니다. 1부에서는 알렉스가 괴한에게 납치된 뒤, 외딴 건물 속 '새장'이라 불리는 상자에 갇힌 채 죽어가는 과정과 납치 사건을 쫓는 카미유 반장 팀의 수사가 교차됩니다. 2부에서는 알렉스가 진한 산성 용액으로 여러 명을 살해하는 범죄 행각이 그려지고요. 알렉스가 자살한 뒤의 이야기인 3부에서 알렉스가 저지른 범행이 알고보니 그녀의 오빠 바쇠르가 알렉스에게 오래 전부터 저질러왔던 성범죄 탓이었고, 알렉스는 자살한게 아니라 오빠에게 살해당했다는게 밝혀지며 끝납니다.

1부에서 볼거리는 상자에 갇힌 알렉스가 좁아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몰려든 쥐떼와 극한의 승부를 펼쳐가며 탈출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입니다. '신감각 납치 미스터리'라는 말이 허언이 아니라고 생각될 정도로 정말 실감나서, 읽는 독자마저도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듭니다.
2부에서의 알렉스가 저지르는 연쇄 살인 사건 묘사도 꽤 그럴싸했습니다. 특히 알렉스가 자신의 정체를 숨겨가며 대담한 범행을 저지르는 과정의 설득력이 높습니다. 남자들 (그리고 여자 한 명)을 유혹해서 함정에 빠트리는건 그녀의 미모 묘사로 보면 손쉬웠겠지요. 당당히 얼굴을 드러내면서 범행을 반복했는데도 불구하고, 경찰이 그녀를 쉽게 체포하지 못하는 이유도 합리적으로 설명됩니다. 지문이 등록되어 있지 않으니 '범인이 알렉스다!'라는 것만 드러나지 않으면 되는데, 이건 현장에서 체포되거나 명확한 단서가 있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니까요. 여기에 더해 작품에서처럼 현금 결재를 기본으로 소지품을 최소화하여 잦은 이동과 은신을 반복한다면 더더욱 어려웠을테고요.
3부는 일종의 대단원으로, 알렉스 과거 일기를 토대로 그녀가 11살 때 부터 오빠 바쇠르에게 성폭행을 당해왔으며, 심지어 오빠 때문에 성매매까지 하다가 산성 용액으로 하복부에 엄청난 상해를 입었다는 과거와 그 탓에 살인을 저질러 왔다는게 밝혀지고, 마지막에는 그녀를 오빠가 죽였다는게 드러납니다. 서로 별 관계가 없어 보였던 2부에서의 피해자들이 사실은 오빠 피에르의 지인들이었고, 그녀를 아프게했던 가해자라는게 함께 밝혀지고요. 1, 2부를 종합적으로 정리해서 깔끔하게 마무리 지었다는 점에서는 좋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베르호벤 반장의 수사추리도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건 납치당했던 알렉스가 어디로 어떻게 귀가했는지?에 대한 추리였어요. 몰골과 상태가 말이 아니었을테니 걷거나 택시나 버스는 눈에 뜨였을텐데 어디로 어떻게 이동했나? 라는 수수께끼인데 베르호벤 반장은 불법 체류자들이 모는 불법 택시를 이용했을 거라고 추리한 뒤, 이를 토대로 알렉스의 거처를 알아냅니다.
극도로 단서가 제한된 상태에서 납치된 여성을 찾기 위해 현장 근처에 차량이 대기할 만한 장소를 우선 파악한 뒤, CCTV로 수상한 트럭에 대한 정보를 얻는 등 다른 수사들 모두 합리적이고요.

그러나 잘 짜여진 구성에도 불구하고 지루한 편입니다. 베르호벤 반장에 대한 불필요한 심리 묘사와 서술이 많은 탓이 가장 큽니다. 전작에서 사망했던 아내 이렌을 잊지 못해 허우적거리는 묘사 등이 그러합니다. 이런 부분들은 역시나 프랑스 소설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추리적으로도 베르호벤 반장이 펼치는 약간의 활약을 제외하고는 건질게 전무합니다. 진상이 드러나는 3부는 발견된 알렉스의 일기를 토대로 진행되고, 독자는 전혀 모르는 오빠 바쇠르와의 과거가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상당한 지능범으로 카미유 반장 팀과 심문 중 배틀을 벌일 정도로 뻔뻔했던 바쇠르가 현장에 자기 지문과 모발을 남겼다는 어처구니 없는 결말도 추리물로서의 완성도를 저해합니다. 굉장히 기발하게 범행이 드러날 것으로 생각했는데, 단순한 현장 감식만으로 드러난다는건 실망스럽더군요. 지능범답지도 않았고요. 바쇠르 캐릭터를 3부 내내 잘 쌓아올려 갔는데, 마지막 한, 두 페이지로 그 모든게 무너져버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애초에 현장 감식에서 그의 지문과 모발이 발견되었다면, 3부에서 장황하게 펼쳐졌던 바쇠르와의 대결(?)은 존재 의미를 상실한다는 문제도 큽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2부에서 알렉스가 죽음에 이르는 장면 묘사였습니다. 3부에서 알렉스는 자살한게 아니라 오빠 바쇠르에게 살해당했다고 설명됩니다. 그러나 알렉스가 머리를 세면대에 짓찧고, 술과 함께 약을 섭취하는 마지막 장면은 분명 그녀의 의지였던걸로 묘사됩니다. 지문이 지워진 뒤에 덧 씌워진 술병 지문 등을 보면, 오빠의 범행이 맞는 듯 한데, 그렇다면 이렇게 알렉스가 자살하는 듯한 심리 묘사는 거짓이에요. 이런 불공정한 정보를 중요 순간에 드러내고 제대로 설명하지도 않는건 좋은 추리물이라고 보기 어렵게 만듭니다.
아니면 바쇠르의 주장대로 그녀가 자살하면서 오빠에게 죄를 뒤집어 씌웠다는게 맞다면, 오빠의 모발같은걸 어디서 어떻게 가져와서 흘려두었는지 등 설명되지 않는게 너무나 많고요.

범행 동기도 석연치 않았습니다. 알렉스를 힘들게 했던 원흉은 오빠 바쇠르, 그리고 그 사실을 알고도 외면했던 어머니입니다. 성매매를 했던 다른 남자들은 모두 가해자이기는 해도 오빠보다 죄가 많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정작 오빠는 죽이지 않고, 오히려 오빠에게 살해당한다는건 이상했어요. 제대로 된 이야기였다면 오빠에게서 과거의 가해자들 주소를 입수한 뒤에는, 오빠를 죽였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알렉스의 범행은 앞서 설명했듯 설득력이 높지만, 그녀가 항상 얼굴을 드러내놓고 다녔다는건 분명 문제입니다. 경찰은 그녀의 사진도 이미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진작에 공개 수사로 전환했더라면 체포는 몰라도 마지막 한, 두 건의 범행은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요. 이렇듯 경찰의 수사도 여러모로 딱히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울러 키가 145cm밖에 안되는, 유명 화가의 아들인 카미유 베르호벤 반장과 거구에 고도 비만인 상관 르 구엔 상관, 카미유의 부하로 명품을 휘감고 다니는 부자 루이와 구두쇠 아르망처럼 서로 대비되는 여러 캐릭터들도 비현실적이고 작위적이라서 별로였어요. 특히 베르호벤 반장에게 이런 핸디캡과 캐릭터 적인 특성을 부여한 이유를 모르겠네요. 키가 작은게 수사에 불리한건 하나도 없으니, 이는 단지 '독특함'만을 위해 부여한 특징 같은데 오히려 능력보다는 카미유 베르호벤 반장의 불안한 심리만 부각시켰을 뿐입니다.
피해자를 둔기로 타격한 뒤, 아황산을 입에 주입해 끝장내는 알렉스의 잔혹한 범죄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3부를 통해 이 범죄가 그녀가 당했던 고통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게 드러나기는 하는데, 그렇다고 해도 지나치게 자극적인 묘사로 분량을 채울 필요는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알렉스가 어린 시절 아황산으로 입은 상처 역시 과했던 설정이라 생각됩니다. 성폭행만으로도 범행 동기로는 차고 넘쳤다고 보이거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작가의 전작도 그닥이었기에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는데, 몇 개의 반전이 이어지고, 감금과 범행 과정에 대한 설득력이 높은 등 좋은 평가를 받을만한 부분은 제법 있습니다. 
그러나 단점도 만만치 않은건 사실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차라리 알렉스만 주인공으로 해서, 그리고 그녀가 정확하게 오빠를 덫에 걸리게 만들었다는 결말로 마무리하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억지로 카미유 베르호벤 시리즈로 만든게 여러가지 단점들의 가장 큰 원인이니까요. 한 번 읽어볼 만은 하지만 해외 미스터리 랭킹 베스트 10에 당당히 꼽힐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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