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2 - 에도가와 란포 지음, 김은희 옮김/두드림 |
제목 그대로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이자 변격물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에도가와 란포의 단편선집입니다. 1권 다음에 3권이 먼저 나온 뒤 나온 2권입니다. 순서조차 엽기적이군요.... 1권과 3권을 이미 읽고 소장하고 있기에 구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이런 추리 단편을 워낙 좋아라하기도 하고 말이죠.
그러나 아쉽게도 이미 접한 작품도 많고 "본격물" 로 보기에는 어려운 작품들도 제법 많아서 1 - 3 권을 읽고 느꼈던 것보다는 조금 못합니다. 그래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단편집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겠죠. 전체적인 평점은 3점입니다.
최고 베스트는 "음울한 짐승" 이긴 한데, 너무 잘 알려진 작품이라 조금 식상하다면 "그는 누구인가"를 꼽고 싶네요. "악귀"도 괜찮았고요.
좀더 자세하게 이야기하자면,
호반정 사건 :
거울장치로 남을 엿보는 취미가 있는 주인공인 나는 묵고있던 여관 목욕탕에 몰래 숨겨놓은 장치를 통해 한 여인이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여관에서 친구가 된 코우노와 함께 사건의 조사에 착수한 나는 사건이 벌어진 이후 여관 잔치에 불려나왔던 기생 쵸키치가 실종되고 정체불명의 손님들이 커다란 트렁크를 든 채 서둘러 도망갔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경찰까지 수사에 나서지만 결국 사건은 미궁에 빠지는데...
작가의 변격적인 취향이 잘 반영된 "거울장치"라는 설정은 인상적이지만 본격물에는 미치지 못한 조금은 애매한 작품입니다. 본격물로 기능하기 위한 트릭은 그런대로 합격점이긴 하며 쵸키치의 실종이라던가 군불지기 산조우의 존재 등을 통해 이야기도 나름 설득력 있게 전개하고는 있지만 "거울장치"라는 소도구 자체가 우연을 토대로 한다는 점과 정체불명의 손님들과 거액의 돈이라는 설정 역시 지나칠정도로 작위적이기에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이야기는 중편 길이에 가까우나 알맹이가 없는 작품이라 별점은 2점입니다.
악귀 :
추리소설가 토노무라 쇼우이치는 고향에서 우연히 친구인 오야 코우기치가 연루된 사건에 휘말린다. 오야의 정혼자 츠루코가 참혹하게 훼손된 시체로 발견되었기 때문. 마침 오야는 파혼을 주장하며 유키꼬라는 아가씨와 사귀고 있었기에 완벽하게 범인으로 몰린다. 결국 토노무라는 친구의 누명을 벗어주기 위해 나서는데...
작가 스스로도 책 뒤의 해설에서 이야기하듯 결정적 트릭을 홈즈 단편 중 하나인 "브루스파팅턴 잠수함 설계도의 모험"에서 차용한 작품으로 정통 본격물입니다. 비록 중요 트릭이 모방이라 하더라도 다른 트릭들, 즉 1인 2역 트릭 같은 것들이 중요 트릭과 함께 작품과 잘 결합되어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결말이 조금은 쌩뚱맞긴 한데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합격점을 줄 만한 작품이죠. 별점은 3점입니다.
지붕 속 산책자 :
백수 코우다는 명탐정 아케치 코고로와 친분을 맺은 뒤 "범죄"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러던 중 새로 이사한 하숙집 천장으로 통하는 통로를 우연히 발견한 그는 다른 하숙생들을 염탐하는 취미에 빠져들다가 싫어하는 하숙생 엔도우를 완벽하게 살해할 수 있는 계획을 실행하게 된다...
대표작 중 하나로 과거 동서 추리문고의 "음울한 짐승"을 통해 먼저 접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변격물적인 성향에 더해 범행이 먼저 이루어지는 약간은 도서추리적인 전개, 그리고 사건을 밝혀내는 아케치 코고로의 추리쇼가 돋보이며, 특히나 범행을 행하는 과정까지의 서스펜스가 정말 장난이 아니라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죠.
코우다를 주인공으로 하여 그의 심리묘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과 범행의 유력한 증거가 결국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본격물로 보기는 힘들겠지만 에도가와 란포라는 작가의 진면목을 알기 위해서라면 꼭 한번 읽어봐야 하는 작품이 아닐까 싶네요. 별점은 3점.
그는 누구인가 :
유우키 소장의 아들 히로카즈가 도둑에게 저격당해 불구가 된다. 그러나 범인이 남긴 불가사의한 발자국 등 알 수 없는 여러 정황증거 때문에 사건이 미궁에 빠진다. 결국 추리광인 히로카즈 스스로 탐정역을 소화하려 하고, 유우키 가문의 손님인 아카이씨 역시 사건 해결에 나서는데...
범인이 하늘로 꺼지는 발자국이라는 불가능 범죄의 설정을 가진 본격물입니다. 지도까지 도입한 치밀한 구성, 잘 짜여진 캐릭터 구도와 완벽한 동기 등 본격물의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죠. 덕분에 상당한 길이의 중편이지만 작품 내내 계속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가 많아 지루하지 않게 읽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아케치 코고로가 등장한다는 것 역시 팬으로서는 반가운 일이었고요.
저자 스스로는 자신의 냄새가 많이 나지 않아 별로 화제가 되지 못했다고 이야기하지만 후대의 팬으로서는 오히려 기대하지 않았던 보석을 발견한 듯한 기쁨이 느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달과 장갑 :
카츠히코는 고리대금업자 마타노를 우발적으로 살해한 뒤 자신의 애인이기도 한 마타노의 아내 아케미와 공모하여 사건을 은폐할 결심을 한다...
장치를 이용한 일종의 알리바이 트릭이 등장하는 도서 추리물입니다. 작가 후기에서 "황제의 코담배갑" 같은 "범인이 자신의 범행을 멀리서 바라본다"라는 알리바이 트릭을 언급하는데 사실 그 정도는 아니죠. 완전 오버에요... 이 작품은 트릭 자체는 별게 없고 오히려 이를 밝혀내기 위한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는 서스펜스가 더욱 돋보이는 스릴러적인 성향이 강한 작품입니다.
아케치 코고로의 이름이 잠깐 언급되는 것도 눈여겨볼만 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호리코시 수사1과장 귀하 :
도쿄 경시청의 호리코시 수사1과장은 5년전 관내에서 벌어진 미궁의 천만엔 도난사건에 대한 편지를 받는다...
서간문 형식으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1인 2역 트릭을 다루고 있습니다. 트릭과 설정은 뻔해서 역시나 본격물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르지만, 전개과정이 뻔한 아이디어를 덮을 수 있을 만큼 흡입력이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모처럼 결말까지 깔끔할 뿐 아니라 훔친 돈의 은닉에 대한 몇가지 아이디어 등도 재미있었기에 별점은 3점. 무난하고 평이했습니다.
음울한 짐승 :
추리작가인 나는 실업가 오야마다 로쿠로의 부인인 오야마다 시즈코라는 여성과 우연히 친분을 쌓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가 나에게 오에 슌데이라는 정체를 알기 어려운 추리작가에 대해 문의하고, 나는 오에 슌데이가 과거의 연인이었다가 스토커로 돌변한 히라타 이치로라는 그녀의 고백을 듣게 된다. 히라타 이치로의 스토킹과 편지의 강도가 세지던 와중에 결국 오야마다 로쿠로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다...
나왔다! 이 작품도 동서추리문고를 통해 소개된 대표작이기도 한 변격물입니다. 에도가와 란포 스스로 작중의 오에 슌데이, 즉 히라타 이치로라는 인물에 자기 자신을 투사하여 작품을 써 나갔기 때문에, 란포의 여러 작품들이 오에 슌데이의 작품으로 인용되는 등 작가와 왠지 일체화된 느낌이 강한 작품이기도 해서 대표작으로 인정받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비록 읽어본 작품이기는 하지만 번역이 다른 탓에 굉장히 신선한 기분을 느끼면서 새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스토킹이나 가학증 등 변격물적인 성향도 잘 드러나 있지만 본격물로 보아도 손색없을 정도로 여러가지의 트릭 - 특히 오야마다 로쿠로 살인사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볼거리입니다 - 이 복합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약간 여운을 남기는 애매한 결말까지도 인상적이라 에도가와 란포 작품 중에서도 탑 클래스에 들만한 좋은 작품이기에 별점은 4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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