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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27

미스테리아 36호 - 미스테리아 편집부 : 별점 3점

 

미스테리아 36호 - 6점
미스테리아 편집부 지음/엘릭시르

출간되는 것 자체가 고마운 추리, 장르 문학 전문 계간지 미스테리아 36호. 80년대 대중 문화에 대해 분석하는 특집 때문에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잡지 특성 상 '대중 문화'도 추리, 장르 문학을 기반으로 한 부분을 많이 다루고 있는데, <<인간시장>>과 <<어둠의 자식들>>에 대한 분석에서 시작하여, 80년대 추리문학계의 왕성한 움직임을 '영상화'를 통해 잘 설명해주는 부분이 시선을 잡아 끌었습니다. <<추리극장>>과 <<베스트셀러 극장>>이 많은 한국 추리 소설을 원작으로 영상화했다는 것도 새로왔지만, 뒤이어 마츠모토 세이초의 작품을 무단으로 번안하여 영상화했다는 건 정말 처음 알았거든요. 심지어 대표작인 <<제로의 초점>>을 그냥 무단으로 표절해서 방영했다니 놀랍습니다. 그 외에도<<과다 지불한 중매 사례비>>, <<안개의 깃발>>, <<얼굴>>, <<수사권 외의 조건>>, <<목소리>>, <<조난>>까지 모두 일곱 편이 드라마화되었다는데, 이 중 제대로 원작을 알린건 <<베스트셀러 극장>>에서 제작했던 3편 뿐이라니 정말 무식한 시대였네요. 그나마도 제대로 베끼지 못해서, 사건이 시작되는 기본 설정 정도만 따 온 정도에 그쳤다니 아쉽고요. 예를 들어서 <<제로의 초점>>의 핵심은, 어려웠던 시기 몸을 팔았던 과거를 은폐하려 했던 여성의 처절한 몸부림입니다. 그러나 무단 영상화 버젼에서는 이걸 그냥 '화류계에 몸 담았던 과거' 정도로 퉁치고, 남편을 위해 자살한다는 순애보로 바꾸었다니 이래서야 통속적이고 전형적인 신파극에 불과해 보입니다. <<수사권 외의 조건>>도 핵심 소재였던 흘러간 유행가가 '그때 그 사람' 이라는건 와 닿는 변주였지만, 역시나 내용은 치정 멜로물이었다고 하고요. 이 책에서 소개된대로, 사회파 추리소설에서 '사회성'과 '역사성'을 삭제해 버렸기 때문에 남는건 개개인의 사연과 이를 포장하는 한국식 신파 밖에는 없게 된 셈입니다. 이런 류의 번안은 생각도 못했는데 한 번 찾아봐야 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이런 반쪽짜리 표절 드라마 이야기 다음에는, 영화를 통해 80년대를 설명하는 글이 이어지는데, 당대의 히트작이었던 <<적도의 꽃>>은 '아파트'에 대한 특별한 해석이, <<서울 무지개>>는 외설, 에로 영화가 사회물로 포장될 수 있었던 여러가지 배경에 대한 설명이 상세해서 볼 만 했습니다.

80년대 일어나 엄청난 충격을 안겨다 주었던 '우범곤 대량 살인 사건'에 대한 글도 좋았습니다. 사건이 왜 발생했으며, 어떻게 커졌고,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와 그 후일담까지 모두 알 수 있었던 좋은 르포르타주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쓰여진 사건과 실화 논픽션을 모아 출간해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유리 겔러의 초능력 소동을 다룬 글도 빼 놓을 수 없네요. 왜 '초능력'이 인기를 끌었는지를, 10년 전 일본에서의 대 유행과 결합하여 설득력있게 설명해 주고 있는 덕분이지만, 무엇보다도 저 역시 유리 겔러 쇼를 80년대 TV로 직관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그 당시 사회에 준 충격은 정말 어마어마했었습니다.

물론 이번에 수록된 기사들이 80년대 사회, 문화 현상을 대변한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TV 드라마와 영화, 추리 소설 등 굉장히 지엽적인 부분의 분석에 그치고 있는 탓입니다. 그것도 드라마의 경우는, 좋은 부분이 아니라 나쁜 부분을 언급한다는 측면에서 딱히 가치있는 정보는 아니었고요. 제 기억에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번안했던 <<열 개의 제웅 인형>>은 노래와 분위기 모두 굉장했던 수작이었는데, 이렇게 성공적이었던 번안물도 함께 소개해 주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하지만 대중 문화, 특히 추리, 장르 문학과 관련하여 80년대를 조망한다는 특집의 기획 의도에는 충분히 부합하는 좋은 기사들이였습니다. 제 기대에도 역시나 충분히 부합했고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마지막으로, 함께 수록된 단편 3편에 대한 상세 리뷰는 아래에 따로 소개드립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모두의 약점>>
지후는 친구 이하리와 함께, 떡볶이 집 주인 동생 서소하의 부탁으로 한 2학년 여학생을 찾아 나섰다. 부족한 소하의 인상착의 설명에도, 가방이 없었던 등의 디테일에 주목하여 조사한 끝에, 그 여학생이 박재이라는걸 알아냈다. 그러나 소하가 여학생을 찾은 이유, 그리고 박재이가 멀리 떨어진 식자재 마트 근처에 간 이유 등은 모두 밝혀지지 않았는데...

여고생들이 탐문 수사와 추리를 통해 특정 학생을 찾아낸다는 일상계 추리물. '엘릭시르 미스터리 대상' 단편 부문 상을 수상했다는 작품과 이어지는 세계관이라는데, 딱히 특별한 설정이 사용되지는 않아서 읽는데 부담은 없었습니다. 지후가 박재이를 찾아내는 과정은 잘 짜여진 추리물로 손색이 없는 수준이라 만족스러웠고요.

그러나 지후와 새아버지, 새언니와의 관계 설정은 비중에 비하면 딱히 의미가 없었습니다. 최소한 이 작품만 볼 때는 말이지요. 그리고 서소하의 부탁을 지후와 하리가 선뜻 받아들이는 것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식자재 마트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어묵을 사려던 할아버지의 행동을 목격했을지 모를 여학생을 찾는다는 서소하의 동기 역시, 여학생을 찾기 전에 걱정했던대로 소문이 날 거였다면 이미 났을 거라 설득력이 약했습니다. 오히려 그 여학생인 박재이를 찾아내어 입막음을 부탁했다면, 긁어 부스럼이 될 수도 있었을테고요. 또 박재이 입으로 식자재 마트에 간 이유를 털어놓는 결말도 좋은 추리물로 보기는 어려웠어요. 박재이가 이혼하여 따로 사는 친아빠를 찾아가려 했다는 이유는, 작중에서 추리할 수 있는 단서가 거의 없어서 공정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나쁘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아주 좋지도 않았던 평작입니다. 연작 단편 중 한 편이라 따로 떼어놓고 읽으면 좀 애매했던 부분이 있었던게 아닐까 싶네요. 시리즈 전체를 한 권에 모은 단편집이 출간되면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

<<사라진 궁녀>>
조선 태종 시대의 궁궐을 무대로 한 괴담물. 기승전결이 없고, 제대로 된 설명이 뒷받침되지 않는 이야기를 시대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는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물을 떠올리게 합니다.

궐 내에서 사라진 궁녀가 어디로 갔을지?라는 의문에 대한 답이, '승은을 입어서 다른 신분이 되었다'는건 상당히 기발했지만, 그렇다면 '사라졌다'는 소문이 돌 리 없다는 점에서는 문제입니다. 사라진 정의궁주의 궁녀 단지의 행방도 설명되지 않는건 마찬가지였고요. 단지가 승은을 입어 궁주가 되었다면, 그걸 궐내 궁녀들이 모른다는건 애초에 말이 안되겠지요. 효순 궁주가 병화어였다는 결말도 이게 뭔가 싶더군요.

그래서 별점은 2.5점. 한 편의 이야기로는 완결성도 없고 여러모로 애매해서 감점합니다. 괴담물로는 나쁘지 않았지만, 별로 무섭지도 않았고요.

<<수전 데어의 첫 번째 사건>>
여류 추리 소설가 수전 데어는 친구 크리스타벨의 저택에서 조 브롬펠의 아내 미켈라가 크리스타벨의 동생 랜디를 유혹하는걸 목격했다. 미켈라는 크리스타벨과 결혼을 약속했었던 조 브롬펠을 꼬드겨 결혼했던 적이 있던 악녀였다.
그리고 그날 밤, 조 브롬펠이 살해당했고, 자수정 반지를 끼고 있던 크리스타벨이 유력한 용의자로 몰리게 되었다. 범인의 손만 목격했다는 하인 마스가 범인이 '붉은 색 보석' 반지를 끼고 있었다고 증언했던 탓이었다.


발표 당시에는 애거서 크리스티와 맞먹는 인기를 누렸다는 미뇬 에버하트의 명탐정 수전 데어 시리즈입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지만 시리즈 첫 작품이기도 하지요. '수전 데어 비긴즈'랄까요.

하지만 추리적으로는 별 볼일 없었습니다. 추리소설 황금기 단편답지 않게 '트릭'이라는게 등장하지도 않고, 동기는 마지막 해결 과정에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공정하지도 않고, 독자가 풀어낼 수수께끼도 별로 없다는 뜻이지요.
범인 트라이언 웰스가 끼고 있던 반지에 대한 수수께끼가 등장하기는 합니다. 반지 보석 알렉산드라이트는 주광과 야광에서의 색깔이 달라서, 낮에 확인했을 때는 초록색이었다는 거지요. 하지만 이건 범인의 의도도 아니었고, 우연에 의한 것입니다. 이렇게까지 극명하게 색깔이 바뀐다는 것도 설득력이 약합니다. 차라리 총을 쏠 때 불 붙인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고 있어서, 그걸 반지로 착각했다면? 이라는 식으로 풀어내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네요.
랜디에게 빌려준 돈 대신, 크리스타벨의 저택을 압류하여 사업상 급한 불을 끌 생각이었던 트라이언 웰스의 동기도 그럴싸 하기는 했지만, 경찰 수사 과정에서 이를 계속 숨길 수 있었을 것 같지도 않아요. 동기만 드러나면 범인이 누구인지는 쉽게 알 수 있었을테니, 잘 짜여진 범죄물이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결론내리자면 추리 퀴즈에 가까운 이야기였습니다.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그나마도 그렇게 흥미로운 퀴즈는 아니었으니까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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