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외 서커스 -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민경욱 옮김/하빌리스 |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커스단 마술사 란도와 동료들은 급작스럽게 흡혈귀들의 습격을 당하고 말았다. 흡혈귀들이 그들을 흡혈귀 사냥 조직 컨소시움이 위장한 서커스단으로 착각했기 때문이었다.
흡혈귀들은 인간을 훌쩍 뛰어넘는 능력을 갖추었지만, 아크로바틱 곡예사 기프티와 비스트리 남매, 화살 묘기를 부리는 궁사 슈티, 동물 조련사 레이라, 공중 그네 묘기를 펼치는 리지와 진 컴비, 오토바이 곡예사 쿠와이, 마술사 란도와 조수 아야미, 그리고 피에로 단장까지 10명의 단원들은 그대로 물러서지 않고, 그리즐리가 이끄는 다수의 흡혈귀들과 자기들의 기술을 이용하여 처절한 사투를 벌이게 되는데...
고바야시 야스미의 중편. <<기억파단자>>처럼 능력자들끼리의 배틀을 다룬 배틀물인데, 한 쪽이 굉장히 불리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흡혈귀들은 뇌나 심장이 파괴되지 않으면 어떤 상처를 입어도 재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두에서 컨소시움 군대 수십명이 강력한 중화기로 무장하고도, 흡혈귀 퀸 비 일당 세 명을 모두 쓰러트리지 못했기에, 읽으면서 서커스 단원들에게 과연 승산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단원들이 각자의 능력을 펼쳐보이는 것에 더해, 그들에게 유리한 서커스 무대 장치 등을 활용하여 승리하는 과정이 설득력있게 그려져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처럼 쓸데없는 설정을 부여하지 않고, 단순 화끈하게 풀어나가는 전개도 매력적이었고요.
특히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란도의 활약이 대단했습니다. 슈티가 죽어가면서 쏜 화살에 흡혈귀 위젤이 맞고 죽은 것을 통해 흡혈귀들이 심장이나 뇌가 파괴되면 죽는다는걸 깨닫고, 자신이 직접 만든 탈출 마술 장치를 이용하여 그리즐리를 없애는데 성공하니까요. 잠깐 관에 갖혔던 그리즐리가 나오는 틈에, 귀로 화살을 쏴서 죽였던 거지요. 진짜 최종 보스 미티아 역시 이 마술 장치로 발을 붙잡은 뒤 공격해서 죽일 수 있었고요. 단순 무식한 배틀이 아니라, 마술 장치 등의 복선도 활용한, 잘 짜여진 두뇌 싸움이라는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조련사 레이라와 키리피시의 대결도 볼 만 했습니다. 사자와 호랑이와 함께 공격하면서 키리피시의 눈길을 끌고, 그 틈에 코끼리 점보를 탄 단장이 뒤에서 키리피시를 밟아 없앨 수 있었다는건데 상당히 설득력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헛점을 이용하여 예상치 못했던 일격을 날렸다는 점, 그리고 코끼리 점보의 존재를 계속 독자들에게는 알려주었다는 점에서 공정한 두뇌 싸움의 좋은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지와 진이 공중 곡예로 캐터피라를 날려버리고, 쿠와이가 이 틈에 오토바이를 추돌시켜 불을 붙인 싸움은 그리 정교하지는 않았지만 흥미진진하기는 했습니다. 오토바이 공격이 아니라 휘발유를 부어버리는게 진짜 핵심이었다는건 괜찮은 발상이었어요.
뛰어난 곡예사이지만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기에 기프티처럼 끔찍한 최후를 맞는 피해자가 나오는 것도 이야기에 설득력을 더해 줍니다.
문제는 다소 뜬금없었던 두 개의 설정입니다. 첫 번째는 숲 속에 홀로 산다는 여행객 도쿠 할아버지입니다. 할아버지의 활약으로 캐터피라와 토타스를 없앨 수 있었지만, '산 속에 혼자 사는 무림 고수 은거 노인' 캐릭터는 너무 진부한 설정이었습니다. 할아버지가 토타스가 문으로 습격할걸 예측하여 문에 낚싯줄을 걸어 두었다는 것에 대한 설명도 부족했고요. 토타스는 할아버지가 뭐 하는지 뻔히 보고 있던 상황이라서, 이렇게 쉽게 함정에 걸린다는건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슈티가 흡혈귀 중 최강자인 미티아였다는게 밝혀지는 일종의 반전 부분입니다. 흡혈귀들이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아서, 그리즐리 패거리에게 인간에게 패배했다는 망신을 주기 위해 이런 음모를 꾸몄다는 것부터 영 와 닿지 않았어요. 오랜 시간 동안 서커스에서 일해가며 안배한 계획으로 보기에는 여러모로 허술했을 뿐더러, 최초 계획대로 그리즐리 패거리에게 망신을 주는 선에서 끝냈어야 했습니다. 미티아 스스로 모레노와 위젤을 죽인건 도무지 설명이 되지 않아요. 이렇게 죽일 거였다면 미티아가 직접 그리즐리 패거리를 찾아갔을 때 싹 죽이는게 나았겠지요. 슈티가 한 말 실수에서 란도가 슈티의 정체를 눈치챈다는 것 역시 조금 억지스러웠고요.
기프티가 흡혈귀가 되어 버렸다는 에필로그도 조금 애매했습니다. 이런 여지는 구태여 남길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적절한 분량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킬링타임용 읽을거리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전형적인 일본 배틀물 만화를 글로 옮겨 쓴 느낌인데, 만화 버젼이 있다면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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