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소스 맛 - 은상 지음/북오션 |
프리랜서 번역가, 작가인 저자가 집에서 요리들을 하면서 떠올린 이야기를 적은 에세이집. "남의 악담을 구체적으로 쓰지 않고, 변명과 자랑을 되도록 쓰지 않고, 시사적인 화제를 피하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쓰기 원칙을 지켜서 썼다고 합니다. 소스가 주제인 이유는 본인의 요리가 소스로 맛이 좋아졌기 때문이라네요. 소스 때문에 삶이 풍족해졌다고 표현할 정도로요.
음식에서 이런저런 연상을 떠올리고, 음식에 대한 소개와 레시피로 이어지는 구성은 다른 먹부림 에세이들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유머가 가득해서 쉽고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간간히 보이는 재치가 대단하거든요. 감자탕은 단지 시간만 들이면 된다면서 등뼈 핏물 빼는 시간, 초벌로 삶아 내는 시간, 푹 익히는 시간을 <<워킹 데드>>와 <<빅뱅 이론>>, <<저스티스 리그>> 한 편 시간으로 설명하는 식으로요. 저자의 소설을 한 번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음식을 보고 떠올리는 연상들도 독특했습니다. 저자의 직업 특성 때문인 듯 한데, 대표적인건 'LA 북창동 순두부 연신내점'을 보고 '나폴리탄 스파게티'를 떠올렸고, 거기서 직업병처럼 번역의 문제를 떠올리는 일련의 과정이었습니다. 참고로 결론은 그 나라 사람에게 맞게끔 바꾸는게 맞다는 것인데 저 역시 동감하는 바입니다.
수록된 레시피도 많을 뿐 아니라, 저자가 집에서 만든 요리들이 주제라서 모두 집에서 쉽게 따라할 수 있다는게 큰 장점입니다. 바로 오늘 저녁에 시도해 봄직한 요리들도 있을 정도에요. 굴소스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면서 소개하는 중국 요리들처럼요. 고추잡채는 피망 세 개, 파 한 개, 양파 반 개, 잡채용 고기 300그램, 전분 한 스푼, 굴소스가 있으면 만들 수 있답니다. 야채들은 채를 썰고 기름에 파를 볶다가 돼지고기, 그리고 간장이나 맛술을 한 스푼 넣습니다. 어느정도 볶아지면 굴소스 한 스푼, 피망, 양파 채 썬 것을 넣고요. 피망이 숨이 죽으면 전분물을 뿌리고 마지막으로 참기름을 뿌리면 끝이라고 합니다. 거의 다 집에 있는 재료라서 당장이라도 도전해 보고 싶어 집니다.
또 이 준비물에 게맛살, 버섯 약간, 계란 두 개만 있으면 중국식 계란탕도 만들 수 있다니 대박이에요. 기름에 파를 볶다가 향이 올라올 때 버섯, 양파 등을 굴소스와 같이 볶다가 물을 붓습니다. 간을 보고 싱거우면 소금을 넣어 간을 맞추고 게맛살을 찢어 넣고 계란도 풀어서 넣고요. 마지막으로 후춧가루와 참기름을 뿌린 뒤 전분물을 넣어 걸쭉하게 만들면 끝! 저 중국식 계란탕 아주 좋아하는데, 다음에 한 번 해 봐야 겠네요.
그 외 저자가 소개하는 소소한 팁들도 기억해 둘 만 했습니다. 나폴리탄 스파게티는 케첩 뿐 아니라 우유를 적당량 넣는게 좋다던가, 김치찌개를 끓일때 신김치가 없어서 맛이 나지 않을 때는 타바스코 소스를 넣으면 좋다는 것들입니다. 타바스코 소스는 단맛, 신맛, 짠맛을 모두 가지고 있어서 김치찌개를 잘 보조해 준다는군요. 단, 찌개를 끓이는 도중에 넣어야 특유의 향이 살짝 날아간다고 하네요.
재미도 있고, 기억해 둘 만한 레시피도 많은 좋은 독서였습니다. 물론 정식 레시피로 보기에는 재료나 조리 과정에 대한 소개가 빈약했고, 도판도 부실합니다. 생각할 수 있는 가정 내 소스들을 망라하고 있지도 않고요. 그러나 이건 요리책은 아니니 큰 단점은 아니라 생각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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