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과자 시간여행 - 나가오 켄지 지음/비앤씨월드 |
제목 그대로, 여러 양과자의 유래를 설명해주는 책. 첫 번째의 가토 데 루아에서부터 마지막의 비스킷까지 모두 15 종의 양과자가 소개되고 있는데, 단순 소개 이상의 식문화사 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정 양과자를 누가 만들었는지?" 뿐 아니라, 그 양과자가 만들어진 이유를 시대적 배경과 상황과 함께 설명해 주고 있는 덕분입니다. '4월의 물고기'를 설명하는 부분이 좋은 예입니다. 물고기 과자가 4월 1일에 만들어진 이유가 예전 유럽 관습과 관련이 있다며 상세하게 알려주거든요.
이 책에 따르면, 봄의 도래를 상징하는 춘분은 예전부터 농경민족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 역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중세 이전 유럽의 책력에서 1년의 시작은 3월 25일이었어요. 당시 사람들은 3월 25일부터 일주일에 걸쳐 신년을 축하하고 8일째 되는 날인 4월 1일에는 친한 사람들끼리 선물을 주고받는 관습이 있었고요. 그런데 1564년 프랑스 왕인 샤를 9세가 율리우스력을 폐지하고, 그레고리력을 도입해 1년의 시작이 1월 1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제도가 변해도 오래된 관습은 프랑스인들의 삶에서 사라지지 않았고 변함없이 4월 1일을 진짜 신년인 것처럼 가장하고 계속 축하했습니다. 이렇게 '허위 신년, 거짓 신년을 축하하는 풍습이 세월과 함께 조금씩 변화해 '타인을 속이고 즐기는 풍습으로 변모해서 만우절이 된 것이지요. '4월의 물고기'는 이후 로렌 공과 관련된 설화 등에서 차용되어, 만우절에 물고기 그림을 등에 몰래 붙이는 장난이 생겨난 이후 과자로 진화하였고요. 재미있네요.
달걀이 부활절의 상징이 된 이유도 명쾌하게 알려줍니다. 그것이 생명을 만들어내는 근원이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와는 관련이 없고요. 원래 부활절 축제는 유대교의 과월제, 게르만 시에 등장하는 봄의 여신에서 유래되었고, 기독교 성립 이후 부활과 결부된 것이라나요. 부활절 토끼도 마찬가지입니다. 옛날부터 새끼를 많이 낳는 동물로 알려졌고, 그래서 풍작을 상징해서 부활절 축제와 이어진 겁니다.
뷔슈 드 노엘의 본래 의미는 크리스마스의 뷔슈, 즉 장작입니다. 크리스마스에 장작을 태우는 풍습은 옛부터 있어 왔습니다. 기독교 이전 '동지'에 태양의 재생을 상징하고, 빛과 온기를 더하기 위해 태웠던게 계속 이어졌던 거지요. 그리고 19세기 후반, 서민들의 사회적 지위가 상승되었지만 그들은 장작을 태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집은 좁고 설비도 간소했기 때문입니다. 또 뷔슈 드 노엘은 불을 붙인 후 크리스마스가 끝날 때까지 절대 불이 꺼져서는 안돼서, 적어도 3일간은 계속해서 타야만 했는데 그렇게 긴 시간 동안 계속 타기 위한 큰 장작을 태울 난로도 없었고요. 그래서 뷔슈는 점점 작아지다고, 집에 난로가 없는 집이 늘어남에 따라, 결국 길모퉁이 제과점에서 손쉽게 살 수 있는 뷔슈 드 노엘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렇게 실제 역사적, 사회적 배경과 관련된 유래 외에도, 처음 누가 만들었는지?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와 같은 정말 양과자의 발전 과정을 다룬 설명도 자세합니다. '자허토르테'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프란츠 자허가 이 과자를 처음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 진실에 대한 추적에서 시작합니다. 프란츠 자허가 메테르니히 공 주방에서 일한건 사실이지만, 만들었다는 시기에는 너무 어렸는데 왜 연도를 속였을까?라는 수수께끼가 불거지고요. 이유는 아들 에두아르트 때문이었습니다. 에두아르트는 호텔 자허를 설립한 뒤 프란츠 자허가 메테르니히를 위해 만들었다는 설을 퍼트렸습니다. 19세기 후반 약소국이 된 오스트리아 국민들의 메테르니히에 대한 동경과 선망을 이용하려 했던 겁니다. 저자 말대로, “메테르니히 공이 사랑한 그 초콜릿 케이크야말로 우리 호텔의 스페셜리티입니다. 당신도 꼭 메테르니히 공이 맛본 이 과자를 우리 호텔에서 음미해 보는 건 어떨까요?"라는 권유였지요. 에두아르트의 계획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자허토르테는 유명한 과자가 되었습니다. 이후 자허 가문의 몰락과, 과자 레시피가 두 개로 분리된 과정도 재미있었어요.
어원에 집중한 설명들도 눈여겨 볼 만 합니다. 에클레르는 '번개'라는 뜻인데, 저자는 '천천히 먹으면 손과 입 주변이 크림으로 끈적끈적해 지기 때문에 번개처럼 빨리 먹어야 했다', '과자 옆에 번개같은 날카로운 선이 뻗어 있었다', '벨기에에서는 아예 과자 모양이 번개 모양이었다', '과자를 만든 파티시에가 이걸 완성한 순간 창 밖에 번개가 번쩍였고, 그 때 머리에 과자 이름이 번쩍 떠올랐다' 등의 다양한 설을 모두 소개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윗면에 캐러멜로 광택을 입힌 에클레르가 원래는 '바통 드 자코브'라는 중세 이후 대항해시대에 사용된 측량 기구 이름으로 불리었는데, 바통 드 자코브의 캐러멜이 빛을 받아 번쩍하고 반사되는 모양이 번개를 연상시킨다고 하여 에클레르라는 새로운 이름이 붙여졌을 거라는 저자 의견을 제시합니다. 그 외에도 마들렌, 매그 파이 등의 어원 등 다양한 과자의 어원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런 연구의 폭은 상당히 넓습니다. 원래 이름 뿐 아니라 미국에서 밀푀유가 '나폴레옹'이라 불리는 이유까지 탐구할 정도로요. 저자는 가토 나폴리탄이라는 밀푀유를 본뜬 과자에서 나폴레옹이 유래되었을 거라고 추측합니다. 근거는 불명확했지만 나름 재미있는 해석이었어요.
도판도 충실한 편입니다. 애플파이 레시피가 적힌 가장 오래된 문헌은 <<캔터베리 이야기>>와 거의 동시대에 나온 요리 해설서 <<폼 오브 퀴리(Forme of Cury)>>였고, 약 200년 후 극작가 로버트 그린의 <<아케이디아>>에 애플파이에 대한 대사가 나온다는 등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사료적인 근거도 제법 갖추고 있고요.
파티시에, 혹은 관련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위해 쓴 글인듯 지나치게 전문 용어가 많다는 점, 그리고 모든 양과자 설명에 참고 문헌과 자료가 함께 수록되어 있지 않다는 점은 조금 아쉬웠지만 여러모로 즐겁게 읽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졸저 <<콘 비프 샌드위치에 먹는 밤>> 증보판이 나온다면 (설마? 과연?) 써 먹음직한 내용이 많다는게 제일 좋았습니다. 과연 써 먹을 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요.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