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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0

움직이는 집의 살인 - 우타노 쇼고 / 박재현 : 별점 2점

움직이는 집의 살인 - 4점
우타노 쇼고 지음, 박재현 옮김/폴라북스(현대문학)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자마 아키라가 이끄는 극단 '마스터 스트로크'는 연극 "신은 예술가를 좋아해" 공연 연습에 한창이었다. 이 공연은 6년 전 무대에서 사고로 죽은 이자와 기요미 추모 공연으로, 그녀의 아버지인 유명 건축가 이지와 야스노리가 직접 만든 극장인 시어터 KI에서 공연될 예정이었다. 시어터 KI는 계란 형태로 생겨서, 가운데 노른자 부분인 무대가 회전하는 독특한 극장이었다. 

시나노 조지는 이 공연 제작 스태프로 참여하면서, 단원인 모리 쿄코와 연인이 되었다. 그런데 연극 공연 당일 배우 스미요시 가즈오가 부상을 입는 사고가 일어났다. 소품인 칼이 진짜 칼로 바꿔치기 된 탓이었다. 그럼에도 단원들은 공연을 강행하는데, 마지막 공연에서 각본가 겸 배우 다키가와 요스케가 무대에서 똑같은 소품용 칼에 찔려 죽고 말았다. 경찰은 칼을 바꿔치기 할 수 있던 단원들을 의심하고, 단원들은 내분에 휩싸이지만 시나노 조지는 극장 구조를 검토한 뒤 외부 인물이 범행을 저지를 수 있는 유일한 방법 한 가지를 깨닫게 되는데...

1980년대 중반 이후, 일본에서 태동하여 대 유행한 본격 미스터리를 '신본격'이라고 부릅니다. 본격 미스터리의 논리성과 게임성을 중시하는 작품들이지요. 문제는 비현실적인 설정과 트릭이 많다는 점이고요.

이 작품은 전형적인 신본격물입니다. 설정과 캐릭터, 트릭 등 모든게 비현실적, 만화적이며 과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연극을 공연하는 무대에서 사람이 다치고 죽는다는 설정부터가 비현실적입니다. 핵심 등장 인물들인 극단 '마스터 스트로크' 인물들도 마찬가지에요. 연극에 미쳐 다른 건 돌아보지도 않는 성격에, 대체로 사회성이 부족하고 비인간적이며 자기 이익만 챙기는 극단적인 캐릭터들이 대부분이거든요. 대마초를 재배해서 피우고, 민폐 끼치기가 일쑤인 탐정 시나노 조지야 더 말할 것도 없겠죠.
연극 "신은 예술가를 좋아해" 무대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도 비현실적입니다. 애초에 소품을 잘못 써서 사고가 일어났다면, 장난감이나 가짜로 바꾸는게 당연한거 아닐까요? 또 연극용 소품으로 만들어진, 몸에 닿으면 쑥 들어가는 장치가 된 칼을 진짜 등산용 칼로 바꿔치기 하여 사건이 벌어진다던가, 한 명이 부상을 입은 뒤, 또 다른 한 명이 같은 흉기로 살해된다는 전개는 너무 뻔해서 당황스러울 정도였어요.

무엇보다도 시나노 조지가 진상이라고 설명하는, 객석이 무대를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었다는 거대한 장치 트릭이야말로 과장된 이야기의 정점입니다. 무대가 회전하는 줄 알았지만 반대였다는건데 "웃지 않는 수학자"같은 트릭이지요. 이를 통해 건축가 이자와가 나갔을 때 문은, 원래 방향과 정 반대로 분장실과 이어지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나 당연히 현실성이 낮습니다. "웃지 않는 수학자"는 개인 건물에서 단 몇 명만 속이면 됐지만, 그리고 천문대가 회전하는건 말이 되는데 거대한 극장 객석이 회전한다는건 전혀 그렇지 않으니까요. 300명의 관객이 좌석이 회전한다는걸 모두 몰랐다던가, 중간에 아무도 화장실을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건 아무리 신본격이라 하더라도 면죄부를 줄 수 없는 비현실적인 생각이에요. 문을 빠져나가 칼을 바꿔치기 하고 다시 돌아오려면, 객석이 회전하고 있으므로 문 위치가 틀어졌을텐데 그 해결 방법도 설명되지 않고요.
또 이자와 혼자만이 아니라 극장을 만든 모든 사람들, 그리고 범행 당시 무대 조작하는 사람 도움이 필요하다는 문제도 있으며, 무엇보다도 경찰이 조금만 조사해도 금방 알 수 있다는 문제도 큽니다. 읽으면서도 어처구니가 없었어요. 그나마 다행인건 이 트릭은 사실이 아니었다는겁니다. 경찰 조사 결과 객석은 회전하지 않았고, 이자와는 무죄로 풀려나게 되지요.

이후 시나노 조지는 피해자 다키가와가 자살했다고 추리하는데, 좀 시시하기는 하지만 현실적이라는 점에서 앞서 추리보다는 낫더군요. 연극에 미친 사나이가 자신이 직접 쓴 연극 무대를 자살 장소로 삼았다는건 과장된 캐릭터성에 기초하고 있기는 하나, 미래에 대해 절망한 차에 옛 연인 기요미 추모 공연이 도화선이 되었다는 등, 여러가지 동기에 대한 설명이 꽤 설득력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자살이라서 별다른 트릭이 없다는 문제는 존재합니다. 앞서 가즈가 다친건 우연한 사고에 불과했다는 설명이지요. '신본격'의 전형적인 틀을 깨고는 있는데, 이래서야 '신본격'이라고 부르기는 또 애매한, 그런 기묘한 장르물이 되어 버렸네요.

작가도 뭔가 트릭에 대한 사명감을 느꼈는지, 연극 무대 살인 사건과는 별개로 핵심 트릭이 따로 등장하기는 합니다. 극단 '마스터 스트로크' 제작 담당으로 일했던, 주인공인 시나노 조지가 사실은 시나노 조지가 아니었다는 일종의 서술 트릭이 그것입니다. 그는 소극장을 상대로 일 년에 한 두번 씩 5년 동안 수익금을 빼돌려 왔던 사기꾼 오니쓰카 도시였지요. 시나노 조지가 등장하는 전작은 읽어본 적이 없지만, 전작을 읽었던 사람들은 놀랄만한 트릭일거에요. 변장을 위해 착용했던 선글라스와 마스크, 수염을 기르는 행위 등을 절묘하게 드러내는 전개도 나쁘지 않았고요. 그러고보니 제목도 트릭이네요. '움직이는 집' 에서 '살인' 이 일어나지는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가짜 시나노 조지가 사기꾼이라는걸 눈치챈 배우 사이키와 다투다가 머리를 부딪혀 죽은 뒤, 트릭이 밝혀지면서 나름 추리력을 보여준 가짜 시나노 조지 캐릭터가 엉망이 된건 아쉽습니다. 그의 말대로 5년 동안 일 년에 한두 번씩 극단 상대로 사기를 쳤다면 최소 5번에서 10번 정도 반복했다는건데 진작에 들키지 않았을 이유가 없습니다. 연극계가 발이 좁다는 묘사는 작품에 넘쳐나니까요. 진짜로부터 신분을 훔친 방법도 '우연히' 보험증을 손에 넣은게 전부고요. 이래서야 나름대로 추리력을 보여 주었던 치밀한 범죄자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시시한 죽음을 맞은건 당연해 보입니다. 서술 트릭도 곱씹어보면 이야기와는 무관한 곁가지 이야기에 불과하고요.

그나마 가짜가 죽은 뒤 진짜 시나노 조지는 대마 불법 소지 및 재배 혐의로 체포되고, 모리 쿄코가 투신하는 장면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건 좀 괜찮았습니다 . 과장된 세계에 종지부를 찍는 작가 나름의 의식으로 보였기 때문이에요. 모든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죽음, 아니면 감옥으로 현실의 굴레에 갖혀버리고 만 셈이니까요. 작가가 쓴 서문을 보면 본격 추리물을 쓰기 위해 등장시켰던 시나노 조지를 퇴장시키기로 결심한 작품이라고 하는데, 그 결심에 어울리는 결말이라 생각됩니다. 더 제대로 쓰려면, 시나노 조지를 진짜로 죽여버리는게 나았겠지만요. 

그래도 이 정도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본격 추리, 신본격 소설이면서도 트릭은 별볼일 없는데다가, 신본격 소설들이 갖춘 단점들도 두드러지는 탓입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딱히 권해드릴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2010/07/07

기울어진 저택의 범죄 - 시마다 소지 / 한희선 : 별점 3.5점

기울어진 저택의 범죄 - 8점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시공사

홋카이도에 위치한 하마디젤 회장 하마모토 고자부로의 별장 "유빙관"에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유빙관"은 괴짜 하마모토 고자부로가 일부러 기울여서 지은 이른바 '기울어진 저택'으로, 약간의 미로와 같은 방의 구성과 고자부로가 머무는 기울어진 탑이 딸려 있는 기괴한 저택이었다.

그리고 첫날 밤이 지나고, 초대손님 기쿠오카의 운전사 우에다가 완벽한 밀실인 자신의 방에서 살해되었고, 두 번째 날이 지나서는 기쿠오카 역시 완벽한 밀실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다. 사건의 조사를 위해 출동한 경찰 4명이 조사와 보호를 위해 저택에서 밤을 보냈는데도 불구하고.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경찰은 도쿄에 도움을 요청하였고, 이에 명탐정 미타라이 키요시가 친구 이시오카와 함께 유빙관에 나타나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점성술 살인사건"에 이은 명탐정 미타라이 시리즈 두 번째 작품입니다. 일본 신본격 추리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이지요.

그동안 신본격 추리 장르의 작품들은 많이 읽어왔습니다. 대체로 '독자에게의 도전'으로 대표되는 공정한 단서 제공, 확실한 퍼즐 미스터리라는 장점도 있지만, 과장되고 작위적인 설정에 기인한 부분이 많다는 단점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단점마저도 장점으로 승화시키는 놀라운 마법을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이 작품의 작위적인 설정은 모두 놀라운 트릭을 위해 짜여져 있고, 이러한 작위성이 완벽한 작가의 의도로 보이기에 의외의 즐거움을 안겨다 줄 뿐 아니라 놀랍게도 재미있는 덕분입니다!

일단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요소들이 "작위적"이라는 말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작위적인데도 불구하고, 워낙에 스케일이 크고 허풍도 심해서 그다지 거슬리지 않는 묘한 매력을 선보입니다. 여기서 한발자국만 더 나가면 곧바로 추리라는 장르를 넘어설 것 같은 아슬아슬함을 끝까지 잘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설정면에서 공들인 만큼, 트릭 하나만큼은 정말 압권입니다. 이 트릭을 위해 모든 것이 작위적으로 짜여져 있음에도, 작위적인 무대장치를 만든 방법 자체는 합리적이며 이를 쉽사리 눈치채지 못하도록 교묘하게 숨겨놓은 작가의 노력도 돋보이고요. 주어지는 정보도 비교적 공정한 편이라 본격 추리물로서의 가치도 무척 높은 편입니다.

아울러 이러한 연극적이고 만화적인 공간에서 활동하는 인물들이 전부 "보통 사람" 이라는 것도 독특했습니다. 정체불명의 애꾸눈이나 절름발이, 꼽추노인이나 불길한 가문의 피, 몇대를 이어온 가문의 증오 같은 억지는 하나도 등장하지 않아요. 모여든 사람들 모두 약간의 동기와 속물적인 마인드는 있지만 전부 평범하게 생각하고 행동하고요. 한마디로 고전 일본 본격 추리물의 공통점이기도 한 '작위적 설정 하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인물들의 난장판'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때문에 이 작품이 보다 현대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물론 단점도 있습니다. 첫 번째 우에다 살인 사건의 밀실은 실제로 해결 가능했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범인을 추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사건과 엮어서 불가능 범죄로 몰아간다는건 조금 억지스러웠습니다. 
두 번째 기쿠오카 사건도 트릭은 대단하고 멋진데 여러가지 변수가 너무 많습니다. 실제로 이 소설에서처럼 성공했을지도 잘 모르겠고요. 

동기를 너무 숨겨놓았으며, 동기의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점도 아쉬웠습니다. 이렇게까지 거대하게 공들인 트릭을 만들었다면, 동기도 그에 어울리게 좀 거창했더라면 좋았을텐데 말이죠.

또 저택의 약도가 독자의 상상의 여지를 제한하거나 부정확한 정보를 주는 부분이 있다는 점도 공정성 면에서는 점수를 좀 깎아먹기는 합니다. 요건 확실히 감점 요소인데 작품 보다는 출판사의 배려를 탓하고 싶네요.

이렇게 단점도 있지만, 신본격 추리라는 장르에 새로운 지평을 연 대단한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단지 트릭을 위해서 납득하기 어려운 설정을 만든다던가, 어떻게든 독자를 설득시키려고 외려 더 비현실적인 상황으로 치닫는다던가 하는 식의 다른 신본격 작품과 비교한다면, 아예 이렇게 대놓고 허풍스럽게 이야기하는게 더 낫지 않나 싶네요. 
하여간 읽으면서도 무척이나 즐거웠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저택의 약도 등을 보강하여 보다 공정하게 독자와 승부할 수 있게 해 준다면 별점은 4점!)

2021/10/15

미스테리아 34호 - 미스테리아 편집부 : 별점 2점

미스테리아 34호 - 4점
미스테리아 편집부 지음/엘릭시르

미스테리아는 주제가 흥미로울때만 가끔 읽곤 합니다. 34호는 일본 본격 추리 소설이 특집이라서 읽게 되었습니다. 나름 고전 본격물의 팬을 자부하고 있으니까요. 표지부터 마음에 들어요. "니가 범인이야!" 라는 느낌이니까요. 강렬합니다.

특집은 일본 본격물의 역사에서 시작합니다. 본격과 변격이라는 말의 유래, 그리고 본격이라는 말의 정의, 최초의 본격물에서 신본격, 그리고 근래 라이트 노벨류까지 이어지는 역사와 대표작, 대표 작가들이 소개되지요. 큰 흐름으로는 본격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고가 사부로에서 시작하여 에도가와 란포의 "D언덕의 살인사건", 하마오 시로의 "그 남자가 죽였을까", 요코미조 세이시의 "혼진 살인사건", 그리고 마쓰모토 세이초와 사회파 미스터리의 대 유행에 이은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 아야쓰지 유키토의 "십각관의 살인",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월광 게임 - Y의 비극 '88",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일곱 번 죽은 남자", 모리 히로시의 "모든 것이 F가 된다" 등 신본격 전국 시대를 넘어 우타노 쇼고의 "벛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이마무라 마사히로의 "시인장의 살인"으로 이어진다는 식입니다. 

뒤로는 본격물이 일본에 받아들여진 당시 일본 추리 문단에 대한 상세 설명, 여러가지 유명 작품 속 트릭에 대한 소개, 점점 캐쥬얼화 되어가는 신본격 장르물에 대한 기사가 이어집니다. 자료 조사도 탄탄하고, 담고 있는 내용도 풍성한 편이었어요.

두 번째 특집 기사 '체인질링'은 인간의 아이와 바꿔치기된 요정 아이에 관련된 민담을 분석하는데, 중세 유럽에서 왜 아이가 바뀐 것에 대한 전설이 만들어졌는지를 당시 역사적 배경으로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아이가 기형일 수도 있고, 아이가 죽는 일이 다반사였던 탓이라는데 아주 그럴듯했어요. 관련된 다른 전설, 우리 나라의 예도 들어서 설명해 주는 것도 좋았습니다. 

홍한별 번역가와 곽재식 작가의 옛 사건 탐구도 흥미로왔어요. 특히 명동 한복판에 일제 강점기 시절 빼돌리지 못했던 보물이 묻혀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는 한 편의 영화나 소설로 만들어도 손색없어 보였습니다. 레이철 쿠시너의 "마스 룸" 속 등장하는 요리들을 소개한 컬럼은 '추리 소설과 요리'에 대한 글을 써 온 저로서는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는 내용이었고요. 요리들도 아주 신기하더군요.

그런데 불만족스러운 부분도 적지 않습니다. 우선 본격물 관련 특집은, 이미 대충 알고 있던 내용들로 새로운 건 없었습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저도 쓸 수 있었을 기사였달까요? 물론 캐쥬얼화 되어가는 최근의 흐름은 잘 몰랐던 내용이긴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쪽 작품들 찾아 읽을 정도로 좋아하지 않아서 몰랐던거에요. 구태여 구해 읽을 필요가 있었던 기사는 아니었습니다. 

유성호 법의학자의 아동 학대 흔적에 대한 컬럼, 이은의 변호사의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 속 법적 대응 방법 등 다른 기사, 컬럼들은 볼륨이 대체로 빈약합니다. 인터넷 검색 결과와 별다를게 없는 수준이에요. 반대로 정성일 평론가의 영화 "포제서" 평론은 볼륭은 풍성했지만 글의 가독성이 너무 낮아서 지루했고요.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평론만 봐도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였어요. 이렇게 가독성이 낮은 글은 이외에도 많아서, 쉽게 읽히지도 않았습니다. 심지어 짤막한 리뷰들 하나하나까지 모두요.

마지막에 수록된 3편의 단편들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관심있는 특집이더라도 더 이상은 구매할 생각이 없습니다. 정은지, 홍한별, 곽재식의 컬럼과 논픽션 기사나 추후 단행본이 출간되면 구입해 볼 생각입니다.

수록 단편에 대한 짤막한 소개로 리뷰를 마칩니다.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는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콩알이를 지켜라!" 

자신이 창조해 낸 인기 동화책 콩알이가 인생의 전부인 일러스트레이터 지혜정의 남편 김진석 교수가 살해되었다. 범인은 제자 최은비였다. 진석이 그녀를 강간하려 해서, 우발적으로 저지른 일이었다. 혜정은 은비를 꼬드겨 시체를 강원도 의천에 있는 별장에 유기하러 출발했다. 콩알이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별장에는 진석의 변태 친구 한동철이 머무르고 있었고, 혜정은 동철마저 살해한 뒤 시체 두 구를 함께 유기해 버렸다.

듀나의 범죄 스릴러 단편인데 이야기할 가치가 없는 졸작입니다. 

우선 범죄에 대한 설득력이 너무 낮습니다. 아무리 남편이 쓰레기였다 한들, 피해자 아내가 남편을 죽인 살인자와 함께 시체 유기를 한다는걸 제대로 설명하고 있지 못한 탓입니다. '콩알이'의 존재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그에 대한 설명과 묘사가 부족해서, 그다지 절박한 이유로 보이지 않았거든요. 혜정이 처음부터 한동철을 죽이려 했고, 이를 위해 앞서 시체 유기를 일부러 훤히 드러나게 시도했다는 식으로 범죄 계획을 정교하게 세우기라도 했다면, 범죄물로 볼 만한 여지가 있었을텐데 그렇지도 않고요.

전개도 혼란스럽습니다. 진석이 제자의 고백을 녹화하여 한동철과 공유하고, 성적인 대상으로 삼았다는 진상이 드러나는건 뜬금없었고, 이 때문에 한동철을 죽였다는 것도 급작스러워서 이해가 힘들었습니다. 애초에 진석은 여태 은비의 고백을 녹화해서 잘 쓰다가, 왜 갑자기 강간을 저지르려고 한걸까요? 문학하는 남자들을 모두 성범죄자로 단정짓는 설정도 황당하기 그지 없더군요.

듀나의 특기이자 장점인 기발한 설정이 빠져버리니, 뭐 하나 건질게 없네요. 별점은 1점입니다.

"웃는 탐정" 

초월탐정 김재건과 미소년 조수 마곤이 등장하는 단편으로 집주인 여사와 김재건 사이에 택배로 인해 발생한 트러블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엉망진창이에요. 마곤이 초능력자로 일종의 투명 인간이 되어 집주인 여사가 가지고 있던 김재건의 택배를 훔쳐내는게 이야기의 거의 전부인데, 마곤이 이 택배를 왜 훔쳐내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초월탐정 어쩌구하는 김재건의 능력인지는 모르겠지만요. 

경박하고 유치찬란한 김재건 묘사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초월 탐정' 이 뭘 뜻하는 별명인지 감도 오지 않지만, 별로 궁금하지도 않는군요. 서두의 시점을 가지고 독자와 장난치는 부분은, '메타 미스터리' 운운했던 앤솔로지 "Y의 비극"에서 니카이도 레이토가 썼던 단편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그 작품도 엄청난 졸작이었지요.

마곤이 할머니와 김재건 사이에 있었던 일을 추리하는 일상계 추리스러운 부분은 괜찮았지만, 다른 부분은 그저 그랬어요. 앞으로도 이 시리즈를 읽을 일은 없을 듯 합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죽음의 세트장" 

배우 잭 하터가 영화 촬영용 세트장에서 살해당했다. 사건 당시 21번 방음 세트장 안에는 현장 제작자 조 캐츠키와 감독 샘 매스터퍼드 등 모두 열 세 명의 사람이 있었다.

1930년대를 무대로 하고 있는 단편인데 옛스러운 영화 촬영장 분위기를 상세하게 그려낸 묘사는 아주 좋았습니다. 잭 하터와 마리 플레밍, 두 주연 배우 간에 사랑의 불길이 타오르게 되는 마지막 촬영 장면 묘사가 특히 그럴싸 했어요. 이 부분은 여배우를 연모하고 있었던 감독 샘의 살인 동기가 되기 때문에 아주 중요하기도 했는데, 잘 그려냈습니다.

'스크립터'가 탐정역을 소화한다는 설정도, 과연 영화를 잘 아는 사람이 썼구나! 싶더군요. 스크립터는 씬마다 있는 오류를 잡아내기 위한 사람으로, 당연히 관찰력이 남다를 수 밖에 없으니까요. 

관찰력을 바탕으로, 일종의 닫힌 공간인 촬영 스튜디오에서 소거법으로 범인을 찾아내는 추리 과정도 설득력이 높습니다. 거의 대부분 목격 증언으로 소거되는 덕분이에요. 결국 조 캐츠키와 샘 매스터퍼드만 남는데, 발소리를 듣지 못해서 샘이 범인이라는게 드러납니다. 조 캐츠키의 발소리는 독특했고, 샘은 고무 장화를 신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단서가 별다르게 제공되는건 없어서 본격물로 보기 힘들며, 추리도 일사천리라 의외성은 없습니다. 사실 샘이 범인이라는 스크립터의 추리는 증거가 명확하다고 볼 수 없어서, 경찰 수사가 추가로 필요한 부분이었다 생각되네요. 그래도 다른 단편들에 비하면, 최소한 읽을만한 수준의 추리물이기는 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07/05/13

여러가지 리스트

국내에 소개되었으면 하는 작품 리스트들

山口雅也 야마구치 마사야 -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 生ける屍の死"
이런 저런 곳에서 걸작으로 많이 언급되는 작품이라 번역되었으면 합니다. 제목 부터 범상치 않군요.

니키 에쓰코 단편선 - "고양이는 알고 있다"라는 장편으로 유명한 작가인데 단편은 거의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에츠코 남매의 단편집이 존재하는데 꼭 번역되었으면 합니다. 동화작가이기도 해서 추리소설이지만 좀 따뜻하고 감성적인 부분이 많아 제법 괜찮을 것 같거든요. 전에 읽었던 다른 단편도 무척 좋았고요. 기대가 됩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 - "쌍두의 악마"
일본 신본격 거장으로 신본격을 알리기도 한 기념비적 작품입니다. "국명"시리즈라고 하는 단편선도 유명한데 이 단편집 작품들은 편차가 좀 크기 때문에 위험부담이 좀 있으리라 보이지만 국명시리즈 단편 베스트 걸작선이 만약 존재한다면 당장이라도 구입할 용의가 있습니다.

노리츠키 린타로의 작품들 - 역시 신본격 작가로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어 추천합니다. 대표작은 "頼子のために" 인 듯 싶습니다.  "이콜 Y의 비극"이라는 단편 하나를 제가 졸속으로 아주 후지게(?) 번역해 놓았으니 작가의 스타일이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 읽어 보세요.^^

쓰쓰이 야스타카 - "ロートレック荘事件 (로트렉장 사건)"
상당히 유명한 작품인데 저도 읽어보질 못해서.... 쓰쓰이 야스타카는 애니메이션화된 "파프리카"라는 SF 작품으로 이미 소개되어 있기도 합니다. 정통 본격물은 아닌 것 같기도 한데 무척이나 궁금한 작품이라서 번역되면 정말 반가울 것 같습니다.

기타무라 카오루 "하늘을 달리는 말" - 저도 잘 모르는 작품이지만.. 다들 걸작이라고 하더군요.


덧붙여, 국내에 소개되었지만 지금은 구하기 힘든 과거 작품들 (무순)

다카키 아키미쓰 "파계재판"
"문신 살인사건"으로 유명한 본격 작가의 최대 걸작이라고 하죠. 저도 아직 읽어보질 못한 환상의 작품으로 꼭~! 다시 나와 주었으면 하는 리스트 넘버 원입니다.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 "도끼"
영국 미스테리 작가로 실직에 대한 서늘한 풍자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박찬욱 감독이 영화화 하려고 했던 것으로도 유명하죠.

커트 캐년 "주정뱅이 탐정가를 가다" (국내 출간명 "주정꾼 탐정")

하라 료 "내가 죽인 소녀"
일본판 하드보일드 최고 걸작. (제가 읽은 것들 중에서는) 두말할 것 없는 강추 작품입니다. 대관절 왜 안 팔렸는지 모르겠다는...

윌리엄 벨린져 "이와 손톱"

2017/07/01

기면관의 살인 - 아야츠지 유키토 / 박수지 : 별점 2점

기면관의 살인 - 4점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박수지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가 설계한 건물 '기면관'은 진기한 가면을 모아 놓은 것으로 유명했다.
추리 소설가 시시야 가도미는 자신을 닮은 환상, 괴기 소설가 휴가 교스케의 부탁으로 기면관에서 열리는 기묘한 의식에 참석하게 되었다. 기면관의 주인인 가게야마 이쓰시가 자신과 생일이 같거나 비슷한 사람을 모아 가면을 씌워놓고 '또 하나의 자신'을 찾는 의식이었는데, 참석자에게 200만엔이라는 거액의 보상이 주어졌다. 마침 병원에 입원해야 했던 휴가는 기회를 놓치기 싫어서 시시야에게 부탁했고, 시시야 역시 나카무라 세이지가 만든 건물이라서 호기심으로 참석하였다.
의식에는 모두 6명의 닮은 꼴들이 모였고, 그들 모두 가게야마 이쓰시와 개인 면담을 진행했지만 다음날 가게야마 이쓰시는 참혹한 시체로 발견되고 '기면관'은 폭설로 고립되는데...

아야츠지 유키토의 대표 시리즈인 관 시리즈의 가장 최신작이자 현재(2017년 7월)까지는 마지막 작품입니다. 관 시리즈의 장, 단점이 모두 최대치로 드러나 있지요. 

장점으로는 신본격의 대표 작가 아야츠지 유키토의 이름에 걸맞는 본격물이라는 점이 가장 큽니다. 모든 단서가 공정하게 제공되며, 추리 과정도 합리적입니다. 대단한 트릭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독자의 의표를 찌르는 설정 - 범인 가게야마 이쓰시가 기면관의 2대 주인이고, 살해당한 가게야마 이쓰시는 생일이 같은 동명이인을 찾던 3대 주인이었다 - 을 끝까지 드러내지 않는 교묘한 전개도 인상적입니다. '수면제를 먹이고 가면을 씌운 이유'라는 기묘한 상황이 합리적으로 설명되는건 과연 '관 시리즈' 답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요.

또 탐정역인 시시야 가도미의 추리를 사건의 핵심 3요소를 꼭 집어 알려주는 부분처럼 진행에 따라 전개에 녹여내어 독자가 이에 동참하게 만드는 것도 좋습니다.  아르바이트생 도코는 사실 신게츠류 유술의 달인이라던가, 환희의 가면이 콘택트렌즈에 대해 조언을 하는 장면, 미네르바라는 잡지 로고에 대한 이야기 등 전개하면서 등장하는 여러 요소들도 허투루 사용하지 않는건 추리 작가 지망생으로서 배울 만 했습니다. 작위적인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공정한 정보 제공이라는 측면에서는 충분히 합격점을 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기존 '관 시리즈'에서 느껴지던 변격물적인,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한 느낌이 덜하다는 것도 마음에 드네요.. 이 부분은 호불호가 많이 갈릴 것 같은데 저는 '호' 쪽이었습니다. 읽기가 훨씬 깔끔했고 내용도 보다 합리적으로 와 닿았기 때문입니다. 범행도 나름대로 상식적(?) 으로 그려지고요.

그러나 단점도 명확합니다. 가장 큰 단점은 지나칠 정도로 작위적이라는 것입니다. 본질을 찾는다 어쩌구 하면서 생일이 같은 동명이인을 불러모아 가면을 씌워놓고 하룻밤 보낸다는 기본 설정부터가 비현실적이지요.
관 시리즈에 등장하는 나카무라 세이지의 비밀 장치도 작위적이라는 점에서는 뒤지지 않습니다. 최악은 별관으로 탈출하기 위해 이용한 비밀 통로입니다. 이를 열기 위해서는 '기면의 가면'을 대고 균등하게 눌러야 하기 때문에 기면의 가면을 쓰고 있던 가게야마 이쓰시의 시체 목을 잘랐어야 했다는데, 눈이 이렇게나 많이 왔으면 눈을 뭉쳐서 가져다대고 눌러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요? 애초에 가면을 대고 누른다고 힘이 균등하게 들어간다는 것도 넌센스고요.
참석자가 모두 동명이인이라는 것 역시 작위적이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무엇보다도범행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미래의 가면'과 열쇠를 훔치기 위함이라는 목적은 뭐 그렇다고 칩시다. 하지만 기껏 훔쳐봤자 폭설로 고립된 상황에서 어쩔 생각이었는지 전혀 모르겠어요. 가게야마 이쓰시를 살해하지 않았더라도, 다음날이면 범행이 밝혀졌을 테니까요. 이럴거라면 참석자와 하인들까지 모두 죽이고 도망가는게 도주에는 훨씬 유리했을 겁니다.
오니마루와 도코 등 참석자 외 관계자에게 수면제를 먹이지 않은 이유도 알기 어렵습니다. 상식적으로라도 모두 재우는게 훨씬 낫습니다. 실제로 관계자들 모두가 범행 시각에 잠을 자고 있지 않았던 탓에 범행도 많이 틀어져 버렸으니까요.
도쿄 근처에서 폭설로 고립되고, 구조를 요청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곳이 실제로 존재할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장점도 있지만 단점이 너무나 명확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그래도 장, 단점 모두 신본격이라는 장르를 상징하는 작품으로, 신본격물을 이해하기 위한 좋은 교과서이기는 합니다. 신본격이라는 장르가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 읽어보셔도 괜찮습니다.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여러모로 '소설' 보다는 '만화'나 '영화'같은 시각적 요소가 중요한 매체에 더 적합한 이야기였습니다.

2010/07/05

이방의 기사 - 시마다 소지 / 한희선 : 별점 2.5점

이방의 기사 - 6점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시공사
아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본 신본격 추리소설의 기수 중 한 명인 시마다 소지의 장편으로, 명탐정 미타라이 기요시의 시작을 그린 작품입니다. 책 뒤 해설을 보니 첫 작품인데 여러가지 이유로 발표가 늦어졌을 뿐, 실질적인 데뷰작이라고 하네요.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200페이지가 넘는 가장 긴 첫 번째 부분은 화자인 "나" 가 기억상실 상태로 발견된 뒤, 료코라는 여성과 우연찮게 동거하게 되면서 살아가는 내용입니다.
두 번째 부분은 "나"가 운전면허증을 토대로 과거를 알아가는 내용이고요.
마지막 세 번째 부분에서는 친구가 된 점성술사 미타라이 기요시가 "나"에 관련된 사건을 추리하여 진상을 알려줍니다. 기억을 잃기 전, 아내와 아이가 죽은 사건의 복수를 위해 살아왔던 것으로 보였는데 알고보니 이 과거조차 조작된 것이라는게 핵심 트릭이고요. 일종의 원격 살인을 위한 거창한 장치였던 것이지요.
문제는 핵심 트릭의 설득력이 많이 떨어진다는 겁니다. 전혀 기대에 값하지 못했어요. 우선, 찾는 가족도 없고, 기억도 완벽하게 없으며, 당분간 기억이 돌아올 일도 없어야 한다는 조건에 딱 들어맞는 기억상실 환자를 찾는다는 것부터 문제이니까요. 이런 환자를 운 좋게 찾았다 치더라도, 그를 마음먹은대로 조종한다는 것도 말이 안되고요.
설령 정말로, 정말로 운이 좋아서 사건이 원하는대로 흘러갔다고 칩시다. 그래도 경찰에 체포되면 바로 끝입니다. 사건을 은폐하는건 불가능한 탓입니다. 
이외에도 곳곳에 헛점이 너무나 많습니다. 범인 슈지가 과연 작중 묘사되는 것 만큼의 천재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에요.

세부적인 디테일도 억지가 많습니다. 자기 얼굴을 보기를 아무리 싫어해도 그렇지, 자신의 얼굴을 착각한다는게 말이나 될까요? 필적을 쉽게 위조할 수 있다는 설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설정도 부족합니다. 산탄총은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아예 나오지도 않더라고요.

물론 신본격 작가의 데뷰작답게 추리의 과정 자체는 상당히 괜찮기는 합니다. 정말로 사소한 대화를 통해 실마리를 잡는다는 구성도 좋고요. 
미타라이의 캐릭터 역시 가장 좋았던 시절, 즉 "점성술 살인사건" 시절의 가난뱅이 점성술사이기는 한데, 음악에 몰두하여 대단한 기타 솜씨와 오토바이 운전 솜씨를 뽐내는 등 새로운 모습을 많이 보여주어 마음에 들었습니다. 작위적이기는 하나 중반의 일기부터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재미는 확실하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단점이 없지는 않으나 미타라이 시리즈의 첫 작품이고, "점성술 살인사건"의 컴비 이시오카의 첫 등장 작품이라는 점에서 점수를 줍니다. 시마다 소지의 원점이라고 할 수 있기에, 일본 본격 - 신본격 추리소설 팬이라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그런데 덧붙이자면, 미타라이의 추리는 마지막 순간이 닥치기 훨씬 전에 같은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아쉬웠습니다. 절박한 친구 사정을 모른척하다가 누가 죽어나갈 정도가 되니까 억지로 몸을 움직인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거든요. 이시오카도 이런 비정한 친구보다는 보다 제대로 된 친구를 사귀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네요.

2016/11/09

말레이 철도의 비밀 - 아리스가와 아리스 / 최고은 : 별점 2.5점

말레이 철도의 비밀 - 6점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최고은 옮김/북홀릭(bookholic)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희망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아름다운 말이군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하죠."
출국 시간이 정해져있는 히무라에게 아즈란이 시간 내 사건 해결이 가능할지를 물은 상황에서 오가는 대사.

히무라와 아리스가와는 말레이시아의 낭만적인 휴양지 카메론 하일랜드로 여행을 떠났다. 대학시절 친구 타이론 덕분에 여유로운 여행을 즐기던 그들은, 우연히 알게 된 일본인 모모세 준코의 초대로 그녀의 집을 방문했다. 그러나 둘은 그곳에서 의문의 변사체를 발견했고, 뒤이어 일어나는 사악한 범죄에 빠져드는데…

일본의 신본격 작가인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시리즈 탐정인 범죄학자 히무라 히데오, 추리소설가 아리스가와 아리스 컴비가 등장하는 국명 시리즈 장편입니다. 이 시리즈는 단편집으로 두어권 읽어 본 정도이며 장편은 처음입니다.

읽기 전에는 별로 기대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작가의 타율 자체가 낮은 편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읽어보니 생각보다 괜찮았습니다.

가장 큰 장점이라면 신본격 기수 중 한명이라는 작가의 명성, 그리고 엘러리 퀸 국명 시리즈를 오마쥬하고 있는 시리즈 특성에 걸맞는 수준의 고전적인 본격 추리물이라는 점입니다. 첫 사건부터 본격물다운 굉장히 기묘한 밀실 - 피해자 웡후가 살해된 채 발견된 트레일러 하우스의 모든 출입문, 창문은 안쪽에서 테이프로 봉해져 있는 상태였다는 - 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이라는  불가능 범죄를 선보이고 있거든요. 
트릭도 상당히 괜찮습니다. 사건 현장을 외부에서 조작하여 범인이 원하는 밀실로 만들었다는건 오래 전에 읽었던 삼색털 고양이 홈즈 시리즈 첫 작품 "삼색털 고양이 홈즈의 추리"와 비슷합니다. 하지만 "삼색털 고양이 홈즈의 추리"에서는 거대한 크레인이 필요하다는 점 탓에 현실성이 떨어졌다면, 이 작품은 간단하게 차량수리용 잭을 활용하여 실현할 수 있어서 보다 설득력이 높습니다.
이를 설득력있게 만들기 위해 묘사된 습도 조절용 물컵과 같은 디테일도 빛납니다. 컵을 접착제로 붙이고 물을 얼려놓는다는 설정은 그 자체만으로 트릭으로 사용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어요.

정보와 단서 모두가 독자에게 모두 공정하게 제공된다는 점 역시 본격물답습니다. 특히 기발했던 부분은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영어실력이 부족하다는 설정, 현지 카페 주인 존을 영국인 작가 앨런 글래드스턴이 영국식으로 '잭'이라고 부른다는 설정을 교묘하게 결합하여 글래드스턴 살인 사건으로 이르는 동기와 범인을 밝혀내게끔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최근 읽었던 작품 중에서도 손에 꼽을만큼 잘 짜여진 장면이었습니다.

두 컴비가 오래전 지인 위 타이론을 만나기 위해 말레이시아의 휴양지 카메론 하일랜드(하이랜드) 여행을 떠나는 설정 덕분에 여정 미스터리물 느낌도 많이 난다는 점도 독특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현지 명소에 대한 묘사가 많아서 읽는게 즐거웠어요.

그러나 단점도 분명합니다. 일단 아리스가와 아리스 작품에서 항상 느낄 수 있는 점인데, 그다지 글을 잘 쓴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불필요한 설정과 묘사가 너무 많아요. 딱히 필요해 보이지 않는 페미니즘 관련 묘사가 대표적입니다. 반딧불 어쩌구 하면서 사랑 이야기를 장황하게 풀어내는 것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고요.

그리고 대부분의 본격물이 가지고 있는 문제인 작위적인 상황 설정도 눈에 거슬렸습니다. 첫 번째 범행인 웡후 살인부터 그러합니다. 복수를 위해 모모세를 덮치지만 되려 살해당한다는 것부터 작위적이며, 말레이시아 법률은 잘 모르겠지만 모모세가 웡후 살인 사건을 자살, 혹은 다른 범죄로 위장할 이유가 있어 보이지 않은 탓입니다. 림 의사를 살해한건 히키이며 모모세는 실행범이 아닙니다. 아무런 증거없이 죽어가는 히키의 전화만으로 모모세가 범인이라 우길 근거는 너무 빈약하지요. 제가 모모세라면 모든건 오해라고 당당하게 맞섰을 겁니다. 웡후를 죽인 후에라도 같은 이유로 경찰에게 역시 당당했을 수 있었을테고요.
게다가 두번째 츠쿠이 살인은 순전히 우연에 기인한 것입니다. 아울러 앞부분 묘사에서 모모세 준코의 차에 잭이 있다는 것이 설명되니 모모세가 잭을 구하러 멀리 갈 필요도 없고요. 

또 앞서 트릭을 칭찬하기는 했지만 현장을 조작하는 방법 외에는 약점도 존재합니다. 실제로 트레일러하우스를 좀 기울이는 정도로 과연 창문의 테이프를 잘 붙일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거든요. 

마지막으로 모모세가 과거 보험금으로 사업을 일으킨 점 등 트릭을 모르더라도 정황 증거만 조합하면 대충 범인이 누군지 답이 나온다는 것도 조금은 아쉬웠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추리만 놓고보면 나쁘지는 않지만 이런저런 단점과 구멍도 존재합니다. 그래도 본격물 팬이라면 추리적으로 즐길거리가 많으니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덧 : 초반 언급되는 마츠모토 세이초가 썼다는, 카메론 하일랜드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과 타이의 실크왕 짐 톰슨 실종사건을 엮어서 만든 "뜨거운 비단"이라는 작품이 궁금해집니다.

2009/12/21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 야마구치 마사야 / 김선영 : 별점 3점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 6점
야마구치 마사야 지음, 김선영 옮김/시공사

죽은 시체들이 살아 움직이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 와중에, 미국 북동부 뉴잉글랜드 시골마을 툼스빌에서 스마일 공동묘지를 경영하는 발리콘 일가의 손자 그린이 우연찮게 할아버지의 독초콜릿을 먹고 죽었다.곧바로 소생한 그린은 스스로의 몸을 방부처리하고, 자신의 죽음을 숨긴 채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린의 백부 존 등 발리콘 가 사람들이 연이어 살해되는데…

일본 신본격물 중에서도 손꼽히는 아주아주 유명한 작품이죠. 국내에 소개된 것은 좀 늦은감이 있네요. 관심이 컸던 작품이기에 곧바로 구입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읽고나니 확실히 평이 갈릴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누구나 입을 모아 칭찬할만한 희대의 걸작인가? 에 대한 의문 부호도 조금이나마 생기고요. 제가 나이가 너무 많이 들은 탓일까요?

먼저 장점부터 꼽아본다면, 그동안 추리계에 없었던 희대의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완벽한 수준의 본격물을 창조해 낸 아이디어가 제일 큰 장점입니다. 저만해도 출간 이전에 이미 소갯글로 기본 설정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가장 중요한 트릭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간단하지만 대담하고 효과적인 아이디어였어요. 구태여 예를 들자면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급의 발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복잡하게 관련된 사건들이 해결부분에서 완벽하게 정리된다는 점, 마지막 해결편을 앞두고 미리 전편에 걸쳐 독자들에게 공정하게 정보를 제공해 주는 점 등 본격물로의 치밀함과 더불어 퍼즐을 풀어나가는 맛도 잘 살리고 있는 등 한 마디로 말해 추리적인 완성도가 뛰어납니다. 다른 어떤 본격 추리물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요.

하지만 대단한 발상이기는 해도 결국 현실에 기반하지 않는다는 단점은 큽니다. 때문에 보수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정통 본격물이라 부르기 어려워 보이기며, 어떻게 보면 반칙이라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작품의 완성도와는 별도로 좌충우돌하는 희극적인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깔려있는데, 저는 영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생명의 본질에 대한 종교적이면서도 현학적인 이야기가 많아서 읽기에 부담되는데, 작품의 분위기는 외려 너무 코믹하니 당황스럽기도 했고요. 쉽게 이야기하자면 내용은 진지한데 이상하게 "웃음"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는, 과장된 묘사와 설정이 난무하는 일본드라마 같은 분위기였달까요. 이러한 분위기는 번역 출간이 늦어진 것에도 어느 정도는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코믹한 요소를 좀 더 걷어내고 불필요한 부가 설명이나 묘사도 빼서 기나긴 길이를 줄이는게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도 되네요. 데니스 루헤인 같은 작가가 써냈다면 올타임 베스트에 충분히 선정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의 아이디어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분위기가 완성도를 낮춘게 아닌가 싶어 아쉽습니다. 

그래도 좀비 추리물이라는 신경지를 개척했다는 발상 하나만으로도 평균이상의 재미를 주기 때문에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취향만 맞는다면 새로운 신본격 걸작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겁니다. 저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요.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영화가 더 어울리는 작품입니다. 영화가 나오면 좋겠네요.

2009/11/29

인형, 탐정이 되다 - 아비코 타케마루 / 최고은 : 별점 2.5점

인형, 탐정이 되다 - 6점
아비코 타케마루 지음, 최고은 옮김/북홀릭(bookholic)

일본 신본격 작가 중 한명인 아비코 타케마루의 단편집으로 최고의 미스터리 커뮤니티의 하나인 하우미에서 진행한 이벤트에 당첨되어 읽게 되었습니다. 제일 먼저 관계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작품은 4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옴니버스 단편집으로, 제목 그대로 인형이 탐정으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뭐 오컬트나 그런건 아니고 복화술사 인형으로, 복화술사 토모나가의 복화술용 인형인 마리오가 마치 살아있는 것 처럼 행동한다는 약간은 이중인격같은 내용입니다. 이 한명이자 두명인 탐정과 파트너역인 유치원교사 오무츠양 (세노오 무츠키) 이 더해져 한팀으로 사건들을 해결해 나가고 있습니다.

일단은 설정이 독특하죠? 인형탐정이라.... 이전에 접했었던 "어둠의 인형사 사콘" (오바타 타케시 / SHARAKUMARO)과 똑같은 설정이긴한데 연대로 놓고본다면 이 작품이 더 먼저 나왔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국내에 늦게 소개된 것이 안타까울 뿐이죠.
어쨌건 스스로는 움직일 수도, 들을수도, 볼수도 없는 인형이기에 지극히 전통적인 안락의자 탐정의 궤도를 따라가고 있는 것이 본격물 팬으로서는 즐길만한 요소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모든 단서를 토모나가 - 오무츠가 모아서 전달하는 과정이 필요하기에 이 과정에서의 모든 단서를 독자와 공유하게 되는 것이 그야말로 본격물적인 부분이 아니었나 싶어요.
한가지 아쉬운 것은 인형이 탐정이어야 할 이유가 잘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겠죠. 복화술이나 인형 등은 사건 해결과 아무런 관련이 없고 단지 이색적인 캐릭터로만 존재할 뿐이니까요. 복화술사와 인형이기때문에 가능한 트릭이 한편 등장하기는 한데 좀 더 이런 설정을 부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리고 신본격 작가인 아비코 타케마루라는 이름에 값하며 추리 애호가로서 좋아할만한 본격물적인 부분은 두번째 단편인 "인형은 텐트에서 추리한다" 에서 정말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어서 만족스러웠습니다. 밀실 트릭물인데 트릭이 작가 스스로 후기에서 밝히듯 아주 좋거든요. 또한 첫번째 단편인 "인형은 코타츠에서 추리한다"는 아주 쉬운 추리물인데 체계적으로 짜여져 있어서 입문자분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은 좋은 이야기였어요. 일상계 추리물로 가벼우면서 유쾌한 이야기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저 스스로도 작품을 읽으면서 실제 추리를 할 수 있도록 만든 이야기 전개에 푹 빠져버릴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쉽고 재미있었어요. (요즈음 추리소설에서 중반까지 읽고 범인을 맞춘 것도 처음인 것 같고요)
아쉽게도 3편, 4편은 추리적으로 우수하다고 평가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앞의 두편이 아주 괜찮기에 본격물 팬으로서도 트릭적인 부분에서 충분히 즐길만 했다 생각되네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즐겁고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단편집임에는 분명하니까요. 추리적으로 아주 우수하지는 않지만 입문자에게는 적당하지 않을까 보이네요. 단, 앞의 두편만 해당됩니다. 뒤의 두편은 별점 2점도 솔직히 아까왔습니다....^^;;
작품별 편차가 커서 후속권이 나온다는데 어떻해야 할 지도 고민됩니다.^^

PS : 책의 마케팅방향이 노골적으로 저연령을 타겟으로 하여 코믹 탐정 미스터리로 홍보하고 있는데, 차라리 연령대를 높여서 홍보하는게 어떨까 싶어요. 분명 캐릭터도 조금 만화스럽고 분위기도 유쾌하긴 하지만 등장하는 사건이 강력사건들이고 단지 가볍게만 읽기는 좀 어렵지 않나 생각되거든요.

PS2 : 더 길게 썼는데 이글루스 오류인지 글이 날아가버려 다시 씁니다. 젠장. 이젠 더 안써.

2025/05/23

여왕국의 성 1,2 - 아리스가와 아리스 / 김선영 : 별점 2.5점


아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에이토 대학 추리소설 연구회 EMC 회원인 모치즈키, 오다, 아리스가와, 마리아 네 명은 렌트카로 가미쿠라로 향했다. 가미쿠라에 위치한, 외계인을 믿는다는 신흥종교집단 '인류협회' 본거지로 떠났던 에가미 선배의 연락이 끊긴 탓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에가미 선배를 만나는데 성공했지만, 그들은 인류협회의 '성'에서 일어난 연쇄 살인 사건에 휘말리고 말았다. 하지만 인류협회는 경찰을 부르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감금하였고, 에가미 선배와 일행은 성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사건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데...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시마다 소지의 계보를 잇는 일본 신본격 미스터리 작가이지요. 국내에도 많은 작품들이 소개되었는데, 이 작품은 작가의 유명 시리즈 중 하나인 '학생 아리스' 시리즈(또 다른 시리즈는 명탐정 히무라 히데오가 등장하는 '작가 아리스' 시리즈) 장편입니다. 신흥 종교집단의 본거지인 ‘성’을 배경으로 일어난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루는데, 1권과 2권을 합쳐 9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자랑합니다. 완독에 1주일 정도 걸렸네요.

명성답게 추리적으로는 상당히 볼거리가 많았습니다. 2008년 '주간분슌 선정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위", '제 8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했다는게 이해가 될 정도로요.
우선, 공정한 단서 제공이 단연 돋보입니다. 작가는 독자에게 사건 해결에 필요한 정보들을 모두, 하나도 빠짐없이 제공해 줍니다. 마지막 추리쇼 직전에는 ‘독자에의 도전장’이 삽입되어 있기도 하고요. 전통적인 본격 추리물 애호가라면 누구나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구성이지요.

사건과 트릭, 추리도 나쁘지 않습니다. 11년 전 총기 실종 사건 트릭은 단순하면서도 현실적인 조건을 이용하고 있다는게 마음에 들었어요. 밀실인 현장에서 자살한 피해자의 총기를 가져간 범인은 어린아이로, 아이는 작은 체구를 이용해 쓰러져있던 사체 뒤에 숨어 창 밖에서 바라보던 쓰바키 등 목격자 시야에서 벗어났습니다. 사람들이 방 안에 들어왔을 때는 문 뒤에 숨었고요. 그리고 쓰바키가 경찰이 올 때 까지 정문 앞을 지킬 때 총을 가지고 뒷문으로 탈출했던 겁니다. 복잡한 장치를 활용한 트릭이 아니라, 상황과 조건을 정교하게 활용한 현실적인 트릭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높고, 어린 아이라는 범인 특징과도 잘 어울렸습니다.

현재 시점의 연쇄 살인 사건은 전형적인 후더닛 추리인데, 아래 의문이 핵심입니다. 

  • 첫째, 총기는 어떻게 삼엄한 보안이 이뤄진 인류협회 본부로 반입되었는가? 
  • 둘째, 어떻게 총기가 11년전 사라졌던 그 총일 수가 있었는가? 

이에 대한 추리는 아래와 같고요.

  • 첫째, 총기는 성스러운 동굴 안에 숨겨져 있었는데, 인류협회 쪽이 아닌 마을에서 들어오는 입구는 좁아서 어린 아이만 들어올 수 있었다. 즉, 총기를 숨긴건 어린 아이였다. 
  • 둘째, 총기가 11년 전 사건의 흉기였던 권총이기 때문에, 범인은 11년 전 사건에서 총기를 훔쳤던 사람이다. 

이렇게 범인은 11년 전 마을에 살고 있던 어린 아이라는게 밝혀집니다. 현재 인류 협회 소속 인원 중에서 이에 해당되면서, 사건 당시에 알라바이가 없는건 아오타밖에 없고요. 즉 아오타가 범인입니다!

이런 추리적 요소와 더불어 사건들이 벌어지는 배경인 인류협회의 설정도 흥미롭습니다. 외계인을 신으로 믿는다는 다소 황당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그 내부의 교리, 협회의 구성, 생활 방식과 본거지 '성'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현실감을 부여합니다. 교주 노사키 기미코가 유괴당해서 에가미 일행이 감금될 수 밖에 없었다는 진상 역시 그럴듯했어요.

등장인물들의 성격 묘사와 팀워크도 돋보입니다. EMC 멤버인 모치츠키, 오다, 아리스, 마리아 모두 톡톡 튀는 매력을 갖추고 있으며 중반부에 '성'에서 탈출하려는 모험도 풋풋하고 귀엽게 그려지고 있는 덕분입니다. "아르키메데스는 손을 더럽히지 않는다"보다는 이 작품 쪽이 더 "청춘 미스터리"의 범주에 들어맞는게 아닌가 싶네요. 버블 경제 몰락 직전의 분위기에 대한 언급, 그리고 멤버들을 통해 중간중간 등장하는 문학, 드라마, 영화에 대한 인용도 읽는 재미를 더해줍니다. 카프카의 "성"을 이렇게 읽어보고 싶게 만들게끔 소개한 글은 정말이지 처음 봅니다.

다만 몇 가지 아쉬움도 있습니다. 우선, 전체 분량이 과합니다. 거의 900페이지 분량 중 인류협회와 '성'에 대한 설명에 많은 분량이 할애되는데 이렇게까지 길 필요는 없었습니다. 특히 '성'의 경우, 내부 구조도까지 곁들인 상세한 묘사로 과다한 정보를 주지만 이는 실제 사건과 거의 관계가 없어서 허무하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이야기 중간에 마리아의 시점으로 전환되는 장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점 변경이 새로운 정보나 심리적 깊이를 제공하기보다는 서사 전개의 리듬을 끊는 것에 불과하거든요. 지루함도 가중시키고요.

그리고 사건 해결의 중요한 단서가 되는 장면에서 지나치게 절묘한 우연이 개입되었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번역자도 후기를 통해 언급한 문제인데, 범인이 5시 경에 동굴 입구를 지키고 있던 도이를 살해한 뒤 곧바로 동굴에 들어가 총기를 꺼냈다면, 지즈루와 일정 시간 동굴 내부에 함께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어느 한쪽이 인기척이나 이상한 낌새를 느꼈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설명은 없습니다. 이보다는 차라리 범인이 마주친 지즈루마저 살해하여 사체를 숨겼다가 발각된 후, 지즈루가 동굴 안에 있던 시간을 여러가지 증거(깨진 시계라던가, 할아버지 증언이라던가...)로 알아내어 범인을 특정한다는 이야기가 추리적으로는 더 나았을 겁니다. 잔혹하긴 하지만요.

아울러 에가미의 추리도 돌이켜 생각해보면 문제가 많습니다. '어린아이만 동굴을 통과할 수 있다'는 전제 조건이 특히 그러합니다. 입구 측에서 총을 종이와 비닐 등으로 공 모양으로 감싸 던진 뒤 출구 쪽('성'의 동굴)에서 회수하거나, 개에 묶어서 들여보내는 등 여러가지 대안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저 권총을 흉기로 써서 꼬리를 밟힐 이유부터 설명이 부족합니다. 인류협회에 대한 원한으로 예언을 망치기 위해 살인을 저지렀다는 동기부터 비현실적이지만, 정말로 이게 목적이었다면 둔기나 칼을 사용해도 문제가 없었으니까요. 

아오타가 사체 강직을 이용해 총을 쏘게 만든 이상한 알리바이 트릭도 억지스러웠습니다. 앞서의 동기가 진짜라면, 에가미의 말대로 자기가 범행을 저질렀다며 세상에 진상을 드러내는게 더 좋은 방법입니다. 알리바이 트릭을 써 가며 은폐를 기도할 이유는 없어요. 심지어 제대로 동작할지도 모르는 애매한 방식의 트릭이기도 하고요.

이러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정통 본격 추리의 규칙을 철저히 따르면서도, 현대적인 감성과 설정을 조화롭게 결합한 신본격 추리 소설이 뭔지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일단 재미는 있습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본격 추리물 애호가시라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겁니다.

2006/02/06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 하네 - 우타노 쇼고 / 김성기 : 별점 4점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 8점
우타노 쇼고 지음/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경비원과 컴퓨터 강사 등의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던 나루세는 친한 고등학교 후배 기요시로부터 뺑소니 사건의 진상 조사를 의뢰받았다. 피해자 구다카 류이치로는 대기업 임원 출신으로, 호라이 클럽이라는 악덕 단체에게 수천만엔을 사기당한 상태였다. 
나루세는 과거 탐정사무소에서 일했던 기억을 되살려 호라이 클럽의 정체를 밝히는데 힘을 쏟았고, 그 와중에 우연히 자살하는 현장에서 구해주었던 사쿠라에 대한 감정이 점차 깊어만 가는데...

신본격 1세대 작가중 한명이라는 우타노 쇼고의 작품입니다. 최근 일본 신본격물을 다양하게 출간해 주는 한스미디어에서 출간되었지요. 작가와 작품은 잘 몰랐지만, 워낙 팬들의 평이 좋아서 구입하게 되었네요.

작중 악당이라 할 수 있는 악덕 판매 조직인 호라이 클럽과 그들의 마수에 걸려든 피해자들에 대한 묘사와 전개가 현실적이면서도 리얼리티가 넘친다는 점에서는 기존 사회파 추리 소설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약간 암울하고 비장한 맛이 있는 사회파 추리소설과는 다른 점은 작품 전체에 흐르는 약간은 비뚤어졌지만 독특한 유머 감각입니다. 등장인물도 굉장히 돋보였고요. 덕분에 지루함없이 재미있게,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에 읽어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팬들이 꼭 지적했던 반전! 꼼꼼하게 짜여진 복선과 여러 에피소드들이 하나로 연결되는, 모든 것을 한번에 정리하는 반전은 정말 대단합니다. 한마디로 무릎을(!) 치게 만들거든요. 사실 추리적으로 대단한 점이 있지는 않습니다. 오로지 이 반전에 작품의 대부분을 걸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그래서 신본격 작가다운 느낌은 덜하지만, 워낙 반전이 뛰어난 탓에 그다지 흠으로 느껴지지 않네요.
신본격 작가에게서 기대해봄직한 추리적 요소도 아예 없는건 아닙니다. 기둥 줄거리가 아니라 작품속에 등장하는 나루세의 과거 탐정 사무소 직원일때의 야쿠자 살해 사건에 대한 이야기에서 심심치 않게 풀어주고 있어요. 줄거리와 큰 관련이 있는 에피소드로 보기는 힘들었지만, 어느정도 작가의 네임벨류에 어울리는 제법 괜찮은 트릭을 선보입니다.

지나치게 반전을 의식한 전개, 그라고 번역본의 한계 탓에 몇몇 허술해 보이는 부분이 약간 눈에 거슬리지만 묘사와 설정 등 모든 부분에서 꽉 짜여진, 이러한 서술트릭 반전물 중에서도 높은 설득력을 지니는 작품입니다. "재미" 측면에서도 합격점이고요. 추리 소설 애호가라면 꼭 한번쯤은 읽어볼만합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PS : 그나저나 표지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네요.... 제목도 약간 멜랑꼴리(?)한데 저 소녀틱한 일러스트때문에 말랑말랑한 느낌이 더욱 강해진 듯 해서 불만스럽군요.

2020/11/13

날개 달린 어둠 - 마야 유타카 / 박춘상 : 별점 1.5점

날개 달린 어둠 - 4점
마야 유타카 지음, 박춘상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추리 작가 고즈키는 친구인 명탐정 기사라즈와 함께 이마가카미 가문의 대저택 '창아관'으로 향했다. 가문의 맏형 이토로부터 받은 의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도착하자마자 이토가 살해되고, 그 뒤 이마가카미 가문 일종이 한 명씩 처참한 시체로 발견되기 시작했다. 기사라즈는 죽었다고 알려진 당주 다지마가 범인이라는 추리를 펼쳤지만 빗나가고 말았다.
실의에 빠진 기사라즈가 창아관을 떠난 사이, 새롭게 나타난 명탐정 메르카토르 아유가 기사라즈가 범인이라는 추리쇼를 펼쳤고, 이는 고즈키가 흔들릴 정도로 명추리였지만 돌아온 기사라즈에 의해 논파당했다. 그 뒤 메르카토르마저 범인에게 살해당하는데...

마야 유타카가 쓴 신본격 추리 소설로 작가의 데뷰작입니다. 작가, 작품에 대해 잘 몰랐지만 '일본 본격 추리 100선'에 꽤 높은 순위(39위)로 랭크되어 있어서, 정통 본격물이 땡기던 차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본격 추리물은 제 몸의 필수 영양소니까요.

밀실에서 일어난 살인이라는 불가능 범죄, 피해자 목을 베어버리는 기묘한 엽기 범죄에 무려 11명이나 죽어나가는 연쇄 살인극이며, 누가 범인인가? 어떻게 범행을 저질렀는가?를 탐구해 나가는 후더닛, 하우더닛 물이라는 점에서 본격 추리물인건 맞습니다.무대가 되는 고성 창아관, 피해자들이 피에 물든 저주받은 재벌 가문이라는 소재도 아주 전형적인 본격물 스타일이고요. 사건 해결을 위한 단서 제공도 공정한 편입니다.
당연하게도 개성 넘치는 명탐정도 무려 두 명이나 등장하며, 이 탐정들 - 메르카토르 아유, 기사라즈 - 이 차례대로 펼치는 추리쇼도 볼 만 합니다. 이런 부분들만 보면 딕슨 카가 쓴 초기 방코랑 시리즈 느낌도 살짝 듭니다.

그러나 완성도는 딕슨 카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후더닛, 하우더닛 측면은 현대 시점에 맞지 않고 설정은 유치하지만 나름 괜찮아요. 문제는 와이더닛, 즉 왜 범행을 저질렀나? 왜 이렇게 저질렀나?에 대한 설명이 엉망진창인 탓입니다. 명탐정이라는 기사라즈의 추리도 황당하고요.
우선 기사라즈가 추리한 범인 기리에의 동기부터 살펴 보지요. 그녀의 일그러진 일렉트라 컴플렉스가 동기로, 아버지 스가히코를 신으로 만들기 위해서 저지른 범행이라고 추리합니다. 일단,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되는게 저 뿐만일까요? '죽음의 세례'니 뭐니 있어보이는 말을 장황하게 털어놓지만, 증거도 없고 설득력도 없는 궤변일 뿐이에요. 이런 말에 넘어가는 주변 인물들도 한심하기 짝이 없고요. 차라리 어린 자신을 방치했던 아버지 스가히코와 이마카가미 가문을 향한 복수심 때문이었다면 그나마 말이 되었을텐데 말이지요.

또 범행이 엘러리 퀸이 발표했던 '국명 시리즈'에 맞게끔 연출되었다는 추리는 실소를 자아냅니다. 스가히코를 신으로 만들기 위함이라는 동기에 적합한 방법도 아닌데다가, 십자가에 매다는 연출이 필요했다면 그냥 스가히코만 죽여서 매달면 됩니다. 다른 가문 사람들을 살해해서 엘러리 퀸 작품 제목처럼 전시할 이유는 없어요. 범인 기리에가 자살로 이 사건을 마무리할 생각이었다면 더욱이 할 필요가 없습니다. 동기보다 방법이 앞서는, 주객이 전도된 추리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이토, 아리마가 죽은 밀실 살인 사건에 대한 추리는 최악이었습니다. 두 명의 목을 한 번에 벨 때, 머리가 밀려서 한 쪽 머리가 떨어진 목에 두 번째 머리가 붙어서 잠시 살아나 움직였답니다! 그 뒤 문을 잠그고, 열쇠를 쥔 상태에서 목이 떨어져 죽은다네요! 이게 명탐정이라는 작자가 할 소리입니까? 이걸 추리라고 믿고 수긍하는 경찰은 대체 뭐하는 인간들일까요?

그나마 명탐정스러웠던건 기리에가 '일본어를 읽지 못한다'는걸 드러내는 추리 딱 하납니다. 하지만 가문 직계 후예 중 남은게 기리에 밖에 없으니, 범인이 그녀인건 분명합니다. 그래서 의미없는 추리에요. 무려 11명, 아니 12명이나 되는 가문 일족이 몰살당할 때 까지 방관하는 인간이 명탐정인지도 의심스럽네요.

그나마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밝혀지는 진짜 진상 덕분에 본격물로서 체면 치례는 합니다. 범인은 가정부 히사로 변장한, 2년전 사망한 걸로 알려진 가문의 여주인 이마카가미 기누요라는 거지요. 이를 통해 "일본 어치의 수수께끼"는 일본에서만 발표된 제목이라, 일본어를 읽지 못하는 기리에가 그 작품처럼 자살한건 이상하다는 맹점은 합리적으로 설명됩니다.
밀실 트릭에 대한 설명도 그럴듯해요. 기누요는 버젓이 놓여 있는 여벌 열쇠를 써서 밀실을 만든 겁니다. 여벌 열쇠는 사용되지 않았다고 본인이 강하게 주장해서 밀실처럼 보인 것일 뿐이죠.
우네비 살인 사건에서의 알리바이도 그녀의 증언으로 성립될 뿐이며, 처음에 야마베가 보고 놀란 머리는 우네비 머리가 아니라 다지마 머리였다는 트릭도 괜찮았습니다. 일꾼 야마베는 우네비를 몇 번 보지 못했고, 얼굴에 화장이 되어 있어 다지마의 머리를 우네비로 착각했다는건 이치에 맞으니까요. 그리고 야마베가 경찰에 신고하기 위해 뛰쳐나갔을 때 머리를 우네비로 바꿔치기 해서 알리바이를 만드는데 성공합니다. 아울러 '머리'를 자른 이유로도 타당한 트릭이라 마음에 드네요.

그러나 그녀가 아나스타샤 공주라서 '퀸'이 쓴 작품을 토대로 사건을 저질렀다는건 기사라즈의 추리만큼이나 억지스럽습니다. 뜬금없는 아나스타샤 울궈먹기는 뭐, 그렇다 치더라도 수십 년을 살아오며 일군 가족을 자기 손으로 이렇게 파멸시킨 이유가 단지 피가 황인종과 섞였다는걸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득력이 떨어져요.
범행 역시 마찬가입니다. 90이 넘은 그녀가 무려 11명이나 차례로 살해할 수 있었을까요? 그녀가 범인임을 생각도 못한 피해자들이나 여성들이야 그렇다쳐도, 메르카토르라던가 스가히코는 이렇게 맥없이 당할 이유가 없습니다. 둘은 가정부 히사가 이미 살해된걸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녀가 나타나면 당연히 경계하고 조심했었겁니다. 스가히코를 죽이고 십자가에 매다는 등 힘과 체력이 필요한 범행을 저지른 방법도 설명이 없고요.
2년 전 자신이 죽었다고 위장하고 가정부 히사로 변장하여 가족 앞에 나타났을 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상황 역시 대충 넘어가고 있습니다만, 말이 안되는건 마찬가지에요. 90이 넘은 러시아 할머니가 변장해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라니, 억지도 정도껏이어야죠.
추리 작가이자 화자인 고즈키가 자신이 가문에서 쫓겨난 시이쓰키의 아들로 메르카토르의 이란성 쌍동이 형제라는걸 밝히는 반전도 솔직히 불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교과서적인 본격 추리물러 '추리'라는 부분에서 볼 만한 부분이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일본' 교과서라는 거지요. 일본 특유의 억지와 무리수 설정, 전개가 난무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추리만을 위해 쌓아올린 작위적이며 어설픈 이야기로 읽어보실 필요 없는 졸작입니다. 이런 작품이 이름을 올린 리스트는 더 이상 참고하지 않으렵니다.

2013/12/30

미타라이 기요시의 인사 - 시마다 소지 / 한희선 : 별점 2점

미타라이 기요시의 인사 - 4점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검은숲

총 네 편의 중단편이 수록된 미타라이 기요시" 시리즈 초기 작품집.

"점성술 살인사건"은 일본에 추리문학의 새로운 바람을 불러온 걸작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미타라이라는 탐정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이후 작품들도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고요. 엘러리 퀸과 반 다인의 뒤를 잇는 잘난척 덩어리에다가, 뭐 하나 못하는 게 없는 잘난 인물로 묘사되니 마음에 들래야 들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나 "마신유희"에서는 그 정점을 찍었었죠.

다행히 이 책 수록작들은 위의 단점이 두드러지지는 않습니다. "점성술 살인사건" 바로 직후에 이어지는 초기작인 덕분이겠지요. 신본격 시대를 연 작가답게 고전적인 퍼즐 미스터리 스타일 정통 본격 추리물들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네 편의 이야기 모두 장르가 조금씩 다른 것도 재미를 더합니다. 첫 번째 작품은 전형적인 알리바이 깨트리기가 밀실 살인과 결합되어 있으며, 두 번째 작품은 일종의 순간 이동 트릭이 등장합니다. 세 번째는 붉은 머리 클럽이 연상되는 일종의 사기극을 그린 소품이고 네 번째는 유괴극이거든요.

또 두 번째, 세 번째 작품의 화자가 이시오카가 아니라는 것도 특이한 점이에요. 물론 두 번째 작품은 화자가 다르다고 해서 딱히 달라진건 없습니다. 미타라이의 경이적인 재즈기타 실력을 설명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고요. 반면 세 번째 작품은 사건이 워낙에 독특하고, 화자의 버릇이 사건의 핵심 중 하나라는 점에서 화자 변경이 꽤 효과적으로 사용된 편입니다.

결론내리자면, 작품마다 편차가 크고 불필요한 설정, 묘사가 많기 때문에 별점은 2점입니다만, 최악이라 할 수 있는 두 번째 작품 "질주하는 사자"만 빠졌어도 별점 0.5점은 더 줄 수 있습니다. 다른 작품들은 비교적 괜찮고, 무엇보다도 트릭만큼은 신본격의 장을 연 작가의 명성에 어울립니다. 본격 퍼즐 미스터리 애호가시라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장르소설의 명가 "검은숲"에서 출간된 책답게 장정과 디자인도 괜찮습니다.

덧붙여, 작가의 후기에서 미타라이 작품의 영상화를 반대하는 이유가 전형적인 일본인과는 정반대의 캐릭터를 구현하고 싶었다는 캐릭터론이 펼쳐지는데, 전형적인 일본인에 대한 설명은 수긍이 가지만 미타라이라는 캐릭터가 그것에 반하는 캐릭터라는 것에는 절대 수긍할 수 없었습니다. 경찰을 싫어하고, 높은 사람을 싫어하는 잘난척하는 독설가에다가 사람의 본성에 관심이 많으며, 음악 등 다방면에 조예가 깊다는 점에서 아무리 봐도 "셜록 홈즈"의 판박이에 불과하니까요.

수록작별 간단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는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숫자 자물쇠"

"점성술 살인사건"에 등장했던 다케코시 형사가 미타라이에게 미궁의 밀실 살인 사건의 해결을 부탁하는 내용으로, "점성술 살인사건" 바로 직후에 이어지는 초기작입니다.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한 순간 이동 트릭(정체되는 도로 위 트럭 짐칸에 있던 범인이 몰래 빠져나와 지하철로 이동하여 범행을 저지르고 다시 복귀!) 만큼은 아주 좋았습니다. 과연 짐칸을 향해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을지는 의심스럽지만, 습관처럼 계속된 출근 방법이라는 전제가 있으니 딱히 문제라 할 수 없겠지요. 미타라이가 의외의 자상한 면을 드러내는 것도 인상적이었고요.

그러나 밀실 트릭 자체는 별게 아니고, 초반 3단 숫자 자물쇠의 조합에 대한 경우의 수가 의도적으로 잘못 전달되기 때문에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총 3자리의 번호가 1부터 0까지로 조합된다면 누가 생각해도 10*10*10으로 경우의 수는 1,000개밖에 없잖아요.

아울러 범인이 왜 번호를 하나씩 시험해가며 문을 열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등장하지 않는 것도 이해불가예요. 어차피 죽일 생각이었고 딱히 미궁에 빠뜨리려는 의도로 보이지 않은 만큼 그냥 힘으로 뜯어도 됐을 텐데 말이죠. 동기 역시 설득력이 약해 아쉽더군요.

때문에 별점은 2점. 숫자 자물쇠 이야기를 빼고 좀 더 짧고 깔끔하게, 설득력 있는 동기로 전개하는 게 좋았을 겁니다.

"질주하는 사자"

재즈 동호인 모임에서 진주목걸이 도난 사건이 벌어졌다. 그리고 유력한 용의자 구도는 기차에 치인 시체로 발견되는데...

구도가 죽는 순간까지 도저히 기차에 치인 장소로 갈 수 없다는 불가사의를 다룬 작품.

앞선 리뷰에서 말씀드렸듯 수록작 중 최악입니다. 일단 트릭부터 설명하자면, 조잡한 장치 트릭입니다. 문제는 작품 내에서의 설명으로는 독자가 떠올리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T자형으로 이루어진 맨션에 대해 작품 내에서 계속 장황하게 설명하기 때문에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지만요.

범행의 동기도 어이가 없기는 마찬가지예요. 몇 명 없는 모임에서 보석 도난 사건이 일어난다면 용의선상에 오를 건 분명한데 어떻게 빠져나갈지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는 것도 황당하지만,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 모임에서 목을 졸라 살해한다는 건 정말 말도 안 돼지요.

작품과는 무관한 미타라이의 세계급 재즈기타 실력 설정 역시 짜증나는 요소였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천재성의 묘사가 캐릭터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전혀 점수를 주고 싶지 않아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1점입니다. 점수를 준 부분은 진주목걸이 절도와 관련된 마술 트릭과 마지막 숫자 "7"에 대한 가벼운 농담 같은 반전뿐입니다.

"시덴카이 연구 보존회"

화자인 세키네가 부장에게 자기가 겪은 가장 희한한 일을 이야기하는데 옆에 있던 미타라이가 간단하게 그 진상을 풀어 알려주는 이야기.

핵심은 이른바 시덴카이 연구 보존회 회장이라는 젠키치 할아버지의 사기극인데, 미타라이의 추리는 비약이 심해 논리적으로 보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젠키치 할아버지의 웅대한 이상이 너무 맛깔나게 묘사되어 재미있게 읽을 수는 있었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추리와 트릭은 영 아니더라도 "시덴카이 연구 보존회"라는 발상에 점수를 줍니다. 희한한 일, 기이한 조직, 그리고 예상치 못한 범죄의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붉은 머리 클럽"에 대한 오마주로 보이기도 하네요.

"그리스 개"

그리스의 일본인 해상왕 아들이 유괴된 사건을 다루는 전형적인 유괴극인데, 유괴극의 가장 큰 숙제인 몸값 전달에 대한 신선한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 등장하는 암호 트릭도 꽤 기발했고요. 초반의 타코야키 가게 도난 사건까지 엮어 전개하는 짜임새도 괜찮았습니다.

범인이 누군지 피해자가 눈치챈 시점에서 이미 게임은 끝난 거 아닌가라는 문제, 그리고 "개"에 대해 지나치게 비중을 둔 전개는 약간 의아하지만 평작은 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13/12/24

1의 비극 - 노리즈키 린타로 / 이기웅 : 별점 2.5점

1의 비극 - 6점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이기웅 옮김/포레
아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야마쿠라 시로는 아들 다카시가 유괴당했다는 전화에 황급히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유괴된건 다카시가 아니라 다카시의 친구 시게루라는걸 알게 되었다. 그런데 시게루는 아내 가즈미가 유산으로 힘든 시기에, 야마쿠라가 간호사 미치코와 불륜을 저질러 낳은 그의 친아들이었다. 야마쿠라는 범인이 지시하는대로 몸값을 전달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나 실패했고, 결국 시게루는 시체로 발견되는데...

신본격 작가 노리즈키 린타로의 장편. 이른바 "비극 3부작" 중 두번째 작품이라는데 모르고 두 번째부터 읽게 되었네요. 읽는데 별 상관은 없었습니다.

뒤바뀐 아이의 유괴, 그리고 이어진 죽음에 얽힌 진상을 파헤친다는 내용으로, 작 중에서도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로 언급되는 "킹의 몸값"(영화는 "천국과 지옥")의 아이디어를 따 왔습니다. 요새 이 아이디어를 사용한 작품들을 많이 읽있네요. 쓰여진 시기는 전부 다르지만요. 당연히 표절은 아니고 "저물어 가는 여름"처럼 나름대로 변형하였습니다. 원전은 "실수로 유괴된 아이의 몸값을 내가 내야 하는지?"라는 딜레마가, 여기서는 "실수로 유괴된줄 알았지만, 사실은 그 아이가 처음부터 목적이었다"가 핵심입니다.

실수나 아무 관련없는 인물인 줄 알았던 피해자가 진짜 타겟이었다는 이야기는 많지만, 야마쿠라 시로의 1인칭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독자가 감정이입하여 쉽게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글솜씨가 탁월합니다. 야마쿠라가 과거의 불륜과 현실이라는 양쪽 덫에 모두 걸리고, 그걸 빠져나가려 발버둥치는 묘사도 디테일해서 더욱 몰입하게 만들고요.

시체를 움직이는 일종의 순간 이동 트릭처럼 신본격 기수의 작품다운 점도 눈에 띕니다. 단순하지만 효과적이며, 적절하게 사용되어 재미를 더합니다.

그러나 작품의 수준은 미묘합니다. 이야기를 복잡하게 꼬아놓으려는 의도가 지나친 탓이 큽니다. 시게루의 친부가 야마쿠라, 다카시의 친부는 미우라라는 복잡한 관계부터 비현실적이며, 이 관계에서 촉발된 살의가 동기라는 것도 와닿지 않습니다.

게다가 미우라가 밀실에서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되는데, 그 이유가 다이잉 메시지 때문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설정은 당황스럽습니다. 누가 봐도 본인이 치명상을 입은 뒤 문을 잠궈서 발생한 밀실인데, 문을 잠근 것이 빗장이라는 말을 이용해서 다이잉 메시지를 남겼다는 건 억지스러워요. 범인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문을 잠그는 건 당연하잖아요? 또 담배 한대 입에 물 시간은 있었으면서, 피로 범인 이름을 쓸 생각도 안했다는 것도 역시 설득력이 없습니다. 이건 솔직히 제목과 연관시키기 위한 작위적인 장치에 불과합니다. 미우라도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서 명탐정과 고위급 경찰을 이용한다는 터무니 없는 발상을 한 놈이니 죽어도 쌉니다만...

우연에 의한 전개가 지나칠 정도로 많다는 것도 단점입니다. 본격물을 표방한 작품에서 이런걸 문제로 삼기 어렵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만, 정도가 너무 과했습니다. 야마쿠라가 조금만 참았어도 미우라의 알리바이는 노리즈키에 의해 무산되어 경찰 수사가 바로 시작되었을 테고, 그렇다면 사건이 미궁에 빠지고 말고 할 것도 없었을테니까요. 사실 가즈미가 미우라를 살해한 것 역시 예고된 종말을 약간 늦추는 것에 불과한 무의미한 행동이고요. 어차피 미우라 단독 범행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또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용의자가 제거되는 전개도 아쉬웠습니다. 원래부터 가능성있는 인물군이 적은데, 미우라 → 미치코 → 도미사와 순으로 용의선상에서 사라져버리니 결국 장인 아니면 가즈미밖에는 용의자가 남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마무리라면 사실 탐정도 필요없어요.

개인적으로는 미치코의 다카시 유괴 소동에서 밝혀지는 도미사와 진범설에서 끝내는 게 훨씬 좋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꽤 충격적인 결말이기도 했고 적절하게 마무리하기에도 괜찮은 결말이었으니까요. 위에 이야기한 어설픈 동기와 결합된 출구없는 새드&배드 엔딩은 영 마음에 들지 않네요.

아울러 단점이라고 하기는 좀 뭐하지만 야마쿠라 1인칭으로만 전개되는 탓에 노리즈키라는 인물의 역할이 작다는 것도 팬으로서 불만스러웠습니다. 야마쿠라 1인칭이 이야기의 박진감을 높이는데에는 큰 도움을 주었겠지만 이래서야 노리즈키 시리즈인지, 그냥 별개의 스탠드얼론 작품인지도 잘 모를 정도입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최근 읽은 유사한 설정의 유괴물 중에서도 가장 처집니다. 아이디어는 좋지만 "이게 본격물이야!"라는 집착이 너무 강한 탓이지요. 좋은 재료를 쓸데없는 양념으로 망쳐버린 요리 느낌도 듭니다. 재료도 좋고 요리 솜씨도 나쁘지 않아 분명 먹을만은 한데, 영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2007/03/25

살육에 이르는 병 - 아비코 다케마루 / 권일영 : 별점 3점

살육에 이르는 병
아비코 다케마루 지음, 권일영 옮김/시공사

가모우 미노루는 우연히 한 여대생을 교살하고 그녀를 범하는 것의 쾌감을 깨닫게 된 이후 폭주해 나가는데 그런 그의 마수에 은퇴한 경부 히구치를 사모하던 간호사 도시코가 걸려든다. 도시코의 죽음에 책임을 느낀 히구치와 도시코의 동생 가오루는 힘을 합쳐 범인을 잡으려 하는데...

-주의 : 약간의 스포일러 포함입니다-

일본 신본격 대표 작가중 하나라는 아비코 다케마루의 대표작. 지인이신 decca님이 고맙게도 도움을 주셔서 받게 된 책입니다.

여러모로 전에 읽었던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하고 유사합니다.
일단 두 작품 모두 사회 비판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벚꽃지는..."은 악덕 판매 조직을 파헤치고 이 작품은 "아버지 부재"의 일본 사회를 비판하고 있죠. 또한 이러한 사회적 문제를 작중 범죄에 적극적으로 대입시킴으로서 소재와 이야기를 완벽하게 조화시키는 맛이 뛰어나다는 점도 동일합니다.
아울러 주요 캐릭터의 시점으로 단락이 진행되고, 각 단락을 짜맞추어 나가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의 진행 방식도 유사합니다. "벚꽃지는..."이 2명이라면 이 작품은 살인범 가모우와 어머니 마사코, 은퇴한 형사 히구치 3인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것 정도가 차이점이긴 하지만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두 작품이 닮아보이는 이유는 반전의 존재입니다. 두 작품 모두 그야말로 "반전에 죽고 반전에 사는" 작품이죠. 반전의 성격도 유사해서 "벚꽃지는.."은 주인공 나루세와 사쿠라의 정체가 밝혀지는 반전이라면 이 작품은 범인인 가모우 미노루의 정체가 밝혀지는 것이 반전인데 정말로 뜻밖이며 큰 놀라움을 안겨다 줍니다. 사실 살인범의 정체에 대한 반전은 고전 "싸이코"부터 이어져온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이 작품의 마지막 한페이지로 모든 것이 밝혀지는 반전은 다른 비교대상과의 논쟁이 무의미할만큼 워낙 뛰어난 탓에 일본 아마존 서평대로 저도 앞에서부터 다시한번 읽어가며 작가의 장치를 다시금 점검하는 절차를 거쳤을 정도로 잘 짜여져 있고 복선과 설정이 완벽한 것이 정말 대단하다 생각됩니다. 아울러 두 작품 모두 반전이 묵직하게 작품의 기본적 사회파적인 설정을 웅변하고 있고요.

하지만 단점 역시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반전을 의식한 탓에, 즉 주인공이자 살인범인 가모우 미노루의 정체를 감춰놓았다가 드러내는 것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장치이기에 이것을 설명해 나가는 부분에 있어서 작위성이 드러나며, 또한 전적으로 소설적 장치 (해설에 따르면 "텍스트 트릭") 에 의존하고 있어서 본격 추리적인 요소를 거의 느낄 수 없었다는 것은 추리 매니아로서 다소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점은 큰 단점은 아닙니다. 정작 문제는 잔인한 묘사에요. 네크로필리아 가모우의 범행에 대한 묘사는 이 책이 "19세 미만 구독 불가" 판정을 받는데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디테일하고 잔인합니다. 못지않게 잔인한 책도 많이 있다지만 이 책만이 이쪽 쟝르에서 현재까지 유일무이한 공식적 19금 금서지요. 솔직히 저는 읽으면서 굉장히 역겹기까지 했고, 이러한 파괴적인 범행에 대한 반복된 묘사 때문에 마지막 반전의 충격이 강하게 다가오지 못했습니다. 감각이 좀 둔해졌다고나 할까요?
다른 예를 들자면 제가 이른바 천재라는 클라이브 바커의 책을 싫어하는 이유가 그의 상상속의 지옥을 간접체험하기가 싫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며 이토 준지의 책 역시 마찬가지인데 이 책은 그들 못지않은 만만찮은 아우라를 뽐내고 있어서 다시 잡기가 많이 꺼려집니다.
번역자조차 이 책의 목적이 "끔찍한 장면묘사"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고 다시금 강조하고 있지만 저는 유감스럽게도 끔찍한 장면묘사가 더욱 기억에 강하게 남네요. 최소한 이렇게 적나라하게 묘사했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전혀 공감이 되지 않습니다. "검은집" 정도의 수준이라면 이해되지만 말이죠.

이러한 잔인성 때문에 재미는 있지만 추천하기도 난감하고, 외려 널리 알려지면 알려질 수록 추리문학이라는 쟝르에 악영향을 끼치지나 않을까 우려됩니다. 신본격 작가의 알려지지 않은 책을 내고 싶었다면 보다 착하고 안전한 작품을 선정하는게 낫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이 책을 선정하여 발간한 시공사와 decca님의 용기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지만 별점은 3점 이상 주기 어렵네요.

PS : 번역과 주석은 완벽한 수준이라 책의 재미를 더합니다.

2026/09/11

아리스가와 아리스에게 바치는 일곱 가지 수수께끼 - 아오사키 유고 외 : 별점 2.5점

아리스가와 아리스 데뷰 35주년을 기념하여, 젊은 작가 일곱 명이 '아리스가와 세계관'으로 발표한 단편을 모아 놓은 단편집입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 세계관이지만 히무라 히데오 시리즈가 가장 많습니다. 또 다른 대표 시리즈인 학생 아리스 시리즈의 명탐정 에가미 지로 등장 작품은 한 편 밖에 없고요. 행각승 지장 스님 시리즈도 한 편 있을 정도인데 말이지요.

하여튼, 꽤 신선한 기획인데 작품들 수준도 괜찮아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워낙 유명한 젊은 작가들이 다수 포진해 있는 덕분입니다. 대부분 아리스가와 월드를 충실히 구현한, 전통적인 신본격 추리물이라는 점도 마음에 든 점이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가볍게 즐기기에 적당합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습니다.

"끈, 밧줄, 로프" 아오사키 유고

야스미 노도카가 모아이 도자기 상으로 머리를 얻어맞아 살해당한채 발견되었다. 동기는 희귀 게임 카드이며 범인은 새시를 통해 시체를 밖으로 운반한 뒤, 바다로 시체를 내던진 것으로 보였다. 여러 현장 상황을 통해 범인은 자동 잠금장치가 설치된 아파트 주민 29명 중 한 명이며, 그 중에서도 당일 오전, 로프같은걸 버린 세 명 중 한명일 가능성이 높았다. 피해자가 죽기 전 로프 같은 것으로 묶여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각자 버린 건 다용도 마끈, 안전용 수평 구명줄, 반사 소재 텐트 로프였다. 

히무라 히데오가 '필드 워크'를 통해 범인을 밝혀내는 전형적인 신본격 단편입니다. '헤이세이의 엘러리 퀸' 아오사키 유고답게 추리적인 부분은 완벽에 가깝습니다. 

히무라는 피해자가 둔기에 맞았을 때 안경을 끼고 있다는 것을 통해, 범인이 피해자가 깨어있을 때 침입했고 흉기로 위협했다고 추리합니다. 그리고 뭔가에 묶인 피해자를 나르는 범인을 목격했다는 증언을 통해, 범인이 피해자 사체를 유기하기 직전에 묶은 끈을 회수했다고 추리하고요. 사체 유기가 실패했다는걸 알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기 때문에, 끈을 푸는 데에는 위협에 사용했던 칼을 사용했습니다. 다음날 범인은 토막난 끈을 버려야 했으며, 이는 쓰레기 버릴 때 종이 팩을 사용했다고 지적받았던 시나다의 행동과 이어집니다. 즉, 시나다가 범인입니다. 시나다는 매일 종이 팩 쥬스를 마시는 습관이 있어서 그게 재활용이라는걸 모르지 않았다는 것도 증거이고요.

사건과 범인이 로프를 그날 버린 이유모두 합리적으로 설명되며, 핵심 단서인 '로프'를 가지고 기둥서방 시나다의 유력한 동기였던 '동아줄'로 이어지는 일종의 언어유희적인 전개도 괜찮습니다.

다만 설정 자체가 조금 억지스럽다는 문제는 있습니다. 현대 법의학, 법과학으로 범인을 충분히 밝혀낼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래도 수수께끼 풀이용 단편으로는 충분한 수준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정통파 추리 소설에 대한 작가의 고민도 흥미롭습니다. 아래의 말을 빌어서, 추리 소설가의 필사적인 창작은 결국 AI도 만들 수 있는, 독창적인 요소가 없는 결과물일거라는게 요지인데 저 역시 동의하는 바입니다. 

  • '정보를 수집하고 검토해 논리적으로 수수께끼를 풀어낸다.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가 하는 일은 따지고 보면 그 해법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 "수수께끼 풀이 자체는 누가 설명해도 마찬가지인, 개성없는 장면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야. 애초에 누구나 풀 수 있는 수수께끼가 아니면 본격 미스터리로 성립할 수 없다는 딜레마도 있어. 결국 탐정 캐릭터들도 '모범 답안'을 독자에게 전하기 위한 장치에 지나지 않는 걸지도 몰라."

물론 이 논리는 미스터리는 과학이 아니라 유사 과학이라는 히무라의 입을 빌어 작가 본인 스스로 타개하고 있기는 합니다. 탐정들은 미스터리의 신의 말을 전하는 선교사인데,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른 의견을 내 놓는 과학자와 다른 집단이라면서요. 그래도 AI도 만들 수 있다는 결과물이라는게 변하지는 않지만요...

"클로즈드 클로즈" 이치오 미치

아리스와 히무라는 여고에서 일어났던 교복 도난 사건 해결을 부탁받았다. 교복을 도난당한 다즈하라 시게오는 같은 3학년 부원인 고미야 리오와 반목이 있었다. 그러나 고미야는 이미 수개월 전 전학을 간 상황이었다. 

다즈하라가 고미야에게 교복을 빌려줬는데, 다른 친구에게 빌린 거울이 들어 있어서 도난 소동으로 발전했다는게 진상입니다. 그런데 추리적으로 딱히 눈여겨 볼 부분은 없습니다. 히무라가 이렇게 추리해 낸 과정이 제대로 선보이지 않는 탓입니다.

또한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팬에게서 만족감을 주지 못합니다. 아리스와 히무라가 여고에서 가짜 신분(?)으로 활동하는 일상계 추리물이라는 설정은 독특하지만, 둘의 대화와 전체적인 분위기가 모두 여성 작가가 쓴 듯한 느낌이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더 건조하게 묘사했어야 했는데 말이지요.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흉내내기에 불과해 보였어요. 수록작 중 최악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히무라 히데오에게 바치는 괴담" 오리가미 교야

도쿄에서 열린 이벤트에 참석했던 아리스와 히무라는 그날 밤 찾은 바에서 서점 직원 쓰지와 합석하게 되었다. 쓰지는 둘에게 자신이 겪었던 괴담을 들려주었고, 히무라는 자신만의 추리로 괴담의 진상을 풀어냈다.

쓰지가 네 편의 괴담을, 그리고 마지막에 합류한 바 손님이 한 편의 괴담을 들려주어 총 다섯 편의 괴담이 선보입니다. 쓰지가 겪거나 들었던 괴담은 모두 추리를 통해 진상이 밝혀지는데, 아래와 같습니다.

  • 후배 하숙집에서 심야에 전자기기가 오작동하는 사건이 자꾸 일어났다. 심지어 어느 날은 한밤중에 탄내까지 났다.
    진상: 개조한 불법 무선기로 통신하는 장거리 트럭이 원인이었다. 심야에 발생한건 장거리 트럭은 고속도로 통행 요금이 할인되는 심야에 운행하기 때문이며, 탄내는 오작동한 전열기구 때문이었다.
  • 쓰지는 대학 시절에 동창과 숲에서 고개를 돌리며 짐승 울음 소리를 내었던 인형 탈을 보았다.
    진상: 몸은 땅 속에 묻힌 사람에게 인형 탈을 씌워 숲속에 방치해 둔 것이었다. 짐승 울음 소리는 재갈이 물려있던 탓이며, 비성수기 휴양지 산속이라는 현장이 근거이다.
  • 등산을 좋아하는 쓰지의 친구는 안개로 뒤덮인 산길에서 똑같이 생긴 오두막을 등산로에서 연이어 발견했다.
    진상: 그냥 오두막이 두 채 있었다.
  • 쓰지는 방학 때 고향 친구 가가와, 가가와의 선배 유모토와 함께 폐업한 유원지에서 담력 시험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유모토가 미러 하우스 안으로 들어간 뒤 사라져버렸고, 그를 찾으러 들어간 쓰지는 미러 하우스 속 거울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형체를 보고 혼비백산하여 도주했다. 그 뒤 가가와와 유모토와는 연락이 끊겼다.
    진상: 고객을 놀라게 만드는데 사용했던 매직 미러를 이용하여 유모토가 쓰지를 놀라게 만든 장난이었다. 

첫 번째 괴담은 재미있고, 네 번째 괴담도 추리만큼은 그런대로 합리적이지만 다른건 별로입니다. 그리고 모두 진상을 증명할 수 없다는 문제도 크고요. 

이보다는 바 손님인 이토가 이야기한 진짜 괴담이 더 괜찮았습니다. 이토는 교통사고 현장에 놓여있던 시들어진 조화를 버리고 새로 꽃을 사서 갖다 둔 뒤, 원망하는 표정의 여자 귀신에게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분명 선의로 행한 일인데 왜 귀신은 원망을 가졌을까요? 아리스의 추리는 '꽃이 문제였다'는 겁니다. 즉, 원래 놓여있던 시든 꽃이 귀신에게 소중한 사람이 놓아둔 꽃이었다는 것이지요. 이 역시 증명할 수 없다는 문제는 있지만 의표를 찌르는 맛도 좋고, 아리스가 추리를 펼친다는 의외성도 좋았습니다.

그 외에 저는 잘 모르는 '심령 탐정'이라는 아리스가와 월드 속 다른 주인공이 언급되는 등, 헌정물로는 여러모로 즐길거리가 많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블랙 미러" 시라이 도모유키

'나'는 대학 미스터리 동호회 때 친구였던 가가미 에이지로부터 오랫만에 연락을 받고 만났다. 그 뒤, 경찰을 만나 에이지와 그의 형 고이치가 연루된 살인사건에 대해 들었다. 상황은 에이지가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나'와의 만남을 진행한 것으로 보였지만, 알리바이 트릭은 완벽해서 깨기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추리소설가를 꿈꾸던 '나'와, 경찰을 돕던 건방진 교수 히무라가 힘을 합쳐 알리바이를 깨는데 성공한다.

복잡한 시간표로 구성된, 전형적인 시간표 알리바이 트릭물입니다. 쌍둥이인 에이지와 고이치가 어느 시점에 교체하여 서로의 알리바이를 만든게 진상입니다. 핵심은 고이치가 엄지손가락을 절단한 뒤, 그걸 가지고 에이지가 고이치의 비밀금고를 열었던 것이고요. 이는 고이치가 범행을 저지른 뒤, 생수병 뚜껑을 따지 못해 머그컵으로 물을 마셨던 상황 등으로 추리됩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보기에는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70년대라면 모를까, 지금은 CCTV가 여러 곳에 가득한데 자신의 노출을 이렇게까지 숨기면서 짜여진 시간표 동선대로 이동한다는건 말오 안되니까요. 히무라가 사건에 뛰어든 이유가 역에서 뛰어나가던 에이지와 부딪혔기 때문이었다는 우연도 작위적이고요.

본인을 주인공으로 한 일종의 메타적인 설정은 나쁘지 않지만, 현재 가장 뜨거운 작가 중 하나인 시라이 도모유키의 작품치고는 영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 안티의 수수께끼" 유키 하루오

추리 소설가인 '나'는 신작 구상을 위해 담당 편집자 미토베 씨와 함께 취재차 온천 휴양지를 찾았다. 그런데 그곳 식당에서 만난 점원 후쿠나가 아이가 아리스가와 아리스를 극도로 싫어하는 사촌 이야기를 해 주었다. 둘은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후쿠나가의 사촌 아버지인 외삼촌 거처를 찾았고, 그곳에서 미토베 씨는 사촌의 행동을 추리해 내는데...

작품을 다 읽었지만 극도로 싫어한다는 사촌의 기묘한 언행에 대한 진상을 밝혀내는 일상계 추리물입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유명 작품들이 다수 등장하지만, 무대와 설정은 아리스가와 월드가 아니라는게 특징입니다. 

추리는 사촌이 후쿠나가에게 아리스가와 아리스 책을 빌려주지 않으려고 거짓말을 했다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서재에 있던 아리스가와 아리스 책은 커버와 띠지만이며, 내용물은 다른 책으로 바뀌어져 있었기 때문이고요. 사촌은 별채에 침입하여 아버지의 만년필을 훔쳤습니다. 그러나 눈이 오는 바람에 별채에서 탈출하지 못했고, 별채는 난방이 안되어서 너무 추웠던 탓에 아리스가와 아리스 책을 난로에 태웠던 겁니다. 후쿠나가의 외삼촌은 모든 장서를 서재와 별채, 두 곳에 비치하였기 때문에 다음날 외삼촌이 돌아오기 전 사촌은 서재의 책을 별채로 옮기고, 때우지 않았던 띠지와 표지를 서재에 있던 다른 책에 씌워 위장했고요. 책은 새로 주문했지만 도착까지는 시간이 걸려서 당장 후쿠나가에게 책을 빌려주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안티인 척을 했던 거지요.

위의 추리를 위한 모든 정보는 공정하게 제공되는 좋은 추리물입니다.  유명 작품은 물론 히무라 히데오 시리즈의 TV 방영까지를 작품 설정에 녹였다는 점에서 '헌정'이라는 취지에도 딱 들어 맞고요. '아리스가와 아리스 안티'를 표방한 사촌의 주장은 헌정이라는 취지와 정 반대이기는 하지만, 이런게 또 기획의 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제가 읽었던 유키 하루오의 작품은 비현실적인 설정이 문제였는데, 소규모 일상계로 설정을 좁혀 놓으니 훨씬 낫네요.  

"행각승 지장 스님의 낭패" 아쓰카와 다쓰미

20년 전, 행각승 지장 스님의 이야기를 '에이프릴'에서 들은 멤버였던 '나'와 도코가와는 오랫 만에 한 잔 하기 위해 '풀스 메이트'라는 가게를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20년 전과 똑같이 사건 이야기를 들려주는 행각승을 만났다. 그러나 그는 20년 전과는 다르게, 손님들의 공격과 의문에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는 풋내기였다.

"행각승 지장 스님의 방랑"은 그렇게 인기가 많은 작품은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 이 작품을 헌정물로 새롭게 써 낸게 좀 신기하네요. 일종의 '도라에몽 세계관'인 히무리 히데오 시리즈와는 다르게, 지장 스님이 활약한 20년 후인 현재를 무대로 협박범 구로사와가 살해당했는데, 사체는 피해자가 수집했던 나비 표본 수십 개로 둘러 쌓여 있었던 사건에 대한 추리가 펼쳐집니다.

나비의 이름이 범인을 특정하는데, 나비 표본 하나만 꺼내어져 있으면 범인이라는게 바로 드러나서 어쩔 수 없이 표본을 전부 꺼냈다는게 진상입니다. 범인은 나비 표본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모르는 아사기 유즈루였고요.

이 뒤에 등장인물의 이름, 수를 가지고 딴지를 거는 손님에게 진짜 지장 스님이 나타나 보강하는 추리를 펼치며 이야기가 마무리 됩니다. 

여러모로 추리 퀴즈에 가까우며, 작위적이고 설득력이 낮다는 점에서 원전과 비슷한 점이 많네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시체의 실루엣은 말한다" 이마무라 마사히로

에이토 대학 추리 소설 연구회 멤버 5명은 고향 나고야로 취업 활동을 갔다 온 오다가 가져온 수수께끼 풀이에 나섰다. 오다가 만난 동향인 고바야시가 친구가 남긴 암호를 해독해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나왔습니다. "학생 아리스" 시리즈! 이 시리즈 단편은 읽은 적이 없는데, 젊은 작가가 일종의 일상계로 풀어낸게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형식만 신선한게 아니라 추리적으로도 괜찮습니다. 고바야시의 친구 바토 씨가 남긴 낙서와 다이잉 메시지를 풀어내는 과정이 추리 소설 연구회 5명의 대화를 통해 펼쳐지는데, 정말로 모든 있을 수 있는 상황을 가정하고 추리와 의견들을 내 놓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를 토대로 드러나는 진상은 꽤 합리적으로 느껴져요. 대화로 일종의 추리 대결을 펼쳐나간다는 점에서는 작가의 전작 "시인장의 살인" 속 학생 식당 메뉴 맞추기 게임도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고바야시와 바토가 헤어졌고, 이 사건은 바토가 고바야시가 계속 어울려 줄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벌인 일종의 게임이라는 치명적인 단점은 있습니다. 결국 진상은 절대로 드러나지 않는 탓이에요. 다이잉 메시지도 AOK로 읽히는데 이건 All-OK라는 추리 역시 근거없는 공허한 주장일 뿐이지요.

논리적으로 즐길거리는 많은데 다소 맥이 빠진다는건 어쩔 수 없습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에가미 선배의 신상에 대한 이야기 등 팬이라면 소소히 즐길거리가 있지만, 그리 추천할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2010/06/19

쌍두의 악마 1,2 - 아리스가와아리스 / 김선영 : 별점 2.5점

 

쌍두의 악마 2 - 6점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김선영 옮김/시공사

"이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리아는 '외딴섬 퍼즐' 사건 이후 정신적 충격으로 예술가들의 촌락 기사라 마을에 은둔해 버렸다. 그녀를 데려오기 위해 에이토 대학 추리연구회 일동이 출동했다. 하지만 기사라 마을은 여러가지 이유로 외부인을 들이지 않는 탓에, 추리연구회는 심야에 침투작전을 벌여 에가미 선배 홀로 겨우 침투에 성공했다. 아리스를 비롯한 나머지 연구회원들은 예술가 마을 바로 옆의 나쓰모리 촌락으로 후퇴한 뒤 선배와 마리아를 기다렸다.
그러나 기사라 마을의 화가 오노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고, 사건 해결을 위해 잠시 남기로 한 에가미 선배의 전화를 마지막으로 기사라 - 나쓰모리를 잇는 유일한 다리가 폭우로 유실되고 전기와 전화마저 끊겼다. 뒤이어 나쓰모리 마을에서도 카메라맨 아이하라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는데...


일본 신본격 미스터리의 대표 작가 중 하나인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 작가의 두개의 시리즈 중 - 하나는 에이토 대학 추리 연구회 회원인 대학생 아리스가 화자로 등장하고 에이토 대학 추리 연구회의 대선배인 에가미 지로가 탐정으로 등장하는 "학생 아리스"시리즈. 그리고 또 하나는 추리소설가 아리스가 화자이며 그의 친구이자 임상병리학자로 유명한 조교수 히무라 히데오가 탐정으로 등장하는 "작가 아리스"시리즈 - 학생 아리스 시리즈로 그간 읽어왔던 작가의 작품들 중 가장 긴, 800여페이지가 넘는 대장편입니다.
시리즈 작품답게 학생 아리스 시리즈의 전작 설정과 유사하면서도, 신본격 작가다운 고전적인 설정과 전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시골 마을의 폐쇄적 공동체와 이 공동체가 천재지변으로 고립된다는 전형적인 클로즈드 써클 미스터리거든요. 그리고 연쇄 살인극이라는 것도 전작들과 유사하고요.

그동안 예닐곱편의 작품을 읽어온 것에 따르면,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공정한 단서 제공과 합리적인 추리라는 장점과 작위적인 설정이라는 단점을 함께 가지고 있는 작가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장점이라 생각했던 추리적인 부분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대표작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요.
첫번째 사건부터 문제에요. 향수를 뿌릴 수 있는 사람이 야기사와 뿐이었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어차피 우산 안이라면 접혀져 있을때 향기가 나지 않아서 은폐가 가능했을테니까요.
향수를 뿌리는 것이 가능했다 하더라도, 동굴 안에서 살해할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 것도 문제에요. 작중에서 설명되듯 그냥 동굴 입구에서 살해해도 되잖아요. 입구가 2개라서 어디서 나올지를 몰랐기 때문이라는 것은 설득력이 약합니다. 향기에 의지해서 어두컴컴한 동굴 속에서 누군가를 미행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설령 가능하더라도 피해자에게 발각될 위험성이 너무 높아요. 그러느니 차라리 50% 확률로 입구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그리고 계약에 따라 혐의를 벗겨주기 위한 작위적인 장치 설정도 무리수였습니다. 여자 힘으로 불가능했을 것이다라는 것은 가정일 뿐, 현실적인 단서가 되기는 어려운 탓입니다. 이럴 바에야 확고한 알리바이를 만들어 주었어야 했습니다. 증거로 귀를 잘라낸다는 발상도 썩 와 닿지 않았고요. 차라리 시체를 강물에 던져버렸으면 모든 것이 깔끔했을텐데, 이래서야 범행을 위한 범행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네요. "계약서"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한다면 "귀"는 무가치하며 외려 범인에게는 불리한 증거물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니까요.
두번째 사건인 사진작가 아이하라 살인사건은 그래도 깔끔한 편이지만, 이 사건은 저도 범인을 짐작할 수 있었을 만큼 너무 간단하고 명쾌하다는게 문제입니다. 솔직히 추리적으로는 재미가 너무 부족했어요. 핵심 단서에 대한 정보 제공이 너무나 공정한 탓에, 용의자의 직업만 가지고도 범인을 특정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무로키의 팔레 이데알 이야기도 너무 많이 나와서 뭔가 사건에 연관이 있으리라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트릭이 패트리시아 하이스미스의 "낯선 승객"과 동일한 트릭이라 신선함이 떨어진다는 것도 아쉬웠던 점입니다. 그나마도 중간 과정을 너무 대충대충 넘기고 있기도 하고요.

동기면에서도 오노야 당연히 누구나 죽이고 싶어하는 인물이라 열외이지만 (종유동에 벽화따위나 그리는 놈은 죽어도 싸지) 야기사와의 살의는 살인 말고라도 여러가지 방법 - 돈이나 필름을 회수하거나 하는 방법 - 이 있었을테고 세번째 살인 역시 무로키가 체포된다면 불필요한 살인이기에 무의미해 보여 별로 와닿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경찰 수사가 시작되면 고립된 기사라 마을에서 한정된 인물들 대상으로 범인이 결국 밝혀졌을테고 말이죠.

아울러 작가의 전통적인 단점 역시나 그대로입니다. 고립된 상황을 만들기 위한 작중 설정부터가 억지스러워요. 특히나 몇몇 한정된 선택받은 사람들로만 구성된 외딴 마을의 예술가 공동체는 정말 어처구니 없는 설정이죠. 예술가들이 이런 촌구석에 처박혀서 버틴다는건 이해가 되지 않았으니까요. 지나칠 정도로 "고립"에 집착하는 모습은 과히 좋아보이지는 않네요.

물론 기사라 마을 - 나쓰모리 마을 두개로 나뉘어져 전개되는 방식은 상당히 재미있고, 이렇게 두개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사건이 결국 하나로 엮인다는 결말도 굉장히 잘 만들어져 있기는 합니다. 사건도 모두 3건이나 등장해서 대장편다운 풍성함을 전해주고요.
또한 세번째 사건인 음악가 야기사와 살인사건은 주요 단서가 명쾌하고 설득력 넘치게 짜여진 잘 만들어진 이야기였습니다. 사실 트릭이라기 보다는 왜 X가 범인인가? 에 대한 설명이 핵심이지만 굉장히 합리적이고 깔끔하게 전개되고 있을 뿐더러, 고전적이며 본격 추리소설같은 느낌이 잘 전해지기 때문에 마음에 들었어요 . 구태여 변명하려면 변명할 수 있는 단서이기는 하지만...

결론내리자면 공정한 단서제공과 본격 추리소설다운 지적인 재미는 존재하나 하나의 장편으로서의 완성도는 그에 미치지는 못한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벌려놓은 것에 비하면 알맹이는 빈약한 편이니까요. 엄청나게 긴 분량 역시 감점 요소였어요. 분량에 걸맞게 디테일하지도 못한데 차라리 조금 더 짧았더라면 훨씬 좋았을것 같습니다.개인적으로는 작가 아리스 시리즈가 조금은 더 나아 보이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현대 사회에 클로즈드 써클 미스터리물을 만들고자 노력한 작 가의 노고에는 경의를 표합니다만 왜 이 작품이 대표작으로 인정받는지는 잘 모르겠군요. 아무래도 작가가 트릭과 추리적인 발상에 비하면, 소설가로서의 글 쓰는 능력은 부족해 보입니다.

2006/01/14

러시아 홍차의 비밀 - 아리스가와 아리스 : 별점 2점

ロシア紅茶の謎 (講談社文庫) (文庫) - 4점
아리스가와 아리스/講談社

범죄 심리학 조교수이자, 실제 사건에서의 활약으로 "임상 범죄 학자"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천재 히무라 히데오와 추리작가 아리스가와 아리스 컴비 시리즈 단편집. 아리스가와 아리스(저자)의 첫번째 단편집이기도 합니다. 그의 "국명 시리즈"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책에는 전부 6개의 단편과 작가 해설 등이 담겨있습니다.
일본 여행 가서 구입한 책으로 장편이 아니라 단편집이라 부담없이 읽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중간에 번역 한번 해 볼까 하고 삽질하느라 걸린 시간도 있어서 이래저래 거진 한달이 걸렸네요.... 2006년 들어서는 처음으로 완독한 책인 것 같습니다. (만화책은 수도없이 읽었지만서도)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기대 이하였습니다. '일본의 엘러리 퀸'이라고도 불리우는 신본격 작가라서 굉장히 기대했는데 말이지요. 이유는 작품 대부분이 "트릭을 위한" 이야기들이라 트릭에 매몰된 듯한 느낌인 탓입니다. 트릭도 만들기 쉬운 암호 미스테리가 많아서 별로였고요. 표제작이며 작가 스스로 마음에 든다는, 이른바 국명 시리즈인 "러시아 홍차의 비밀"이 제일 어처구니 없고 수준이하였다는 점도 당황스러웠습니다.
또한 탐정역의 히무라 히데오의 캐릭터가 너무 전형적이라는 것도 감점 요인입니다. 캐릭터를 돋보이게 하기에는 단편이라는 특성상 쉽지 않은 부분이 많았겠지만, 잘난척 하는 천재라는 고전적 스테레오 타입 그대로의 인물이라 새로운 면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래도 신본격답게 문제-해결이 명확하고 이야기 하나하나가 깔끔하게 매듭지어지는 것은 좋았습니다. 용의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고 단서에 대한 범위를 좁혀줌으로써 이해를 돕는 추리만화 타입의 전개도 쉽게 읽는데 큰 도움을 주었고요.

결론내리자면 그냥저냥한 평작이랄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트릭 자체는 제법 괜찮은게 있고, 뛰어난 작품도 분명있기는 합니다. 위에 말한 단점은 장편을 보면 많이 상쇄될 것도 같고요. 다음번에는 장편에 한번 도전해 봐야 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한 3개월은 걸리겠지만....

개인적인 베스트는 "동물원의 암호"와 "팔각형의 함정" 입니다.

작품별 상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동물원의 암호 :
동물원 원숭이 우리에서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 사육사. 그는 죽기 직전 암호로 된 쪽지를 남긴다. 그 암호는 퍼즐광이었던 피해자가 공들여 만든 것으로 암호를 해독하면 범인을 알 수 있으리라는 판단 하에 주인공 컴비는 동물 이름으로 구성된 암호 해독에 도전하는데...
"동물 이름으로 구성된 암호" 자체가 무척 괜찮습니다. 기발하면서도 수긍이 가는 그런 암호거든요. 일본 거주자가 아니면 풀기 힘들다는 약점은 있지만 말이죠. 내용 전개도 명쾌하고 논리적이라 가장 마음에 드는 단편 중 하나였습니다.

2. 지붕 밑의 산보자 :
하숙집 주인이 살해되는데 경찰 조사로 발견한 그의 일기에서 그가 하숙집 지붕을 밤에 돌아다니는 변태적인 취미가 있었다는 사실과 하숙인들 중 인근 연쇄 강간마로 짐작되는 인물이 있다는 것도 밝혀진다. 그런데 하숙인들을 암호화된 이니셜로 표기하고 있어서 정체를 모르는 상태. 연쇄 강간마이자 하숙집 주인 살인 사건의 범인인 그 하숙인을 찾기 위해 두 컴비가 나선다.
역시 암호 트릭입니다. 이 작품은 암호 자체는 무척 간단한 편이라 정교한 맛은 좀 없더군요. 그래도 에도가와 란포의 동명 단편을 응용한 센스와 마지막의 살짝 등장하는 반전은 무척 좋았다 생각됩니다.

3. 붉은 도처 (稻妻) :
한 여인이 투신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는데 히무라 히데오의 제자인 학생이 목격자로 나서 그 여자가 방에서 밀려 떨어졌다는 것을 증언한다. 그러나 그 여자의 방은 완벽한 밀실 상태.
밀실 트릭물입니다. 그러나 트릭의 정교함은 떨어지는 편이고 작품에 흥미를 느낄만한 요소가 너무 적어서 이상할 정도였어요.

4, 룬의 가르침 :
외국인 기자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요청받아 찾아간 히무라 히데오. 그는 피해자가 손에 쥐고 죽은 "룬 문자판" 4개의 수수께끼를 푸는데 주력한다.
이 책의 단편들 중에서 전개가 가장 이색적인 작품이었습니다. 히무라 히데오의 방에 놀러간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책상위에 놓여진 룬 문자판을 보게 되자 히무라 히데오가 그것에 관련된 사건을 들려주는 셜록 홈즈물 스타일의 전개로 이루어지거든요. 트릭은 역시나 일본 독자들만이 풀 수 있는 암호인데 평이하기도 하지만 좀 억지성이 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룬 문자"라는 요소가 왜 들어갔나 싶게 쌩뚱맞아서 의아했는데 책 뒤의 작가 후기를 보니 "고대문자"에 관련된 트릭 추리물을 써 달라는 의뢰의 결과물이더군요. 뭐 그냥저냥한 수준의 작품입니다. 

5. 러시아 홍차의 비밀 :
인기 작사가 독살 살인 사건에 참여한 컴비. 아무도 그의 찻잔에 독을 주입할 기회가 없었던 상황에서 사건의 해결에 도전한다.
표제작이자 국명 시리즈라는 작품입니다. 솔직히 저는 이 책에서 이 작품이 제일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트릭도 억지에다가 범인이 왜 그런 트릭을 썼는지에 대한 타당성 자체가 불분명 합니다. "아무도 죽일 수 없는 상황" 이라고 해서 자기 자신이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거든요. 어차피 제일 의심 받을 수 밖에 없는 인물이었는데.... 본격물의 정도를 벗어나 너무 트릭에만 집착한 씁쓸한 결과물로 보입니다.

6. 팔각형의 함정 :
아리스가와 아리스 원안의 추리극을 상연하는 연극 예행 연습에 초대된 두 컴비는 실제로 살인 사건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런게 실제로 있군요! 만화에서만 보던 "추리극" 공연과 관객이 함께 하는 범인 맞추기 이벤트라는 연극을 위해 아리스가와 아리스(작가)가 실제로 원안을 제공했던 연극 각본의 소설화 작품이라고 합니다. 작품도 본격물에 걸맞는 깔끔하고 완벽한 구성을 보여주는 모범적인 작품이었습니다. 트릭도 아주 약간을 제외한다면 수긍할 만 했고 범인이 왜 그렇게 트릭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설명 역시 합당하며 범인을 알게 되는 단서 역시 이치에 맞거든요. 일종의 문제편 격인 서술 뒤에 "독자에게의 도전장" 이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고요.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연극으로 본다면 더욱 재미있을 것 같아요.

2009/07/28

46번째 밀실 - 아리스가와 아리스 / 최고은 : 별점 2.5점

46번째 밀실 - 6점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최고은 옮김/북홀릭(bookholic)

추리소설가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일본의 딕슨카라 불리우는 밀실 추리소설계의 거장 마카베 세이치의 별장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파티에 친구인 에이토 대학 조교수이자 임상범죄학자인 히무라 히데오와 함께 초대받는다. 파티에 참석한 인물은 마카베 세이치의 가족을 제외하면 모두 추리소설작가와 편집자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마카베 세이치는 이번에 발표할 46번째 밀실작품을 끝으로 밀실 추리소설을 그만둘 것을 선언하는데 그날 밤 그는 밀실에서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다.

일본 신본격 추리작가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다섯번째 장편으로 그의 명탐정 캐릭터 중 1인인 임상범죄학자 히무라 히데오와 추리소설작가 아리스가와 아리스 컴비의 데뷰작입니다. 이 컴비의 시리즈는 제 블로그에서도 여러번 ("하얀 토끼가 도망친다", "절규성 살인사건" , "러시아 홍차의 비밀" ) 소개했었지만 장편은 처음 읽어 보네요.

일단 장점과 단점이 확연한데, 장점이라면 제목에서부터 독자에게 도전하는 듯한 밀실 트릭이 괜찮다는 것, 그리고 사건의 전개와 결말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보다는 매끄럽게 흘러간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특히 "트릭"에 집착해서 이야기 전개에 설득력을 잃어버리던 다른 전작들과 비교했을 때 이 작품에서의 "트릭"은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되어 내용과 잘 결합되고 있다는 것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추리소설이라면 당연하지만 의외로 내용과 트릭이 잘 결합된 작품을 최근에 찾아보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니까요. 아울러 가장 중요한 단서가 초반부터 설명되고 있는 등 추리적으로 공정하게 독자와 승부하려는 작가의 모습도 마음에 듭니다. 일본의 "엘러리 퀸" 다운 모습이랄까요?
또한 단편에서는 느끼기 힘들었던 히무라 히데오와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과거 및 심리 묘사, 작가의 추리관을 엿볼 수 있었던 추리소설가들의 대화라던가 밀실 트릭에 대한 소개 등 작품 외적으로 즐길거리도 많아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네요. 예를 들자면 작가가 소개한 "Locked Room Murders"라는 책, 그리고 그 책을 통해 소개하는 미국 추리소설 작가 댈리 킹의 트레비스 타란트 시리즈 "트멘트 4세호 에피소드"는 정말이지 읽고싶어지게 만들더군요.

그러나 작가 특유의 단점, 예를 들어 추리소설작가들과 편집자들의 크리스마스 파티가 벌어진 눈 덮인 고원 별장에서의 밀실 살인사건이라는 작위적인 무대 설정이라던가, 사건의 실질적인 동기가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점 등의 단점도 여전합니다. 특히나 동기 측면에서는 아직도 이해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살인"이라는 범행을 시도하기 전에 진실을 고백하려고 시도하는 것이 당연하잖아요. 밑져야 본전일텐데 말이죠.
그리고 서재를 밀실로 만든 이유에 대해서는 명쾌하게 설명되고 있지 못한 것은 확실히 옥의 티입니다. 범인이 기상천외한 범행을 저지른 목적은 자기 자신의 알리바이를 확보하기 위함이었는데 결과론적으로는 이 의도와 서재를 밀실로 만든 이유는 별로 관련이 없어보입니다. 차라리 목격자인 아리스가와 아리스를 살해하는 것이 더 설득력 넘치는 상황이죠. 어차피 두명죽이나 세명죽이나 별반 차이도 없잖아요. 그리고 아리스를 만약 살해했더라면 범인이 결국 빠져나갈 수 있었던 상황이라는 점 (가장 중요한 발자국에 대해 넘어갈 수 있었기 때문에) 에서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 외에 불필요한 암호 트릭 등은 사족으로 느껴졌고요. (차라리 손빈처럼 "여기서 방연이 죽다" 정도가 어땠을까요?)

이렇게 좋은 점과 나쁜 점이 골고루이기 때문에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래도 국내 출간된 히무라 히데오 시리즈 중에서는 베스트라 생각되며 일본의 엘러리 퀸 다운 모습을 즐기기에는 충분한 작품이니만큼, 일본 신본격 작품에 관심있으신 분들은 한번쯤 읽어보셔도 괜찮을 것 같네요. 저는 최고 걸작이라는 "쌍두의 악마"나 차분하게 기다려 봐야겠습니다.

덧붙여, 학산의 "북홀릭"에서 출간되었는데 표지, 편집 모두 마음에 듭니다. "경성탐정록"도 다음에는 조금 더 신경써 주시길~^^

2016/07/22

노리즈키 린타로의 모험 - 노리즈키 린타로 / 최고은 : 별점 1.5점

노리즈키 린타로의 모험 - 4점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최고은 옮김/엘릭시르

신본격의 기수 중 한 명인 노리즈키 린타로 단편집입니다. 최초의 단편집이며, 데뷔작을 비롯해 "요리코를 위해"와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작품들까지 비교적 작가의 초기작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작품들은 역시나 초기작답습니다. 완성도에 문제가 많거든요. 신본격 작가다운 트릭, 특유의 논리는 여전하지만 이러한 추리적 요소들이 설득력 있게 사용되지 못한 탓입니다. 억지스럽고 작위적인 이야기가 대부분이에요.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데뷔작인 "월광게임"도 아주 별로였었는데, 당시(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는 이 정도 수준으로도 데뷔하고 작가가 될 수 있었던게 놀랍네요. 문학계도 버블이 만연했었나 봅니다.

물론 지금의 노리즈키 린타로는 거장입니다. 몇몇 장편들은 아주 좋았고, 단편 역시 "녹스 머신"은 제 취향이 아니었지만 예전에 읽었던 "이콜 Y의 비극"의 경우 직접 번역하여 소개드릴 만큼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이 책 수록작들은 거장의 편린조차 느끼기 어려운 평균 이하의 작품들이 많습니다. 작가의 팬이 아니시라면 굳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사형수 퍼즐"

사형수 아리아케 쇼지가 교수대에 선 직후, 고통을 호소하며 사망했다. 검시 결과 니코틴 중독사였다. 교도소장은 참관 검사의 동의를 받아 극비리에 노리즈키 부자에게 사형수가 사형 직전 독살당한 해괴한 사건의 해결을 부탁하는데...

전형적인 불가능 범죄 설정이 흥미를 자아냅니다. 이전 "에드가상 수상 작품집"에서 읽었던 단편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교수대에서 사라진 사형수에 대한 이야기였지요.

하지만 추리적으로는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트릭이 없는 우발적 범행에 불과한 탓입니다. 만약 아리아케가 담배를 피웠다면 이 범행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을테고, 차를 아리아케가 마신다는 것 역시 보장할 수 없다는 점에서 작위적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용의자들이 형장에 있었던 사람들로 좁혀진 상태에서 경찰 수사가 시작되었다면, 미화원 나카미네가 본인이 아니라는 건 바로 들통났을 테니 사건이라 부르기도 어려울 지경입니다.

작가가 이야기를 끌어가는 전개도 매끄럽지 못합니다. 불필요한 장황한 설명은 지루했으며, 고장 난 소각로와 파쇄기의 존재가 용의자를 좁히는 데 큰 도움을 줄거라는게 뻔히 보이는 것 역시 별로였습니다. 이에 바탕을 둔 노리즈키 린타로의 추리는 괜찮지만, 불필요한 요소였어요.

무엇보다도 아버지를 아들이 죽일 수도 있는 상황을 막기 위한 절망적 노력의 결과였다는 동기는 최악입니다. 어찌 되었건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제일 바람직했을 테니까요. 설령 아들이 사형을 집행하는 본인이 된다 하더라도 무덤까지 비밀을 가져가면 되지,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범죄를 저질렀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 그리스 신화의 오이디푸스 이야기를 끼워 맞춘 것도 억지로밖에 보이지 않았고요. 차라리 영화 "모범 시민"처럼 피해자 중 누군가의 가족이 편안한 죽음을 맞지 않게 하기 위해 복수한다는 이야기가 더 설득력이 높아 보입니다.

한마디로 참신한 설정 외에는 건질 게 없는 작품. 별점은 1.5점입니다.

"상복의 집"

도마 가문을 지배하는 어머니 사요에게 장남 야스노리는 꼼짝도 못하지만, 차남 가쓰키는 반항하여 집을 찾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10여 년 후, 아버지의 죽음으로 가족이 다시 모였으나 큰 싸움 끝에 가쓰키는 “어머니가 죽기 전에는 가족과 함께 찾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리고 얼마 후, 도마 사요가 독살되고 가문의 친척이라는 이유로 노리즈키 총경이 수사에 참여하는데...

노리즈키의 친척 가문에서 일어난 독살 사건을 다룬 작품입니다. 작가의 데뷔작이라는데 마음에 들었습니다. 추리 매니아의 첫 작품다운 신선한 아이디어가 돋보인 덕분입니다. 특히 상식을 깨는 "반전"의 매력과 그것을 설명하기 위한 설득력 있는 동기, 두 가지가 잘 맞물려 있는게 좋습니다.

반전부터 설명하자면, 범인은 초등학교 5학년생인 도마 스미오일 수밖에 없다는 상황에서 진범을 찾기 위한 추리를 펼치지만, 사실은 스미오가 범인이 맞다는 겁니다. 발표 시기를 감안하면 상당히 앞서간 아이디어였습니다. 이에 더해 스미오가 범행을 저지른 동기도 완벽합니다. 한눈에 반해버린 사촌누나 마리를 다시 보려면 가쓰키가 집에 돌아와야 하고, 그러려면 할머니가 죽어야 한다는 인과관계가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드러내기 위해 적절하게 삽입한 복선 — 스미오의 멍한 상태와 시험 점수 등 — 도 탁월했고요.

한마디로 데뷔를 위해 많은 것을 준비했구나 싶었습니다. 수록작 중 최고작으로 꼽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카니발리즘 소론"

화자 ‘나’에게 노리즈키 린타로가 찾아왔다. 둘 모두의 지인인 오쿠보 마코토가 동거녀 미사와 요시코를 죽이고 요리해 먹은 사건에 대한 의견을 묻기 위해서였다.

공부하는 작가 노리즈키 린타로가 펼치는 고금동서에 걸친 식인론(論) 덕분에 현학적인 재미만큼은 충분합니다. 그녀를 먹은 것이 변으로 내보내기 위해서라는, 일종의 극단적인 복수라는 진상도 나쁘지는 않았고요.

그러나 두 사람의 토론이 전부라 소설적 재미가 부족하며, 진상에 대한 아이디어는 좋았으나 충분히 보여주지 못한 점은 아쉽습니다. 화자인 ‘나’가 사실은 오쿠보 마코토이며, 그가 정신이상자였다는 반전은 무리수에 불과했고요. 앞부분 몇 가지 묘사를 통한 복선을 깔아 놓기는 했지만 그렇게 필요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아울러 이 작품을 추리 소설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오쿠보 마코토의 식인 행위를 놓고 화자와 린타로가 그가 왜 그랬는지를 분석하는 내용이 전부인데 말이지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만, 신선한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작가가 지금 시점에 이 아이디어를 다시 풀어낸다면, 더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는 합니다.

"도서관의 잭 더 리퍼"

그보다 더 나쁜 놈들은 추리 작가가 피를 토하는 노력 끝에 고안한 트릭을 쏙 빼다가 미스터리 가이드북이라는 이름으로 팔아먹는 녀석들이지. 이쯤 되면 기생충 수준이야. — 추리소설에 대한 스포일러를 용서받을 수 없는 모독이라고 하며 노리즈키 린타로가 하는 말.

노리즈키 린타로는 호감을 가지고 있는 도서관 사서 호나미로부터 추리소설의 표제지를 잘라내는 기묘한 범행이 일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노리즈키 린타로가 구립 도서관 사서 사와다 호나미에게 반해 그녀에게 수작을 걸기 위해 도서관을 찾았다가 사건에 빠져든다는, ‘도서관 탐정’ 시리즈입니다. 강력범죄가 등장하지 않는 잔잔한 일상계인데, 작중 제공되는 정보로 진상을 파악하기는 어렵지 않다는게 마음에 듭니다. 실제로 있을 수 있는 현실적 이야기라는 것도 좋았고요. 저 개인적으로는 "유주얼 서스펙트" 영화 포스터로 스포일러 테러를 당한 적이 있기에 남 일 같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딱 한 가지, 마쓰우라가 범인을 알고 있다면 왜 다른 직원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는지는 솔직히 의문입니다. 시설관리과 직원이 범인이라서 고발이 의미 없다고 생각한 건 말이 안 되죠. 다른 직원들도 많은데요.

그래도 나쁘지 않았으며 보기 드문 노리즈키 린타로의 일상계이기도 하니 팬이라면 꼭 한번 읽어봐야 할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노리즈키와 호나미의 밀당도 볼거리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녹색 문은 위험"

호나미에게 데이트를 신청한 린타로는 그녀와 함께 도서관에 개인 장서를 기증하려는 사람의 미망인을 만나게 되었다. 기증자 스가타 구니아키는 환상문학 매니아이며 사후 도서관에 장서를 기증하겠다는 유언을 남겼는데, 미망인이 거부하고 있는 중이었다.

‘도서관 탐정’ 두 번째 작품으로, 전작의 잔잔함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본격 밀실 트릭물입니다. 밀실 안에서 목을 맨 채로 발견되어 자살로 알려진 스가타 구니아키는 사실 살해되었으며, 시체가 발견된 장소에 열리지 않는 녹색 문이 있다는 설정입니다. 

일단 본격물답게 가장 중요한 단서는 독자에게 공정하게 제공됩니다. 피해자 스가타 구니아키의 ‘내가 죽으면 녹색 문이 열릴 것이다’라는 예언, 그리고 호나미의 한마디 말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트릭 자체는 낙제점에 가깝습니다. 장서의 무게로 인해 문이 열리지 않았다는 현상 자체는 충분히 말이 되지만, 밀실을 만들기 위해 수천 권의 장서를 하룻밤에 옮기기를 반복한다는 건 비현실적입니다. 사람 한 명을 죽이기에는 너무 품이 많이 들고 위험하기도 하니까요. 주변 사람 눈에 띌 수도 있으며 짐을 나른 사람들 입막음도 문제입니다.

때문에 별점은 2점입니다. 괜찮은 부분은 있지만 딱 한 걸음 더 나아가지 못했다는 점에서 확실히 신인의 작품이구나 싶었습니다.

"토요일의 책"

노리즈키 린타로는 [아이카와 데쓰야와 13의 수수께끼]라는 작가 경연 기획에 초대받았다. 작가 마타카케 나나미 여사의 실제 체험이 바탕이 된 수수께끼 풀이에 도전하는 기획으로, 수수께끼는 여사가 서점에서 아르바이트했을 때 토요일 저녁마다 한 중년 남자가 오십 엔짜리 동전 스무 닢을 천 엔짜리 지폐로 바꾸어 달라고 한 이유에 대한 것이었다.
린타로는 사와다 호나미에게 의견을 구하는데, 마침 "도서관의 잭 더 리퍼" 사건으로 알게 된 추리 매니아 마쓰우라의 동창생 구라모리 우타코에게 동일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설정은 재미있지만 사건은 대단치 않습니다. 구라모리 우타코에게 동전을 바꾸러 온 남자를 미행하는 것이 전부라 추리의 여지도 전무하고요. 동전 스무 닢을 천 엔짜리 지폐로 바꾼 이유는 린타로의 추리 형태로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사실 이 동전 수수께끼보다 중요한 내용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타무라 가오루를 연상케 하는 복면작가 도키무라 가오루의 정체에 대한 것이죠. 이를 위해 일본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반가울 작가와 작품들이 약간 이름이 수정되어 등장합니다.

그러나 별점은 1.5점입니다. 재미있는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추리와 트릭도 없고 추리 소설가에 대한 팬픽에 가까운 탓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지난 날의 장미는"

혼마 시오리는 매일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반납하기를 반복 중이었다. 그녀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밝혀달라는 호나미의 부탁을 받은 린타로는, 그녀가 책을 읽지도 않고 책머리만 보고 고르며 다른 도서관에서도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평범한 일상계로 보이지만 진상은 의외로 묵직했던 작품입니다. 혼마 시오리가 불륜으로 임신한 딸을 제대권락(태아가 탯줄에 감겨 사망한 것)으로 잃은 뒤, 갸름끈이 있는 책만 골라 끈을 잘라내고 그 대신 책갈피를 꽂아 넣었다는게 진상이거든요.

하지만 추리의 요소는 거의 없습니다. 실독증의 원인이 아이를 잃었기 때문이라면 책을 빌린 이유 역시 그 때문일 테고, 그렇다면 아이를 잃은 것과 책을 연결시키면 바로 답이 나오는 탓입니다. 물론 도서관과 책이라는 소재를 잘 활용하기는 했습니다. 문제는 소재와 엮기 위한 동기 부분이 작위적이라는 겁니다. 책과 관련된 일상계는 "명탐정 홈즈걸" 쪽이 훨씬 낫네요.

때문에 별점은 2점입니다. 보다 설득력 있는 동기를 부여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텐데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