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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6

아르키메데스는 손을 더럽히지 않는다 - 고미네 하지메 / 민경욱 : 별점 2점

아르키메데스는 손을 더럽히지 않는다 - 4점
고미네 하지메 지음, 민경욱 옮김/하빌리스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건설회사 대표 시바모토 겐지로의 딸 미유키가 임신 중절 수술 후유증으로 죽은 뒤, 아이 아빠 후보로 의심받던 야규는 친구 나이토의 도시락을 먹고 입원했다. 도시락에 비소가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야규의 누나 미사코의 불륜 상대 가메이가 실종된 뒤, 야규의 집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야규의 어머니는 자기가 저지른 범죄라고 주장했지만, 노무라 형사는 야규의 알리바이를 깨버리고 진상을 밝혀내었다. 모든 사건은 엔메이, 야규, 나이토, 아라키 네 명이 결성한 아르키메데스 모임의 의도였다....

1973년 제 9회 란포상 수상작. 올해 일본 작품을 너무 많이 읽어서 선뜻 손이 가지는 않았지만, 란포상 수상작 완독 달성을 위해 읽게 되었네요.

야규가 가메이를 살해한 날, 수학 여행을 갔다는 알리바이 트릭은 괜찮았습니다. 배에서는 정확하게 학생들을 확인하지 않고 사람수만 센다는 맹점을 이용해서 다른 학교 학생을 대신 세도록 만들었고, 배 안에서는 "야규와 함께 있었다"는 엔메이의 거짓 증언으로 함께 탄 것으로 위장한 트릭으로 간단하지만 실현 가능한 현실적인 트릭이었기 때문입니다.
야규가 살인범인지, 어머니가 살인범인지를 놓고 벌이는 마지막의 취조 과정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단지 손으로 목을 졸랐다는 야규의 증언과 실제 사체의 교살 흔적이 일치하지 않는 문제를 잘 풀어냈습니다. 가메이가 죽은 줄 알고 시체를 파묻다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걸 알고 어머니가 확실하게 목을 졸랐던 거지요.

그런데 그 외에는 점수를 줄 부분이 없습니다. 일단 사건을 저지르는 주체인 "아르키메데스 모임" 부터가 전혀 와 닿지가 않아요. 이들이 주변의 부정을 벌한다고 계획한 것들 모두 정의로움을 느낄 여지가 없는 탓입니다. 임신중절 수술로 미유키가 죽은 사건만 놓고 보아도 그러합니다. 친구이자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습니다! 심지어 멤버 중 한 명인 나이토의 아이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를 어른에 대해 복수에 성공했다며 희희낙락하고, 이를 꾸짖는 어른에게 한 마디도 지지않고 맞선다? 어이가 없어요. 자괴감과 미안함에 몸부림치며 사죄해도 부족합니다. 나이토가 미유키가 죽은 뒤에도 아르키메데스 모임 멤버들과 우정을 이어나간건 타인의 고통이나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이 아예 없는 사이코패스가 아닌가 의심될 정도입니다.
또 미유키를 임신시킨건 겐지로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 위해서이며, 이는 겐지로가 지은 건물이 일조권을 빼앗아 나이토의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에 대한 복수라고 합니다. 그런데 나이토의 할머니의 사망이 일조권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전혀 설명되지 않습니다. 겐지로 역시 그냥 건물을 올린 것도 아닙니다. 분명 정당한 보상을 했다고 언급하고 있어요. 그런데 도대체 뭘 잘못해서 딸을 잃기까지 했어야 하는지 저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사건은 미유키를 질투한 엔메이의 치정이 결합된 치졸한 행동이 원인이었습니다. 정의와는 거의 아무런 관계도 없는 셈이지요.
 
야규가 저지른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태연히 불륜을 저지르는 가메이같은 인간은 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불륜은 야규의 누나가 함께 저지른 겁니다. 왜 남자만 단죄하겠다는 걸까요? 그리고 단죄가 목적이었다면 구태여 수학여행을 갔다는 알리바이를 만들 필요는 없었습니다. 수학여행을 갔다고 누나만 속여도 충분했으니까요. 
즉, 이렇게까지 치밀한 알리바이를 만든건, 단지 혼을 내주려던게 아니라 살해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보이며, 이는 파렴치한 범죄는 저지르지 않겠다는 아르키메데스 모임의 취지를 거스르기에 문제의 소지가 많습니다. 1급 살인 미수라는 점에서 처벌도 보다 강력해야 할 테고요.

"청춘 미스터리"의 효시라는 소개 역시 제가 보았을 때는 지나친 과찬입니다. 작품 속 청춘은 자기 확신에 가득찬 몰염치하고 비겁한 놈들입니다. 아르키메데스 모임은 극 중 노무라 형사의 말대로 그냥 야쿠자 조직과 다를게 없어요. 게다가 고등학생들이 기성 세대를 부정하고, 거부하는 묘사는 진부했고, 특히 전공투와 연합 적군파를 긍정하는 듯한 발언 등은 시대착오적이기까지 합니다. 한마디로 주인공으로 청춘(고등학교 2학년생)이 등장할 뿐 청춘과는 거리가 멉니다. 차라리 평범한 학생이 누나의 불륜남을 응징하려고 하다가 사건이 벌어지는 식으로 진행되었더라면 모를까, 고등학교 범죄 조직의 범죄극에 불과합니다.

추리적으로도 알리바이 트릭은 일견 괜찮아 보였지만, 부두에서 기차 등을 타고 거의 3시간에 걸쳐 집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실제로 목격자가 나타나서 트릭은 실패하고 말지요. 
그 외 사건에서 작위적인 부분들이 많아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야규의 누나 미사코가 자살한걸 의문스럽게 묘사한게 대표적입니다. 미유키가 죽기 전 아르키메데스라는 말을 남긴다던가, 야규 목격자는 신문 투서를 통해 알아낸다는 등도 마찬가지고요. 엔메이 등 다른 아르키메데스 멤버들이 왜 위증으로 처벌받지 않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알리바이 공작을 위해 형사에게 거짓 증언을 했는데 말이지요.

그래서 별점은 2점. 작품이 발표된 40년 전에는 나름 신선하고 가치가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읽기에는 여러모로 함량 미달입니다.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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