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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04

허상의 어릿광대 - 히가시노 게이고 / 김난주 : 별점 2점

허상의 어릿광대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재인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최신작. 모두 7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작가로서 원숙기를 넘어선 달인의 경지에 이른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드라마 전개가 능수능란합니다. 사건에서의 불가능한 현상 조사를 구사나기가 의뢰하는 단순한 패턴에서 벗어나서, 유가와가 사건에 뛰어드는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며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을 끼워넣는 솜씨가 기가 막힐 정도에요. 덕분에 유가와의 조사도 사건과 별 관계가 없는 이야기 - "2장 투시하다", "4장 휘다" - 와, 반대로 유가와가 경찰까지 속여가며 범인의 실수를 유도하는 이야기 - "5장 보내다" - 가 공존하는 등, 변주의 폭도 굉장히 넓습니다. 이렇게 내용을 풍성하게 가져간건 영상화를 염두에 둔 행보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네요.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그닥이었습니다.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라 할 수 있는 과학을 이용한 트릭들이 별로인 탓이 큽니다. 추리의 여지도 많지 않습니다. 유가와의 도움 없이 경찰 수사만으로 범인이 밝혀지는 이야기도 많은데다가, 동기 면에서 설득력이 부족한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에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이야기꾼으로서의 히가시노 게이고의 능력은 느껴지지만, 정교한 본격 추리물로의 가치는 없습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장 현혹하다"
종교단체 구아이회의 교조 렌자키는 "염"을 사람에게 보내는 능력이 있었다. 주간지 기자가 취재차 참석한 자리에서 경리담당 부장 나카가미가 염을 받다가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아무도 나카가미에게 손을 대지 않아서 사건은 자살로 굳어져 갔고, 기자도 '염'을 받고 몸이 따뜻해짐을 느낀 뒤 기사를 발표해서 구아이회의 교세는 더 확장되어 갔는데....

상대방의 몸을 따뜻하게 만들고, 경우에 따라 자살까지 유도한 방법이 무엇인지가 핵심 수수께끼입니다. 유가와가 밝혀낸 진상은 일종의 '전자레인지' 효과였습니다. 원격으로 상대방에게 투사하여, 피부 아래를 따뜻하게 만들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추리의 여지는 없다시피 합니다. 애초에 교조가 '염'을 보내는건 특별한 방 안에서만 가능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방에 무언가 장치가 되어 있다는건 당연합니다. 경찰이 진작에 수색 영장을 발급받아 건물을 조사하지 않은게 의아할 뿐입니다. 
또 장치 출력을 강하게 해서 나카가미가 지독한 뜨거움으로부터 도망치려다 자살하도록 유도했다는 진상은 다소 억지스러웠습니다. 상식적으로 나카가미가 조금만 자리를 이동해도 뜨거움으로부터 해방되었어야 하거든요. 방 안의 모든 사람이 '염'을 받으면 안되니 장치는 명확한 조준이 필요했을테고, 그 범위도 그리 넓지 않았을테니까요.
유가와가 대학 노트 사이에 감열지를 숨겨놓아서 트릭을 눈치챘다는 방법도 이상했습니다. 그냥 주머니같은데 넣어 두었어도 똑같았을텐데, 지나치게 멋을 부리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 트릭 만큼은 과학적 근거가 있지만, 그 외의 다른 부분들은 모두 아쉬웠습니다.

"2장 투시하다"
투시 능력이 있는 호스티스 미카가 살해당했다. 수사 결과 손님이었던 니시하타가 범인이었다. 가방에 넣어두었던 공금 횡령의 증거를 미카가 투시했던게 동기였다. 그런데 미카는 어떻게 명함과 가방을 투시했을까?

구사나가기 해결하기 어려운 트릭을 밝혀내기 위해 유가와를 찾아가곤 했던 그간 시리즈의 전개 방식과는 조금 다릅니다. 구사나기의 수사만으로 범인이 밝혀지기 때문입니다. 사체에 남겨졌던 희귀한 담뱃재가 클럽 손님 중 한 명과 관련이 있었고, 그와 같은 회사에 다녔던 니시하타가 미카와 마지막에 만났던 손님이었다는걸 알아내서 체포로 이어지게 되거든요. 
그래도 유가와도 범인 체포와는 무관하게 미카의 투시가 적외선 카메라를 이용했다는걸 밝혀내는 활약을 선보입니다. 최신 장비인데 나름 그럴듯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를 밝혀낸 단서가 계모의 진심을 담은 메모를 찍은 사진이었다는 전개도 나쁘지 않았고요.

그러나 작 중에서처럼 명함을 읽는게 문제가 없을 정도로 잘 찍힐까?라는 의문은 가시지않았고, 어두운 바나 영화관 같은 공간에서 카메라로 찍은 결과물을 확인했다면 들통났을 것 - 밝은 액정 화면이 티가 날테니 - 같다는 문제는 있습니다. 경찰이 가택 수사를 했음에도 이 특수한 카메라의 존재를 알아내지 못한 것도 이상하고요. 무엇보다도 미카와 계모와의 관계를 다룬 신파조의 이야기는 많이 유치했습니다. 우리나라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3장 들리다"
구사나기는 병원에서 난동을 부리던 환자 가야마를 제압하다가 부상을 입고 입원했다. 가야마는 환청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수사해보니 가야마와 같은 회사에 근무했던 영업부장 하야미 다쓰로가 기묘한 단어를 검색한 뒤 자살했었다는게 밝혀졌다.

범인이 피해자들에게 환청을 들리게 만들었다는건 추리할 필요도 없습니다. 초반에 이명 현상을 겪는 여직원 무쓰미가 등장했고, 가야마가 환청 현상을 겪었다고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어떤 기술을 이용했는지만이 궁금할 뿐인데, 범인이 전자파를 피해자들 머리에 쏴서 소리를 들리게 했다는 진상은 영~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작중에서도 소형화가 어렵다는 설명이 될 정도의 장치인데, 이런걸 개인이 개발해서 소지하고 운용한다는건 비현실적이니까요. 자신의 주제를 모르고 남 탓만하는 범인 고나카 설정도 진부했고요.

수사를 구사나기의 경찰학교 동창이자 관할서 형사인 기타하라가 맡도록 해서 수사 1과와 관할서 사이 갈등을 그려낸건 좋았고, 유가와의 논리 정연함을 기타하라와의 대화를 통해 새삼 드러내는 솜씨는 좋았지만 이야기에 별 영향을 주지는 못합니다.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4장 휘다"
프로야구 선수 야나기사와의 아내가 강도에게 살해당했다. 수사를 맡았던 구사나기는 방출 후 트라이아웃을 준비하던 야나기사와가 전성기 때의 폼을 회복할 수 있도록, 이런저런 데이터 측정을 도와줄 수 있는 유가와를 소개시켜주었다. 그러나 상심에 빠진 야나기사와의 기량은 좀처럼 올라오지 않는데...

강도 살인사건 범인은 구사나기에 의해 쉽게 체포됩니다. 이후 야나기사와의 재활과 더불어 피해자 다에코가 가지고 있던 쇼핑백 속 선물이었던 자명종을 누구에게 주려고 했는지?를 밝혀내는 전개로 진행됩니다. 이런 점에서는 강력 사건이 등장하지만 일상계에 가까운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에코가 '자명종'을 남편의 현역 생활 연장에 도움이 될 대만 프로야구 관계자에게 선물하려 했고, 중국에서는 시계를 선물하는 행위인 '송종'의 발음이 '임종'과 똑같아 자명종 선물을 받지 않았다는 진상도 일상계스러웠고요. 

다에코가 타고 있던 차에 소화기 분말이 묻었다는걸 알고, 호텔 주차장에서 소화기가 분출된 시간을 알아내서 다에코가 누구를 만났는지를 조사하는건 경찰 구사나기가 아니
었다면 조금 힘들었겠지만, 일상계물로 높은 점수를 줄 만한 수작입니다. 이런저런 에피소드들로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든 이번 단편집 수록작들 중에서도 에피소드들이 가장 잘 어우러진다는 점도 마음에 들고요. 별점은 3.5점입니다.

"5장 보내다"
하루나는 텔레파시로 쌍둥이 언니 와카나에게 불길한 일이 일어났다고 느껴 형부 이소가이에게 연락했다. 서둘러 귀가한 이소가이는 중상을 입은 와카나를 발견했다....

쌍둥이 사이에 텔레파시가 오갈 수 있다는걸 범인도 믿을 수 있게끔 그럴듯하게 설명한 뒤, 범인의 실수 - 친한 지인인 진범을 모른척하고, 진범이 외모를 크게 바꾸는 등 - 를 유도한다는 설정은 좋았습니다. 데이토 대학 교수 유가와가 직접 나서서 텔레파시가 근거가 있는 것 처럼 조사했기 때문에 범인도 깜빡 속아넘어갔던 것이지요. 이 모든걸 안배한 유가와의 추리와 능력이 빛나는 이야기였습니다. 텔레파시는 실체가 없지만, 자매간의 정은 유효하다는 결말도 좋았고요. 

다만 이소가이의 동기가 명확하므로, 경찰 수사로 충분히 범행이 드러나지 않았을까 싶기는 하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6장 위장하다"
구사나가와 유가와는 시골 읍장이 된 대학 동창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살인 사건 수사를 돕게 되었다. 유가와는 구사나기가 찍은 현장 사진을 보고 현장이 조작되었다는걸 알아내는데....

흔들의자에 앉은채 산탄총에 맞은 시체라는 현장 사진만 보고 조작을 눈치챈 유가와의 추리력은 빛납니다. 운동에너지, 작용과 반작용을 언급하며, 흔들의자에 앉은 사람이 총에 맞으면 반동 때문에 앞으로 쓰러질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인데 그야말로 물리학자다운 추리였어요. 발견자 다에가 현장을 조작한 이유도 그럴듯했습니다. 원래는 의붓아버지 다케히사가 다에의 친모인 아내를 죽이고 자살했습니다. 그런데 다에의 어머니가 먼저 죽으면, 다에는 유산을 상속받을 수가 없기 때문에 순서가 반대인 것처럼 현장을 조작했던 겁니다.

다만 사건의 동기인 아내의 불륜은 식상했으며 , 다에가 현장을 조작했다는 증거가 거의 없는데 이를 유가와의 말대로 '우수한 일본 경찰'이 현장 조사로 밝혀낼 수 있었을지?는 의문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7장 연기하다"
극단 '파란 여우'의 연출가 고마이가 칼에 찔려 살해당했다. 유력한 용의자는 전 애인 아쓰코로, 그녀의 알리바이 트릭은 구사나기가 이미 밝혀냈지만,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유가와는 소도구인 칼이 흉기라는건 이상하다는데 주목하여 진상을 추리해낸다.

아쓰코가 고마이를 찌르고 휴대폰을 조작하여 알리바이를 만드는 과정이 맨 처음에 나오는 도서 추리물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그런대로 공들인, 정교한 트릭이라 생각하고 흥미롭게 읽었는데 곧바로 구사나기가 모든걸 꿰뚫어보고 밝혀내서 좀 놀랐습니다. 구사나가도 그리 만만한 친구는 아니네요. 
고마이의 현 애인 구도 사토미가 진범이었다는 반전도 의외였으며, 경찰이 사건 진상을 파헤치기 힘들었던 불꽃놀이 사진은 단순히 유리창 반사에 의한 현상이었다는 디테일도 나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살인범이 되어 경찰에게 쫓기는 심리를 느껴보고 싶었다'는 아쓰코의 동기, 그리고 재봉 가위를 흉기로 사용한 사토미의 범행을 감추기 위해 극단 소도구인 칼을 흉기로 위장한건 납득하기 힘들었습니다. 범인을 극단 사람 내부인으로 한정해버리면 기껏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짜낸 트릭들의 가치도 떨어질 수 밖에 없으니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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