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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4

살인 플롯 짜는 노파 - 엘리 그리피스 / 신승미 : 별점 2점

살인 플롯 짜는 노파 - 6점
엘리 그리피스 지음, 신승미 옮김/나무옆의자
<<아래 리뷰에는 진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서 범죄 소설 읽기가 취미인 아흔 살의 페기 스미스. 그가 즐겨 앉던 의자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을 때, 노인의 죽음은 의심 없이 자연사로 처리될 뻔했다. 간병인 나탈카가 'M. 스미스 부인. 살인 컨설턴트'라고 적힌 명함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의문을 품은 나탈카는 페기의 아파트를 정리하다 페기가 소장한 수많은 범죄 소설에서도 뭔가 이상한 점을 느낀다. 책 앞쪽 '헌사'나 책 뒤쪽 '감사의 말'에서 '페기의 조언에 감사한다'는 문구를 무수히 많이 발견했기 때문이다. 
다른 책들을 들춰보며 단서를 찾던 나탈카는 페기가 죽는 순간 읽고 있던 책에 끼워져 있던 엽서를 발견하고 만다. '우리가 당신을 찾아간다.'라고 쓰인 의문의 문장. 뒤이어 총을 든 괴한이 페기의 아파트를 찾는가 하면, 페기에게 감사의 말을 헌정한 작가 중 한 명인 덱스 첼로너가 살해당하는 등 노부인의 죽음은 책과 작가들을 둘러싼 거대한 수수께끼로 비화하고, 애거사 크리스티, 도로시 L. 세이어스를 비롯해 추리소설 황금기 작가로 설정된 가상의 인물 실라 앳킨스의 책이 사건의 단서로 떠오른다.

홀로 노년을 보내던 노인이 많은 추리작가들로부터 감사 인사를 받고, "살인 컨설턴트"라는 명함을 가지고 있었으며 심지어 협박장까지 받았다는게 밝혀지는 도입부는 아주 흥미로왔습니다. 페기의 정체가 과연 무엇이었을지?를 궁금하게 만드는 좋은 장치들이었어요.
페기의 이웃 친구인 노인 에드윈, 간병인 나탈카와 그들 단골 카페 사장인 베네딕트와 사건을 맡은 하빈더 형사가 힘을 합쳐 사건을 풀어나가는 전개도 좋았습니다. 별거 아닌 듯 했던 90살 노인의 죽음이 유명 추리 소설 작가 덱스 챌로너와 랜스의 연쇄 살인 사건으로 확장되는 과정이 자연스러우면서, 여러가지 단서와 정보들의 제공을 통해 독자들을 몰입하게 만듭니다. 고전 추리 소설인 실라 앳킨스의 "감사 단식" 이라는 책 속에 단서가 있다는 말 처럼요.
우크라이나에서 탈출한 간병인이자 비트 코인으로 50만불이 넘는 돈을 가지고 있는 미녀 나탈카, 전직 수사 (수도사) 출신의 바리스타이자 추리 드라마 매니아인 베네딕트, 전 BBC 직원이자 게이로 다방면에 걸쳐 폭넓은 지식을 갖춘 80대 노인 에드윈 트리오의 매력도 빼어납니다. 다들 여러가지 약점들을 갖추고 있지만, 매력도 확실해서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인물들이거든요. 

하지만 흥미로운 전개에 비하면 결말은 어설픕니다. 덱스 챌로너 사건의 범인이 밝혀진건 CCTV에 범인이 찍혔기 때문이라는 황당한 이유입니다. 즉, 트리오가 스코틀랜드 에버딘까지 여행을 떠나면서까지 조사에 나설 이유는 없었습니다. 여행을 통해 새롭게 알아낸 사실도 딱히 없고요. 간병인 회사 대표 퍼트리샤가 범인이었다는 진상도 앞서 별다른 단서나 정보 제공이 없어서 그리 설득력있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동기도 문제에요. 퍼트리샤는 덱스의 어머니 베로니카의 돈을 빼돌리다가 들통나 그녀를 살해했고, 이 사실을 덱스가 알아챌까 두려워 살해했다고 하는데, 베로니카가 살해되었다는걸 현 시점에서 증명할 방법은 없습니다. 그런데 위험을 무릅쓰고 유명 작가를 살해하면서까지 입을 막을 이유가 있었을까요?
페기와 랜스를 살해한건 또 다른 추리작가 줄리였다는 것 역시 억지스러웠습니다. 그녀의 데뷰작이자 유일한 히트작이 실라 앳킨스의 "감사 단식"의 표절이라는걸 둘이 알아채서 살해했다는 동기부터 어설퍼요. "감사 단식"은 절판되었지만 베네딕트도 쉽게 구할 정도로 많이 퍼져있었습니다. 이렇게 널리 알려진 책을 읽은 사람을 모두 죽일 수는 없잖아요? 이 이유라면 베네딕트는 왜 살해하지 않았을까요? 설령 유명 작가로 문단에서 어느정도 알려진 랜스는 살해한다 쳐도, 페기를 살해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리고 나름 건강한 남자였던 랜스가 분명히 그의 입장에서는 요주의 인물인 - 자기 어머니 소설을 표절한 작가 - 줄리가 독약을 주사하는걸 수수방관한 이유도 불분명하고요. 다른 무언가로 협박했겠지만 전혀 설명되지 않습니다.

추리적으로도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뭔가 공정해보이게끔 단서를 깔아놓기는 했는데, 독자가 이를 해석하고 추리하기는 불가능한 탓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책 속에 단서가 있다"는 말이 대표적입니다. 이 말은 책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성 패트릭의 그림(책갈피)을 뜻하고, 패트릭은 바로 퍼트리샤이다! 라는데 정말 어처구니가 없더군요. 책갈피의 존재는 극후반에 공개되기에 추리의 여지는 전무할 뿐더러, 간병인 마리아에게 왜 "퍼트리샤가 뭔가 수상하다"고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은 이유도 모르겠습니다. 또 핵심 동기인 "감사단식"과 줄리의 데뷰작 내용이 비슷하다는건 마지막 순간까지 독자에게 아예 제공되지도 않고요. 소개되는 정보, 단서 중 범인을 밝히는데 유용했던건 기껏해야 페기가 관찰한 통행인들을 기록한 노트가 전부입니다. 이 마저도 공정하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페기가 줄리의 표절을 알고도 계속 도와준 이유라던가, 마일즈가 어떻게 덱스 첼로너의 소설과 같은 소설을 먼저 완성할 수 있었는지 등 그 외에도 설명되지 않는게 너무 많습니다.

앞서 캐릭터가 매력적이라고 했지만, 나탈카가 우크라이나에서 비트 코인 관련 사기를 쳐서 마피아에게 쫓기고 있다던가, 나탈카를 쫓는 2인조 러시아인은 알고보니 덱스 챌로너의 출판 담당자 마일스를 쫓고 있었다는 내용은 솔직히 불필요했습니다. 서스펜스를 강화시키기 위한 목적이었겠지만, 추리 소설 매니아인 독거 노인에 관련된 죽음을 다루는 코지 미스터리에는 어울리지 않는 비현실적인 설정이었어요.

그래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재미있지만 비현실적인 캐릭터, 뭔가 있어보이지만 알멩이 없는 전개, 사전에 전혀 공유되지 않았던 충격적이면서 뜬금없는 진상 등의 요소를 종합해보면 영상물에 더 어울리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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