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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3

녹스머신 - 노리즈키 린타로 / 박재현 : 별점 2.5점

녹스머신 - 6점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박재현 옮김/반니

추리소설, 그 중에서도 본격 추리소설은 체계적인, 나름의 규칙이 존재하는 장르죠. 이 작품은 이러한 본격 추리소설의 규칙을 실제하는 물리학, 양자역학에 끼워넣은 독특한 SF인 <녹스 머신>과 <논리 증발>, 그리고 추리소설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메타 픽션 <들러리 클럽의 음모>, 그리고 독특한 암호트릭 중심의 본격 SF <바벨의 감옥>으로 이루어진 중단편집입니다.
발표 당시 큰 화제를 불러 온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 10' 3위, '본격미스터리 베스트 10' 4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와 '미스터리가 읽고 싶다' 부문 모두 1위) 작품으로 국내 번역이 언제되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침 국내 최고의 미스터리 동호회 "하우 미스터리"에서의 이벤트 당첨 덕에 읽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좋은 기회를 마련해 주신 관계자 분들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완독한 첫 느낌은 노리즈키 린타로라는 작가의 역량이 정말 대단하구나! 라는 것입니다. 추리 소설에 대한 깊이있는 연구를 해 왔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추리소설에 대한 해박한 지식 외에도 광범위한 물리학, 양자역학 지식까지 어떻게든 충족시켜 만들어낸 이야기들이라 작가의 노력, 탄탄한 지식에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네요. 이런 점은 확실히 배워야겠죠. 추리 소설의 규칙을 과학 이론으로 만든 아이디어도 나쁘지 않았고요.

그러나 좋은 작품이냐 하면 그렇다!라고 확답하기는 어렵습니다. 기대했던 추리적 요소도 없다시피할 뿐더러 작품의 난해한 정도가 지나치거든요. 작품들이 독자를 의식하고 쓰여진 것이 아니라 작가의 자기 만족, 취미 활동의 일환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말이죠. 독자를 의식했더라도 굉장히 특이한 독자를 대상으로 한 것임에는 분명해 보입니다. <파운데이션>의 '심리역사학'처럼 이론에 대해 독자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만 설명하고 나머지는 온전히 이야기에 집중하는게 소설로서는 더 맞는 방향이 아니었을까요?

게다가 <녹스 머신>에서 문헌수리해석, 물리학과 타임머신 관련 이론, 양자역학, 평행 세계 등에 대한 학술적 이론을 빼면 '타임머신 개발에 성공한 중국인이 과거로 돌아가 녹스를 만나고, 그 탓에 녹스가 자신의 십계명을 수정한다' 가 이야기의 전부입니다. 기대했던 반전은 없이 타임 패러독스에 대한 고민도 별 볼일없이 해결되며, 예상했던 결말과도 크게 다르지 않아 시시해요. 솔직히 도라에몽의 타임머신 단편들이 더 그럴듯하고 흥미진진하게 타임 패러독스를 다뤘다 생각됩니다.
<바벨의 감옥> 역시 마찬가지. 일종의 격자화된 틀, 그리고 그곳에 배치된 글자들을 이용한 암호 트릭이 전부로 그 외의 이야기, 즉 외계 종족과 일종의 텔레파시 싸움을 벌인다는 설정 및 다른 내용은 이 트릭이 왜 존재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사족에 불과합니다. 그나마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하기도 힘들어서 읽으면서 졸 정도였어요. 그렇다고 트릭이 대단하냐? 하면 그럴 수도 없는 것이 일본어 세로쓰기 구조를 이용한 트릭이라 일본 외에서는 애시당초 먹히기 힘든 트릭이에요. 어떻게든 한글화를 시도한 번역자의 노고는 알겠지만 그닥 성공한 것도 아니고요.

다행히 <들러리 클럽의 음모>와 <논리 증발> 두편은 그래도 조금 더 쉽게 읽히며 재미면에서 더 낫기는 합니다. 일단 메타 픽션인 <들러리 클럽의 음모>는 다른 세작품과는 다르게 SF는 아닙니다. 본격 추리소설에 대해, 그리고 여러 추리소설 작가들과 그 주인공들을 살펴볼 수 있게 하는 독특한 창작물이죠. 추리소설의 화자 역할인 탐정의 파트너들이 소속된 '들러리 클럽'에서 아가사 크리스티의 <10번째 인디언 인형>이 추리 소설에 위기를 불러올 것이라는 주장을 놓고 회의를 진행한다는 내용인데 설정만 보아도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그것도 본격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즐거울 수 밖에 없는 작품이니까요. 정말로 실존한 인물들처럼 묘사된 들러리 캐릭터들 - 특히 악역인 밴 다인 (반 다인), 꼰대가 되어버린 왓슨 - 도 잘 살아있을 뿐더러, 실존했던 아가사 크리스티 여사 실종 사건을 들러리 클럽과 엮는 시도도 괜찮았고, 빅4 등의 다양한 패러디도 볼거리였어요. 마지막 밴 다인의 독살이 뜬금없이 이루어지는 등 정작 추리적인 요소가 기대 이하라는 점은 좀 아쉽긴 합니다만...
<논리 증발>도 <녹스 머신>보다는 스케일이 크면서도 내용이 풍성해서 이야기로서의 완성도는 더 높았던 작품입니다. 복잡한 이론을 걷어내더라도 전자화된 데이터에 발화를 일으키는 촉매재로 엘러리 퀸의 작품들, 그 중에서도 '독자에의 도전'이 삽입되어 있지 않은 <샴 쌍둥이의 비밀>이 이용된다는 추리소설 매니아만이 할 수 있는 발상과 그것을 풀어나가는 전개가 나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공각기동대>를 연상시키는 전뇌 생명체가 된 유안이 메시지를 남긴다는 결말도 깔끔했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평균 별점은 2.5점. 추리소설 매니아가 자신의 역량을 극한으로 발휘한, 지적인 작품임에는 분명하고 덕분에 평론가들과 매니아들에게 사랑받을 작품이기는 합니다만 추리, SF 양쪽 장르 모두에서 이야기의 완성도는 기대 이하였습니다. 특히 추리적인 부분에 있어서 작가의 이름에 어울리는 작품들은 아니었어요. 저는 "매니아"로서 충분히 즐길 수 있었지만 다른 분들께 쉽게 권해드리기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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