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15/01/05

명탐정 따위 두렵지 않다 - 니시무라 교타로 / 이연승 : 별점 1.5점

명탐정 따위 두렵지 않다 - 4점 니시무라 교타로 지음, 이연승 옮김/레드박스
<하기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본의 노부호 사토 다이조는 미국의 엘러리 퀸, 영국의 에르퀼 푸아로, 프랑스의 매그레 경감, 그리고 일본의 아케치 고고로에게 흥미로운 사건이 있다며 초청장을 보낸다. 사토 다이조의 저택에 모인 현역에서 은퇴한 세기의 명탐정들에게 사토 다이조는 황당무계한 제안을 한다. 그것은 바로 이 년 전 현금수송차를 탈취하여 3억 엔을 강탈하여 미궁에 빠진 이른바 '3억 엔 사건'을 실제로 재현하겠다는 것.
사토 다이조가 말하는 '3억 엔 사건' 재현이란 3억 엔 사건의 범인상과 유사한 인물에게 자신의 3억엔을 훔치게 하여 그 모방범의 행동 궤적을 추적함으로써 진짜 3억 엔 사건의 실태를 추리하겠다는 것이다. 네 명의 명탐정은 사토 다이조의 제안을 승낙한다. 명탐정들 앞에서 사토의 부하인 간자키 고로가 이 터무니없는 계획을 진행한다.
간자키 고로는 3억 엔 사건의 범인상에 부합하는 무라코시 가쓰히코라는 젊은이를 찾아냈고, 무라코시는 사토가 계획한 대로 사토가 준비해둔 3억 엔을 빼앗는다. 이후로 네 명의 명탐정들은 차례차례 무라코시의 이후 행동을 추리하는데 무라코시는 마치 명탐정들이 조종하기라도 한 것처럼 추리대로 행동한다. 그런데 크리스마스이브에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살인 사건이 벌어지는데… (알라딘 책 소개 인용)


여정 (트래블) 미스터리의 대가로 알려진 니시무라 교타로의 장편 소설.
1970년대를 무대로 세계의 명탐정을 모아 추리쇼를 벌인다는 설정은 팬픽 느낌이 강하지만 이쪽 바닥에서 이름을 날린 거장의 작품답게 단순한 패러디 팬픽은 아닙니다. 작위적이기는 하지만 꽤 흥미로운 범죄가 등장하거든요. 특히 탈세를 위한 범죄라는 동기는 지금 시점에서도 무릎을 칠만한 괜찮은 아이디어였다고 생각되네요.
당연하다면 당연한 팬픽스러운 요소도 가득하여 고전 명탐정의 팬이라면 즐길거리가 제법 되기도 합니다. 등장하는 탐정들의 캐릭터가 확실하게 잡혀 있고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기 때문으로, 일본의 아케치 고고로는 별다른 특색없는 조용한 노인이지만 엘러리 퀸의 촐랑대고 경박스러운 명랑함, 푸아로 (포와로)의 하늘을 찌를 듯한 자존감, 은근하면서도 묵직한 메그레 캐릭터는 제가 생각한 그대로였어요. 이들이 나이를 먹은 뒤 정말로 살아 있다면 어땠을까를 가정한 묘사도 좋은데 엘러리 퀸이 하드보일드를 평가하며 육체보다는 머리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건이 벌어진 뒤 현장에서 엘러리가 "모자는 어디로 갔을까요?"라는 대사를 한다던가, 위치가 바뀐 의자에 집중하는 식의 고전적인 추리 방식도 완전 제 취향이었고 말이죠.

그러나 완성도 높은 한편의 추리소설로 보기에는 무리입니다. 애초에 설정부터 이해하기 어려운게 아무리 늙었어도 세계 굴지의 명탐정을 한명도 아니고 네명이나 불러놓고 그들을 모두 속이려 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죠. 원래 계획대로라면 (단지 돈 3억엔을 잃었다고 믿게 만들기 위함) 거금을 들여 명탐정을 부를 이유도 없는 것이었고 그냥 미시마 앞에서 3억엔 사건과 동일한 범죄를 저지른다는 계획을 실행해도 충분하기도 했고요. 경찰을 부른 뒤 돈이 불탔다는 것만 공식적으로 알게 만들면 되잖아요. 아니면 명탐정들의 결론이야 똑같으니 네명이나 한명이나 그게 그건데 그냥 일본의 아케지만 부르던가요.
뭐 이러한 설정은 팬픽 기획을 위한 작위적인 것이었다고 양보하더라도 (어차피 이런 소설이 현실적일 수는 없으니), 범행 자체가 곳곳에 헛점 투성이라는 것도 문제에요. 우선 간자키가 다이조의 계획대로 1인 2역으로 움직였으리라는 보장이 전혀 없다는 점이 그러한데, 1인 2역도 다이조의 지시라고 하더라도 더스트 슈트를 통해 지폐를 불태운 행동은 설명되지 않습니다. 무라코시 - 간자키가 더스트 슈트가 소각장으로 이어지는 것을 몰랐던 것은 순전한 우연, 착각이었으니까요. 혹 이렇게 지폐를 불태운 것도 다이조의 지시였다고 한다면 마지막 장면에서 간자키가 자신이 무라코시가 아님을 증명하려 애쓸 필요는 없다는 점, 무엇보다도 마지막 추리쇼에서 시기 적절하게 간자키가 혼자서 알약을 꺼내어 먹은 뒤 죽어버린 것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 정도로 적절하게 죽어준다면 이건 우연이 아니라 거의 최면술의 영역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덧붙여, 지폐의 "덩어리"가 남아서 감식이 가능했더라면 그 지폐가 폐기대상인지 아닌지 정도도 확인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팬픽 측면의 가치와 예쁜 디자인 덕에 별점을 약간 더합니다면 추리적으로는 평균 이하의 작품이었습니다. 고전 애호가가 아니시라면 딱히 찾아 읽어보실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덧 : 아케치 코고로가 아니라 고고로로 번역된 이유가 따로 있는지 궁금합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