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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02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줄리언 반스 / 최세희 : 별점 3점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6점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다산책방

아래 리뷰에는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토니 웹스터는 고등학생 시절 앨릭스, 콜린, 에이드리언과 친하게 지냈었다.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한 토니는 대학에서 여자친구 베로니카와 교제했지만, 그녀와의 관계는 이상한 방향으로 꼬여갔고 결국 에이드리언이 그녀와 교제하게 되었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토니는 쿨한 척 엽서를 보낸 후 둘을 인생에서 지워버리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얼마 후 에이드리언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40년이 지나, 60대가 된 토니에게 얼마간의 돈과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을 토니에게 남긴다는 베로니카 어머니의 유언장이 도착했다. 왜 그녀는 토니에게 그러한 것을 남겼을까? 토니는 수수께끼를 풀고 일기장을 되찾기 위해 베로니카와의 접촉을 시도하는데...

안녕하세요. 2015년 한 해가 시작되었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 작품은 회사 동료의 추천으로 교보문고 e-book으로 읽었습니다. 이런저런 상을 수상한 유명 작품이더군요.

20대 학창 시절 중심의 에이드리언 자살로 끝나는 1부, 그리고 40여 년이 지난 뒤 베로니카가 왜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을 돌려주지 않을까를 파헤치는 2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화자인 토니의 1인칭 시점, 의식의 흐름, 과거의 기억과 현재가 뒤섞이며 진실이 밝혀지는 구조와 전개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덕분에 분량은 장편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다 읽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렸네요.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기도 했고요.

정통 추리물은 아니지만 2부에서 토니가 과거에 있었던 일을 더듬어가는 과정이 흥미로워 추리 장르로 분류했는데, 마지막 반전은 확실한 충격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기묘한 맛' 류의 심리 드라마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웃음기는 쏙 빠졌다는 점에서 "로알드 달"보다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에 가까운 스타일이지요. 마침 무대도 영국이네요.

이러한 장르 문학으로서의 가치는 물론 묘사와 디테일 역시 대단한 수준입니다. 특히 제 대학 시절이 연상된 1960년대 학창 시절 토니와 친구들의 속물적이고 허세 가득한 묘사, 그리고 여러 가지 소품으로 상황과 캐릭터를 설명하는 솜씨가 좋았습니다. 손목 안쪽으로 돌려놓은 손목시계에 대한 묘사가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베로니카가 토니에게 책임을 묻거나 원망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린 시절 절친에게 애인을 빼앗긴 뒤 악담을 퍼부은 것이 그렇게나 잘못된 일일까요? 게다가 에이드리언이 베로니카의 어머니와 관계를 맺고 자살하게 된 일은 토니와는 무관합니다.
토니의 편지가 없었더라도 가족은 만날 가능성이 높았고, 베로니카 몰래 어머니에게 가서 물어보라고 한 충고가 잘못된 것도 아닙니다. 실제로 베로니카의 어머니가 토니에게 주의를 준 것도 사실이지요. 에이드리언이 충고를 따라 그녀를 만나 관계를 맺은 건 순전히 두 사람의 자유 의지였습니다.
즉, 토니가 책임을 느낄 하등의 이유는 없습니다. 참혹한 결과 때문에 베로니카가 원망을 품을 수야 있겠지만 그 대상은 토니가 아니라 어머니나 에이드리언이어야 했습니다.

같은 이유로 에이드리언의 일기 복사본 문장에서 "예를 들면, 만약 토니가" 뒤에 "편지만 보내지 않았어도"라고 쓰여 있었다면, 에이드리언 역시 별볼일 없는 인간이었다는 증거입니다. 본인 실수를 두고 남 탓을 한 것에 불과하니까요. 아울러 베로니카가 어머니가 토니에게 남긴 유산을 ‘피 묻은 돈’이라 비난할 이유도 없습니다. 에이드리언의 유산도 아니고, 어머니가 토니에게 남긴 것이잖아요?

아울러 어머니가 일기장을 토니에게 남긴 이유, 베로니카가 명확하게 상황을 이야기하지 않고 단서를 하나씩 흘린 이유도 설명이 없어서 아쉬웠고, 토니가 문제의 편지를 보낸 사실을 전혀 다른 기억(쿨한 엽서)으로 치환하고 있었던건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잊어버린 것도 아니고 완전히 다르게 기억했다는건데 영 와 닿지 않았어요. 저도 비슷한 경험이 없지는 않지만, 이 정도 사건이라면 분명히 기억했을 겁니다. 이 기억과 '역사'라는 개념이 "역사는 살아남은 자의 회고에 가깝다"는 작중 표현처럼 핵심 테마지만, 지나치게 부정확한 측면만 강조한 모양새라서 마음에 들지 않네요. 영국 소설임에도 프랑스 문학처럼 장황하고 복잡한 심리 묘사도 과했던 감이 있고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입니다. 역사에 대한 접근이 실망스러워 조금 감점했지만 잘 쓴 소설임은 분명하고, 반전도 빼어납니다. 고급스러운 유럽 문학의 향취도 짙게 묻어 나오고요. 장르 문학 팬 중 고급 취향이신 분들께는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뭐, 비싸 보이는 포장을 뜯어보면 내용은 막장이라는 점에서, 이래저래 영화 "졸업"의 잔혹한 변주에 지나지 않아 보이기도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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