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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7

서랍 속 테라리움 - 구이 료코 / 박의령 : 별점 3점

서랍 속 테라리움 : 신장판 - 6점
쿠이 료코 지음, 김민재 옮김/㈜소미미디어

<<던전밥>>으로 낙양의 지가를 올리고 있는 구이 료코 (쿠이 료코)의 국내 첫 번역 출간작. 200페이지를 갓 넘는 분량에 무려 33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2페이지에서 10여페이지 남짓한 작품들의 분량을 볼 때에는 쇼트쇼트라고 해도 무방하겠죠.
참고로 쇼트쇼트, 쇼트-쇼트는 사전적인 의미로 원고지 10매 안팎의 아주 짧은 소설을 지칭합니다. 꽁트보다 더 짧은, ‘마이크로픽션’ 혹은 장편(掌篇)에 해당하는 형식이라고 하죠. 호시 신이치가 이 장르의 대가로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고요. 제가 무척 좋아하는 장르이기도 합니다.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을 뿐더러 의표를 찌르는 반전, "기묘한 맛" 류의 독특함 가득한 작품이 많을 뿐더러 평범한 일상 드라마는 물론이고 SF, 추리, 범죄 스릴러, 판타지 등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성이 마음에 들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특징은 호시 신이치나 아토다 다카시같은 몇몇 쇼트-쇼트 대가의 특징일 수도 있겠지만요.

이 책에 수록된 단편들도 이러한, 제가 알고 있는 쇼트-쇼트의 특징이 가득한 작품들입니다. 정말 "기발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독특한 아이디어를 보여주고 있거든요. 그 중 인상적이었던 것을 몇가지 소개한다면,
  • 자신을 멀리하던 사장 딸이 사실은 자기를 너무나 사랑하는 변화무쌍한 아가씨였다는 것을 타임머신 원리를 이용한 데이터 전송이라는 설정과 함께 전개하는 <연인 카탈로그>
  • 일년에 한번 용을 먹는 마을에서 여러가지 용고기 요리 (회에서 숯불구이, 국물요리까지!)를 즐긴다는 <용의 역린>
  • 주인공의 인사를 무시한 직장 동료에 대해 마음 속에서 법정을 열어 재판을 통해 결론을 내린다는 내용을 아가씨의 귀여운 심리묘사와 함께 선보이는 <대리 재판>
  • 애완동물 아기를 키우는 이야기로 짙은 여운을 남기는 <봄볕>
  • 왕따에 대한 인형극을 창작하다가 토끼 나라에 대한 거대한 서사극을 만들어 내는 <머나먼 이상향>
  • 편의점 음식만 먹는 서민스러운 삶을 살던 친구가 프렌치 코스 요리를 먹고난 뒤 요리에 대해 기이하게 평가하는 <특식>
  • 우연히 찾아간 산속 식당에서 주위 손님들이 파란만장한 행동을 펼친다는 <이런 산 속에>
등이 그러합니다. 이런 작품을 창작하는 사람은 도대체 아이디어를 어디서 얻는지 너무 궁금해지네요.

또 쇼트-쇼트의 또다른 특징인 다양한 장르를 펼쳐 보여주고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SF, 판타지, 구루메 (?), 기이한 법정물, 일상계 드라마에 러브 코미디, 심리 썰렁물까지 오만가지 장르를 오가고 있으며 장에 따라 작풍을 바꾸는 그림 실력도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정통 판타지스러운 고풍스러운 펜화, 전형적인 순정만화 스타일의 작화, 그리고 평범한 스타일의 일상계스러운 그림 등이 장르에 잘 어우러져 있어서 보는 재미를 더해 주거든요.
덧붙이자면 전체적으로 유머러스하고 밝은 분위기의 이야기들이라는 것도 마음에 든 점입니다.

그러나 호시 신이치의 쇼트-쇼트는 유명 거장의 작품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졸작이 의외로 많은 편인데, 이 단편집에 수록된 작품들도 마찬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작품이 빼어난 것은 아니라는 뜻이에요. 그래도 아주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작품은 아니고 거장의 졸작보다는 볼만한 작품이기는 합니다만.... 좀 뻔한 아이디어, 뻔한 전개의 식상한 이야기들은 조금 실망스러웠어요. 예를 들자면 사랑을 알게 된 인공 두뇌의 이야기라던가 상위 문명에 납치당해 사육당하는 미녀의 이야기가 대표적이겠죠. 흔한 이야기로 작가만의 별다른 상상력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작품집이라 생각합니다. 여러가지 장르의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군청학사> 시리즈와 비슷한 느낌이에요. <군청학사>보다는 훨씬 짧은 호흡의 이야기로 여운은 짙지 않지만 스피디하게,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라는 차이점은 있지만요. 별점은 3점입니다. <<던전밥>>도 빨리 국내에 소개되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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