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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1

유괴 - 다카기 아키미쓰 / 이규원 : 엘릭시르 : 별점 2.5점

유괴 - 6점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이규원 옮김/엘릭시르

<하기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엘리트 치과 의사가 유괴 살인을 저지른 일로 일본 열도를 떠들썩하게 만든 기무라 사건의 재판이 열리는 법정. 그곳에 완전 범죄를 꿈꾸는 한 남자가 방청석에서 재판을 지켜본다.
이윽고 고리대금으로 거금을 모은 이노우에 라이조의 아들이 유괴되고, 기무라 사건과 비교할 수 없는 치밀함에 경찰은 혀를 내두르게 된다.
모든 희망이 사라진 뒤 라이조는 거금을 들여 범인에게 현상금을 거는데...


다카키 아키미쓰의 장편. <파계재판>의 햐쿠타니 센이치로 변호사 시리즈로 실제 있었던 유괴 사건을 소재로 쓴 작품입니다. 범인이 유괴사건에 대해 연구하고 재판을 방청하며 얻은 정보로 완전 범죄에 가까운 범행을 저지른다는 내용이죠.

약간은 도서 추리소설과 비슷한 풍으로 실제 사건과 거의 동일한 기무라 사건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에서 시작하여, 이노우에 가문에서 일어난 유괴사건을 둘러싼 전개과정은 흥미진진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추리적으로도 범행의 "동기"와 범행의 과정만큼은 이쪽 장르 경쟁작들과 충분히 자웅을 겨룰 만 하다 생각됩니다. 특히나 고령인 라이조의 나이를 감안하여 유산 상속을 노렸다는 진짜 동기는 정말이지 무릎을 칠 만큼 좋은 아이디어였어요. 아들이 있고 특정한 유언이 없다면 라이조 사후 아들에게 전 재산이 상속되지만 아들이 없다면 아내와 동생과 같은 친권자 기준 분배되며, 아내와도 이혼을 한다면? 이라는 것으로 작중 내내 강조되는 라이조의 재산을 감안할 때 충분히 설득력이 느껴졌으니까요. 또 이 동기와 "실종 후 7년 동안은 살아있는 것으로 간주된다"는 법적 조항이 맞물리는 결말 역시도 인상적이었고요.

범행의 과정도 실제 유괴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답게 생생하면서도 디테일한 부분에서의 고민이 많이 느껴져 만족스러웠어요. 유괴 사건을 다룬 많은 작품들에서 제기되는 질문 - 결국 범인이 몸값을 어떻게 손에 넣을 것인가? - 에 대한 나름의 해석도 괜찮았습니다. 거짓말 탐지기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전해주는 등 당대 수사 기법에 정통한 여러가지 정보를 전해주는 것도 마음에 들었어요. 거짓말 탐지기의 %에 대한 이야기나 부신 피질의 문제가 있으면 제대로 검사할 수 없다는 내용 등은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고 말이죠.

또 당시 화제가 되었던 유괴 사건을 전면에 내세운 점과 정신 감정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견지하는 설정 등에서는 사회파적인 성격을 느끼게 해 주는데, 권말에 상당한 분량으로 수록된 '마사키 유괴 살인 사건'의 재판을 다룬 논픽션이 그 방점을 제대로 찍어줍니다. 논픽션으로서도 뛰어나지만 실제 작품과 여러모로 연결되어 있어서 읽는 재미를 더해 주거든요.

그러나 전체적인 완성도를 놓고 본다면 기대에 값하는 작품은 아니었어요. 치밀하고 흥미진진했던 범행 과정의 묘사에 비교하면 후반부는 너무 쉽고 어설픈 탓인데, 범인을 지목하게 되는 이유가 "범인이 기무라 재판을 방청했을 것이다!" 라는 생각에서 시작되는것이 대표적인 예이겠죠. 다쿠지가 신문을 연구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고 손쉬웠을텐데 구태여 방청을 한 이유가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을 뿐더러, 범행이 성공한 이후 무가치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 기무라의 운명을 알기 위해 방청을 계속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설득력이 떨어지잖아요. 신문으로 확인해도 될텐데 말이죠. 범인이 관련된 장소에 당당히 얼굴을 내민다는 것도 비상식적인 행동이라 생각되고요.
근거없는 추리와 설명할 수 없는 범인의 무의미한 행동이 결합된, 그야말로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는 우연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데 이렇게 우연으로 점철된 전개는 또 있습니다. 다에코에게 불륜남이 때맞춰 전화하여 라이조에게 이혼 결심을 하게 만드는 장면이라던가 오카 다미코의 죽음과 오카야마 도시오의 도주로 사건이 미궁에 빠진다는 것 등이 그러합니다.

또 햐쿠타니 센이치로와 그의 아내가 라이조가 내건 현상금에 눈이 멀어 사건에 뛰어든다는 동기도 마음에 들지 않네요. 너무 억지로 시리즈로 끌고가려는 느낌이었달까요. 차라리 시리즈가 아니라 사건을 수사하던 에노모토 경위 그룹에서 햐쿠타니 센이치로와 같은 발상의 전환으로 사건 해결의 단서를 얻는다는 식으로 풀어내는게 어땠을까 싶어요. 아니면 최소한 햐쿠타니 센이치로가 기무라 재판에 방청객, 혹은 참고인으로 참여했다가 범인을 알아챌 수 있었다는 내용이라도 나와 주던가요.

마지막으로 피해자의 어머니 다에코의 공작에 의해 범인으로 확정된다는 결말도 깜찍하기는 하지만 현실성은 약하죠. 누군가에게 혐의를 뒤집어 씌우기 위한 가장 유치한 수준의 공작으로 범인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그 어떤 증거도 없는 인물의 집에서 유력한 단서가 발견되었다고 해서 바로 범인 취급을 해 버리면,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낭패를 볼 겁니다. 제가 봤을 때 빠져나갈 수 있는 근거도 제법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작품은 본격 추리의 향취도 나면서도 사회파적인 느낌도 전해주는, 과도기의 교량 역할을 잘 해주고는 있지만 이러한 단점들로 아주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5 점입니다. 제가 읽었던 작가의 작품 중에서는 아래에서 순위를 다툴 작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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