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현대문학 |
대학 입학 후 자취를 시작한 나(시나)는 우연히 알게 된 이웃 가와사키로부터 기이한 제안을 받았다. 같은 건물에 살고 있는 외국인을 위해 서점을 터는 것을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2년 전, 펫샵에서 일하며 외국인 도르지와 동거하던 나(고토미)는 우연히 애완동물 살해범 3인조와 엮이는데....
이사카 고타로의 장편 소설. "사신 치바"는 나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땡기는 작가는 아니었습니다. 정통 추리물 작가라 생각하지도 않았었고요. 허나 이 작품은 어딘가의 추리소설 추천 리스트에도 올라가 있을 정도로 유명한 대표작이라 관심이 가던 차에 읽게 되었습니다(무슨 리스트인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그런데 하루 만에 푹 빠져서 완독할 정도로 재미있었습니다. 확실히 대표작답기는 하더군요. 작가를 다시 보게 되었달까요? 일단, 읽는 맛이 뛰어납니다. 2년 전 과거를 고토미라는 화자를 통해, 그리고 현재를 시나라는 화자를 통해 교차시키면서 전개하는 독특한 방식 덕이 큽니다. 고토미와 도르지가 얽히게 된 애완동물 살해범들의 범죄와 시나가 가와사키와 얽혀 기이한 사건에 빠져든다는 이야기도 무척이나 흥미롭고요. 이 두 개의 이야기가 도대체 어떻게 연결될지 계속 호기심을 자극해 주거든요.
등장인물들도 생생합니다. 특히 막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름의 철학이 있는 가와사키는 정말로 보기 드문 멋진 캐릭터였습니다. 도르지도 부탄이라는 나라의 종교관, 인생관에 바탕을 둔 독특함이 만만치 않을 정도로 생생하게 묘사되는데, 부탄 출신 외국인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영화 "방가방가"가 떠올라 반가웠습니다. 이 영화가 떠오른 탓에 이어지는 서술 트릭을 더더욱 눈치채기 어려워졌다는 문제는 있었지만요.
아울러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추리적인 요소도 상당한 수준입니다. 현재의 가와사키는 사실 도르지였다는 일종의 서술 트릭이 대표적입니다. 화자를 오가는 전개를 통해 교묘하게 숨기고 있어서 마지막까지 눈치챌 수 없었습니다. 2년이라는 시차를 통해 성립될 수 있었던 어학 실력 등은 충분히 설득력을 가지고요. 이 사실이 드러나는 장면도 좋습니다. 시나의 집 전공 도서가 사라진 것, "옆옆집"이라는 단어, 글을 못 읽는 외국인이라는 설정 등을 활용하여 일상계 느낌을 전해주며 드러내는데 참 멋졌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없는건 아닙니다. 우선, 왜 고토미가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았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경찰에 대해 신뢰가 없었어도, 신고만 했더라면 죽음에 이르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지요. 처음에는 도르지가 불법체류자라 경찰에 알리는걸 주저했던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런 이유가 없어서 황당했어요.
불필요한 설정도 많습니다. 가와사키가 HIV 양성 보균자가 되었다는 것이라든가, 단백질 인형 같은 레이코 씨의 정체 등이 그러합니다. 특히 레이코 씨는 중요도를 놓고 볼 때 이렇게까지 비현실적으로 설정될 필요는 없었습니다. 시나가 기묘한 상황 속에서도 평범함으로 균형을 잘 잡고 있었는데 갑자기 만화가 되어버리는 느낌이 들어서 영 별로였습니다.
2년 전 이야기가 현재로 이어지게 만드는 여러 가지 복선들도 작위적입니다. 가와사키가 동물을 키우고 싶다는 인적 없는 숲 정도가 적당했을 텐데, 래서팬더를 훔치는 아이들을 연이어 등장시킨 것은 여러모로 무리수였습니다. 솔직히 그렇게 쉽게 훔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도 않기도 하고요.
무엇보다도 갓 이사 온 옆집 남자가 밥 딜런의 노래를 불렀다고 살인 현장의 감시를 맡긴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 가와사키(도르지)가 레이코를 조심하라는 말을 시나에게 한 이유도 불분명하고요.
그래도 이러한 단점들을 뛰어넘을 만큼의 재미는 확실히 보장하고 있기는 합니다. 젊은 청춘들에게 다가갈 만한 괜찮은 일상계 청춘 추리 스릴러라 생각되네요. 별점은 2.5점. 추리 스릴러 입문자분들께 적당한, 거부감 없이 다가갈 만한 작품으로 추천합니다.
영화도 꽤나 높은 평가를 받고 있던데 한 번 찾아봐야겠어요. 무엇보다도 소설의 핵심인 가와사키의 정체에 대한 서술 트릭을 도대체 어떻게 해결했는지 너무너무 궁금합니다.
덧1 : 밥 딜런의 노래 "Blowin' in the Wind"를 찾아 들어보니 좋은 곡이긴 했습니다만 신이 불렀다는 느낌까지는 들지 않았어요. 제가 나이를 많이 먹은 탓이겠죠.
덧2 : 좋은 책이기는 한데 13,800원이라는 책값은 너무 비싸요. 문고본 스타일로 반값 정도로 나온다면 참 좋을 텐데, 도대체 도서 정가제가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점점 더 궁금해집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