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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10

가든 살인사건 - SS 반 다인 / 김민정 : 별점 2점

가든 살인사건 - 4점 S.S. 반 다인 지음, 김민정 옮김/해문출판사

파일로 반스는 수수께끼의 전화 제보를 받고 상류층 자제들이 모여 경마 내기를 벌이는 저명한 화학교수 가든 교수의 집을 찾았다. 그 곳에서 교수의 아들 플로이드와 플로이드의 사촌 우디를 만났고, 우디가 전 재산을 건 "냉정함"이라는 말이 경주에서 우승하지 못하는 순간, 총소리와 함께 우디가 시체로 발견되는 것을 목격했다.
반스는 현장 조사를 통해 우디가 경마의 실패로 자살한 것이 아니라 살해 당했다는 것을 밝혀냈지만, 사건의 중요 인물인 간호사 비튼 양의 살인 미수, 가든 교수의 부인 마샤가 독살당하는 등의 사건이 연이어 일어나고, 반스는 최후의 순간에 사건의 진상을 추리해 내어 모든 관계자들을 모아 놓고 "추리쇼"를 벌이게 되는데...

반 다인의 파일로 반스 시리즈로 해문 출판사에서 시리즈로 출간한 책을 우연찮게 헌책방에서 구입하여 읽게 되었습니다. 사실 해문같은 추리 전문 출판사가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런 시리즈를 기획하고 출간해 주는 것은 너무나 감사한 일이지만 개인적으로 반 다인의 소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미루고 있던 차였는데 마침 기회가 되었네요.
먼저 반 다인의 작품들을 좋아하지 않은 이유부터 설명하자면, 그동안 제가 읽었었던 "벤슨"과 "비숍" 두 작품 모두 유명세에 비해 별로였기 때문이에요. 탐정인 파일로 반스부터가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했고 두 작품 다 추리적으로 저에게 그다지 감흥을 불러 일으키지 못했기 때문이죠. 벤슨은 그다지 평가할 만한 내용도 별로 없었고 지루하기만 했으며, 비숍은 추리적으로는 괜찮긴 했지만 동기의 현실성이 부족했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그런데 이 작품 역시 같은 점이 불만스럽네요. 파일로 반스는 언제나처럼 지나친 잘난척을 연발하여 읽는 저의 짜증을 불러 일으키며 추리적으로도 동기의 설득력이 너무 약하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거든요. 개인적으로는 범인의 동기가 전혀 와 닿지 않았어요.
또한 마지막의 해결부에서 사건의 증거 자체가 거의 전무하므로 "추리쇼"를 통한 범인의 방심을 노리다는 식인데, "추리쇼"에서 결정적 증거를 제시한다면 모를까 사실상 "방심" 하나만 믿고 연극을 한다는 것은 본격 추리물로서는 최악의 해결 방법이라 생각됩니다. 심리적인 부분을 물고 늘어지는 반스 특유의 추리법으로 포장되긴 하지만 동기나 단서가 불명확한 상태에서 그러한 심증만으로 추리를 전개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죠.

그래서 별점은 2점. 반 다인 스스로가 "추리소설 작가는 6편 이상의 걸작을 쓸 수 없다"라고 했는데 이 작품은 반 다인의 12편의 장편 중 9번째로 발표된 작품이라서 격이 더 떨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새롭게 번역되어서 야심차게 나온 작품답게 번역은 깔끔하고 책 자체도 이쁘게 나온 편이나 단점이 더 많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시리즈를 더 읽어야 하는지 심히 고민되네요.

PS : 책 표지와 디자인은 좀 더 깔끔하고 이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조금 아쉽군요.

2006/12/04

전설의 자유 추리 문고

원래 제가 중학교때까지 가끔 눈에 띄면 모으던 문고 시리즈였습니다만, 최근 우연찮게 3번 구입하게 되고 책 뒤의 다른 책 소개를 보니 정말 눈이 뒤집히네요.

뭐 목록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지나친 반 다인 취향과 뜬금없이 끼어 있는 어슐러 K 르귄의 "암흑의 왼손"을 제외하고는 정말 추리 역사에 길이 남을 고전 명작을 거진 다 소화하고 있어서 나무랄데 없는 선정으로 보입니다. 크리스티 여사님 책이 한권도 없긴 하지만 여사님 책은 당시부터도 해문 빨간책 시리즈로 전권이 나오고 있었으니 어쩔 수 없이 뺀 것이 아닌가 싶네요. 현명한 판단인 것이 사실 저는 여러 추리 문고 시리즈에 여사님 책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직도 불만이거든요. 해문 빨간책이 여사님 책 시장은 평정하다시피 했으니 다른 시리즈로 구입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기에 차라리 그 책을 내 놓을 바에야 다른 멋진 작품들을 선정하는 것이 분명 나은 판단이라 생각됩니다.

또한 이 시리즈는 당연히 일어 중역본인 듯 하지만 번역도 의외로 매끄럽고 좋은 편입니다. 교정을 여러본 보았는지 오탈자도 거의 없고 문체도 좋거든요. 제가 보기에는 브라운 신부 시리즈는 최근 출간되었던 정식판보다 이쪽이 외려 번역이 좋았습니다. 정식판은 지나치게 딱딱하고 지루하게 번역했다는 느낌이 강했거든요.

다시금 목록을 보니 어렸을 적에 많이 구입하지 못한 것이 후회됩니다. 그 당시 용돈을 쪼개서 사던 즐거움 중 하나가 추리소설을 구입하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많이 사지는 못했더라고요. 돈이 좀 없더라도 몇권 더 사는건데 그랬습니다... (그래서 지를때 지르지 않으면 훗날 후회가 오나 봅니다)

제가 지금 제일 읽고 싶은 책은 시리즈 26 "눈먼 탐정 캐러더스", 27 "포튠을 불러라", 28 "이와 손톱", 그리고 50번째인 "주정꾼 탐정" 입니다. 헌책방 순례도 어언 10여년 짼데 아직도 발견 못했습니다.

고가 매입...은 힘들겠지만 도움주실 분 계시면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꼭 읽고 싶습니다!

1~2 : 셜록 홈즈의 모험  - 코넌 도일
3 : 뤼뺑의 고백 - 모르스 르블랑
4 : 브라운 신부의 지혜 - 체스터튼
5 : 팔점종 - 모리스 르블랑
7 : 벤슨 살인사건 - 반 다인
11 : 딱정벌레 살인사건 - 반 다인
14 ~ 15 : 클로이든발 12시 30분 - 크로포츠
18 : 새벽의 데드라인 - 윌리엄 아이리쉬

19 : 미궁과 사건부 - 로이 비커즈
20 : 어두운 거울 속에 - 엘런 매클로이 (헬렌 맥클로이)
21 : 즐거운 살인 - 크리스핀
22 : 강철도시 - 아시모프
23 : 움직이는 타깃 - 로스 맥도널드
24 ~ 25 : 카나리아 살인사건 - 반 다인
26 : 눈먼 탐정 캐러더스 - 브래머
27 : 포튠을 불러라 - 베일리
28 : 이와 손톱 - 윌리엄 벨린저
29 ~ 30 : 위험한 여로 - 브랜드
31 : 작은 독약병 - 샬럿 암스트롱
32 : 제 8지옥 - 스텐리 엘린
33 : 케닐 살인사건 - 반 다인
34 : 법정 밖 재판 - 헨리 세실
35 ~ 36 : 도중의 집 - 엘러리 퀸
37 : 싸이코 - 로버트 블록
38 : 흑거미 클럽 - 아시모프
39 ~ 40 : 여자 살인 이야기 - 아일즈
41 : 살인급행 침대열차 - 자프리조
42 : 암흑의 왼손 - 어슐러 르귄
43 ~ 44 : 검은 탑 - P.D 제임스
45 : 가든 살인 사건 - 반 다인
46 : 스카이 잭 - 토니 켄릭
47 : 사람의 덫 - 로저 사이먼
48 : 사라진 시간 - 윌리엄 벨린저
49 : 르윈터 망명 - 로버트 리델
50 : 주정꾼 탐정 - 에반 헌터

자유추리문고 소장중 / 다른 판본으로 소장중 / 못구함, 혹은 안구함...
* 2021.01.02. 리뷰가 있는 작품은 링크 추가합니다. 전부 자유 추리 문고는 아니지만요.

2007/01/26

카나리아 살인사건 상/하 - 반 다인 / 전윤경 : 자유 추리 문고 24~25 : 별점 2.5점

카나리아 살인사건
S.S. 반 다인 지음, 안동민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카나리아라는 별명으로 더욱 잘 알려진 브로드웨이의 무희 마거리트 오델이 교살된 시체로 발견되었다. 지방검사 매컴의 요청으로 수사 협력을 위해 파일로 번스는 친구인 변호사 반 다인과 함께 사건 현장과 여러 용의자들의 알리바이를 확인했다. 사건 현장에 남겨진 보석 상자의 흔적으로 전문 절도범인 "멋장이" 토니 스킬의 절도가 의심되나 그의 알리바이를 경찰은 깨트리지 못하고, 오히려 그마저도 살해당해서 사건은 교착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나 파일로 번스는 애초부터 다른 인물에 혐의를 두고 있었고, 스스로의 직감과 심리학적 분석으로 진범을 파악한 뒤 알리바이를 벗겨내는데 성공한다.

반 다인의 파일로 번스 시리즈 두번째 작품입니다. 원체 제가 잘난척 하는 탐정을 좋아하지 않아 그동안 읽지 않은 장편인데, 저번 자유 추리 문고 구입 Rush에 편승하여 구입하여 읽게 되었습니다.

읽고난 감상은 역시 파일로 번스는 제 취향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도 제가 읽은 시리즈, "벤슨" "승정" "가든" 중에서는 "승정 살인사건" 다음으로 꼽을 만한 괜찮은 요소가 많이 있어서 나름 재미나게 읽긴 했습니다.

특징은 파일로 번스의 이른바 "심리학적 분석"이 굉장히 중요하게 쓰인다는 점입니다. 특히 포커 승부를 통해 그 사람의 본질을 파악한다는 것이 꽤 참신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사실 그다지 와 닿지는 않았지만 카이지나 타짜 느낌이 약간 묻어나는, 나름 원조격 느낌을 전해주더군요.

그러나 가장 중요한 트릭인 알리바이 트릭은 솔직히 기대 이하였습니다. 경찰의 현장 수사 부족으로 성립되는 트릭이라 무척이나 실망스러워요. 또한 당시 상황에서는 그런대로 과학적인, 이치에 합당한 트릭으로 쓰일 수 있었을지 모르나 지금 읽기에는 상황이 너무 부실하고 증거가 너무 결정적이라는 단점 때문에 더더욱 수긍하기 힘들었습니다. 트릭이 성립하기 위한 복선이 지나치게 묘사되는 탓에 범인을 쉽게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역시 단점입니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의 가장 획기적 설정인 "살인 사건 현장에 있던 두 사람" 이라는 설정에서, 둘 중 한사람이 범인이라고 할 때 둘 중 누가 범인인지를 특정한다는 사실 자체가 불가능하다는건 큰 맹점입니다. 한 명이 살해당했더라도 죄 값을 받은 것인지, 증거 인멸 차원에서의 범죄인지가 결국은 추리에 의해서만 증명될 뿐이니까요.

이러한 점들 때문에 퍼즐 트릭물로는 많이 부족합니다. 설정은 기발했지만 트릭과 이후 전개가 그에 따르지 못했다 할 수 있겠네요.

아울러 파일로 번스의 장황한 현학적 지식의 나열이나 그에 못지 않는 작가 주석은 그렇지 않아도 긴 작품을 더더욱 짜증나게 합니다. 잘난척도 정도가 있어야지... 화가 날 정도에요. 다양하고 방대한 인용구와 단어들 때문에 번역은 힘들었겠지만 그러한 어려움이 재미에는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결론내리자면 고전 추리물의 걸작이기도 하고 추리사에 나름의 한 획을 그은 작품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문제점들 때문에 걸작 반열에 올리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심리적 분석"이라는 참신한 요소는 굉장히 높이 살 만 하고 몇몇 설정이 돋보이며 재미 역시 그런대로 있는 편이라 고전 추리물 애호가라면 한번쯤 읽어볼 만 하지 않나 싶습니다만... 제가 읽은 바로는 파일로 번스 물은 "승정 살인사건" 만 읽고 넘어가도 될 것 같습니다.

2011/05/08

그린살인사건 - S.S 반 다인 / 안동림 : 별점 2점

그린살인사건 - 4점
S.S. 반 다인 지음, 안동림 옮김/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아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린 저택에 살고 있는 그린 미망인과 다섯 자녀는 서로 적개심을 가지고 있지만, 아버지의 유언 —"25년 동안 그린 저택에 살아야 상속권을 가질 수 있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동거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겨울, 큰 딸 줄리아와 막내이자 양녀인 에이더가 저격당했고, 줄리아는 사망했다. 단순 강도 사건인줄 알았지만 큰아들 체스터가 지방검사 매컴에게 사건 수사를 의뢰하면서 파일로 번스까지 개입한 수사가 다시 시작되었다. 그러나 곧바로 체스터마저 저격당한 시체로 발견되는데...

저는 1차 세계대전부터 2차 세계대전 전까지의 고전 황금기(Golden Age) 추리소설을 가장 좋아합니다. 뛰어난 캐릭터성을 지닌 탐정들과 격조 높은 트릭이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유럽 작품 한정입니다. 동시기 미국 장편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당대를 대표하는 미국 작가 반 다인과, 시기는 조금 늦지만 엘러리 퀸의 작품들이 대표적으로 대체로 장황한 대사와 잘난 척이 넘치고, 불필요하게 이야기가 길어서 영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도 이런 제 취향 탓에 한동안 손에 잡지 않았는데, 이번 연휴 기간 동안 완독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탐정계에서도 손꼽히는 잘난 척 대마왕인 파일로 번스의 장황한 인용문과 허영은 짜증날 정도로 넘쳐납니다. 번스의 대사들에 나오는 인용문의 주석들만 따로 페이지가 할애될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이런 묘사는 번스가 박식하다는 것 외에는 독자에게 전하는 정보가 전무합니다. 예를 들자면, 세 번째 사건 직후 번스는 모두 앞에서 이렇게 떠벌입니다.

"이 일련의 살인의 배후에 있는 것, 그것은 가차 없는 아집이며 끝장 모를 타산입니다. 우리가 겨누고 있는 상대는 지칠 줄 모르는 '고정관념 (idee fixe)'입니다. 광기 어린 악마주의의 논리입니다. 또한 더욱 소름끼치는 것은 기상천외의 로맨틱한 정신 때문에 도착된 상상력, 이것이 지금 우리가 대결하고 있는 상대인 것입니다. 작열하는 불을 태우는 자아 중심주의, 환각 속에서 인식되는 낙관주의,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대결하고 있는 것입니다."

솔직히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이런 대사만 좀 쳐냈더라도 보다 짧고 임팩트 있는 작품이 되었을 텐데 말이죠. 그나마 마지막에 '사진과 회화의 차이'를 논하면서, 세세한 사건의 전체 구도를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논리는 꽤 그럴싸하긴 한데.... 이 역시도 장황한 대사에 질린 매컴이 단 세 줄로 요약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회화와 사진은 서로 다르네. 그림에 있는 대상에는 디자인이 있고, 사진에 있는 대상에는 디자인이 없네. 그 디자인을 판별하기 위해서는 그림을 많이 연구해야 한다는 거지."

추리적으로도 문제가 많습니다. 동기가 너무나 확실해서 범인을 특정하기 쉽지만 증거가 아무것도 없는 탓입니다. 결국 범행 현장을 덮치지 못했더라면 범인을 검거할 방법 자체가 없습니다. 물증이 하나도 없는 완전범죄! 그래서 마지막 번스의 행동은 오히려 범인의 예술을 망친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차라리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넣은 에이더의 승리로 작품을 끝맺었더라면, 이 작품은 추리소설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고전 황금기 본격 추리소설답지 않게 트릭이 별로 없다는 점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줄리아·에이더 저격 사건, 체스터 살인 사건, 렉스 살인 사건, 에이더 독살 미수, 그린 부인 독살 사건의 총 다섯 건의 범죄 중에서 트릭이 사용된 것은 렉스 살인 사건 단 한 건 뿐이거든요. 트릭 자체의 수준은 나쁘지 않지만, 이 정도 규모의 대작 장편에서 활용하기에는 밀도가 부족합니다.

그린 부인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는 의학적 이론과 결합된 작전은 흥미로웠지만, 이후의 전개가 이를 제대로 뒷받침하지 못했다는 점도 아쉬웠습니다. 시체만 없었어도 가능한 작전이었기에, 차라리 방화를 일으킬 생각은 왜 하지 않았는지 궁금해지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만약 앞서 말한 완전범죄 결말이었다면 3.5점 정도는 줬을 텐데, 추리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부실하니 좋은 점수를 주기가 어렵네요. 제게 반 다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만 더해준 작품이었습니다.

덧붙이자면, 이 작품의 큰 특징은 엘러리 퀸의 "Y의 비극"과 굉장히 유사하다는 겁니다. 비정상적인 그린 가문의 어머니와 형제·자매에 대한 설정과 묘사는 "Y의 비극"의 해터 가문과 별반 다를 게 없으며, 그 안에서 벌어지는 연쇄 살인 사건 역시 판박이니까요. 이 작품이 1928년, "Y의 비극"이 1932년에 발표되었으니 원전으로서의 가치는 이 작품이 더 높겠지만, 앞서 말한 추리적인 문제와 트릭의 빈약함 때문에 정작 원전으로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는 듯합니다. 추리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네요.

2021/01/03

비숍 살인 사건 - S.S. 밴 다인 / 최인자 : 별점 1.5점

비숍 살인 사건 - 4점
S. S. 밴 다인 지음, 최인자 옮김/열린책들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딜러드 교수 자택에서 조셉 코크레인 로빈이 화살에 찔려 죽었다. 범인이 비숍이라고 서명하여 보낸 마더 구스 동요 편지가 발견된 뒤, 동요대로 조니 스프리그, 드러커마저 살해당했다. 체스 연구가 파디가 자살하여 사건은 종결된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어린 소녀 매들린 모팻마저 유괴되자 파일로 밴스는 행동에 나서는데....

'마더 구스' 동요에 따른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는 내용으로 반 다인 최고 걸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 추리작가 협회가 선정한 '동서 미스터리 100'에서는 9위, '주간문춘 선정 동서 미스터리 100'에서는 18위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요.

그러나 저 개인적으로는 밴 다인 (반 다인)의 파일로 밴스 시리즈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기대치가 높지는 않았습니다 .몇 권 읽어 보기는 했는데, 명성과는 다르게 추리적으로 그다지 인상적이지 못했던 탓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작품 역시 별로 다르지 않더군요. 무려 다섯 번이나 살인 사건이 일어나지만, 마더 구스 동요에 맞춰서 일어났다는 특징 외에는 별다른 트릭은 없습니다. 사건이 미궁에 빠진 건 범인이 지나치게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범인 딜러드 교수가 코크 로빈을 살해했을 때 드러커 부인에게 들키지 않은 것, 드러커를 살해할 때 미행하던 경찰에게 들키지 않은 것 모두 운에 불과하니까요.
드러커 부인 앞에서 드러커 살해를 이야기하여 심장마비로 사망케 한 것도 결과를 예상할 수 없었던 도박입니다. 부인이 큰 소리를 질러 교수가 범인이라고 외쳤다면, 아래 층에 있던 요리사까지 살해할 생각이었던걸까요?

범행 전개 과정도 정교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딜러드 교수는 드러커가 연구하던 노트를 훔치고, 아르네손에게 혐의를 뒤집어 씌워서 전기 의자로 보내버릴 생각이었습니다. 젊은 아르네손의 재능에 질투를 느꼈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코크 로빈과 조니 스프리그는 죽일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냥 드러커만 험프티 덤프티라고 해서 죽이고 '비숍' 이라는 서명을 남기면 되니까요. 왜냐하면 비숍이 헨리크 입센이 쓴 "왕위를 노리는 자들" 속 악당 니콜라스 아르네손에서 유래되었다는걸 경찰이 눈치챌 수 있고, 그렇다면 이후 드러커가 쓴 연구 노트를 훔치기 전에 아르네손이 체포되고 사건이 끝나 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당장은 증거가 없어서 풀려나더라도, 경찰이 엄중 감시했을테니 나중에 죄를 뒤집어 씌우기는 힘들었을 겁니다.

같은 이유로 코크 로빈, 조니 스프리그, 드러커, 드러커 부인을 살해한 뒤 파디가 자살한걸로 꾸며 살해할 이유도 없습니다. 범인은 아르네손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파디가 진범이라고 경찰이 착각했던 탓에 교수는 매들린 모팻을 유괴해서 죽이려는 번잡스러운 추가 범행을 벌일 수 밖에 없었지요.
그리고 아르네손에게는 드러커 부인을 비숍이 습격한 날, 철벽의 알리바이가 있었습니다. 동행했던 벨 양이 시계를 보지 않았어도, 연극을 봤다면 끝나는 시간은 정해져 있으니 알리바이를 깨는건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다 죽었으니 소거법으로 모든 피해자들 스케쥴과 집 안팎을 꿰고 있는건 범인 딜러드 교수밖에 남지 않습니다. 이래서야 본격 추리물이라고 하기도 민망합니다.

전개도 짜증납니다. 특히 수사, 심문 과정이 그러합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중, 제대로 경찰에게 협조하는 인물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탓입니다. 딜러드 교수, 드러커, 드러커 부인이 모두요. 요리사 비들은 심문도 아니고 단순한 사정 청취에 지독한 반감을 드러낼 정도입니다.
게다가 드러커나 드러커 부인이 한 말은 거짓말 투성이인데, 이를 추궁하지 않는 이유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매컴 검사와 경찰은 드러커 부인이 불쌍한 여자라며 그냥 수수방관합니다. 그녀가 범인을 목격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또 드러커 부인을 살해하려고 온 범인이 비숍 말을 남겨두면 부인이 그 사실을 말하지 못할거라고 여겼다는 추리도 어처구니가 없어요. 매컴 검사가 이를 중요치 않게 생각하는건 말이 안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매컴 검사는 사건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잘 모르는 느낌입니다. 

설명이 부족한 부분도 많습니다. 탐정 역을 자처했던 아르네손은 입센의 광팬이라 비숍의 뜻을 처음부터 눈치챘을텐데, 아무런 행동을 보이지 않은 이유처럼요. 파디가 루빈슈타인과 대국을 하던 중에도 범행을 저지를 수 있었다는 추리도 마찬가지에요. 45분 정도 시간이 빈 틈을 이용해 범행을 저질렀을 수 있었겠지만, 루빈슈타인이 45분동안 숙고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루빈슈타인이 45분 숙고 시간을 요청했다는 설명 정도는 필요했습니다.

그나마 밴스가 인간 정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이 범죄는 수학자의 범죄라고 추리하는 정도가 추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근거는 빈약하고 설득력도 낮습니다. '장기간 심하고 지속적인 정신 노동을 하면,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기괴하기 짝이 없는 폭발을 낳으며, 아르네손은 균형 유지를 위해 항상 남을 비하하고 비웃는 식으로 감정 표출을 해서 범인이 아니니, 범인은 딜러드 교수일 수 밖에 없다'는게 전부거든요. 당연하게도, 스트레스가 심하면 가학적 본능에 따른 기괴한 범죄를 행한다는건 근거가 없습니다. 수학자들에 대한 모욕에 가까운 주장이 아닌가 싶을 정도에요.
그리고 이 논리라면, 항상 아이들과 놀고 불쾌함을 숨기지 않는 드러커도 범인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밴스는 드러커를 용의선상에 올려 놓았었죠. 자기 추리도 제대로 따르지 않는 행동이었어요. 

이외에도 파일로 밴스가 여러가지 주제에 대해 장황하게 떠드는 묘사도 너무 많고 지루합니다. 사건과 관련되어 있는 묘사로만 줄여도 길이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지 않을까 싶을 정도에요. 이런 현학적 과시가 작품 특징이기는 한데, 저에게는 불필요하고 짜증나는 요소였습니다.

그나마 마지막에 아르네손을 몰래 살해하려던 교수를 술잔 바꿔치기로 대신 살해한 밴스의 행동만큼은 괜찮았어요. 매컴 검사는 "하지만 그건 살인이야!"라고 화를 내지만, 범인이 아르네손인지, 교수인지 증명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는 괜찮은 선택이었어요. 그리고 어차피 술은 둘 중 누군가가 먹게 될 테니, 이왕이면 범인이 먹는게 낫겠죠.
그러나 이 정도로는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추리적으로 절망적인 수준이며 마더 구스 동요를 잘 녹여내었다는 선구적인 아이디어 외에는 건질게 없습니다. 에도가와 란포"추리 소설 속 트릭의 비밀"에서 이 작품에 대해 '동요와 살인의 소름돋는 일치가 최대의 스릴이며, 그 절묘한 스릴을 제외하면 이 작품이 가진 대부분의 매력을 잃는다'고 말했는데, 그 말 그대로에요. 그러한 특이점 외에는 매력이 없습니다.

2009/01/22

저명작가가 뽑은 미스터리 / SF 베스트 5

쇼켄 추리문고 창간 40주년을 맞아 저명작가들이 쇼켄 추리 / SF 문고 출간본들 중 재미있는 작품들 5편을 꼽은 리스트로 출처는 "미스터리베스트" 입니다. 추리작가 위주로만 번역해서 올립니다.


'2013.06.24. 링크 추가'
'2025.01.05 링크 추가'

아리스가와 아리스
1. Y의 비극 : 엘러리 퀸
2. 브라운 신부의 동심 : G.K 체스터튼
3. 구부러진 경첩 : 딕슨 카
4. 그린 살인사건 : 반 다인
5. 독초콜릿 사건 : 안소니 버클리 콕스

기타무라 카오루
1. 일본탐정소설전집2 에도가와란포
2. 아 아이이치로의 낭패 : 아와사카 츠마오
3. 브라운 신부의 동심 : G.K 체스터튼
4. 불청객들의 뷔페 : 크리스티나 브랜드
5. 새하얀 거짓말 : 프레드릭 브라운

교코쿠 나츠히코
1. 흡혈귀 드랴큐라 : 브램 스토커
2. 기암성 : 모리스 르블랑
3. 현자의 돌 : 콜린 윌슨
4. 일본탐정소설전집10 사카구치안고
5. 키드 피스톨즈의 모험 : 야마구치 마사야

고이케 마리코
1. 신데렐라의 함정 : 세바스티앙 자프리조
2. 이천만달러와 물고기 한마리 : 카트리느 아를레
3. 실루엣 - 아이리쉬 단편집 4 : 윌리엄 아이리쉬
4. 악녀 이브 : 바틀리 체이스
5. 두명의 아내를 가진 남자 : 패트릭 퀜틴
 
미야베 미유키
1. 어둠의 스캐너 : 필립 K 딕
2. 브라운 신부의 동심 : G.K 체스터튼
3. 미스 마플과 13개의 수수께끼 : 애거서 크리스티
4. 매드 사이언티스트 : 스튜어트 D 시프 편저
5. 7명의 아줌마 : 패트리시아 맥거

에도가와 란포
1. 빨간머리 레드메인즈 : 이든 필포츠
2. 노란방의 비밀 : 가스통 르루
3. 승정(비숍)살인사건 : 반 다인
4. Y의 비극 : 엘러리 퀸
5. 트렌트 최후의 사건 : E.C 벤틀리
6.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 애거서 크리스티
7. 모자수집광 사건 : 딕슨 카
8. 붉은 집의 수수께끼 : A.A 밀른
9. 통 : F.W 크로포츠
10. 나인 테일러스 : 도로시 L 세이어스

란포 혼자 10편의 작품을 선정하는 것도 눈에 띄는데 역시 거장은 거장인가 봅니다. 여튼 간략하게 평하자면, 유명작가들은 대부분 고전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몇몇 작품을 제외한 대부분의 고전이 국내에 번역되었다는 것도 반가운 일이고요. 저도 이 리스트를 보다가 다시 읽고 싶어진 책이 몇권 생겼는데, 이번 연휴때 들춰봐야겠습니다.

2005/06/08

추리소설 필독서 16선이라는 목록을 보고...

추리소설 필독서 16선?! 

산왕님 포스트에서 가져왔습니다. 

추리소설 목록

  1.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 애거서 크리스티
  2. 오리엔트 특급살인 ~ 애거서 크리스티
  3. Y의 비극 ~ 엘러리 퀸
  4. 통 ~ 프리먼 윌스 크로포츠
  5. 바스커빌의 개 ~ 코난 도일
  6.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 ~ 엘러리 퀸
  7. 황제의 코담배 케이스 ~ 존 딕슨 카
  8. 벌거벗은 얼굴 ~ 시드니 셀던
  9. 불새의 미로 ~ 유우제
  10.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 애거서 크리스티
  11. 노란방의 비밀 ~ 가스통 르루
  12. 그린 살인사건 ~ S.S. 반 다인
  13. 환상의 여인 ~ 윌리엄 아이리쉬
  14. 최후의 증인 ~ 김성종
  15. 천사와 악마 ~ 댄 브라운
  16. 다빈치 코드 ~ 댄 브라운
모 무가지의 어떤 기자가 작성하셨다고 하는데 이런 류의 글 치고는 국내 추리소설이 2편이나 포함되어 있는 것은 무척 환영할 만 하네요. 저도 무척 좋아하는 "Y의 비극"이나 "황제의 코담배 케이스", 그리고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고전 걸작 "통"이 포함되어 있는 것도 반갑고요.

하지만 걸작이긴 해도 크리스티 여사님의 작품이 3 작품이나 포함된 것은 좀 아쉽고 대체로 작가의 지명도에 많이 기대고 있는 듯 합니다. 예전 "명탐정 추리특급" 어쩌구 류의 백과사전에서 나올법한 정보인거 같기도 하고요.
또한 목록의 5, 6번은 유명세에 비한다면 그다지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한 작품은 아니며 홈즈 시리즈의 진정한 걸작은 단편선에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좀 의외의 선택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단편선집이 포함되지 않은 장편 위주의 선정이라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불만스럽습니다. 얼마전에 읽었었던 쓰레기 "벌거벗은 얼굴"이 대체 왜 포함되어 있는지 모르겠고요. 시드니 셀던이라는 작가 이름 때문일까요?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도 정통파 독자라면 그다지 찬성할 만한 초이스는 아닌 듯 싶군요. 많이 팔린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목록에서 보기에 반가운 작품은 아니라 생각됩니다.

그래도 "추리소설 입문자"를 위한 가이드로는 비교적 적당해 보이기도 합니다. 어차피 공신력은 전혀 없는 목록이긴 하지만 체크해 보니 총 12편을 읽었네요. 반 다인의 작품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앞으로도 읽을 예정은 없지만 한국 작품 2편은 꼭 읽어 봐야 겠습니다.

* 2013년 1월 8일 추가. 이후 전권을 다 읽었습니다.

2012/08/16

세계 10대 추리소설 리스트 정리 (Brutus 397호 참고)

이런 리스트는 별로 신뢰하지 않지만 요청도 있었고 마침 자료가 있기에 몇 자 정리해서 올려봅니다. 일본 잡지 Brutus에서 전문가 대상으로 선정한 리스트 중심입니다. 90년대 후반 자료이니 과거의 리스트에 비하면 그래도 최신 작품이 몇 개 있긴 하지만, 대표작들은 역시 대동소이하네요.

*2007.3.19 첫 작성
*2012.08.16 링크 추가
*2014.08.01 링크 추가
*2020.02.01 링크 추가

오토 펜즐러 (유명 추리 평론가 및 전문서점 "미스테리어스 북 숍" 점주) 선정 All Time Best 10

  1. 윌키 콜린즈 "백의의 여자"
  2. "바스커빌가의 개" – 코넌 도일
  3. "상복의 랑데뷰" – 코넬 울리치
  4. 아이라 레빈 "죽음의 키스"
  5. "말타의 매" – 더쉴 해미트
  6. 로스 토마스 "대역전"
  7. "레베카" – 다프네 뒤 모리에
  8. 프레드릭 브라운 "이상한 나라의 살인"
  9. 토머스 해리스 "레드 드래곤"
  10. 애거서 크리스티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제이 퍼설 (미스테리 전문 서점 "세익스피어 & 컴퍼니" 원 바이어) 선정 All Time Best 10

  1. "기나긴 이별" – 레이몬드 챈들러
  2. "유리 열쇠" – 더쉴 해미트
  3. "우편배달부는 벨을 두 번 울린다" – 제임스 M 케인
  4. "셜록 홈즈의 모험" – 코넌 도일
  5. 제임스 크럼리 "안녕 달콤한 입술이여"
  6. 짐 톰슨 "Pop.1280"
  7. 죠너던 래티머 "Solomon's Vineyard"
  8. 로스 토머스 "대역전"
  9. 엘모어 레오나드 "Unknown Man #89"
  10. 토머스 페리 "도망친 킬러"

세계 10대 추리 소설 (히치콕 매거진 선정 / 동률 포함 총 12작품)

  1. "Y의 비극" – 엘러리 퀸
  2. "통" – F.W 크로프츠
  3. "비숍 살인사건" – 반 다인
  4. "그린 살인사건" – 반 다인
  5. 윌리엄 아이리쉬 "환상의 여인"
  6. 애거서 크리스티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7. "빨간머리 레드메인즈" – 이든 필포츠
  8. 가스통 르루 "노란방의 비밀"
  9. "기나긴 이별" – 레이몬드 챈들러
  10. "어둠 속의 목소리" – 이든 필포츠
  11. 애거서 크리스티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12. "바스커빌가의 개" – 코넌 도일

동서미스터리 베스트 100

2005/08/12

동서(東西)미스터리 베스트 100

일본 추리작가협회가 1,315인의 앙케이트로 뽑은 동서 미스터리 베스트 100입니다. 요새 통 책 읽을 시간이 없어 이런 글로 땜빵하게 되네요.
일본편과 해외편, 즉 동-서 리스트가 따로 있는데 해외편만 옮겨 보았습니다. 국내 출간된 작품은 파란색으로 표시했는데, 대충 봐도 2/3은 번역되어 나온 듯 하군요. 최근에 동서 추리 문고가 복간된 탓에 고전이 많이 소개된 탓이 크지만 어쨌건 반가운 일입니다. 절판된 책도 포함시켰기 때문에 지금은 구할 수 없는 책도 있기는 하지만요.

하여튼 이 리스트에 실린 작품들은 제가 읽어본 바로는 대체로 수긍할 만한 걸작들이 대부분이라 읽지 못한 작품이 있다면 차분히 손 대 보아도 후회하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물론 너무 고전이라 지금 읽기에 낡고 지루한 작품도 있지만 다 나름의 맛이 있는 것이니까요. 국내 출간작은 볼드체, 읽은건 적색 볼드체입니다. 제 블로그에 리뷰가 있는 작품들은 링크를 걸어 두었고요. 내용이 궁금하시면 링크를 통해 참고하셔도 좋겠습니다.
원문에 가시면 일본 편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출처는 역시 "Mystery Best"입니다. 원문은 여기서 확인하세요.

그나저나... 1위가 "Y의 비극" 이네요. 2위는 "환상의 여인" 이고.... 약간 의외이긴 합니다. 하지만 제일 의외는 역시 5위의 "독수리는 날개치며 내리다". 제가 보기에는 "추리" 소설은 아니라는 생각인데 말이죠. 일본인들의 독일군 선호 취향이 반영된건가.

[해외편]

1. Y의 비극 - 엘러리 퀸
2. 환상의 여인 - 윌리엄 아이리쉬
3. 기나긴 이별 - 레이몬드 챈들러
4.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 아가사 크리스티
5. 독수리는 날개치며 내리다 - 잭 히긴스

6. 심야플러스1 - 개빈 라이얼
7. 통 - 크로프트
8.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 애거서 크리스티
9. 승정(비숍)살인사건 - 반 다인
10. 셜록 홈즈의 모험 - 코난 도일

11. 여왕폐하 율리시즈 호 - 알리스테어 맥클린
12. 쟈칼의 날 - 프레드릭 포사이스

13. 안녕 내사랑 - 레이몬드 챈들러
14. 화형법정 - 딕슨 카

15. 섀도우 81 - 루시안 네하임
16. 노란방의 비밀 - 가스통 르루
17. 죽음의 키스 - 아이라 레빈

18. 빨간머리 레드메인즈 - 이든 필포츠
19. 흥분 - 딕 프란시스

19. 말타의 매 - 더쉴 해미트
21. 높은 바위 - 데스몬드 배글리
22. 그린 살인사건 - 반 다인
23. 지푸라기 여자 - 카트리느 아를레
24. 소름 - 로스 맥도널드
25. 브라운신부의 동심 - 체스터튼
26. 세 개의 관 - 딕슨 카

27. X의 비극 - 엘러리 퀸
28. 첫가을 - 로버트 B 파커 ("약속의 땅"이라는 작품이 출간되어 있는데 이 작품이 어떤 작품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29. 피의 수확 - 더쉴 해미트
30. 웃는 경관 - 바르 & 슈발

31.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 - 엘러리 퀸
32. 암살자 - 로버트 러들럼 (많은 작품이 소개된 작가인데 역시 이 작품이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33. 추운나라에서 온 스파이 - 죤 르 카레
34.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 - 아가사 크리스티

35. 유다의 창 - 카터 딕슨
36. 모르그가의 살인 - 에드거 알란 포우
37. 당신을 닮은 사람 - 로얄드 달
38. はなれわざ Tour de Force - 크리스티나 브랜드
39. 사라진 소녀 - 콜린 덱스터
40. 황금벌레 - 에드거 알란 포우
41. 813 - 모리스 르블랑

41. 사라진 남자 - B.프리맨틀
43. 빅 슬립 - 레이몬드 챈들러
44. 진리는 시간의 딸 - 죠세핀 테이

45. 바스커빌가의 개 - 코난 도일
46. 독 쵸콜릿 사건 - 안토니 버클리

46. 상복의 랑데뷰 - 코넬 울리치
48. 오른손 - 딕 프란시스
49. 스위트 홈 살인사건 - 크레이그 라이스
49. 도버 4 / 절단 - 죠이스 포터
51. 월장석 - 윌키 콜린스
52. 백만달러를 돌려줘! (한푼도 더도말고 덜도말고) - 제프리 아처
53. 재앙의 거리 - 엘러리 퀸

54. 위철리 가의 여인 - 로스 맥도널드
54. 그리스 관의 비밀 - 엘러리 퀸

56. 우편배달부는 벨을 두번 울린다 - 제임스 M 케인

56. 탈출항로 - 잭 히긴스 (어떤 작품인지 역시 잘 몰라서....)
58. 야수는 죽어야 한다 - 니콜라스 블레이크
59. 더욱더 위험한 게임 (가장 위대한 게임) - 개빈 라이얼
60. 죽어가는 자를 위한 기도 - 잭 히긴스
61. 흑거미클럽 - 아이작 아시모프
61. 시행착오 - 안토니 버클리 콕스

63. 휴먼 파이터 - 그레이엄 그린
64. 호그 연속살인 - 윌리엄 디 안드레아
64. 경관혐오 - 에드 멕베인

64. 도둑맞은 편지 - 에드거 알란 포우
67. 신데렐라의 함정 - 세바스티앙 자프리조

68. 레베카 - 다프네 뒤 모리에
68. 황제의 코담배 케이스 - 딕슨 카
70. 악마의 선택 - 프레드릭 포사이스
71. 타이타닉호를 인양하라 - 클라이브 커슬러
71. 디미트리오스의 관 - 에릭 앰블러

73. 大穴 Odds Against  - 딕 프란시스
74. 마천루의 몸값 - 리쳐드 제섭
74. 어둠 속의 목소리 - 이든 필포츠
74. 트렌트 최후의 사건 - E.C 벤틀리
77. 복수법정 - 헨리 덴커

78. 이별을 알리러 온 남자 - 브라이언 프리맨틀
79. 보이지 않는 그린 - 죤 슬라텍
80. 나바론의 요새 - 알리스테어 맥클린
81. A-10 탈환팀 출동하라 - S.L 톰슨
82. 주정뱅이 탐정가를 가다 - 커트 캐년
83. 사나이의 목 - 죠르쥬 시므농
84. 어센덴 - 서머셋 모옴

85. 바늘구멍 - 켄 폴레트
86. 9마일은 너무 멀다 - 해리 케멜먼

86. 빨강집의 수수께끼 - A.A 밀른

88. 유리열쇠 - 더쉴 해미트
89. 리리안과 악당들 - 토니 켄릭
90. 네덜란드 구두의 비밀 - 엘러리 퀸
90. 제제벨의 죽음 - 크리스티나 브랜드
92. 이와 손톱 - 빌 S 벨린져
93. 불타는 사나이 (크리시 1) - A.J 퀸넬
94. 피의 줄 - A.J 퀸넬 (크리시 시리즈가 아닐까요?)
94. 도중의 집 - 엘러리 퀸
94. 즐거운 장례식 - 에드먼드 크리스핀
97. 크로이든발 12시 30분 - F.W 크로포츠
97. 오뎃사 파일 - 프레드릭 포사이스
99. 제 1의 대죄 - 로렌스 샌더스

99. 酔いどれの誇り - 제임스 크램리

** 2006. 11.29 추가 : 읽은 것은 볼드체
** 2008. 04.21 추가 : 한 4편 정도 더 읽었네요.
** 2011.11.20 추가 : 이제 국내에 출간된 건 거의 다 읽은 것 같습니다.
** 2020.02.01 추가
** 2026.04.11 추가

2015/01/13

녹스머신 - 노리즈키 린타로 / 박재현 : 별점 2.5점

녹스머신 - 6점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박재현 옮김/반니

추리소설, 그 중에서도 본격 추리소설은 체계적인, 나름의 규칙이 존재하는 장르죠. 이 작품은 이러한 본격 추리소설의 규칙을 실제하는 물리학, 양자역학에 끼워넣은 독특한 SF인 "녹스 머신"과 "논리 증발", 그리고 추리소설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메타 픽션 "들러리 클럽의 음모", 그리고 독특한 암호트릭 중심의 본격 SF "바벨의 감옥"으로 이루어진 중단편집입니다.

발표 당시 큰 화제를 불러 온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 10' 3위, '본격미스터리 베스트 10' 4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와 '미스터리가 읽고 싶다' 부문 모두 1위) 작품으로 국내 번역이 언제되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침 국내 최고의 미스터리 동호회 "하우 미스터리"에서의 이벤트 당첨 덕에 읽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좋은 기회를 마련해 주신 관계자 분들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완독한 첫 느낌은 노리즈키 린타로라는 작가의 역량이 정말 대단하구나! 라는 것입니다. 추리 소설에 대한 깊이있는 연구를 해 왔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추리소설에 대한 해박한 지식 외에도 광범위한 물리학, 양자역학 지식까지 어떻게든 충족시켜 만들어낸 이야기들이라 작가의 노력, 탄탄한 지식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네요. 이런 점은 확실히 배워야겠죠. 추리 소설의 규칙을 과학 이론으로 만든 아이디어도 나쁘지 않았고요.

그러나 좋은 작품은 아닙니다. 기대했던 추리적 요소는 거의 없고, 작품의 난해한 정도가 지나친 탓입니다. 독자를 의식하고 쓰여진게 아니라 작가의 자기 만족, 취미 활동의 일환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에요. 독자를 의식했더라도 굉장히 특이한 독자를 대상으로 했을 겁니다. "파운데이션"의 '심리역사학'처럼 이론에 대해 독자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만 설명하고 나머지는 온전히 이야기에 집중하는 게 소설로서는 더 맞는 방향이었어요.

게다가 "녹스 머신"에서 문헌수리해석, 물리학과 타임머신 관련 이론, 양자역학, 평행 세계 등에 대한 학술적 이론을 빼면 '타임머신 개발에 성공한 중국인이 과거로 돌아가 녹스를 만나고, 그 탓에 녹스가 자신의 십계명을 수정한다'가 이야기의 전부입니다. 기대했던 반전도 없고, 타임 패러독스에 대한 고민도 별 볼일 없이 해결되며, 예상했던 결말과도 크게 다르지 않아 시시해요. 솔직히 도라에몽의 타임머신 단편들이 더 그럴듯하고 흥미진진하게 타임 패러독스를 다뤘다 생각됩니다.

"바벨의 감옥" 역시 마찬가지. 일종의 격자화된 틀, 그리고 그곳에 배치된 글자들을 이용한 암호 트릭이 전부입니다. 외계 종족과 일종의 텔레파시 싸움을 벌인다는 설정 및 다른 내용은 이 트릭이 왜 존재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사족에 불과합니다. 그나마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하기도 힘들어서 읽으면서 졸 정도였어요. 트릭도 일본어 세로쓰기 구조를 이용한 것이라서, 일본 외에서는 애시당초 먹히기 힘들고요. 어떻게든 한글화를 시도한 번역자의 노고는 알겠지만 성공한 결과물도 아니었습니다.

다행히 "들러리 클럽의 음모"와 "논리 증발" 두 편은 그래도 조금 더 쉽게 읽히며 재미 면에서 더 낫기는 합니다. 일단 메타 픽션인 "들러리 클럽의 음모"는 다른 세 작품과는 다르게 SF는 아닙니다. 본격 추리소설에 대해, 그리고 여러 추리소설 작가들과 그 주인공들을 살펴볼 수 있게 하는 독특한 창작물이죠. 추리소설의 화자 역할인 탐정의 파트너들이 소속된 '들러리 클럽'에서 아가사 크리스티의 "10번째 인디언 인형"이 추리 소설에 위기를 불러올 것이라는 주장을 놓고 회의를 진행한다는 내용으로,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그것도 본격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즐거울 수밖에 없는 작품입니다. 정말로 실존한 인물들처럼 묘사된 들러리 캐릭터들 — 특히 악역인 밴 다인 (반 다인), 꼰대가 되어버린 왓슨 — 묘사도 아주 좋으며, 실존했던 아가사 크리스티 여사 실종 사건을 들러리 클럽과 엮는 시도도 괜찮았습니다. 빅4 등의 다양한 패러디도 볼거리였어요. 마지막 밴 다인의 독살이 뜬금없이 이루어지는 등 정작 추리적인 요소가 기대 이하라는 점은 좀 아쉬웠지만요.

"논리 증발"도 "녹스 머신"보다 스케일이 크면서도 내용이 풍성해서 완성도는 더 높은 작품입니다. 복잡한 이론을 걷어내더라도 전자화된 데이터에 발화를 일으키는 촉매재로 엘러리 퀸의 작품들, 그 중에서도 '독자에의 도전'이 삽입되어 있지 않은 "샴 쌍둥이의 비밀"이 이용된다는 추리소설 매니아만이 할 수 있는 발상과 그것을 풀어나가는 전개가 나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공각기동대"를 연상시키는 전뇌 생명체가 된 유안이 메시지를 남긴다는 결말도 깔끔했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평균 별점은 2.5점. 추리소설 매니아가 자신의 역량을 극한으로 발휘한, 지적인 작품임에는 분명하고 덕분에 평론가들과 매니아들에게 사랑받을 작품이기는 합니다만 추리, SF 양쪽 장르 모두에서 이야기의 완성도는 기대 이하였습니다. 특히 추리적인 부분에 있어서 작가의 이름에 어울리는 작품들은 아니었어요. 저는 "매니아"로서 충분히 즐길 수 있었지만 다른 분들께 쉽게 권해드리기 어렵네요.

2019/01/13

시인장의 살인 - 이마무라 마사히로 / 김은모 : 별점 2.5점

시인장의 살인 - 6점 이마무라 마사히로 지음, 김은모 옮김/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립 신코 대학의 미스터리 애호회 회장 아케치 교스케와 조수? 하무라 유즈루는 소녀 탐정 겐자키 히루코의 부탁으로 영화 연구회 여름 합숙에 참가했다. 영화 연구회 합숙은 이상한 협박장 때문에 취소되기 직전이었던 탓에, 외부인의 참석이 허용되었다.
그러나 합숙이 시작되고 얼마되지 않아 급작스러운 좀비떼의 습격으로 일행은 3명의 사망자를 낸 채 합숙 장소인 '자담장'에 갇히고 말았다. 일행은 여러가지 바리케이트로 좀비의 습격을 막고 구조대가 올 때까지 버티려 했지만 첫 날 밤이 지나고, 영화 연구회 회장인 신도가 좀비에게 물려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문제는 신도의 방은 좀비가 들어올 수 없는 밀실이었다는 점이었다....

신인 작가 이마무라 마사히로의 데뷰작으로 '2018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2018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0 1위, 2017 「주간 분슌」 미스터리 베스트 10 1위, 제18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 수상, 제27회 아유카와 데쓰야상 수상, 2018 서점대상 노미네이트' 등 온갖 상을 휩쓸었던 화제작입니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유명세만 듣고 읽기 시작했는데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마다라메 기관" 이라는 정체 불명의 연구소에서 마지막 테러를 위해 선택한 것이 좀비 바이러스의 살포로, 테러의 성공으로 수천명의 사람들이 감염된 후의 이야기를 다룬 좀비물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사실 좀비가 등장하는 추리 소설은 이미 좀비의 특성 자체를 핵심 트릭으로 써 먹은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은 미국을 무대로 시작부터 좀비물임을 드러내며 분위기가 살짝 블랙 코미디 느낌인데 반해, 이 작품은 초중반의 좀비 등장 전까지는 상큼한 대학교 신입생인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대학생들 여름 캠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리는 전형적인 일본풍 청춘 클로즈드 써클 미스터리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덕분에 좀비가 처음 등장할 때는 상당히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학생 아리스" 시리즈가 갑자기 좀비물이 되는 셈이니까요.

또 좀비가 처음 주인공 일행을 습격하는 담력 시험에서 신코대학 미스터리 애호회 회장인 '신코의 홈즈' 아케치 교스케 가 바로 좀비에게 물려 이야기에서 퇴장하는 장면에서도 마찬가지로 놀랐습니다. 물론 아케치 교스케는 이름과 별명만 거창한 단순한 추리 소설 매니아로 별다른 능력은 없으며, 진짜 명탐정은 겐자키 히루코라는 설정은 진작부터 있기는 했지요. 그래도 "학생 아리스" 시리즈의 탐정 에가미 지로 정도였던 초반부 비중에 비하면 너무나 허무한 퇴장이었습니다. 흡사 영화 "파이널 디씨젼"에서 스티븐 시걸이 초반에 활약도 못하고 죽어버리던 장면이 떠오를 정도였어요.

그래도 추리적으로는 다양한 수상 경력에 값합니다. 첫 사건인 영화 연구부 부장 신도 살인 사건이 그 중에서도 가장 괜찮아요. 밀실에서 좀비에 물려 죽었는데, 좀비가 어떻게 밀실에 들어갔는지? 에 대한 수수께끼가 핵심으로, 신도의 연인인 호시카와의 존재와 좀비의 특성을 잘 활용한 괜찮은 트릭이 등장합니다. 좀비가 된 호시카와와 신도가 사투를 벌일 때 왜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했는지, 신도가 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는지 등 세세하게 파고들면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 이 정도면 나무랄데 없습니다.

허무하게 죽어버린 아케치 외의 다른 캐릭터들도 나쁘지 않습니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고전 본격물 애호가인지라 화자인 하무라가 밴 다인 (반 다인)과 쓰즈키 미치오도 모르는 미스연 회원들과 어울리기 싫어하는건 굉장히 와 닿았습니다. 미스연 회원들이 즐겨 읽는다는 라이트 미스터리 소설에 대한 비판도 인상적이고요. 미스터리에 대해 잘 모르고, 태생적으로 사건을 불러 일으켜 희생자를 만드는 소녀탐정 히루코 설정도 좋아요. "천재지변급으로 희생자를 만드는 인물" 들인 코난김전일 캐릭터에 관련된 인터넷 농담을 조금 더 진지하게 구현해 놓았는데, 본인 스스로 희생자를 줄이고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추리를 한다는 이유는 충분한 설득력을 지닙니다. 하무라를 원한 이유가 '조수'가 있으면 조금 더 오래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그럴 듯 했고요.

그러나 두 번째 살인 사건인 다쓰나미 살인사건부터는 여러모로 애매해집니다. 범인의 원한이 아무리 깊다 한들, 좀비가 된 다쓰나미를 또 죽인다는 범행을 저지른다는건 말도 안되니까요. 동상을 옮기는 등 엄청난 수고가 추가로 필요할 뿐 아니라, 지나치게 위험한 방법으로 자신과 다른 일행의 생명까지도 걸어야 하는 행위인 탓입니다. 동상을 이용해 다쓰나미의 몸무게 이상으로 탑승이 불가하게 조작해 놓았다 한 들, 좀비들이 다쓰나미를 끌어내 먹어 치우고 다른 좀비가 타고 2층으로 올라올 수도 있잖아요? 좀비 설정에 너무 무리수를 둔 느낌이었습니다. 이보다는 차라리 범행 사전 준비를 위해 카드키를 바꿔치기하고, 그 순간에 CD 플레이어의 음악이 멈추었다는 이야기가 훨씬 재미있었어요.
세 번째 살인 사건인 나나미야 살인 사건은 트릭도 뭐도 아니라서 딱히 설명할 것도 없습니다. 마지막 대단원도 그닥 예상을 벗어나지 않아 조금 실망스러웠고요. 좀비가 몰려드는 와중에 펼쳐지는 추리쇼라는 상황 설정만 긴박할 뿐, 내용은 딱히 새롭지 않습니다. 범인도 하무라 아니면 시즈하라 정도로 압축되고 있던 상황이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전형적인 좀비물을 청춘 클로즈드 써클 미스터리와 엮어 본격물스럽게 만든, 일종의 하이브리드 장르라는 점은 높이 평가하지만 첫 번째 사건과 몇몇 디테일을 제외하고는 본격물로서의 가치는 높지 않아 감점합니다.
하지만 분위기, 느낌은 나쁘지는 않아요. 전형적인 좀비 호러물을 박진감있게 묘사하여 독자를 사로잡는 맛도 분명 있고요. 1급 추리물은 아니지만 1급 오락물임에는 분명하다는 점에서 여러 상을 휩쓴 이유도 수긍은 갑니다. 좀비에 대한 새로운 시각도 인상적인만큼 좀비물을 좋아하신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2026/02/06

십각관의 살인 - 아야츠지 유키토 / 양억관 : 별점 4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외딴섬 츠노시마의 '십각관'에 K 대학교 미스터리 연구회 회원 일곱 명이 일주일 일정으로 머물게 되었다. 회지 작업 등을 위해서였다. 십각관은 괴짜 천재 건축가로 유명했던 나카무라 세이지가 만든 건물로 그는 반 년 전에 아내, 고용인과 함께 십각관 옆 청옥부에서 불타죽었다. 곧이어 연구회 회원들도 오르치부터 한 명 씩 살해당하기 시작했다.

한편 육지에 남았던 전 연구회원 가와미나미는 시마다라는 지인의 도움으로 나카무라 세이지 사건의 진상 조사에 나섰다. 나카무라 세이지가 보냈다는 괴문서를 받은게 계기였다. 여기에는 같은 연구회원 모리스도 힘을 보태는데...

아주 오래 전, 20년도 더 전에 학산 문화사 출간본으로 읽었던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한스 미디어에서 재간된 버젼으로 '밀리의 서재'에 업데이트되었길래 옛 추억도 떠올릴 겸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이 작품은 작가의 데뷰작입니다. 엄청난 성공으로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으로 시작된 일본의 '신본격 미스터리'라는 장르를 일으켰던 작품이지요. 클로즈드 서클에서 일어나는 연쇄 살인극이라는 고전적 설정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젊은 작가가 젊은 대학생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괴짜 천재가 만들었다는 기묘한 저택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그려낸 덕분에 지금 읽어도 여전히 흥미로운 구석이 많습니다. 특히 '십각관'은 정말 후속 시리즈가 이어질 수 있는 멋진 아이디어였어요.

추리적으로도 높은 완성도를 자랑합니다. 츠노시마에서 일가가 불타 죽었던 괴짜 천재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가 관련되었던 반 년 전 사건부터 볼거리가 많습니다. 실종된 정원사가 정말 범인이 맞는지, 나카무라 세이지의 아내 가즈에의 왼손은 왜 잘려 나갔는지 등 수수께끼가 가득하니까요.

섬에서 일어난 살인의 트릭은 겉보기에는 단순합니다. 마스터 키를 이용해 방을 열고, 음료나 담배에 독을 넣는 방식이 중심인 탓이지요. 그러나 이 사건에서 트릭보다 더 중요한 건 범인의 정체입니다. 연구회에서 닉네임 ‘밴’을 쓰던 범인은, 육지에서 가와미나미, 시마다와 함께 수사에 참여했던 모리스 교이치였기 때문입니다! 모리스가 밴이었다는게 드러나는 장면은 정말로 대단한 충격을 안겨다 줍니다. 그는 고무보트를 이용해 육지와 섬을 오가며 연쇄 살인을 저질렀고, 범행을 엘러리가 저지르고 자살한 것처럼 위장해 완벽한 완전 범죄를 저지르는데 성공했던 겁니다. 
'십각관'이라는 장소가 사건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는 못하지만, 모든 컵이 십각형인데 딱 한 개의 컵만 십일각형이었다는걸 독살에 활용한 아이디어도 괜찮았어요.

트릭이나 단서의 제시도 공정한 편입니다. 섬과 육지를 보트로 쉽게 오갈 수 있다는건 진작부터 제시되는 정보이며, 루르가 살해당한 현장의 발자욱을 토대로 엘러리가 펼치는 추리는 결정적이니까요. 여기서 루르는 선착장에서부터 쫓아온 범인에게 살해당했고, 범인은 선착장으로 사라졌다는게 명백히 드러나거든요.
이런 여러 정보와 단서가 있음에도, 초반부터 나카무라 세이지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독자에게 심어주어서 범인은 학생들 중 한 명이 아니라 나카무라 세이지나 나카무라 고지로일거라는 생각을 독자에게 품게 만드는 전개도 좋습니다. 

아울러 미스터리 연구회 출신 작가다운, 현대 무대 탐정 소설은 클로즈드 서클 물을 쓸 수 밖에 없다는 등의 추리 소설에 대한 여러가지 이론들의 등장도 반가웠던 부분입니다. 나카무라 세이지의 협박장을 워드프로세서로 쓴 것에 대한 분석, 십각관 사건에 대한 연구회원들의 추리 등 소소한 추리들도 재미있었고요.

다만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우선 탐정역인 시마다 기요시는 이 작품에서는 하는게 별로 없습니다. 모리스 교이치의 완전 범죄극이 이야기의 핵심이기도 하지만, 여러모로 시리즈 탐정이 될 정도의 매력은 보여주지 못합니다.
그리고 모리스의 완전 범죄 계획도 큰 구멍이 있습니다. 가와미나미가 나카무라 세이지의 협박장을 받고 모리스를 만나 알리바이를 만들어 주는게 핵심인 탓입니다. 가와미나미가 모리스의 전화도 받지 않고, 독자적인 수사 활동에도 나서지 않았다면 어떻게 했을까?에 대한 답이 없어요. 어떤 식으로든 알리바이를 만들기야 했겠지만, 최소한 중요한 첫 날 알리바이는 날려 버렸을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초반,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나카무라 세이지가 보낸 듯한 편지 역시 범행 후 엘러리가 보냈다고 주장하기는 어려워 보이고요.
동기도 빈약해요. 치오리가 술을 많이 먹어서 죽었다는건 분명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그 술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죽일 생각을 품는다? 별로 와 닿지 못합니다. 강제로 술을 먹이는 게임이라도 했다면 모를까요.

또 미스터리 연구회 소속이라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너무 쉽게 살해당한다는 점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의심 없이 담배를 피우거나 음료를 마시는 장면, 홀로 건물 밖으로 나서는 장면 등은 미스터리 독자답지 않은 행동이어서 당황스러웠습니다.
치오리와 모리스가 연인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치오리가 나카무라 세이지의 딸이라는 걸 오르치조차 몰랐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르치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섬에 오지도 않았을테고, 처음에 연쇄 살인에 대한 의심이 싹틀 때 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리도 없지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서 모리스가 자신의 범행 계획을 병에 담아 바다에 띄우고, 훗날 그 병을 주워 자백하는 구조는 지나치게 감성적입니다. 완전 범죄를 달성하기 위해 복수심으로 똘똘 뭉쳐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던 범인의 감성과는 너무 다른,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었어요. 젊은 작가의 감정 과잉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리고 가장 크게 느꼈던 불만은 번역입니다. 제가 20여년 전에 이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 모리스가 첫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모리스'라고만 소개되었습니다. '모리스 교이치'라는 전체 이름이 아니라요. 그래서 '모리스'도 다른 연구회원들과 마찬가지로 유명 추리 작가의 이름을 딴 닉네임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모리스가 밴 다인이었다는게 드러나는 마지막 장면의 충격이 더 컸습니다. 그러나 이번의 번역 버젼은 그런 맛은 부족합니다. 당연하지요. 모리스 르블랑과 밴 다인은 같은 사람일 수 없지만, 모리스 교이치는 밴 다인일 수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클로즈드 서클의 정수를 보여주면서도 독자까지 완벽하게 속이는 완벽한 완전 범죄물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계속 회자되고, 미디어 믹스가 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지요. 추리소설을 좋아하신다면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2006/12/10

전설의 자유 추리 문고 Update

이전에 포스팅 한 이후, mrkwang님이 보유하신 책을 불하(?) 받아 이빨을 좀 채워넣을 수 있었습니다.

형!^^ 감사합니다.

업데이트 된 부분은

10 : 독 초콜렛 사건 - 버클리 콕스
17 : 말더듬이 주교 - 얼 스텐리 가드너
24~25 : 카나리아 살인사건 - 반 다인
26 : 눈먼 탐정 캐러더스 - 브래머
27 : 포튠을 불러라 - 베일리

입니다.

26, 27은 정말 보물을 얻은 듯한 책이라 너무 기쁘네요.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고 "이와 손톱", "주정꾼 탐정"을 구할때 까지 노력은 계속됩니다. 쭈~욱.

2007/08/24

도중의 집 - 엘러리 퀸 / 김민영 (자유추리문고 35-36) : 별점 2.5점

중간지점의 집
엘러리 퀸 지음, 현재훈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10여년만에 우연히 변호사인 친구 빌 에인절을 만난 엘러리 퀸은 빌 에인절의 처남이 살해되는 사건에 휘말렸다. 엘러리 퀸은 기억을 더듬어 빌의 처남 조지프가 사실은 이중결혼 생활 중인 사기꾼(?)이라는걸 밝혀 냈지만, 그의 생명보험 및 이중결혼에 대한 배신감이라는 동기가 부각되어 빌의 여동생 루시가 용의자로 지목되었다. 빌은 루시의 재판에서 스스로 변론을 맡아 뛰어난 솜씨를 보여주지만 재판에 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엘러리는 포기하지 않고 사건 수사를 계속 하는데...

엘러리 퀸 시리즈에서 중간정도 시점에 위치하는 작품입니다. 약간 긴 장편으로 독자에게의 도전이 담겨있는 등 정통 추리물을 표방한 작품이기도 하죠.

개인적으로 몇번 이야기했지만 잘난척 하는 탐정을 싫어해서 엘러리 퀸 시리즈는 썩 좋아하지는 않으나(물론 반 다인에 비한다면야 장난 수준이지만) 그래도 정통의 맛이 잘 살아있다는 점에서는 제 취향이라서 구할 수 있으면 대체로 읽는 편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완독까지 제법 시간이 걸렸네요. 그닥 유명하지도 않고 해서 애써 구해보지 않은 탓이죠.
읽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이 작품 역시 잘난척 하는 모습이나 유식함을 자랑하는 미사여구가 남발하는 등 여전히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그나마 엘러리 퀸의 조금은 색다른 면모 (플레이보이?) 가 보이며, 엘러리의 친구 빌의 로맨스에 대한 묘사가 특이하긴 합니다. 작품에 크게 중요한 요소도 아니고 그다지 잘 표현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말이죠.

사실 이 작품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엘러리 퀸 작품에서 보기 힘든 "법정 드라마" 적인 요소가 굉장히 많다는 점입니다. 당시 법정물이 유행은 유행이었던 모양이네요. 어쨌건 법정씬이 중반부에서는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만큼 분량도 많지만 변호사와 검사간의 논리대결 역시 타 법정물에 그다지 밀리는 수준이 아니라서 무척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유력한 증거"와 "상황 증거"의 차이를 가지고 벌어지는 한판 승부가 무척 재미있었던 덕분입니다. 배심원 제도에 대한 비판도 눈에 띄고요. 그리고 추리적으로는 이름난 정통파 답게 모든 단서를 독자에게 공정하게 제공하면서 논리적으로 사건을 풀어간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그런데 엘러리 퀸 답지 않게 결정적인 단서가 지나칠 정도로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좀 아쉽습니다. 물론 교묘하게 단서를 숨겨놓기는 했지만 조금만 찬찬히 읽어본다면 확인할 수 있기에 숨겨놓는 방법에서 조금 실패한 느낌이거든요. e-Book 시대가 되어 검색이 용이해진다면 좀 문제가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아울러 범인을 밝히는 "추리쇼"가 너무 작위적이었다는 것 역시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래도 여전한 고전 정통파적인 면모는 느껴지며 작품의 수준 역시 범작 수준은 되는, 재미있게 읽을 만 한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제목도 멋드러지고 번역이 잘 된 것 같지는 않지만 어느정도 번역자의 의지(?)가 느껴지는 것도 인상적이고요. 제 취향은 아니라는 것 하나만 문제였달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2023/09/01

본격 미스터리의 진수를 만끽! 흉내내기 (따라하기) 살인을 테마로 한 걸작

honto 북트리 서비스를 통한 추리 소설 추천. 모두 국내 소개된 작품입니다. 구하기도 별로 어렵지 않고요. 하지만 언제나처럼 일본 추리 소설 소개가 많은게 아쉽네요. <<옥문도>>나 <<묵시록의 여름>>은 소개되어도 무방한 수작이지만, <<명탐정에게 장미를>>은 참고 보기 어려운 졸작이었거든요. 이보다는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지고 유명한 <<장미의 이름>>이 대신 선정되는게 맞을 것 같습니다.
   
'흉내내기 살인'은 동요나 시, 전설이나 이야기에 빗대어 살인을 저지르거나 살인 현장에 장식을 하는 것을 말한다. 범인은 왜 그런 번거로운 일을 해야 하는가? 그 동기와 목적이 핵심이며, 정통 미스터리의 진수와 매력을 만끽할 수 있다. 그래서 여기서는 흉내내기 살인을 주제로 한 미스터리 소설의 명작들을 소개한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 애거서 크리스티
절해의 외딴섬이라는 폐쇄된 서클, 서로를 모르는 초대 손님들, 만찬 자리에서 밝혀지는 범죄, 마더구스의 가사대로 죽어가는 살인, 줄어드는 인형들.... 이 책에서 아가사 크리스티는 후대에까지 이어지는 다양한 요소들을 확립했다. 미스터리 소설의 최고 걸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금자탑 같은 작품이다.

"비숍 살인사건" - 반 다인
'누가 코크 로빈을 죽였지?'라는 유명한 구절로 시작하는, 마더구스 동요에 빗대어 벌어지는 연쇄살인 사건에 탐정 파일로 밴스가 도전한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보다 먼저 발표되어 동요 살인, 흉내내기 살인의 효시로도 유명. 미스터리 소설의 고전 걸작으로 항상 손꼽히는 작품이다.

"명탐정에게 장미를" - 시로다이라 쿄
"메르헨 난쟁이 지옥"이라는 동화가 미디어에 소개된 뒤, 이를 모티브로 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2부로 구성된 이 책은 1부만으로도 훌륭한 본격 미스터리를 맛볼 수 있지만, 2부에서 분위기가 확 바뀌는데, 2부부터가 메인이다. 기억에 남는 한 권이 될 것이 분명한,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명작이다.

"옥문도" - 요코미조 세이시
거장 요코미조 세이시가 <<비숍 살인사건>>과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서 영향을 받아 일본답게 '병풍에 쓰여진 하이쿠'를 바탕으로 완성시킨 추리 미스터리. 명탐정 긴다이치 고스케가 옥문도라는 외딴 섬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 사건에 도전한다. 작가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명작이다.

"묵시록의 여름" - 가사이 기요시
밀실 살인, 비보 전설 등 다양한 미스터리 요소가 산재되어 있는 현상학 탐정 야부키 카케루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 남프랑스를 배경으로 요한계시록에 빗댄 살인이 벌어진다. 다소 난해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만, 이를 포함한 독특한 분위기가 매우 매력적이어서 본격 미스터리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시리즈 1편부터 읽는 것을 추천한다.

2010/02/03

하우미스터리선정, 2009년 올해의 추리소설!

http://www.howmystery.com/zeroboard/zboard.php?id=news&no=215

국내 최고의 추리소설 사이트인 하우미에서 총 36명의 사이트 방문자를 대상으로 선정한 2009년 올해의 추리소설 리스트입니다. 표본수가 적긴 하지만 나름 의미있는 자료라 생각되네요. 1, 2위를 모두 읽지 않았는데 더 늦기 전에 챙겨봐야겠군요. 어쨌건 <경성탐정록>이 쟁쟁한 작품들을 뒤로하고 당당 4위에 랭크되었다는 것이 제일 기쁩니다!
상세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집계기간 : 2009년 12월 08일 - 2010년 1월 31일
참여자 수 : 36
방식 : 1인 3권 추천


1위 총 15표 <차일드44>, 톰 롭 스미스, 노블마인

2위 총 9표 <심플 플랜>, 스콧 스미스, 도서출판 비채

3위 총 8표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야마구치 마사야, 시공사

공동 4위 총 6표
<고백>, 미나토 가나에, 도서출판 비채
<경성탐정록>, 한동진, 북홀릭

공동 6위 총 5표
<내가 죽인 소녀>, 하라 료, 도서출판 비채
* 제가 읽은 건 구판입니다.
<마인>, 김내성

공동 8위 총 4표
<녹색은 위험>, 크리스티아나 M. 브랜드, 시작
<구부러진 경첩>, 존 딕슨 카, 고려원북스

공동 11위 3표
<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 윌리엄 아이리시, 자음과 모음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상)>, 마쓰모토 세이초, 북스피어

공동 13위 총 2표
<파일로 밴스의 정의>, S.S.반 다인, 북스피어
<기울어진 저택의 범죄>, 시마다 소지, 시공사
<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 데니스 루헤인, 황금가지
<은폐수사>, 곤노 빈, 시작
<블러드 워크>, 마이클 코넬리, 랜덤하우스코리아
<시인>, 마이클 코넬리, 랜덤하우스코리아

이하 1표 획득작
<경관의 피>(상하), 사사키 조
<검은 화집>(상중하), 마쓰모토 세이초
<다이도지 케이의 사건 수첩>, 와카타케 나나미
<두 번째 총성>, 안소니 버클리
<명탐정 홈즈걸의 책장>, 오사키 고즈에
<천사의 나이프>, 야쿠마루 가쿠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2, 에도가와 란포
<벨벳의 악마>, 존 딕슨 카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히가시노 게이고
<무덤으로 향하다>, 로렌스 블록
<새크리파이스>, 곤도 후미에
<신주쿠 상어>, 오사와 아리마사
<유대인 경찰 연합>(2권), 마이클 셰이본
<이니시에이션 러브>, 이누이 구루미
<루피너스 탐정단 시리즈 - 우수, 당혹>(2권), 쓰하라 야스미
<목소리>,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어제의 세계>, 온다 리쿠
<레전드>, 로버트 리텔
<46번째 밀실>, 아리스가와 아리스
<방해자>(3권), 오쿠다 히데오
<밤의 의미>, 마이클 콕스
<위철리 가의 여인>, 로스 맥도널드
<악몽의 관람차>, 기노시타 한타
<주석 달린 셜록 홈즈> 2권, 아서 코난 도일-레슬리 S. 클링거

2003/06/21

악의 기원 - 엘러리 퀸 : 별점 3.5점

악의 기원 - 8점
엘러리 퀸 지음/시공사
어떤 작품을 읽더라도 기본 이상은 해 주는, 어느 정도 기대를 가지게 하는 작가들이 몇 명 있습니다. 저에게는 크리스티 여사님이나 반 다인, 딕슨 카 만큼이나 엘러리 퀸 역시 그러한 작가 중 한명이죠. 그러나 이 작품은 국명시리즈나 라이츠빌 시리즈하고는 다른 시기별로는 '헐리우드시기'라고 불리우는 후반기 장편으로 걸작이나 유명한 작품은 거의 초중기에 몰려있기 때문에 아무리 엘러리 퀸이지만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허나 역시 명불허전이랄까요? 제목 '악의 기원'에 걸맞게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인용해가며 헐리우드의 거물 보석상 살인/협박사건을 차분히 해결해 나가는 엘러리의 모습은 전성기 못지 않은 흥분과 재미를 불러 일으키는 걸작이라 할 수 있겠네요.

다 읽고 나서 생각해 보니 트릭이 조금 억지스러운것 같기도 하고 범인역의 설정도 황당한 면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읽는 동안은 눈을 떼기가 힘들 정도의 재미를 주는 멋진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엘러리 퀸의 팬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니 아직 읽지 않으신 팬 분들께 권해드립니다.

2005/05/08

문신 살인사건 - 다카기 아키미쓰 / 김남 : 별점 3점

문신 살인사건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김남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전쟁 직후 패전의 상처가 아직 가시지 않은 일본, 남방 필리핀에서 생환한 도쿄대 의학부 출신의 마쓰시타 겐조는 우연찮게 문신을 한 사람들로 조직된 "에도 조용회"라는 단체의 총회에서 등에 오로치마루의 문신을 새긴 기누에라는 여인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당대의 유명 문신사 호리야스의 딸로 그 문신은 도쿄대의 문신 수집가 하야카와 박사도 눈독을 들이고 있는 중이었다. 

첫 만남부터 겐조를 유혹하던 그녀는 생명이 위험하다는 수수께끼같은 말과 함께 각각 "지라이야"와 "쓰나데히메"의 문신을 새긴 오빠와 쌍동이 동생의 사진을 전해 주었다. 전갈을 받고 아침 일찍 그녀의 집을 방문한 겐조는 우연히 만난 하야카와 박사와 함께 집 안 밀실인 목욕탕 안에서 그녀의, 몸통이 사라진 시체를 발견했다.

겐조의 친형이자 경시청 수사과장인 에이이치로는 기누에 주변 인물에 대한 조사를 펼쳐 정부인 모가미 다케조를 지명 수배했지만 다케조마저 빈집에서 시체로 발견되었고, 겐조가 사건을 알려준 후 독자적으로 조사하여 진범을 파악한 기누에의 친오빠 노무라 쓰네타로까지 살해당하고 말았다. 

사건이 미궁에 빠지자 노무라의 죽음에 책임을 느끼던 겐조는 "천재"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선배 가미즈키 요오스케에게 도움을 청하는데...

다카기 아키미쓰의 대표작입니다. 도대체 언제쯤 번역되나 기다리고 있던 작품이죠.

간략한 줄거리만 본다면 일본 특유의 변격물 취향이 짙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변격물로서만이 아니라 정통 추리물과의 절묘한 결합에 성공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변격물 특유의 엽기적인 살해방식이나 기괴한 묘사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다른 변격물처럼 범죄의 엽기성에 주목하지 않고, 정통 추리물 특유의 트릭과 사건 전개 및 해결 방식을 잘 결합하여 완성도 높은 작품이 된 것이지요. 범인이 지극히 이성적이고 냉철한, 머리가 좋은 인물이라는 설정, 세 건의 사건 중 제일 첫 번째 사건처럼 "밀실 안에서 몸통이 사라진 시체"라는 엽기적인 사건 내면에 왜 몸통이 없어져야만 했는지?에 대해 나름의 합당한 이유를 잘 조합한 점이 그러합니다. 이러한 특징을 놓고 본다면, 변격+전통 추리가 교묘하게 얽힌 현대 일본 추리 문학의 원조격인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하지만 전체적으로 트릭 자체의 완성도, 그리고 설득력은 약간 떨어지기는 합니다. 세 건의 살인 사건 중에 그나마 트릭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첫 번째 사건 뿐이고, 나머지 사건은 경찰의 조사가 보다 세밀했다면 밝혀낼 수 있는 것들이기도 하고요. 사건이 미궁에 빠지게 된 결정적 이유도 겐조의 결정적 실수 뿐 아니라 경찰의 수사 미숙이 한몫 단단히 한다는 점도 조금 아쉽습니다. 

동기가 워낙에 명확해서 범인을 특정하기가 쉽다는 약점도 크며, 탐정인 가미즈카 요오스케가 독특한 천재성을 가진 안락의자형 탐정으로 설명되지만 묘사도 부족하고 극적인 맛이 떨어져 정통 추리소설의 가장 큰 재미 중 하나를 놓치는 기분이 듭니다. 가미즈카 요오스케의 등장이 소설 후반부에서나 이루어지는 탓도 크지만 여러모로 탐정보다는 화자에 가까운 겐조의 묘사가 상대적으로 더 세밀하고 재미있을 정도에요! 범인을 알아내기 위한 용의자들과의 도박, 바둑, 장기를 통한 심리 분석 역시 반 다인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 독특함은 부족했고요. 최소한 작가의 다른 시리즈 캐릭터 사부로 검사 정도의 매력이라도 표현해 주었으면 추리팬으로서는 더욱 즐길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아쉬움을 더한다면 이른바 지라이야-오로치마루-쓰나데히메의 3자견제에 대한 내용은 지극히 일본적인 설정이라서 도판으로 설명을 도와주는 배려가 필요했습니다. "문신에서의 3자견제는 금기다!"라는 설정이 굉장히 중요하게 쓰이니까요. 개인적으로는 만화 "나루토"에서 한번 접해 보아서 이해가 좀 빠르긴 했습니다만, 일반적으로는 잘 모르는 내용이잖아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그동안 쭉 읽고 싶었던 작품을 완독한 후련함도 크고, 출간 당시에는 당시 일본 추리계의 어떤 매너리즘같은 것을 깨고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걸작이었을 수 있겠지만, 지금 읽기에는 약간 낡았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듭니다. 재미있지만 시대를 뛰어넘는 걸작으로 보기는 어렵네요.

그나저나 이제 "흑사관 살인사건"도 읽어 봐야 할텐데 당쵀 엄두가 나질 않는군요.

2013/01/06

1930년대 한국 추리소설 연구 - 오혜진 : 별점 3점

1930년대 한국 추리소설 연구 - 6점
오혜진 지음/어문학사

193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 추리소설이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어떠한 문학적 위상을 지녔는지를 알려주는 논문집.

1930년대 추리소설이 유행하게 된 배경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총독부의 언론 장악이 강하게 이루어졌고, 언론이 경쟁 과열 등으로 급격하게 상업화가 진행되어 독자의 흥미를 강하게 끌어당기는 글들이 많이 퍼질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시대적, 사회적 배경 하에서 추리소설이 어떻게 등장하고 어떻게 발전되었는지를 김동인, 최독견, 방인근, 염상섭, 박태원, 김유정, 김내성 등 당대 유명 작가와 그들의 작품, 그리고 기타 다양한 자료와 인용문을 통해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처음 접하는 작품들이 다양하게 소개되는 것이 큰 장점인데, 이 중에서도 개인적으로는 김동인의 "수평선 너머로"가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상하이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얻기 위해 급파된 서인준과 뉴욕에 본부를 둔 범죄집단 LC당이 윤백작 공채를 둘러싸고 대결을 벌이고, 이를 형사 이필호가 쫓는다는 이야기로 스파이 모험소설의 서사를 갖춘 작품인데, 줄거리만 봐도 아주 재미있을 것 같더군요.

또한 1940년대로 넘어가면서 김내성이 친일문학에 손을 대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된 사실입니다. 유불란이 적국 스파이와 대결한다는 "태풍", 그리고 결국에는 유불란이 이름부터 친일스러운 "애국방첩협회" 회장으로 등장하여 미·영의 스파이와 대결한다는 "매국노"라는 작품 발표로 이어졌다고 하는데, 이건 뭐 면죄부를 줄래야 줄 수 없네요.

그 외에도 당시 추리서사의 작품들이 유행하였고 유명 작가들도 많이 창작하기는 하였으나, 대중문학이라서 순수문학에 비해 평가절하당하고 냉대받았다는 것, 동아일보에서 (1934.3.6~7) 세계 10대 탐정 작가로 소개한 작가들의 이름들(오픈하임, 르블랑, 췌스터턴, 반 다인, 필립 포츠, 엘러리 퀸, 프리먼, 레오나드 메릭, 프레챠, 비-스톤), 조선뿐 아니라 일본 추리문학을 짤막하게 소개하는 글들(그중에서도 1918.7.7 중앙공론 정기증간호를 통해 "비밀과 개방"의 '예술적 탐정 소설' 특집이 발표되었으며, 여기에 타니자키 준이치로의 "두 예술가의 대화"(금과 은으로 개제), 사토 하루오의 "지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개화의 살인", 사토미 톤의 "형사의 집"이라는 유명 작가 작품이 실렸다는 사실!) 등 유념해서 볼 만한 내용이 많았습니다.

논문집이기에 단지 재미만 따지기는 어렵고, 2만 원에 가까운 가격이 부담스럽기는 하나, 식민지 조선에서의 추리소설이 어떤 시대적·사회적 배경 아래에서 어떠한 작가들에 의해 어떻게 창작되었는지 궁금하신 분들이라면 놓치지 말아야 할 책이라 생각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조선의 탐정을 탐정하다"와 함께 읽으면 더욱 좋을 것 같네요.

2014/12/09

파리인간 - 한스 올라브 랄룸 / 손화수 : 별점 2.5점

파리인간 - 6점
한스 올라브 랄룸 지음, 손화수 옮김/책에이름

아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에 저항하는 군인으로 활약했고, 전후 고위 관직도 역임했던 하랄 올레센이 자택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수사 총 책임자로 임명된건 콜비외른 크리스티안센 경감이었다. 경감과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랑나르 보르크만 교수는 경감에게 자신의 딸 파트리시아로부터 조언을 받아보라고 권했다. 그녀의 뛰어난 추리력을 알아챈 크리스티안센은 그녀와 함께 사건 해결에 나서는데...

노르웨이 작가의 추리소설. 원래 북유럽 쪽 추리소설은 취향이 아닌데 평이 굉장히 좋았기에 읽게 되었습니다.

여러모로 제 예상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우선, 정통 본격물 느낌이라는게 의외였습니다. 북유럽 추리소설이라서 "웃는 경관"이나 발란더 시리즈와 같은 묵직한 수사물이 아니면 요 네스뵈로 대표되는 스릴러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요. 첫 사건인 하랄 올레센 살인사건에 사용된 밀실 트릭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현대에 쓰여진 작품이지만, 시대 배경이 1968년이라 비교적 고전적인 추리가 사건 수사에 동원될 여지가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작품에서는 보기 드물게 범인이 가짜 범인을 조작하는 과정이 등장한 점도 고전 정통 본격물 스타일이라 할 수 있으며, 여러 증언들을 정교하게 배치하여 진상까지 끌고 가는 전개도 잘 짜여져 있습니다.

이러한 고전적 추리 스타일에 더하여 전쟁영웅인 줄로만 알았던 하랄 올레센의 과거가 아파트 거주민들을 통해 하나씩 밝혀지는 과정도 흥미진진합니다. 2차대전 중 국경지대 안내인이 자기 방어를 위해 두 명의 유대인 부부를 사살한 후 무죄 판결을 받았던 펠드만 사건에서 영감을 얻었다는데, 역사학자라는 작가의 특징이 잘 발휘된 셈입니다. 안데르손에게 듣는 하랄과 디어풋의 목숨을 건 탈출 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이야기가 될 정도로 박진감이 넘치는 등 디테일도 볼거리가 많습니다.

탐정역의 천재 소녀 파트리시아도 특이했습니다. 발로 뛰는 형사와 장애가 있어 칩거하는 천재 조합은 전형적인 안락의자 탐정물 설정이면서 링컨 라임 시리즈와 똑같아서 아주 신선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추리 소설을 백여 권 읽은 추리 소설 매니아라는 설정만큼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저 역시 추리 소설 애호가라서 더 마음에 들었던 것 같네요. 처음 만났을 때 책상에 놓인 책 중 한 권은 스텐리 엘린의 작품이라는 디테일도 돋보였습니다(1968년은 "발렌타인의 유산"이 발표된 해이기도 하죠). 그냥 설정으로 끝내는게 아니라 매니아답게 여러 가지 추리 소설을 응용하며 대화를 펼치는 점도 좋았어요. 아이 울음소리를 불평한 주민이 있었는지를 물어보며 셜록 홈즈를 흉내 내는 식으로요. 중반부에 공소시효가 끝난 뒤 벌어진 동일한 범죄를 다룬 조르주 심농의 작품을 언급한 것도 기억에 남는데, 무슨 작품일까 궁금해집니다. 물론 추리소설 백여 권 읽은 걸로는 매니아계에 명함도 내밀지 못할 수준이라 생각되기는 합니다만...

그러나 작가의 데뷔작이기 때문일까요? 아쉬운 부분도 많이 보입니다. 가장 아쉬운 것은 정통 추리물의 스타일을 따르고는 있지만 실제 추리적으로는 그렇게 잘 짜여져 있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모든 인물들이 하랄과 엮여 있다는 인간 관계는 작위적이며, 주요 인물들의 증언이 거의 모두 거짓이기 때문에 공정한 정보를 제공해 주지도 못합니다. 처음에 등장하는 밀실 트릭도 반 다인의 작품 등에서 이미 선보였던 고전적인 트릭에 지나지 않아 참신함이 부족해요. 레코드판이 아니라 테이프를 사용하는 정도만 차이가 있을 뿐이지요. 수준도 유치하고요. 마지막에 모든 주요 인물들 앞에서 펼치는 추리쇼라는 작위적 설정까지 고전적 스타일을 답습했어야 했는지는 솔직히 의문입니다.
또 비록 이십여 년이 지났지만 사진까지 있는데 디어풋의 정체를 알아채지 못한다는건 이해하기 어렵더군요. 범인이 원래 계획대로 자살을 위장한 완전범죄를 벌이지 않은 이유도 모르겠고요. 총도 새로 구해왔으니 모든 준비가 끝난 것 아닌가요?

그 외에도, 사라의 미모와 크리스티안과의 불륜은 지나치게 과하게 묘사된 듯 싶었어요. 할리퀸 로맨스 성인버전을 읽는 기분이었으니 말 다했죠. 휠체어에 앉아있던 장애인의 정체가 드러나는 마지막 장면 역시 슈퍼맨 크리스토퍼 리브가 출연했던 수작 스릴러 "서스피션" 등 여러 작품에서 숱하게 등장했던 것이라 진부했고요. 

그래도 이 정도면 꽤 괜찮은 데뷔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추리적인 완성도가 미흡하여 별점은 2.5점입니다만, 읽히는 재미만큼은 충분하므로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께서는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