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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01

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 - 코넬 울리치 / 이은경 : 별점 2.5점

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 - 6점
코넬 울리치 지음, 이은경 옮김/단숨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경찰 숀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미모의 여인을 구했다. 그녀 진 레이드는 아버지 할란 레이드가 기묘한 예지 능력자 톰킨스에게서 시한부 선고를 받은 후 삶이 지옥에 빠진 탓에 자살하려 했다고 털어놓았다.
숀은 그녀를 돕기 위해 상관 맥마너스에게 사건을 보고했고, 맥마너스는 여러 부하들을 선발해 사건의 뒤에 숨은 진상을 밝혀내려 하는데....

우리 모두 혼자야. 우리들 모두 각자라고. - 톰킨스. 아버지의 삶이 3주밖에 남지 않았다는 예언을 들은 진이 아버지가 혼자여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자 하는 말.

윌리엄 아이리쉬라는 필명으로도 유명한 코넬 울리히(울리치)의 대표작 중 한 편입니다. 전통적인 하드보일드와는 거리를 둔, 그야말로 "느와르"라고 할만한 작품입니다.

대표작에 걸맞게 작가의 특징이 유감없이 발휘되어 있습니다. 1차원적인 폭력적인 묘사는 거의 전무하며, 감성을 자극하는 특유의 묘사력으로 사람의 마음을 섬찟하게 만드는 심리 서스펜스 중심이라는 점에서요. 특히 어둠에 대한 공포심을 그리는 묘사가 압권입니다. "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는 제목이 좋은 예입니다. 밤하늘의 별들을 눈에 비유하여, 밤을 두려워하는 여인의 심리를 묘사했는데 정말 멋드러진 글이라 생각됩니다.

시대를 앞서간 오컬트 설정, 즉 톰킨스가 정말로 예지 능력자였다는 것도 볼거리에요. 초반에 진과 레이드 부녀가 그의 기묘한 예언에 처음으로 마주하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톰킨스는 부녀에게 기묘한 예언 - "무릎에 다이아몬드 시계를 찬 저녁 만찬 손님들에게, 주식 중개인에게, 그리고 주식 매입을 위해 어서 돌아가시오. 그리고 가는 길에 어떤 여자아이를 부딪쳐 쓰러뜨리지 않도록 주의하시오." - 을 남기는데 그 예언이 하나씩 사실로 판명되죠. 아주 놀라우면서도 독자를 사로잡는 부분이었어요. 무릎에 다이아몬드 시계를 찬 이유는 정말 생각도 못했네요.

그리고 2부에서 예언을 사건으로 처리하려 하는 맥마너스의 지시와 그를 따르는 부하들의 활약과 이에 따른 전개도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당신은 사자의 아가리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거요."라는 레이드의 죽음에 대한 예언을 토대로 사자에 대해 조사할 것을 부하 한명에게 지시하는데, 실제로 서커스 사자가 탈주하는 사건이 일어나는 식이거든요. 심지어 이 사건은 한 남자가 자신의 아내를 살해하려 한 범죄와 관련되어 있기도 하고요!

사건이 단순한 예언이 아니라 레이드의 재산을 노린 음모가 얽혀 있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톰킨스 집 근처에 잠복한 두 명의 형사에 의해 밝혀지는데, 이렇게 예언에 관련된 사건의 또 다른 진상이 밝혀지는건 정통 수사물을 보는 맛도 제법 느껴졌습니다. 그만큼 잘 짜여져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너무 오래된 탓일텐데 지금 읽기에는 묘사가 너무 장황하고 지루한 감이 크다는 단점은 큽니다. 맛있는 것도 너무 많이 먹으면 물리듯 아무리 좋은 묘사라도 끝도 없이 이어지니 지루했습니다. 이런 장황한 묘사에 대한 설득력도 부족합니다. 예를 들자면 진이 밤을 두려워한다는 설정을 들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떠나갈 것을 두려워하기에 하루하루, 일분일분이 소중할 수는 있지만 딱히 밤이 두려울 이유는 없으니까요. 시간이 지나는 건 낮이든 밤이든 상관없잖아요? 차라리 시계를 무섭다고 하던가. 이런 설정과 묘사는 다소 공허함을 남깁니다.
그리고 2부의 내용 대부분은 몇 시간 남지 않은 삶으로 괴로워하는 레이드, 그리고 그를 보며 괴로워하는 진과 숀에 대한 묘사로 채우는데, 이렇게까지 절대적으로 절망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날의 기묘한 저녁 만찬과 룰렛 도박은 뜬금없기 그지없었고요. 그야말로 오래된 작품이라는 티가 팍팍 났달까요?

무엇보다 마지막은 정말 최악입니다. 자정이 되자 레이드가 착란을 일으켜 사자가 그려진 스테인드글라스에 뛰어들어 자살을 한다는건 너무 편의주의적인 발상이었습니다. 우리나라 드라마의 기억상실 설정이 떠오를 정도였어요. 저택 입구의 사자상이나 스테인드글라스를 써먹어 레이드를 죽일 것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대충 마무리할거라곤 정말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최소한 외부에서의 공격, 예를 들어 음모를 꾸민 월터 마이어스가 톰킨스와의 만남 이후 저택에 침입하여 레이드를 살해하려 한다는 정도의 장치는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군요.

덧붙여, 단점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톰킨스의 예지 능력이 사실이었다는 설정은 조금 허무했습니다. 예지한 것들이 인간의 힘으로 조작하기 어려운 것들이 존재하기에 (대표적인 것이 무릎에 다이아몬드 시계를 차는 것이겠죠) 당연했지만, 이 탓에 서스펜스 스릴러라기보다는 오컬트 호러에 가까와 지고 말았습니다. 그런 그가 마이어스에게 휘둘린다는 것도 말도 안되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거장의 대표작으로 "느와르"가 무엇인지 한껏 느낄 수 있긴 합니다만 지금 읽기에 지루한 부분이 많기에 감점합니다.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께서는 이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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