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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03

세인트 메리의 리본 - 이나미 이쓰라 / 신정원 : 별점 2.5점

세인트 메리의 리본 - 6점 이나미 이쓰라 지음, 신정원 옮김/손안의책

출판사 손안의 책과 국내 최고의 미스터리 동호인 커뮤니티인 하우미의 콜라보레이션 기획물 '하우미 컬렉션'의 첫번째 작품. 하우미에서 기획을 담당했다기에 하우미 회원으로 안 읽을 수가 없더군요 아니, 외려 읽는게 늦었다 싶네요. 이나미 이쓰라의 단편집으로 표제작 외 5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우미 컬렉션이라는 기획물 의도에 적합한 작품인지 의문이 드네요. '추리물' 이라고 부를만한 작품은 딱 한편, 표제작인 <세인트 메리의 리본>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세인트 메리의 리본> 역시 주인공이 탐정일 뿐, 정통 추리물로 보기에는 무리에요.

그래도 다행히 작품 하나하나의 재미는 비록 편차가 있기는 하나 나쁘지는 않습니다. 기존에 읽어왔던 일본 추리물과도 확연히 구분되는 장점도 명확하고요. 그것은 바로 주인공들이 모두 '진짜 사나이' 들인, 묵직한 남자 소설이라는 점입니다. 남자 소설이라고 주장하는 작품들은 많습니다만, 보통은 남자의 탈을 쓴 폭력 성향 가득한 마초들이 대부분이죠. 그에 반해 이 책 속 남자들은 배려할 줄 알고 심지가 굳은, 진짜 사나이들입니다. 그들에 대한 묘사 역시 정말 매력적으로 작가가 이런 남자를 그리고 싶었다는게 문장 하나하나에서 느껴질 정도에요.

이렇게 작가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썼구나! 싶은 부분은 또 있습니다. 바로  이야기가 아니라, 특정 장면, 상황에 집중한다는 것으로 <모닥불>과 <종착역>이라는 작품이 그러합니다. 어떤 이야기에서 가장 재미있는 핵심 장면만 뽑아내서 작품을 쓴다는 발상은 정말 기발하네요. 단 이야기가 완결되지 않는다는 문제를 지니고 있긴 합니다. 긴 이야기의 일부만 읽는 것과 마찬가지거든요.

여튼 결론내리자면 전체 평균 별점은 2.5점 정도.장점과 단점이 명확한데 제게는 장점 쪽이 더 많았습니다. 작품 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모닥불>
남의 여자와 도망치던 남자는 여자가 죽은 후에도 계속 쫓기다가 한 노인의 오두막까지 오게 되는데...

도주하는 남자, 그리고 개의 행동과 밭을 밟지 않으려는 남자의 행동을 보고 그가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간파한 노인이 등장하는 소품. 노인이 남자를 쫓는 조직원들을 고수의 풍모를 보이며 한방에 제압하는 장면이 카타르시스를 안겨다 줍니다. 짧지만 화끈한 액션에 더해 총에 대한 묘사도 아주 탁월하고요. 주머니에서 방아쇠를 당길 셈이라면 리볼버를 써야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요. 그냥 나가기만 하면 될 것 같은데 말이죠.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대로 이야기가 완결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큽니다. 남자가 도주하게 된 자세한 사정이라던가, 이후 남자가 어떻게 되고 노인이 어떻게 되는지는 전혀 등장하지 않거든요. 무대가 어디인지, 누가 선인지 악인지도 설명되지 않고요.

그래도 딱 한 장면만으로도 깊은 인상을 남기는, 묵직한 남자 소설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하나미가와의 요새>
지바의 알려지지 않은 강 주변에서 우연히 전쟁 당시의 토치카를 발견한 사진작가 마쓰무라는 토치카에 머무는 포 할머니와 하라다와 만난 이후 시공을 초월하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사진작가 마쓰무라가 전쟁 당시 극적인 비밀 계획을 목격한다는 일종의 타임 슬립물.
보통 이런 류의 소설이라면 패망한 일본군 수뇌부가 재물을 옮기는 것을 빼돌리려는 하라다 조장의 작전과 이와 맞물려 진행되는 동물원 동물 탈주 계획이 핵심일테죠. 허나 이 작품에서 이러한 작전은 거의 언급만 되는 수준으로 증기 기관차의 질주, 질주하는 열차 주변에서 벌어지는 활극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묘사에 있어 매력이 철철 넘치고요.


그러나 단점은 전작과 동일합니다. 전작보다야 이야기로의 완결성은 있습니다만... 타임 슬립의 이유가 무엇인지, 포 할머니의 정체가 무엇인지, 빼돌린 재물과 탈주한 동물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하라다 조장은 무사한 것인지 등 상세한 설정은 뭐 하나 설명되는 것이 하나도 없거든요.

이래서야 솔직히 완성도가 높다고 보기는 어렵죠. 조금 더 길게 쓰더라도 떡밥은 모두 회수하는게 훨씬 좋았을거에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보리밭 미션>
영국 뉴베리에 있는 농장주의 남편이자 제임스는 B-17F 폭격기 진 할로호의 기장이다. 목숨을 건 작전은 성공리에 끝나지만 볼 터렛의 입구가 고장나 사수 제프 가르시아가 갖히게 된다. 착륙 직전 바퀴의 이상을 알아차리고 동체 착륙 시 제프가 죽는다는 것을 깨달은 제임스는 폭격기 기수를 농장으로 돌린다. 그리고 농장 가운데 수로 '마시의 리본'에 기체를 포개어 볼 터렛을 으스러뜨리지 않고 착륙하려 하는데...

"파일럿이 되고 싶다면, 되려무나. 남자는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걸 하면 되는 거야." 제임스. 아들 리처드가 농장주가 아니라 파일럿이 되고 싶다고 하자 하는 말.

2차대전의 독일 본토 폭격전을 그린 밀리터리 항공물로 앞부분 제임스와 리처드 부자가 농장에서 보내는 목가적인 그림과 폭격에 관련된 화약냄새 물씬나는 화끈한 묘사가 묘한 대조를 이룹니다.

작품의 매력 포인트라면 사고뭉치 제프를 구하기 위해 승무원 모두가 목숨을 거는 "전우애", 즉 "싸나이 의리"가 아주 매력적으로 묘사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거야말로 밀리터리물의 로망이죠. 결말도 해피엔딩이고요.
2차대전, 항공물, 목숨을 건 작전, 전우애와 해피엔딩이라는 점에서는 오래전 영화 <멤피스멜>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뭐 좀 뻔하기는 하지만 전 이런 이야기 아주 좋아해요!

이러한 멋진 드라마에 더해 수록작 중 유이한, 이야기의 완결성이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별점을 더 얹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종착역>
도쿄역 아카보 (철도 역내에서 승객의 화물 등을 대합실이나 차량 같은 데에 운반하는 사람) 의 우두머리인 라이조는 고향 산림에 펜션과 양로원을 짓겠다는 꿈이 있다. 그러나 억 단위의 돈이 필요한 현실 앞에 좌절한 상태. 그러던 중, 야쿠자가 운반하는 현금의 존재를 우연찮게 알게된 후 몰래 빼돌리게 되는데...


도쿄역에 대한 세밀한 묘사라던가, 뭔가 사연이 있어보이는 사나이 라이조에 대한 묘사 등 작가의 글 솜씨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작품.

허나 돈을 빼돌리는 과정의 디테일 외에 라이조가 계획에 성공했는지, 야쿠자들이 어떻게 나올지 등이 설명되지 않는 미완성 작품입니다. 본격적인 장편이라면 첫 머리에 불과한 이야기에요. 이러한 점에서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세인트 메리의 리본>
노세 지역의 땅 3만 5천평을 소유한 류몬 다쿠. 그는 맥주를 좋아하는 애견 조와 함께 잃어버린 사냥개를 찾는 것이 주업인 사냥개 탐정이다. 그런 그에게 이치쿠라 가문의 외동딸이 잃어버린 '맹도견'을 찾는 의뢰가 들어오는데...


표제작. 이 작품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이죠. 1993년 일본모험소설협회대상 최우수 단편상을 수상하고 1994년 '고노미스'에서 3위를 차지한 작품이거든요.
하지만 탐정이 나올 뿐, 추리소설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이 많아서 아쉽습니다. 예전에 읽었던 유사 설정의 작품(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탐정으로 등장하는)<트랙커 토우마>라는 추리 만화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작품보다도 추리적으로 별로에요. <트랙커 토우마>야 말로 알려지지 못한 작품이라 안 읽어보신 분들이 많으실텐데... 이보다 못하다면 정말 심각한 수준입니다. 사건 해결 후 계화가 경위를 듣고 싶어하지만 류몬 다쿠가 거절하는 장면의 묘사, '나는 "기업 비밀입니다"라고만 대답했다. 자랑할 만큼 대단한 추리를 한 것도 아니었고, 모험도 없었을 따름이다.'라는 말 그대로일 정도거든요. 작 중에서 류몬 다쿠가 하는 일이라곤 운좋게 사건 현장 거의 대부분이 찍힌 비디오에서 수상한 트럭을 발견한 뒤, 트럭을 쫓아 집을 알아내고 개에게 냄새를 확인시키는게 전부입니다. 다른 탐정일 역시 마찬가지, 개 '조'의 후각에 의존하거나 친구로부터 들은 정보로 잠복하여 확인한다 밖에는 없어요.

물론 이런 수사가 현실적인 탐정의 수사 방법이라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쓰려면 억지스럽게 하드보일드 탐정을 엮지는 말았어야 해요. 애초에 류몬 다쿠는 거액의 재산가이기 때문에 사건에 목숨을 걸고 일희일비하는 하드보일드 탐정하고는 어울리지도 않죠.
엮으려면 이야기, 사건을 통해 엮었어야 하는데 조직 폭력배와 얽힌다는 무리한 설정으로 끌고나가는 것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사실 류몬의 땅을 노리는 센추리 흥업과 하나비시 구미의 수작질은 CCTV 설치로 충분히 막을 수 있고, 광역 폭력단 효도구미의 김계화와 엮이는건 완전 억지였으니까요.
게다가 마지막에 메리를 하나에게 선물한다는 결말은 지나칠 정도로 편의적이라 영 마음에 들지 않네요. 수임료보다 비싼 개를 턱하니 선물할 정도의 재산가가 하드보일드 탐정일리가 있겠습니까? 그냥 낭만적인 자선사업가 산사나이이죠. <캔디캔디>의 윌리엄 아저씨와 다를게 하나 없죠.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사냥개 탐정이라는 직업과 자연 속에서 생활하는 모습만큼은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류몬의 말투와 행동 하나하나 모두 멋진 사나이를 표방하고 있기도 하고요. 억지로 하드보일드 탐정물로 엮느니 그냥 산사나이의 인간 드라마로 그리는 것이 훨씬 나았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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