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16/04/05

탐정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 노버트 데이비스 / 임재서 : 별점 3점

탐정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 6점 노버트 데이비스 지음, 임재서 옮김/북스피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거대한 개 카스테어스와 함께 하는 탐정 도앤은 다른 관광객들과 멕시코의 관광지 로스알토스로 버스 여행을 떠난다. 그의 목적은 미국인 앨드리지를 찾아 모종의 행동을 하기 위함. (처음에는 부패 정치인들에게 고용되어 앨드리지가 미국에 돌아가지 않게 하는 것으로 여겨졌으나, 후에 앨드리지를 미국에 데려가기 위해 온 것으로 밝혀진다.)
허나 그가 앨드리지를 만나는 순간 로스알토스에 대지진이 덮치고, 앨드리지를 포함한 여러명의 사망자가 발생한다.
이 중 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보인 재벌 상속녀 패트리셔가 실제로는 살해된 것으로 밝혀지고, 범죄자 보티스트 보노파일을 체포하기 위해 마을을 감시하던 군인 페로나 대위가 마을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또다른 살인 사건이 벌어지는데....


마포 김사장으로 유명한 북스피어 김홍민씨의 홍보글을 통해 알게 된 책. 김사장의 홍보력이야 익히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중에서도 이 책에 대한 소개는 다른 책들보다도 호기심을 자극한 점이 있습니다. "하드보일드 소설가 레이먼드 챈들러도 노버트 데이비스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고,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노버트 데이비스의 열렬한 팬이었다."라고 소개되는데 하드보일드의 큰 형님이자 심오한 철학을 담고 있는 무게있는 작품같이 느껴졌거든요. 도저히 안 읽을 수가 없더군요.

허나 실상은 정 반대입니다. 기대와 예상을 이렇게까지 뒤집은 작품은 기억에도 몇개 없지 싶을 정도로 말이죠.
예상했던 묵직함과는 몇만광년 떨어져 있는 작품으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유쾌하고 시끌벅적합니다. 등장하는 캐릭터들도 모두 극단적이기 짝이 없고요. <스쿠비 두>가 연상되는, 거대한 그레이트 데인 카스테어스를 끌고다니는 탐정 도앤부터가 그러합니다. 학교 도서관에서 읽은 고문서를 통해 과거 개척시대 영웅 페로나 부관에게 푹 빠진 재닛은 한류스타에 빠진 일본 아줌마와 다를게 없고요. 여기에 파리 끈끈이를 발명한 부자의 상속녀 패트리셔 밴 오스델 일행과 상상을 초월하는 재앙덩어리 아들 모티머를 중심으로 한 배관 업자 헨쇼 가족, 근거없는 엘리트 의식과 자신감에 절어있는 멕시코 군인 페로나 대위 (개척시대 영웅의 직계 후손!) 등 모든 캐릭터가 좋게 말하면 한개성하고, 나쁘게 말하면 만화적이라고 할 정도로 화려합니다.
또 이러한 과장된 캐릭터들이 멕시코 휴양지 로스알토스에서 대지진, 반군과 엮인 범죄자와 은닉 무기 등의 스케일 큰 사건에 휩쓸려 좌충우돌 소동을 벌인다는 내용은  옛날 코미디 영화 시리즈 "무슨무슨 대소동", 아니면 주성치 영화를 연상케 합니다. J.M 메르의 <개를 돌봐줘>가 떠오르기도 해요. 사건이 얽혀 있는 블랙 코미디라는 점에서 말이죠.

하지만 다행히도! 단순한 블랙 코미디는 아닙니다. 소갯글이 아주 허언은 아닌거죠. 일어나는 사건들 모두 이치에 합당할 뿐더러 앞뒤도 잘 맞고, 복선도 잘 짜여져 있습니다. 재닛이 탐독한 페로나 부관의 일기와 마을의 은닉처가 연결된다는 설정이 좋은 예가 될 것 같네요. 그러고보니 무언가에 푹 빠져 있는 오타쿠가 자신의 지식을 활용해 사건 해결에 기여하게 된다!는 것인데 요 설정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는 뭔가가 나올 것 같군요.
아울러 추리적으로 상당한 수준이며, 탐정 도앤 역시 만만치 않는 명탐정이라는 것도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대지진의 와중에 상속녀 패트리샤가 사망한 사건이 사실은 살인 사건이라는 것을 순식간에 밝혀내는 장면이 대표적이죠.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기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을 적절히 이용한 것도 좋지만, 순식간에 확인한 현장의 유류물을 나중에 진상을 밝힐 때 적절히 써먹기도 하니까요. (그녀의 가방은 어디로 간 걸까요?)
유력한 용의자 그렉의 시체를 어디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하는 장면도 마찬가지. 특히 단순한 부자의 변덕으로 보인 패트리셔의 방문 목적을 셜록 홈즈 식으로 해석해 내는 것아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그건 바로 관광객들 모두 화가 프레딜립 때문에 로스알토스에 오는데 패트리셔만 그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꽤나 그럴듯 했습니다.
또 복잡한 사건을 한방에 해결하는 능력 역시 탁월합니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지만 결국 보티스트 보노파일을 죽이고, 그를 돌봐주던 흑막이 카야오 대령이라는 것도 밝히고, 패트리셔 살인사건의 진범과 실종된 그렉의 행방까지 한방에 해결해 버리니까요. 명탐정의 기본 소양이라 할 수 있는 추리쇼를 펼쳐 보이는 것도 물론이고요.

그리고 앞서 말씀드린대로,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작품과 분위기는 사뭇 다르지만 확실히 하드보일드이긴 합니다. 하드보일드의 핵심이 탐정이라면 이 작품 역시 경쟁작들에 뒤질 이유가 하나도 없거든요. 제목처럼 진실은 말한 적도 없고 - "탐정은 그럴 수만 있다면 절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고. 노상 거짓말만 늘어놓습니다. 비즈니스죠." -, 모든 것을 돈으로 바라보는 나쁜 놈인데다가 명탐정이기도 하니까요.
여기에 더해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사람 죽이는 것 역시 서슴치 않습니다. 작중 어맨다 트레이시의 말을 빌자면 "이자는 교활하거든. 아갔리 침 뱉는 것보다 쉽게 죽일 사람이야."인 거죠. 아, 당연히 말발도 아주 좋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샘 스페이드나 필립 말로우에 에이스 벤츄라를 섞은 느낌이랄까...  (아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오버스러운 설정, 작위적인 요소 때문에 조금 감점하기는 하지만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유쾌하며 추리적으로도 괜찮은 덕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어요. 비트겐슈타인이 좋아한 이유는 킬링 타임용으로 딱이었기 때문이겠죠.
세상은 넓고, 모르는 작가도 많고, 재미있는 작품도 아직 이렇게나 많다니 너무나 즐겁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신선한 작품이 많이 소개되면 좋겠습니다.

덧붙이자면, 묵직한 고전 하드보일드를 기대하고 읽는다면 실망할 수 있다는 점 꼭 참고하세요.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