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들이 본 임진왜란 - |
17~19세기 일본 에도 시대 베스트셀러였다는 오제 호안의 "다이코기", 하야시 라잔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보", 호리 교안의 "조선정벌기", 그리고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유행한 장편 역사 소설 "에혼 다이코기"를 통해 당시 일본인들이 임진왜란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설명해 주는 책입니다. 주제가 흥미로워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왜 임진왜란을 일으켰는지부터 시작하여, 전쟁의 전초기지인 나고야성 건립,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를 중심으로 한 전쟁 서사, 명나라 원군의 출정과 화의 시도, 정유재란과 히데요시의 죽음, 그리고 전쟁의 종결까지를 순차적으로 설명해 주는데,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 많아 특별히 새로운 정보는 없었습니다. 시각의 차이는 존재해도, 역사적 사실 자체는 크게 다르게 다루어지지는 않은 탓입니다.
그래도 인상적인 부분이라면, 통역에 대한 설명이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전쟁 중이니만큼 통역은 필수였고, 쓰시마번의 소 요시토시가 보유한 통역뿐 아니라 점령지에서 확보한 인력도 활용했다고 합니다. 그 중 가장 놀라웠던 것은 "고려말에 대하여"라는 한국어 회화집이 존재했다는 점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이 길인가", "곧이 이르라", "나이 몇이고", "자식 있는가" 같은 질문형 문장부터, "피리 부는가", "장인인가", "글 하는가"처럼 포로 중 유능한 인물을 식별하기 위한 문장들, "잘 씻으라", "술 덥혀라", "이거 가지고 있어라" 등 포로를 부리기 위한 표현, 그리고 "사람 많이 죽였다", "네 목 벨 것이야"처럼 위협적인 문장까지 수록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실전 상황에서 상당히 활용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가장 씁쓸했던건 여성을 성폭행하기 위한 표현입니다. "고운 각시 더불어 오라", "옷을 벗으라" 같은 문장이 회화집에 있었다는 설명은 읽는 것만으로도 불쾌하고 안타까웠습니다.
가토 기요마사가 함경도로 진출하여 '오란카이'라는 말을 듣고 '오랑캐'를 상대하겠다며 여진족 지역을 침공했다는 이야기도 기억에 남고, 당시 함경북도 병마절도사 한극함을 공격해 승리한 전투가 문헌상에 "세루토스"라는 거인을 이긴 전투로 묘사되는데 '세루토스'는 절도사를 의미하는 표현이었다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일본 측 문헌이긴 하지만, 조선군 인물의 활약도 일부 언급됩니다. 유극량을 비롯해 송상현, 류성룡, 신각, 곽준, 곽재우 등이 기록되어 있고, 이순신은 아예 '영웅'으로 칭해집니다. 물론 이러한 서술은 일본군의 우수함을 부각하기 위한 장치였겠지만, 그럼에도 조선 인물의 언급 자체는 반가웠습니다. 행주산성 전투에 이가 지역의 닌자가 투입되었다는 기록도 꽤 신선하게 느껴졌고요.
다만 이 책에서 묘사된 전쟁은 삼국지의 장면처럼 과장되고 영웅화되어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특히 가토 기요마사는 영웅으로 이상화된 반면, 고니시 유키나가는 부정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는 에도 시대 가치관과 무관하지 않다고 합니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전한 고니시가 할복하지 않고 처형된 천주교 신자였기 때문에 당시의 유교적 가치와 충돌했다는 해석이 붙습니다. 흥미롭기는 했지만, 사료적 가치 측면에서는 그리 높다고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깊이 있는 내용도 부족하고, 이야기 자체도 흥미롭다고 하기에는 다소 평이해서 추천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이 책 보다는 "징비록" 정도만 읽어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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