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산진의 요리왕국 - 기타오지 로산진 지음, 안은미 옮김/정은문고 |
전설적인 미식가 로산진이 단코신샤에 연재했던 글들을 중심으로 엮은 에세이. 로산진의 요리 및 미식 철학에 대해 역설하는 앞부분, 그리고 식재료와 여러 요리들에 대해 설명하는 뒷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앞부분 에세이, 그 중에서도 딱히 '요리'가 아니라 그 어떤 분야에도 통용될 수 있는 확실한 원칙, 철학에 대한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틀에 박혀 배운 것은 올바를 수는 있어도 반드시 재미있고 아름답다고 말할 수는 없다. 반면 개성있는 것은 재미와 아름다움, 그리고 존엄이 있다. 그런데 몇차례 실패를 겪으며 스스로 다다른 곳은 틀에 박힌 곳이기 십상이다.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바로 올바름이다. 개성있는 요리에는 틀, 모양, 규칙뿐만 아니라 저절로 배어 나온 맛과 힘이 있다. 틀부터 시작해도 나쁘지 않지만, 스스로 틀 안에 들어가 만족할까봐 걱정스럽다. 틀을 벗고 뛰어넘어야 한다." 같은 것 말이죠. 그게 무엇이든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의 사고방식은 확실히 자신만의 무언가가 있구나 싶네요.
재료의 중요함을 강조하는 "요리 맛의 9할은 재료다.", "모든 재료는 본맛이 있고 그 맛은 다른 재료로 대체할 수 없다. 요리란 결국 재료의 본맛을 살리는 일이다." 라던가, 작금의 설탕에 대한 이슈를 거의 한세기 전에 이미 짚은 "설탕만 넣으면 맛있다고 믿는 오늘날 요리는 미각의 저하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질 떨어지는 식품을 속여 넘기는 잔꾀를 설탕은 품고 있다." 등 요리의 본질에 대한 글들도 좋았고요.
"삼시 세끼는 맛있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사람의 가치는 자신이 만들고 먹는 것에 드러나기 마련이다." 는 브리아 샤바랭을 연상케 할 정도에요. 캬~! 로산진 정도 되야 할 수 있는 말이겠죠?
또 제가 즐겨 읽었던 만화 <맛의 달인>의 우미하라(가이바라) 유우잔의 모델이 확실히 기타로오 로산진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익히 알고 있었던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맛의 달인>에서 중요하게 등장했던 몇몇 에피소드가 로산진의 글로 등장하니 상당히 반갑더군요.
예를 들자면 조리법에 있어 가쓰오부시를 대패로 최대한 얇게 갈아야 하고, 다시마는 잠시 담갔다 빼는 정도로만 해야 된다는 이야기는 까다로운 손님이 우미하라인 것을 모르고 지로가 최고의 다시 국물을 내어 요리를 만드는 에피소드에 등장하죠. 프랑스에서 오리 요리를 먹을 때 소스 없이 지참했던 간장과 고추냉이 (와사비)로 소스를 만들어 찍어 먹었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고요.
물론 <맛의 달인>에서는 오리 고기를 간장에 찍어먹는 행동을 비판한다던가, 은어 최고의 산지가 어디인지 이야기하다가 '고향의 은어가 최고다' 라는 독특한 발상으로 한걸음 더 나아간 부분이 있기에 '표절'이라고 부를 수는 없겠죠.
그러나 뒷부분 식재료 관련 이야기는 별반 재미도, 가치도 없어서 조금 아쉽네요. 그가 조선을 여행한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먹었던 도미가 최고였다 등 우리 땅 관련된 이야기 정도는 눈길이 가지만 그 외에는 딱히 건질게 없거든요. 너무 일본적인 사고방식이 거북할 뿐더러 (일본 재료가 최고라는 근거없는 자부심) 지금은 구할 수 없는 식재료 이야기도 많기 때문입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거장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은 좋았지만 지금 읽기에 낡고 어울리지 않는 점이 있기에 감점합니다. 그래도 요리와 미식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한번 쯤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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