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한도 - |
아마 대한민국 국민 중 "세한도"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대단한 그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그림의 완성도가 그리 높아 보이지 않은 탓입니다. 이 책은 저 같은 무식자를 위한 책입니다. 왜 "세한도"가 대단한 그림인지를 설명해 주거든요.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세한도"라는 작품을 깊이 있게 파고들어 설명하는 부분, 그리고 작품의 창작 배경을 이해시키기 위해 김정희의 일생과 그의 성취를 조명하는 부분으로요. 때문에 이 책은 예술, 문화서적이면서 동시에 미시사 서적이기도 합니다.
그중 김정희의 일생은 정확하게 말하면 생애 전체는 아니고, 문과에 급제한 이후 중국 연행길에 올라 당대의 지식인들(특히 스승으로 모신 옹방강)과 교류하며 벼슬을 이어가다가 귀양을 가서 "세한도"를 그리게 될 때까지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 부분의 분량이 약 100여 페이지인데, 그간 깊이 알지 못했던 만큼 새로운 지식을 접하는 재미가 컸습니다. 귀양을 갔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이유가 안동 김씨 세도 정치 때문이었다는 점은 처음 알게 되었고, 또 윤상도의 상소로 촉발된 국문 과정이 소상하게 묘사된 부분은 마치 대하 사극을 보는 듯한 흥미를 준 덕분입니다.
이어지는 "세한도"라는 작품에 대한 해설 역시 마찬가지로 흥미로웠습니다. 처음 알게 된 내용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세한도"가 왜 뛰어난지에 대한 이유 중 첫 번째는, 이 그림이 문인화의 정점으로, 이른바 ‘선비의 기상이 나타나는’ 그림이라는 겁니다. 묘사력보다는 품격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이 부분을 설명하기 위해 언급된 ‘구방고’ 고사는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내면을 볼 수 있다면 겉모습은 중요하지 않다는 고사인데, 이런 고사를 자연스럽게 인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저자의 내공이 느껴졌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추사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쌓은 공부의 깊이가 엄청나며, 그 공부의 결실이 바로 "세한도"라는 점입니다. 이러한 해석은 추사의 편지들과 그가 소장했던 책들을 통해 설득력 있게 설명됩니다. 또한 "세한도"가 귀양 시절 자신을 위해 여러 책을 보내준 역관 이상적에게 감사의 뜻으로 그려진 작품이라는 점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책은 "세한도"에 대한 감상으로 마무리됩니다. 문인화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수련을 거듭한 거친 터치(적묵법, 초묵법)에 대한 설명도 좋았지만, 특히 그림의 구도와 인장의 관계를 분석하는 부분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림, 그림에 쓰인 글, 그리고 인장을 하나의 유기체로 보는 새로운 감상법은 기존에 생각해 보지 못했던 시각을 열어주었고요.
이렇듯 이 책은 우리가 알고는 있지만 깊이 알지 못했던 주제를 상세하고도 깊이 있게 조명해 주는, 거의 리뷰에 가까운 연구서입니다. 재미와 자료적 가치 모두 뛰어납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도판이 생각만큼 충실하지 못하다는 점인데, 책의 판형과 가격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공부가 많이 되었고 느낀 점도 많았지만, "세한도"가 정말 그렇게까지 뛰어난 그림인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글씨를 제외한 그림만 놓고 본다면 완성도가 높다고 보기는 아직도 어렵고, 선비의 기상이라는 것도 특별히 느껴지지는 않으니까요. 아울러 추사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 공부를 많이 했다는 점이 작품의 완성도에 영향을 준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내공의 깊이와 작품의 결과물이 비례한다는 보장은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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